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2차전
2차전은 극장 간판으로 시작되었다. 11살 때쯤이었나. 전포동 우리 집 근처에는 극장 간판을 그리는 집이 있었다. 페인트 깡통들이 널려 있고 화가는 모눈 금을 그어 놓고 최무룡, 김지미, 찰턴 헤스턴,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을 엄청나게 크게 그렸다. 나는 문간에 붙어 꼼짝도 안 하고 구경했고 쫓아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크면서 간판 그림엔 흥미가 사라졌는데 남포동 제일극장 간판은 너무나 잘 그리고 톤과 분위기가 있는 데다 작가의 독특한 개성이 보여 예술이었다. 아! 극장 간판도 예술이 될 수 있구나! 나는 아버지께 극장 간판도 예술이 될 수 있다면서 그리겠다고 했다가 대판 싸우고 물러서고 말았다. 이번엔 아버지가 옳았다. 게다가 후에 디지털이 나오면서 그 직업 자체가 없어졌다. (고2 자화상. 그림이 잘 안되자, 어른으로 만들어 버렸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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