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바칼로레아(IB) 초등학교 교육과정(PYP)을  소개하고 있는 대구교육청 리플릿(출처 : 대구교육청)
국제바칼로레아(IB) 초등학교 교육과정(PYP)을  소개하고 있는 대구교육청 리플릿(출처 : 대구교육청)

국제바칼로레아(IB)는 외교관 자제나 외국 주재 상사원 자녀들에게 교육의 연속성과 학력 인정을 제공하고자 만든 교육과정이다. 국제바칼로레아 고등학교 교육과정(IBDP)은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를 모방해 만든 대입 교육과정이다. 프랑스 바칼로레아처럼 논술형 문제이고 절대평가 방식이지만 국제바칼로레아(IB) 고등학교 과정(DP,  Diploma Program)과는 내용이 다르다.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이면 모든 학생들이 가고자 하는 국공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프랑스,  독일,  핀란드, 스웨덴을 비롯해 교육선진국은 80-90% 이상이 국공립대학이다. 우리나라는 거꾸로 사립대학 비율이 80%를 넘는다. 그들 교육선진국들은 대학도 무상교육이기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탈락시킨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20%, 30% 탈락시키기에 졸업이 쉽지 않다.

국제바칼로레아 고등학교 교육과정(IBDP)은 45점 만점이고 2년 동안 고급 수준 3과목(240시간)과 표준 수준 3과목(150시간)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그 외에 철학, 도덕, 논술을 통합한 「지식론」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학생 자신이 관심 갖는 분야를 「소논문」 주제로 선택해 4,000자 낱말로 구성된 연구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거기다 「창의체험활동」으로 체육활동과 예술 활동, 그리고 지역 사회 봉사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제바칼로레아 고등학교 교육과정(IBDP)은 과목별 7점 만점, 총 6과목 42점에다 거기에 「지식론」, 「소논문」 3점을 보태 45점 만점으로 구성된다. 미국 사립명문대 아이비리그나 명문 주립대 UC 버클리, UCLA에 입학하려면 38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비영리기구 IB본부(IBO)는 스위스에 있고 실무를 맡는 사무소는 네덜란드에 있다. 국제바칼로레아 고등학교 교육과정(IBDP)이 1968년에 만들어졌으니 5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국제바칼로레아 중학교 과정(IB MYP)은 1994년에, 초등학교 과정(IB PYP)은 1997년에, 그리고 직업 교육과정(IBCP)은 2012년에 만들어졌다. 그만큼 국제바칼로레아 고등학교 교육과정(IBDP)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IBDP는 국제사회에서 그 신뢰성과 공정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창의성을 ‘끄집어내고’ 비판적 사고력을 확장시키는 창의융합형 교육을 추구한다. 그런 측면에서 IB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육과정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미래 사회를 대비해 우리 교육은 대전환을 맞고 있는 셈이다. 그 어느 때보다 교육계 깊은 성찰과 미래 교육에 대한 전망이 절실한 시점이다.

2022년 현재 고등학교 국제바칼로레아(IBDP)를 대학에서 인정하는 국가는 전 세계 75개국 2,000개 대학교가 넘는다. 미국 대학 4,000여개 가운데 하버드, 프린스턴, 컬럼비아, 예일 등 아이비리그와 UC버클리, UCLA, MIT, 뉴욕대를 비롯해 982개 대학에서 IB를 공식 인정하고 있다. 영국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를 비롯해 78개 대학이 인정하고 있다. 일본에선 게이오 대학을 비롯해 312개 대학에서 인정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서울대, 인하대, 카이스트, 한양대, 중앙대, 연세대, 한국 뉴욕주립대(SUNY KOREA) 7개 대학에서 IB 입학을 공식 인정하고 있다. 그밖에 서강대, 고려대, 성균관대도 수능 최저등급이 없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IBDP 점수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IB가 추구하는 학습자상은 탐구하는 인간, 사고하는 인간, 지식이 풍부한 인간, 원칙을 지키는 인간, 배려하는 인간, 소통하는 인간, 열린 마음을 지닌 인간, 도전하는 인간, 성찰하는 인간, 균형 잡힌 인간이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상이다. 실제로 IB 교육과정에 바탕이 된 철학은 존 듀이의 사상과 루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섬머힐의 니일, 그리고 인지발달 심리학자 장 피아제와 지식의 구조를 역설한 제롬 브루너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교육 사상, 실용주의, 구성주의가 IB 교육철학의 기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당시 국가 수준 교육과정 총론에서 밝혔듯이 우리나라도 ‘창의융합형’ 인재를 명시하고 있다. IB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학습자상과 거의 일치한다. 아마도 그런 측면에서 IB 공교육 도입을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실마리로 삼으려는 일군의 지식인들이 존재했다. 그들 중엔 진보를 자처하는 교육자들도 꽤 있고  널리 알려진 교육전문가나 학계 명망가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결정적인 잘못은 학교 현장의 참담한 실태를 모른다는 데 있다.  통계상 겉으로 드러난 대한민국 교육 위상은 80%에 육박하는 대학 진학률과 우수한 교사진, 그리고 PISA 등 국제학력평가에서 매년 수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사들은 엄청난 행정 잡무로 거의 소진돼 가는 상태이고 학생들은 학문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열정이 바닥난 상태다.  한 마디로 교사, 학생 모두 행복하지 않다. 아니 지치고 불행한 상태에 처해 있다.

​전국에서 유명한 혁신학교 장곡중학교 큰길 건너편에 있는 학원들(출처 : 하성환)​
​전국에서 유명한 혁신학교 장곡중학교 큰길 건너편에 있는 학원들(출처 : 하성환)​

학생들은 학교 정규수업에서 받는 주입식 교육도 모자라 방과후 수업이나 사설학원에 의존하며 세계 최장의 학습노동시간으로 고통 받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 교육은 외형과 다르게 참담함 그 자체다.

따라서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학습자상이 IB가 추구하는 학습자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IB를 공교육에 도입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전면화하려는 정책 시도는 다분히 우려스럽다. 더구나 교육모순이 중층적으로 뒤덮인 학교 현실을 외면하고 무엇보다 교육 주체인 교사들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진행하고 있는 현실은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모두 국가주의 관료행정이 낳은 폐해다.

게다가 위에서 내리꽂듯이 추진하고 있는 IB 공교육 도입은 처음부터 국가주의 관료행정이 주도했기에 동기 자체가 불순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IB 공교육 도입이 ‘자주성’, ‘자율성’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채 다분히 ‘이미지 정치’의 일환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보수(?)교육감 자신의 업적이라는 공명심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특히 IB 도입과 공교육 확산에 속도를 내고 있는 대구교육청이 그러하다. 대구교육감으로 재선한 강은희 교육감은 후보 시절 ‘끄집어내는’ IB 공교육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뿐만 아니라 ‘집어넣는’ 일제고사 시행, 수준별 방과후 수업 등 현행 맞춤형 입시정책을 똑같이 역설했다. IB가 추구하는 교육철학과 현행 수능형 입시정책은 전혀 상반된 정책이자 모순된 철학임에도 이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IB 정책 연구를 제일 먼저 시도한 인물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다. 진보의 상징이자 우리나라 교육의 중심인 서울 교육을 책임진 인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IB 정책 연구를 처음 시작한 2017년 서울시 교육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일반고 전성시대>를 바탕으로 자사고와 특목고 등 특권교육 폐지, 그리고 <혁신교육 확산>이 조희연 진보교육감이 내세운 서울교육 핵심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8년 들어 IB 공교육 도입은 오히려 제주와 대구 교육청에서 주도했다. 당시 제주교육감은 전교조 출신 이석문 진보교육감이었고 대구는 박근혜 정권 시절 한국사 국정제를 강조한 보수(?)교육감 강은희였다. 그 외에 충북, 충남, 경남, 경북, 서울, 세종, 인천을 비롯해 다른 지역 교육감들도 IB 도입에 관심을 보였다. 이는 진보, 보수(?)교육감 모두 우리교육에 변화가 필요함을 드러낸 장면이다.

2019년 4월 17일 프레스센터에서 이석문 제주교육감(왼쪽), 강은희 대구교육감(가운데 여성)과 함께 IB 한국어화 추진을 확정한 기자회견 장면(출처 : 대구교육청)
2019년 4월 17일 프레스센터에서 이석문 제주교육감(왼쪽), 강은희 대구교육감(가운데 여성)과 함께 IB 한국어화 추진을 확정한 기자회견 장면(출처 : 대구교육청)

특히 제주와 대구 교육감들이 2019년 IB 본부와 함께 ‘IB 한국어화’ 작업을 공식 선언하면서 IB는 2018-2019년 교육계를 뜨겁게 달군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만큼 한국 교육은 중증을 앓고 있는 병든 상태였고 지금도 여전히 중증을 앓고 있다.

IB 영어판, 프랑스어판, 스페인어판은 있었어도 다른 언어로 번역돼 있는 IB는 없었다. 그런데 2018년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면서 한반도에 평화 기운이 크게 움트자 IB 본부는 ‘IB 한국어화’ 작업을 공식 선언했다. 남북관계 진전이 IB가 추구하는 정신세계와 일치한다는 취지였다. 다시 말해 차이에 대한 존중과 조화, 그리고 더 나은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IB 교육의 지향점과 당대 조성된 시대분위기가 조응한 탓이다.

그러나 글쓴이는 ‘IB 공교육 도입’이라는 교육계 움직임에 반대한다. 그 이유를 뒤틀린 우리현대사에서 찾고자 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회는 역사정의가 무너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 정의든 교육 정의든 우리사회는 정의를 세우기 대단히 어려운 환경이다.

맨 먼저 IB 공교육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관료주의 국가행정이 지배하는 우리 교육계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데 있다. 아무리 좋은 교육 정책이나 교육과정의 도입도 우리 교육 현실에 맞게 적용하려면 좋은 교육 정책이나 교육과정을 수용할 만한 학교생태계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IB 공교육 도입을 주도하고 있는 대구나 제주, 그리고 2022년 보수(?)교육감이 당선된 경기도의 경우 IB를 연착륙시킬 수 있는 사전 교육 환경의 선행 변화가 없었다. 학교생태계를 변화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주체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2년 9월 15일 경기도 교육감과 IB본부 회장 간 IB 도입 의향서 체결식 장면(출처 : 경기도 교육청)
2022년 9월 15일 경기도 교육감과 IB본부 회장 간 IB 도입 의향서 체결식 장면(출처 : 경기도 교육청)

다시 말해 학교 현장 교사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거의 듣지 않고 소통 없이 진행하고 있다. 그저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좋은 교육과정이니 교사들은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IB 공문을 내려 보내 연수 참가를 종용하는 식이다.

우리는 이미 학생부 종합전형(약칭 학종 전형)이 실패한 대입 정책임을 매순간 확인하고 있다. 학생의 발달 과정 전체를 생활기록부에 꼼꼼히, 그리고 세밀하게 기술하고 이를 근거로 학생의 자기 성장과 진로, 그리고 대입 전형에 반영하겠다는 의도였다. 처음엔 교육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2008년 학생부 종합전형이 본격적으로 얼굴을 내밀었던 당시 교육계는 환영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교육운동을 하는 교사들조차 교실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쌍수로 환영하기도 했다. 수능 문제지를 달달달 외고 지식을 암기해서 짧은 시간 내에 정답을 고르는 현행 대학수능 시험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 토론과 발표 수업도 가능하고 교사가 의도하기에 따라 다양한 교수-학습 형태를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침묵이 흐르는 교실을 멈추고 학생들의 자발성에 기대어 작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컸다. 그게 당시 교육운동하던 교사들 일반 정서였다.

학생들 스스로 관심 있어 하는 탐구 주제를 모둠별로 정해 자발적으로 탐구하고 탐구 결과를 ppt를 활용해 발표하는 학습 형태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18학년도부터 적용된 고등학교 1학교 『통합사회』 교과의 경우 안성맞춤이었다. 교과서 구성 자체가 지리-역사-윤리-일반사회를 넘나들면서 융합된 형태로 교과서를 구성한 탓에 교사가 어떻게 이끌어 가는가에 따라서 학생들 흥미와 학습참여도는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교실이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교사-학생 모두 조금은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수능 점수가 낮아도 수능 최저 조건만 맞추면 세칭 상위권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서울 강북이나 지방 군 단위 소재 고등학교에서도 서울대를 입학하는 학생수가 증가하였기에 교육 운동하는 교사들조차 학종 전형에 대거 지지를 보냈다. 그렇게 학종 전형은 2010년 이후 급속히 수시 전형으로 확대되면서 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2019년 ‘조국 사태’는 그 문제점을 전 국민에게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다.

물론 ‘조국 사태’에서 조국 교수 자신이나 정경심 교수의 경우 잘못이 없다고 글쓴이는 확신한다. 적어도 범죄라고 생각지 않는다. 당시 강남 유한계층이나 입시정보에 앞섰던 사람들은 그 이상의 스펙 쌓기도 일상적으로 시도했으니까! 하지도 않은 경로당 봉사활동 20시간도 학생이 들이밀면 교사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냥 입력해 주는 게 초창기 학생부 종합전형 실태였다.

봉사활동 기간 동안 다른 활동을 한 것을 마치 조작인 것처럼 발표한 2019년 검찰 태도나 검찰이 흘린 내용이나 발표를 입시전문가인 교사들에게 취재하지도 않고 검찰 발표 그대로 기사화한 언론의 태도가 답답하다 못해 한심하기까지 했다. 교사들이 봉사활동을 어떻게 기록하는가를 조금만 알려고 했다면 그런 사건 조작이나 엉터리 보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단국대 실험을 통해 쓴 논문이며 동양대 봉사활동 역시 글쓴이는 ‘조작’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건 학종 전형이 만연했던 당시 고3 담임을 해본 교사라면 당시 정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검찰은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떠오른 조국 교수를 낙마시키기 위해 지극히 정치적으로 접근했다. 한 마디로 2019년 하반기 ‘조국 사태’ 국면에서 검찰은 수사의 동기 자체가 매우 불순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학종 전형의 실태를 모르고 있었고 검찰과 기레기 언론들은 일반 국민의 순진한 정의감에 호소하며 ‘조국’ 교수를 <부패한 위선자>로 낙인찍고 나아가 ‘문재인 정부’를, 더 나아가 ‘수시 학종 전형’을 마구 흔들어댔다. 그게 2019년 ‘조국 사태’ 실체가 초래한 무서운 결과다.

당시 ‘조국 사태’가 사회 정의에 어긋나고 정말 문제였다면 2022년 『뉴스타파』에서 보도했듯이 노골적으로 논문을 표절, 조작하고 봉사활동 허위 기록 의혹을 받는 한동훈 자녀와 조카들 사건은 왜 지금 침묵으로 일관하는지 글쓴이는 알 수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국민을 상대로 농락한 사건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무소불위의 무시무시한 검찰 권력이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사회를 농락한다고 글쓴이는 판단한다. 어렸을 때 선친께서 그러셨다. 검사는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라고!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를 탄식한 말씀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부모의 문화자본이 우수한 학생들은 다양한 스펙을 쌓을 수 있었고 실제로 자사고, 특목고를 비롯해 서울 강남지역 상당수 학교들은 그렇게 움직였다. 천문물리학자인 부모를 강사로 초빙해 학교에서 강좌를 열어주고 그에 응답한 학생들 활동을 다양하게 기술해 학교생활기록부를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었다. 1학년을 마칠 때 전교 수위를 달린 학생들의 경우 이미 학교생활기록부가 10장이 넘어간 경우도 적잖이 목격했던 게 당시 풍경이다.

아니, 꼭 강남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서울 일반고 보통의 아이들도 방학을 이용해 카이스트나 서강대 교수의 실험에 함께 참여하고 그 활동 기록을 담임교사인 글쓴이에게 기록해 달라고 가져오는 게 당시 일상적 풍경이었다. 실제로 2012년도에 글쓴이가 겪은 일이다. 해당 학생은 성실하게 과학 실험에 참여했고 그 활동을 담임교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점에서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방영돼 크게 주목 받은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학종 전형의 문제점을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한 수작이다. 결론적으로 학종 전형은 계급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문화자본이 우수한 계층이나 입시정보에 앞서갔던 상류 계층에게 매우 유리한 대입 전형임에 틀림없다. 이는 통계상으로도 입증되는 사실이다.

오늘날 불행히도 학종 전형은 껍데기만 남았다. 미국에서 가져온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자기소개서, 추천서는 물론이고 봉사활동도 학교장이 학년 초 교내 봉사활동 계획에 따라 승인한 것에 한해서만 인정한다. 교외 봉사활동이나 수상기록은 입력 자체가 불가능하고 학생의 우수성이나 높은 성취도를 드러내는 소논문 작성과 단행본 출간, 그리고 높은 어학 점수 획득 등은 일체 기록할 수 없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공정성 논란이 낳은 고육지책이었다. 

심지어 학생들 창의체험활동이나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 기록조차 글자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교내 수상 기록도 연 6회로 제한하고 학생들이 성장기에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 독서는 아예 기록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소논문도 대필과 공정성 논란 끝에 2018학년도부터 소논문대회를 교육부 지시사항으로 전국 고등학교에서 전면 폐지시켰다. 추천서, 자기소개서 또한 이미 폐지되었고 이제 남은 건 성적과 500자로 입력 글자수가 한정된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 정도다.

한 마디로 학종 전형의 교육적 도입 취지의 우수성은 온데간데없고 뼈대만 앙상한 몰골이다. 그 이유는 역사정의가 실종된 우리사회 자화상이 빚어낸 비극이다. 학종 전형의 원조인 미국조차 봉사활동이 ‘위선의 교육’을 낳았다고 평가받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봉사하는 생활이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이고 그것이 고스란히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흐름이 아니다. 

세칭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려면 어떤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지 대학 입학에 맞춰서 봉사활동을 수행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봉사활동 자체가 기쁨이자 행복으로서 삶의 과정이기보다 대학입학을 위한 수단으로 그 위상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채로 아이들이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게 우리가 목격하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봉사활동이다.

우리 교육 또한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채 봉사활동이 진행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고 거기다 더해 역사정의가 무너진 사회현실이다 보니 더욱 학종 전형은 뿌리를 내릴 수 없을 만큼 악화된 상황이다. 따라서 IB 공교육 도입을 통해 교육개혁을 시도하는 국가주의 관료행정 또한 똑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구나 교사들을 철저히 배제시킨 상태에서 위에서 내리꽂듯이 강행하는 관료행정이야말로 거듭된 실패작 가운데 또 하나를 장식할 게 명약관화하다.

2022년 10월 4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2022 교육과정 개악 저지>  규탄, 전교조 기자 회견  모습(출처 : 전교조 홍보국)
2022년 10월 4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2022 교육과정 개악 저지>  규탄, 전교조 기자 회견  모습(출처 : 전교조 홍보국)

두 번째 IB를 반대하는 이유로 4만 교사 목소리를 대변하는 전교조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심지어 『한겨레』 지면을 통해 교육 운동하는 교사들에게 널리 알려진 어떤 논술전문가는 “전교조 교사들은 교실붕괴, 학습포기에 맞서 어떤 노력을 했느냐”(『오마이뉴스』 2019년 5월 29일)며 전교조를 질타했다. 전교조 대구지부나 전교조 제주지부에서 공식적으로 반대 성명서를 발표한 이유에 귀를 기울일 만한 대목이 많다. 그리고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에서 주장하는 IB 공교육 도입 반대 논거는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IBDP 교육과정은 <학생주도성>을 강조하는 학습이자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탐구 주제를 깊이 있게 공부해 나가는 <토론형‧논술형‧탐구형> 교육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모둠별 학습이나 토론, 발표는 기본이고 소논문도 작성한다. 그런데 2009년 경기도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직후 전교조가 경기도에서 맨 먼저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시킨 혁신학교 교육과정이 IB 교육과정과 크게 차이가 없다. 지향하는 학습자상이나 교육과정 또한 학생주도형 학습을 지향하고 있다.

글쓴이가 재직하고 있는 혁신학교에서 <영어교과의 날> 행사 당시 학생 주도 학습 장면(출처 : 하성환) 비록 부족한 측면도 있겠지만 학생들 참여도는 매우 높았다. 글쓴이는 혁신학교에서 행정업무가 가장 적은 편인데도 <사회과의 날>을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실천하지 못했다. 올해 실천한 국어과, 미술과, 영어과, 사회과 를 비롯해  해당 교과 교사들에게 아낌없이 찬사와 경의를 보내고 싶다. 그 열정을 글쓴이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글쓴이가 재직하고 있는 혁신학교에서 <영어교과의 날> 행사 당시 학생 주도 학습 장면(출처 : 하성환) 비록 부족한 측면도 있겠지만 학생들 참여도는 매우 높았다. 글쓴이는 혁신학교에서 행정업무가 가장 적은 편인데도 <사회과의 날>을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실천하지 못했다. 올해 실천한 국어과, 미술과, 영어과, 사회과 를 비롯해  해당 교과 교사들에게 아낌없이 찬사와 경의를 보내고 싶다. 그 열정을 글쓴이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탐구 주제를 선정하고 모둠별로 토론, 발표하는 학습 형태라든지, 학생들 스스로 관심을 갖는 탐구 주제를 선정해 프로젝트 발표회를 실천한다든지, 나아가 탐구보고서를 작성하여 대회에서 발표하고 생각을 주고받는 전 과정이 그러하다.

2021년 국어과, 영어과, 과학과, 사회과, 미술과 교과 융합 수업으로 학생들이 제작한 기후위기 프로젝트(출처 : 하성환)
2021년 국어과, 영어과, 과학과, 사회과, 미술과 교과 융합 수업으로 학생들이 제작한 기후위기 프로젝트(출처 : 하성환)

적어도 경기도 혁신학교를 표방하는 학교에서는 그러한 교육과정이 일반적으로 보편화돼 있다. 글쓴이가 있는 학교 역시 혁신학교 5년 차인데 교사들 간 「전문적 교원학습공동체」(약칭 전학공) 모임을 주기적으로 진행하거나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에서 주변 학교 교사들과 전학공 모임을 협력해서 개최하고 활동 경험을 서로 공유하는 모습 또한 그러하다.

<2022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 연합 전학공>에서 3개 혁신학교 교사들이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에서 느낀 점을 정리한 도표(출처 : 하성환)
<2022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 연합 전학공>에서 3개 혁신학교 교사들이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에서 느낀 점을 정리한 도표(출처 : 하성환)

문제는 학생들이 자기 마을의 문제점을 찾고 시정을 요구했을 때 변화가 더디거나 아예 반향이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이 반복되면 전학공이나 마을교육공동체는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핀란드처럼 고등학생들이 ‘청소년의회’ 활동을 통해 시의회에 참석해서 발언하고 시청에 변화를 요청했을 때 즉각 반응이 오거나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학생의 사회참여, 정치참여를 흉내만 내게 할 뿐, 근본에서 외면하고 틀어막는 구조다. 이런 낡고 후진적인 정치사회구조! 학생들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사회구조를 해체시켜야 혁신교육, 마을교육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다. 학생을 ‘동등한 인격체’ 내지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지 않는 데에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수행평가(IB에선 과정평가) 과정에선 <진로연계 사회탐구> 주제를 학생들 스스로 관심 분야를 선정해 탐구계획서를 작성하고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ppt 자료로 제출, 발표한다. 그리고 교사는 그 전 과정을 관찰하며 평가한다.

놀라운 사실은 교사가 강의식으로 수업할 때 평소 엎드려 자던 학생들도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아서 자료를 검색, 수집하고 ppt를 활용해 여러 친구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발표하는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은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질문도 하고 발표 학생은 자신이 아는 대로 답변도 한다.

그 과정을 보고 있으면 무척 재미있다. 더 깊이 연구하지 못한 학생은 답변을 못해 어쩔줄 몰라하고 어떤 친구들은 자신있게 질문에 응답하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아! 저 친구가 저 분야에 저렇게 관심이 많았구나!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이들 스스로 더 탐구해 보고 싶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학습동기를 부여해 준다는 데 교육적 의의가 크다.

실제로 IB 소논문 작성과 마찬가지로 혁신학교 학생들은 탐구보고서 또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한다. 물론 극히 성적이 우수한 일부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이 학종 전형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유명한 혁신학교 성공 사례인 장곡중학교는 학교 건물 내부가 교장실부터, 도서실, 복도, 심지어 화장실까지 교육환경이 좀 색다르다. 화장실 앞에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도종환 시인(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쓴 멋진 시가 걸려 있다.(출처 : 하성환)
전국에서 유명한 혁신학교 성공 사례인 장곡중학교는 학교 건물 내부가 교장실부터, 도서실, 복도, 심지어 화장실까지 교육환경이 좀 색다르다. 화장실 앞에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도종환 시인(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쓴 멋진 시가 걸려 있다.(출처 : 하성환)

따라서 이미 2009년 혁신학교 초창기 전교조 교사들이 진보교육감과 한 팀이 되어 혁신교육을 널리 확산시켜 왔다. 혁신학교 교육운동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현 시점에서 혁신학교 교육이 성공한 사례와 무늬만 혁신학교인 사례, 그리고 실패한 혁신학교 사례를 두루 검토해서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교육을 근본부터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함에도 느닷없이 IB교육과정으로 공교육을 혁신하자고 한다면 전교조 교사 가운데 어느 누가 이에 찬동하겠는가!

문제는 혁신학교 교육을 방해하는 국가주의 관료행정, 비민주적인 학교 생태계, 학생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여전히 억압하는 교육관행 일체를 제거하고 교사, 학생의 자주성을 극도로 존중하고 보장하는 학교생태계를 가장 먼저 조성하는 작업이다.

교사정원 감축하는 윤석열 정권 교육부 정책을 규탄하는 전교조 조합원 시위 장면(출처 : 전교조 홍보국)
교사정원 감축하는 윤석열 정권 교육부 정책을 규탄하는 전교조 조합원 시위 장면(출처 : 전교조 홍보국)

이러한 정책과 행정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혁신학교 운동도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전국에서 가장 먼저 혁신학교 운동을 실천한 경기도에서 그런 한계와 문제점이 여기저기 노정되고 있다.

경기도는 초중고 전체 57% 학교가 혁신학교다. 그런데 무늬만 혁신학교이거나 실패한 혁신학교 사례가 적잖이 눈에 띈다. 이유는 간단하다. IB든 혁신교육과정이든 이를 뒷받침할 만한 학교 생태계가 정비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밑 빠진 독에 IB를 강제 이식시키면 부작용만 덧날 수 있다.

2021년 12월 9일 전교조 경기지부 조합원 선생님들이 국회 앞 31일차 농성장에서 <학급 당 학생 수 20명> 이하로 줄이는 10만 입법 청원 운동에 참여한 모습(출처 : 전교조 홍보국)
2021년 12월 9일 전교조 경기지부 조합원 선생님들이 국회 앞 31일차 농성장에서 <학급 당 학생 수 20명> 이하로 줄이는 10만 입법 청원 운동에 참여한 모습(출처 : 전교조 홍보국)

가장 먼저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 아직도 교도소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학교도 많다. 1인당 GDP 35,000불을 넘어선 우리나라가 필리핀보다 학급당 학생수가 많다고 하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IB 지식을 앞서 습득한 지식인들은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학교 생태계를 ‘교육이 가능한 학교’로 바꾸기를 먼저 주장했어야 했다. 전교조 교사들이 국회 앞에서 학급당 학생수 감축을 위해 퍼포먼스를 하고 서명운동과 10만 입법청원, 그리고 거리 시위를 할 때 그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는지 나는 묻고 싶다.

‘학교=행복발전소’는 어렵지 않다.  ‘혁신학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교사와 학생들의 자주성과 자발성을 지극히 존중하는 학교생태계를 구축하면 된다. 학교장을 의사결정단위에서 배제하고 교사와 학생의 교육활동을 보조하는 지원 단위로 재배치하면 된다.

2021년 9월 30일 교사에게 떠넘긴 과중한 행정잡무를 규탄하는 전교조 조합원 시위장면(출처 : 전교조 홍보국)
2021년 9월 30일 교사에게 떠넘긴 과중한 행정잡무를 규탄하는 전교조 조합원 시위장면(출처 : 전교조 홍보국)

나아가 교사들을 끊임없이 지치게 하고 순수한 열정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교육의지를 소진시키는 행정 잡무로부터 완전히 교사를 해방시켜야 한다. 교사는 교수-학습 전문가이지 행정요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교육은 핀란드를 넘어서서 학생들을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민’으로 길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글쓴이가 경험한 우리나라 교사들은 일반고든 혁신학교든 헌신적이고 열정이 살아 있는 교사들이 여전히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 현실은 국가주의 관료행정에 의해 교사의 열정을 차갑게 식히며 정반대로 가고 있다. 말로는 미래사회를 대비해야 한다고 하면서 보수(?)교육감이 등장한 이후, 단위 학교에서 ‘혁신’, ‘교육혁신’이란 말조차 사라지고 있다. 글쓴이가 재직하는 혁신학교에서조차 「교육혁신부」라는 부서가 사라지고 명칭도 「미래교육부」로 바뀔 예정이다.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 교육부가 「민주시민교육과」를 직제에서 없애더니 보수(?)교육감이 등장한 이후, 혁신학교에선 「교육혁신부」 부서가 사라질 운명이다. IB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전격 도입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래교육부」나 「교육과정부」가 IB 업무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행정 잡무가 산적한 상태에서 <IB 교사로 거듭나라!>고 각종 연수를 주문하며 교사들을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단위학교 「교육혁신부」 부서를 더욱 두텁게 하여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가장 비중 있는 부서로 키우기는커녕 현행 보수(?)교육감 아래 관료행정은 아예 ‘혁신’ 이란 낱말 자체를 지우려는 방식이다. 혁신학교 교육 철학을 부정하면서 IB 교육과정 도입이 공교육을 혁신할 것이라 주장한다. 모순도 대단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현장의 열악한 현실에 눈을 감거나 아니면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국가주의 관료행정의 극치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IB 공교육 도입을 계기로 ‘전교조=교육개혁 방해 세력’으로 둔갑시키는 또 다른 음모로 비치기도 한다.

마치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전교조는 40만 교원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천박한 교원평가제 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했다.  전교조는 2005-2006 해를 넘기면서 총력 투쟁으로 반대했다. 당시 조중동 주류언론들은  이때다 싶어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전교조를  ‘교사이기주의 집단’으로 한껏 몰아갔다. 그들 조중동 주류언론들의 보도태도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촌지가 오랫동안 존재한 탓에 부모들 원성의 대상이었으며 폭력교사와 성범죄교사, 그리고 성적조작교사들이 학교 현장에 일부나마 엄연히 존재했던 당시 현실에서 국민들의 순진한 정의감에 기대어 전교조를 마구 흔들어댔던 기억이 또렷하다.

일반 국민들은 교원평가제를 통해서라도 뇌물수수교사, 폭력교사, 성범죄교사, 성적조작교사를 비롯해 교사부적격자를 학교현장에서 걸러낼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게 당시 시대 분위기였다. 당시 전교조가 전술적으로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더라면 ‘전교조 = 교사이기주의 집단’이란 오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척 아쉽고 아쉬운 지점이다.

이번 IB 공교육 도입을 ‘교육개혁’으로 포장한 채, 이를 반대하는 전교조를 ‘교육개혁의 최대 방해세력’으로 덧씌운다면 그것이야말로 수구세력인 그들이 가장 의도하는 목표일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전교조를 확실히 만들어 내고 전교조를 이상한 ‘괴물 집단’으로 묘사하는 게 그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성공할 수도 없는 IB 공교육 도입을 마치 전교조가 반대해서 안 되는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며 그런 여론을 조성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현재 교육정세는 그런 국면이다.

역사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사회정의, 나아가 교육정의를 바로 세우기는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IB를 자국의 공교육과정에 전면 도입한 국가는 한 군데도 없다. IB 법적 본부가 있는 스위스든 실무본부가 있는 네덜란드든 공교육 교육과정에 IB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IBO는 비영리 민간기구라고 하지만 그들이 IB 관심학교 – 후보학교 – 인증학교(월드 스쿨)로 가는 각 단계마다 단위학교에서 걷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관련 논문을 읽어보면 상당한 수익구조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IB 인증학교가 되면 IBO에 매년 연회비를 비롯해 1,000만 원 ~ 2,0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 초중고 10,000개 넘는 학교가 모두 IB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할 경우, 최소한 매년 1,000억원 ~ 2,000억 원을 IBO에 지불하는 셈이다. 실제로 IBO에 지불해야 할 금액은 학교당 연회비 1,000만 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교사연수비, IB코디네이터 상주 인건비용, IB 신청-심사-평가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더하면 실제 소요비용은 학교 당 매년 2,000만원 ~ 3,000만원으로 추산된다. 정상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매년 2,000억 ~ 3,000억을 해외 기구에 혈세로 지불해야 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형국이다. 보수(?)교육감들은 혁신학교에 들어갈 혁신학교 예산으로 IBO 지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둘러대지만 그것이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2022년 7월 20일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교사 정원 확보를 위해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이 투쟁하는 집회 장면(출처 : 전교조 홍보국)
2022년 7월 20일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교사 정원 확보를 위해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이 투쟁하는 집회 장면(출처 : 전교조 홍보국)

IB 공교육에 지원할 교육예산이 있다면 4만 명에 이르는 기간제 교사를 방치할 게 아니다. 정규직 교사를 더 많이 선발하여 법정교원수를 채우고 나아가 학교 신축을 통해 학급당 학생수를 시급히 줄여나가야 한다. <교육이 가능한 학교>를 만들어 가는 일은 정치권과 교육당국의 소명이자 책무다.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일엔 전혀 무관심한 그들이 마치 교육개혁의 전도사라도 되는 양, IB 공교육 도입을 강행하는 모습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못해 불온하기까지 하다.

2012년 겉으론 ‘글로벌 인재 육성’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다분히 정치적 의도로 시작한 일본 아베 정권의 IB 공교육 도입은 2018년까지 200개 학교를 목표로 했다. 그렇지만 2019년 현재 IB 인증학교는 76개 학교였고 2022년 현재 102개 학교에 지나지 않았다. 결정적 원인은 교육재정 문제로 공립학교 IB 도입에 제동이 걸린 탓이다. IB 공교육 도입은 결코 적은 예산이 드는 정책이 아니다. 일본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교육개혁을 위해선 교육선진국에서 일찌감치 사라진 장학행정감사제도를 즉각 폐지하고 교사와 학생들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높이는 교육생태계부터 갖춰나가길 바란다. 그게 교육부 – 교육청이 당장 해야 할 당면 과제다. 그리고 교육과 직접 관련 없는 공문을 내려 보내는 일을 당장 멈춰야 한다.

1년에 1만 건 공문이 내려오는 우리나라와 달리, 핀란드는 5건이 전부라고 한다. 교사에게 내려온 공문 가운데 교육과 직접 관련된 것은 10%에도 지나지 않는다. 공람된 지시공문, 협조공문을 헤아리면 하루에도 교사 한 사람에게 수십 개씩 공문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아예 읽을 시간조차 없다. 대부분 교사들은 그냥 일괄 삭제하는 게 우리네 교사가 처한 참혹한 현실이다.

전교조가 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교육부, 인사혁신처를 중앙지검에 고발한 피켓팅 장면(출처 : 전교조 홍보국) 법원에서 <교사 성과급 균등분배 금지 지침>이 위법이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에 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채 지침을 하달했다. 교원성과급제는 교사의 영혼을 잠식하는 기제로 무엇보다 교사의 자존감과 교육의 자주성을 뒤흔드는 매우 위험한 정책이다.
전교조가 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교육부, 인사혁신처를 중앙지검에 고발한 피켓팅 장면(출처 : 전교조 홍보국) 법원에서 <교사 성과급 균등분배 금지 지침>이 위법이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에 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채 지침을 하달했다. 교원성과급제는 교사의 영혼을 잠식하는 기제로 무엇보다 교사의 자존감과 교육의 자주성을 뒤흔드는 매우 위험한 정책이다.

그리고 연수를 자율성에 기반해야지 성과금이라는 물질과 연계시켜 연수를 이수하게 하는 제도는 교사의 영혼을 잠식하는 가장 천박한 제도다. 도대체 이러한 천박한 행태를 제도의 이름으로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묻고 싶다.

교육주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교사의 인격권과 교육의 자주성이 지속적으로 상처받는 현실에서 어떻게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행복한 학교를 꿈꿀 수 있고, 어떻게 행복한 교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행정잡무처리가 본업이고 수업연구는 뒷전인 전도된 학교현실에서 어떻게 행복한 학생을 길러내며 어떻게 행복한 자기 성장을 교사가 기대할 수 있겠는가!

글쓴이가 경험하는 혁신학교 선생님들은 매일 소진돼 가고 있다. 교사를 꿈꾸며 첫발을 내딛던 젊은 날 설레는 마음에 환멸을 안겨주지 말아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던 그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교사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장학행정감사제도를 당장 철폐하며 강제 의무연수제를 폐지한 핀란드 교육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라! 우리가 나아갈 길은 명확하지 않은가! 논술형 평가를 교사가 할 수 있도록 평가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고 제도화하려는 보완행정을 구사하라! 그게 오늘날 지시-협조 행정으로 일관하는 교육부-교육청이 해야 할 시대 과제다.

단위 학교에서 교사들이 처한 현실을 정직한 눈으로 보았을 때 ‘자율성’의 공간은 거의 없다. 매년 학년 초에 교과마다 평가 기준을 세세하게 정하고 그것을 수합해서 교육청에 보고해온 일상이 우리네 학교가 처한 기막힌 현실이다.

심지어 개별 교사의 평가권은 공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율성이 숨 쉴 수 없는 상태다. 똑같은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가 여러 명이면 똑같은 문제로 똑같은 시간대에 평가해야 공정하다고 믿는 분위기가 여전히 우리 교육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허구이자 현실 기만이다.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똑같은 문제로 수백 명을 똑같이 평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북서 유럽 교육선진국은 같은 교과, 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평가는 교사마다 다르고 자유롭다. 교과서 자유발행제도 그렇지만 교과서를 학습에 사용할지 여부도 교사가 정한다. 그만큼 교사의 교육과정 구성권이나 평가권이 높은 수준으로 존중받고 있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 교육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져 한참 후진적 상황을 면치 못한다.

교육과정 구성과 평가에서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선 창의력을 극대화하고 비판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수업을 전개할 수도 없고 평가 또한 할 수도 없다. 국가주의 관료행정이 압도하는 우리네 교육 현실에선 애당초 불가능한 구조다. 교육개혁의 화살이 왜 통제를 일삼는 국가주의 관료행정을 겨냥하는지 관료들은 깨달아야 한다.

요컨대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바탕으로 교사의 교육과정 구성권과 평가권을 보장하면 된다. 나아가 행정잡무로부터 교사를 해방시켜 오로지 수업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생태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모두 교육행정관료들이 해야 할 당면 과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공명심에 눈이 멀어 교사들을 더 지치고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 명심할 일이다!

세 번째 IB 공교육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교육개혁은 교육정책이나 입시 제도를 변경하거나 IB 교육과정을 학교 교육과정으로 전격 도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노동시장이 양극화된 상태에서 지극히 임금시장이 왜곡돼 있다. 게다가 사회복지 또한 아주 취약한 상태여서 청년복지를 비롯해 사회복지 수준을 높이지 않고선 교육개혁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육개혁을 성공시키려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왜 북서유럽 교육선진국을 본받으려 하는지 고민해 보라! 그들 국가들은 대학진학률도 높지 않지만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살아가는 데 크게 지장이 없다.  왜 교육개혁이 입시제도나 교육정책의 변화만으로 불가능한지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를 야만이 지배하는 ‘정글’로 방치하거나 경쟁시스템을 당연한 듯이 사회분위기를 몰아가면 안 된다. 야만을 방치한 채, 청년학생들에게 더욱더 힘을 내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격려는 현실 배반이고 결과적으로 위선을 낳기 때문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래사회, 복지가 형편없는 무책임한 사회현실, 그리고 각자도생의 현실을 당연하다는 듯이 방치한 채, IB 공교육 도입으로 입시경쟁교육, 사교육비 문제, 주입식 교육 등 산적한 모든 교육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거라고 보는 것은 그야말로 좁직한 안목이고 관념의 극치다. 교육개혁을 고민하고 번민해 본 교사라면 그런 시각에서 이젠 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혁신학교 교육운동 13년이 지났다. 2009년 경기도에서 처음 씨앗을 뿌린 교육 개혁 운동이 전국 17개 시도로 확산하였고 일정 부분 성과와 함께 작은 희망도 보았다. 이젠 탐구형‧토론형‧논술형 학습형태를 학교 현장에 단단히 뿌리 내리게 할 시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형 바칼로레아(KB)를 준비해 나가면 된다. 평가방식의 변화는 학생들로 하여금 일상에서 책을 읽게 하고 토론하게 만들며 자신만의 탐구 주제를 설정해 깊이를 더해 탐구할 수 있게 만든다.

더 이상 5지 선다형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을 떨쳐버리자! 나아가 현행 대학입학 시험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수능시험을 연차적으로 폐지하자! 10년을 바라보고 현재 초등 3학년부터는 탐구형‧토론형‧발표형‧논술형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자! 그래야 교육이 살고 아이들이 살아나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보장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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