'친일파' 후손들의 진심어린 반성을 기대하며~

나는 최근 십여 년 동안 빨갱이라는 말을 여러 번 직접 들었다.

얼마 전에도 가까운 사람에게서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혈압이 오르면서 말문이 막히고 기분이 나빠 언쟁을 할 뻔 했지만 숨을 돌리면서 참아 넘겼다. 빨갱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아주 더럽고 구정물을 뒤집어 쓴 양 참담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의 존재가 부정되고 배척되고 존재가 없어져야 할 것 같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참담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빨갱이라는 단어에 천착하게 되었다.

빨갱이는 북한의 붉은 기나 공산혁명을 상징하는 색깔, 빨강 혹은 적화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쓰는 빨갱이는 항일 유격대원을 지칭하는 빨치산에서 나왔다. 당시 항일 유격대원 중에 공산주의 신봉자들이 많았고 한국전쟁 때 공산당 유격대원도 빨치산으로 불렀다. 이 말이 나중에는 공산주의자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본래 당원이나 유격대원을 뜻하는 파르티잔(partisan)에서 빨치산과 빨갱이가 유래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의미의 빨갱이 단초는 일제 강점기 말 이승만의 편지에서 발견된다.

1942,10,10 미국 당국에 광복군 편입을 제안한 이승만의 편지에 호놀룰루에서 얼마 전 이곳에 도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전경무에 따르면, 그의(한길수 지칭) 조직은 50명이 못되는 한국 빨갱이들' 이상은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자신과 반대되는 조직을 빨갱이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한길수는 특별히 공산주의와 연관 기록이 파악되지 않는다. 이승만의 이러한 인식이 빨갱이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 상징 언어로 빨갱이가 대두된 것은 해방정국, 이승만의 등장부터다. 빨갱이는 단순히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미군정과 친일파 반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 씌우는 주술로 쓰였다. 친일파 청산을 거론해도, 외세 배격을 주장해도 빨갱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탄압받고 죽임을 당했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고 규정짓는 그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들이 민족분열을 획책하는 건국 범죄자인 것이다”(독립신보 1947.9.12.)

그래서 이들에게는 백범 김구도 빨갱이가 되었다.

이승만은 국민을 좌와 우로 나누어 좌를 비국민 제거 대상으로 보고 각종 단체와 민주인사까지 빨갱이로 몰아서 정치보복과 학살을 자행했다.“(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2019.3.4. 경향신문 [여적] 양권모 논설실장의 빨갱이 유래발췌>

 

인터넷에서 위의 기사가 검색되어 가져왔다. 어학사전에는 빨갱이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용어로서 공동체 내에서 배제와 조롱, 혐오의 함축어로 사용되어 지는 것 같다.

나는 나름대로 빨갱이의 궤적을 추적해 보았다.

19489월에 공포한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집행하기 위하여 그해 10월에 제헌 국회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약칭 반민특위)를 설치하고 6개월의 활동기간에 반민족 행위자‘(친일파)를 만여 명 색출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지만, 19494월에 일어난 국회 프락치 사건과 66일에 일어난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사건 등 이승만 정부의 비협조와 탄압으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949822일 폐지안이 통과되어 해산되었다. 또한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후 20일 후인 1949.6.26. 김구가 암살되는 등 친일파의 대대적인 역공이 시작되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건국과정에서 친일파들을 그대로 정부 구성원으로 기용하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단초가 나라의 출발을 뒤틀리게 하였고 어렵사리 구성된 반민특위로 인해 친일파들이 대거 처형과 청산의 위기에 몰리자 미국에 바짝 달라붙어 이번에는 친미파가 되어 미국의 입맛에 맞는 반공투사로 신분세탁 변신하였다. 반민특위로 인해 죽다 살아난친일파는 독이 올라서자기들의 생존을 위해 미국의 묵인 하에 반대파를 극렬하게 압박하고 탄압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없이 자행하게 되었다.

그런 친일파가 정적을 제거하는데 천하의 보검처럼 무지막지 휘둘러 댄 단어가 빨갱이라는 단어 아니겠는가? 문제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빨갱이만 잡은 것이 아니라 민족진영, 양심세력, 김구를 중심으로 한 우파 독립운동진영 등 친일파에 방해가 되면 아무나 빨갱이 딱지를 붙이며 제거해 버린 심각한 비극이 잉태되었다는 것이다.

전쟁기념관 정문에서 김순호 경찰국장에게 80년대 말 밀고 당한 학생 노동운동가들이 성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필자 사진
전쟁기념관 정문에서 김순호 경찰국장에게 80년대 말 밀고 당한 학생 노동운동가들이 성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필자 사진

해방 전에 항일독립군 진영에는 좌익과 우익이 함께 힘을 합쳐 일제를 물리친다는 대의가 있었다. 그러다가 남북이 갈라져 해방되면서 자연스레 좌익 독립군은 북으로, 우익 독립군 진영은 남으로 귀국한 것이다. 즉 김구를 중심으로 한 우익 독립 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고 제거했다는 것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친일파는 이승만 정권을 완전 장악하며 반민족 행위자에서 신생 독립국가의 지배자, 기득권으로 군림하면서 정적을 빨갱이 몰이로 압살하고 국가의 지배세력으로 권력을 공고히 하였다.

조국을 배신한 매국노들이 독립국가의 지배세력이 된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과문한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이 세계최초가 아닐까?

이렇게 형성된 친일파 지배세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사정권 등 새로운 정권에 바짝 빌붙어 야합과 공생의 신공(神功)을 발휘하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움켜쥐고 한반도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북한은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지주들을 자연스레 남쪽으로 밀어냈는데 북한의 지주들과 자녀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서북청년단을 중심으로 커다란 반북세력, 반공세력이 되어 이념이 맞아 떨어진 친일파들과 거대한 한 집단이 되었다.

북한은 어쨌든 좌익 독립군들이 정권을 세워서 친일파 지주를 청산하여, 반민족 행위자 친일파들이 지배세력이 된 남한보다 국가의 정통성 정체성 면에서 우위에 있었다. 그런 현상에서 남한의 친일파 지배세력은 자기들의 열등감을 감추고 북한에 눌리지 않기 위한 고육책으로 반공투사의 면모를 발휘하며 자기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지금껏 끊임없는 빨갱이 좌파 타령을 지겹도록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승만에 대해 "이승만은 이완용 보다 더 큰 역적 놈이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을 놈이다."고 촌철살인의 예언 아닌 예언을 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미국에 가서 호사생활하며 외국 년이랑 실컷 놀다 온 게 무슨 민족운동가냐"라고 일갈하였다.

보도연맹 등으로 몰려 한국전쟁 전후 학살된 민간인은 총 113만 명이며, "민간인 학살의 책임은 이승만과 맥아더에게 있다"고 학계는 주장한다. 1950713일 이승만은 대전에서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맥아더에게 이양하였기에, 그 이전의 민간인 학살 책임은 이승만에게, 이후는 맥아더에게 있다는 설명이다.

캄보디아에서 197579, 4년 동안 폴 포트의 급진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가 양민 200만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못지않은 이승만의 양민학살이다.

우리가 치를 떠는 일본 제국주의도 이렇게 많은 양민을 학살하지 않았는데 동족인 초대 대통령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이념이 다르지 않은데도) 무참히 양민을 살상했으니 그가 무슨 건국의 국부란 말인가? 사실 양민학살은 반공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친일파들이 이승만을 이용해 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친일파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이 계속된 비참한 현상이라고 해야 하겠다.

나도 해방정국이었다면 빨갱이로 몰려 죽임 당했을지 모른다. 시대가 민주화 되어 빨갱이 소리를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8월 하순에 있었던 남대문~서울역 도로에서의 민주노총 집회. 진보당 깃발과 '쥬스혁명' 간판이 그로테스크 하게 어울린다 / 필자 사진
8월 하순에 있었던 남대문~서울역 도로에서의 민주노총 집회. 진보당 깃발과 '쥬스혁명' 간판이 그로테스크 하게 어울린다 / 필자 사진

이와 같이 빨갱이라는 단어에는 친일파들이 자기들의 생존을 위해 수백만 명을 학살한 억울하고 소름끼치고 한 맺힌 역사가 얼룩져 있다. 이런 내력을 안다면 누구도 빨갱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사람들은 논쟁에서 밀리면 빨갱이라는 단어를 쉽게 발설한다. 아무리 말문이 막히고 생각이 달라도 절대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이다. 그것은 나는 무식한 사람입니다를 공표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20년 전부터 빨갱이 타령하는 사람들을 수구꼴통이라고 비하하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나도 수구꼴통의 단어로 대응하곤 했지만 뭔가 2%가 부족한 느낌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빨갱이 유래를 탐색하면서 빨갱이에 대응하는 단어를 찾아냈다. 그것은 친일파바로 그 단어였다. 친일파들이 자기들의 정적을 제거하려고 사용한 단어가 빨갱이이니 이제 그들에게 친일파를 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빨갱이를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친일파입니까? 친일파 자식입니까? 매국노 후손이군요.”라고 응수하기로 했다.

친일파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뼈아픈 말이다. 반민특위에서 죽다 살아난 소름끼치는 말이고 이 나라에서 존재의 근원을 지우는 말이기 때문이다. 간혹 친일파가 아니라면 당신은 친일파 좀비입니다. 친일파를 알아보십시오.”라고 점잔하게 응수하면 되겠다.

친일파는 해방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의 만악의 근원이다. 그들은 철지난 반공이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북한을 궤멸시켜야 할 존재로만 인식하며 한반도와 민족의 평화를 가로막는 심대한 암적 존재로 오늘도 한민족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해방 8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친일청산을 하지 못하고 친일파 후손들이 벌이는 신친일파행태를 보노라면 답답하고 순국선열들께 송구스러울 뿐이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니 정부여당 사람들이 공공연히 일본과 욱일기를 두둔하고 강제징용 판결에 개입하고 광화문 버스정류장에 일제총독부 건물과 일장기 그림을 버젓이 게시하고 극우 유튜버가 소녀상을 훼손하는 등 눈뜨고 못 볼 친일행각이 계속 벌어진다. 심지어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조차 해방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총독부와 일장기를 붙이느냐?“고 탄식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보면서 마음이 답답했다.

청계광장 도로변에 걸린 현수막. 보수단체가 민주 정치인들을 친일파 후손이라고 폄훼하는 내용이다 / 필자 사진
청계광장 도로변에 걸린 현수막. 보수단체가 민주 정치인들을 친일파 후손이라고 폄훼하는 내용이다 / 필자 사진

일제시대 친일행위를 한 반민족 행위자는 이제 거의 세상을 떠나고 그 후손들이 남아 있는데, 국민들이 무작정 친일파 후손이라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 자손들이 얼마나 양심적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가, 그것이 관건이다. 조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올바르게 살면 되는 것이다. 이제는 그것이 친일파 청산의 한 방법이다.

그런데도 친일파 조상을 끝없이 두둔하며 친일의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조상과 함께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이런 그릇된 행태가 친일파 청산을 어렵게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정신으로 친일파 후손들이 토착왜구신친일파라는 불명예스런 호칭에 묶여있지 말고 겸허하게 조상의 잘못을 사과하고 대한민국의 올바른 국민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진정으로 권유한다. 그것만이 친일파조상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렇게 될 때에야 친일파빨갱이니 하는 부끄럽고 무섭고 슬픈 단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민족적 화합으로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편집 : 조형식 객원편집위원 , 김미경 편집장

 

조형식 객원편집위원  july2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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