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성된 깨시민이 많아져야 나라가 산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여기저기 독버섯들이 준동하는 것을 실감하였다. 그에 따라 어긋난 세태가 잡초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개신교가 적극적으로 이명박 장로 정권을 두둔하면서 수구세력의 대변인으로 전락하였다. 거의 십오 년 동안 내가 부딪쳤던 대표적인 요지경 세태를 간추려 복기해서 기록을 남긴다.

​1) 2008년 5월, 마침 고등학교 재경 동창회 모임이 있었는데, 동창회장이 대뜸 "5.18 시민군은 폭도였어. 내가 그때 진압군 이었는데 시민군이 군인에게 대들어서 나도 겁이 났었다." 하고 두리번 거리며 말을 하니 고등학교 3학년 때 학도호국단장을 했던 동창이 "그렇지? 폭도지?" 하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라서 둘러 앉아있는 대여섯 명의 동창들을 둘러 보았지만 아무도 대꾸나 반대를 하지않는 것이었다. 고향이 호남이라는 동창들이 이 지경이니 기분이 아주 우울했다.

​2) 4대강 운하건설로 여론이 한참 시끄러울 때 였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셋이 차를 타고 가면서 잡담을 하다가, 앞에 탄 둘이 4대강 개발을 옹호하는 조선일보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 민주당에 밀리면 안된다고 하길래 내가 "신문기사를 다 믿냐? 가려서 봐야지"하고 반박을 하니 "그럼 신문을 안믿으면 어떡하냐?"하고 재반박을 하는 것이었다. 이명박이 사업가 라서 그런지 자영업을 하는 동창들은 대부분 이명박으로 돌아선 것 같았다.

​3) 여름 휴가로 고등학교 동창 4명이 부부동반으로 계곡 물놀이를 갔었다. 물놀이 후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정담을 하던 중, 광주 5.18 이야기 끝에 정대철 정치인과 8촌 형제 쯤 되는 동창이 "김대중이 사람 많이 죽였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에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아니, 김대중이 왜 사람을 죽여? 전두환이 사람 다 죽인거 아닌가? 말을 똑바로 해라"하고 반박을 하니 그 친구가 무안해 하며 "그게 아니라, 김대중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것이지~" 리고 말을 돌리는 것이었다. "말을 그렇게 하면 전두환 일당이 얼마나 좋아하겠나? 그놈들에게 이용당할 말은 하지를 말아야지~ "하고 내가 재반박을 하는 사이 분위기는 어색하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분위기를 망치는 문제 덩어리인가?

​4) 2008년 겨울이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 남녀전도회가 목사 부부와 함께 송년 저녁식사 모임을 하며 담소 중에, 성가대장 집사가 "광주 사람들이 맞을 짓을 했지. 맞아도 싸지~" 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교인 중에 호남사람도 많은데 아랑곳 하지않는 이런 말에, 내가 참지 못하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집사님 가족 부모형제가 그렇게 당하면 좋겠습니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하고 반박하니 분위기는 냉랭해지고 말았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방향이 같아 목사 부부를 내 차에 태우고 오는데 목사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전북 익산이라고 대답하니 "시골에서 올라와 출세했네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들려 영 기분이 나빴지만 목사에게 반박할 수도 없고 운전 중이라 참아 넘기고 말았다.

​5) 2009년 봄인가? 용산참사가 터졌다. 6명이 불에 타죽은 참혹한 사건이었는데, 일요일 설교에서 목사가 그들을 폭도라고 매도하는 것이 아닌가? 예배가 끝나고 목사실로 가서 목사에게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그들을 왜 폭도라고 하느냐."고 물으니 "국가가 잘 되어야 교회가 선교도 잘할 수 있는데 국가를 방해하니 폭도"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은 국가주의"라고 반박하고 그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한겨레신문을 목사 사택 우편함에 꽃아 주었다.

​6) 2018년 여름에 '노후희망유니온'에서 개설한 <자본론> 강의를 두 달 동안 수강한 적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간 수강 후 근처 맥주집에서 뒷풀이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내가 1894년 동학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수만 명이 일본군에게 몰살 당한 것을 이야기 하면서 일본군의 잔인성을 성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60대 후반 쯤의 아저씨가 "그러니까 왜 게임도 안되는 전투를 하냐고, 상대를 알아보고 무기가 안되면 싸우지 말아야지, 무턱대고 싸우다 몰살을 당하나~" 하고 답답하다는 듯이 대꾸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머쓱해져 조용해 지고 말았다. 손자의 기본병법 '지피지기'하지 못한 동학군의 무능이 잘못이지 일본군이 무슨 잘못이냐는 늬앙스가 느껴져 나는 기분이 참담하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연 몰살 당한 동학군에게 당당히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런 식의 현실인식 이라면 약육강식의 정글 짐승세상을 인간에게도 정당화 시키는 논리이며 일제 36년 통치도 정당화 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사고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비폭력 3.1운동, 민주화 운동 등 모든 민중봉기가 어리석은 바보짓이 되는 것 아닌가. <자본론>을 공부하는 사람의 의식도 이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인권과 정의를 외칠 것인가?

진천 종박물관 내 미술관 전시작품 사진/ 필자사진
진천 종박물관 내 미술관 전시작품 사진/ 필자사진

7) 2021년 늦가을, 나는 '검찰독재' 피켓을 들고 광화문을 향해 교보문고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50대 초반의 부부가 나의 피켓을 보는 것 같았다.나는 반가워서 엄지척을 하며 이재명 지지를 표명하였다. 그런데 그들 부부는 이재명은 대장동 비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우군인줄 알았는데 적군이어서 깜짝 놀라며 정권 바뀌면 '검찰독재국가'가 된다고 절박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재명도 마찬가지' 라며 콧방귀를 꾸며 갔다. 분통이 터졌지만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8) 2022년 2월 하순, 현역 강사와 강사 지망생 등 50여 명의 강사 아카데미 카톡방이 있었다. 그 카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는데 전두환이 경호를 받으며 행차하는 사진이었고 그 밑에 자기가 경호원으로 근무했다는 글이 붙어 있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내가 불끈하여 "살인자를 경호한 것이 자랑은 아닌 것 같습니다."고 댓구를 달았다. 카톡방은 하루 내내 조용하다가 두어 사람이 "전두환은 나쁘지만 경호업무에 충실한 점은 칭찬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나를 두둔하는 사람은 없었고 저녁이 되니 카톡방장이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경호원 했다는 사람이 현직 경찰로서 퇴직을 앞두고 강사교육을 받는 사람이니 못들은 척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철없는 사람 지적해 주지 않으면 계속 이런 헛소리 할 것 아닙니까?"하고 답문을 보냈지만 방장은 댓구가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열흘이 지났을까? 3월10일 대선에서 생각지도 못한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말았다. 나는 기분이 좀 나빠지면서 긴장되었다. 경호원이라는 사람이 수구세력을 통해서 나에게 보복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는데 카톡방은 조용하기만 하고 나는 불안하였다. 좌불안석, 가시방석 같은 며칠을 보내다가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켜서 미안합니다.'라고 글을 남기고 카톡방을 탈방하였다. 그 이후 방장을 비롯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취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 참 비정한 것을 절감하였다.  

​9) 2022년 가을, 촛불행동 집회에 가려고 촛불시민 두 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자기가 이재명과 종친으로 아저씨 뻘 되는데, 이재명은 대장동, 형수욕설 등 문제가 많으며 종친회에 와서 대통령 표를 구걸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소문은 왜곡된 악선전에 불과하고 이재명이 대통령 나왔으면 가문의 영광으로 오히려 종친에서 발벗고 도와주는 것이 종친의 도리가 아니냐고 반론 하니까, 듣기 싫다면서 택시를 내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도중에 내리고 말았다.

​10) 2022년 봄, 친하게 지내던 아파트 재건축 조합원이 있었다. 60대 초반으로 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들어가서 현재는 협력업체에 근무하는데 그동안 받은 상성전자 우리사주만 해도 40억원이 되었다. 참 부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포항 동지상고 출신이라 함께 정치이야기는 하지 않다가 전화 통화 중에, 이재명이 대장동 누명받고 검찰로 부터 탄압받는 것을 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법원이 있는데 검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이재명이 떳떳하다면 무슨 문제냐는 것이다. 그의 말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이상과 현실이 엄연히 다른 세태를 간과한 틀린 말이 아닌가? 검찰의 악랄한 족쇄에 세월이 녹아나며 그 사이에 인생이 거덜나는 참담한 현실은 모르는 것이다.

​11) 작년 말인가, 십 년 가까이 아파트 재건축 조합원으로 알고 지내는 두 사람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 입에서 전광훈 목사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들이 당연히 유명한 전광훈 목사를 알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들이 멀뚱하면서 "전광훈이 누구냐"는 것이다. 나는 "전광훈 목사 모르느냐"고 반문했지만 그들이 정말 모른다는 말에 기가막혀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한 사람은 정부 중앙부처 3급 공무원 퇴직자로 70대 중반이고, 한 사람은 60대 초반으로 건축설비 자영업자인데, 이렇게 세상에 대해 문외한이니, 어디서 부터 얘기를 해야할까, 막막하여 그냥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그들을 뭐라고 할 것인가. 자기 일에만 코박고 성실히 사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도 없고 내 속만 답답하였다.

​12) 어제는 내가 4년 전에 떠난 교회의 장로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랫만에 전화했다면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어느 교회를 다니냐는 질문에, 교회를 정하지 않고 여기저기 디니고 있다고 대답하면서(사실은 교회를 안다니고 있음) 4년 전에 교회를 떠난 사유가 전광훈 목사의 신성모독(하나님 꼼짝마. 예수님 죽어~: 전광훈 목사 발언)이 개신교인으로 너무 부끄러워서 였다고 해명하였다. 장로는 이런 교회도 있고 저런 교회도 있으니 좋은 교회를 다니면 되지 않느냐는 원론적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전광훈 목사를 축출하지 않는 다른 교회도 거기서 거기, 오십보 백보 같다고 반문하면서 한국의 개신교는 문제가 많은데, 영락교회 청년회로 출발한 서북청년단이 4.3 사건에서 제주도민을 많이 죽인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을 하니까, 장로가 '서북청년단'이 뭐냐고 되묻는 것이다. 나는 또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 하는데~"하고 한숨을 쉬니 장로가 화제를 돌리며 나중에 또 통화하자면서 전화를 끊었다. 교인 천 명이나 되는 교회의 장로들이 이런 지식수준이다.

​내가 똑똑하고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부분이 이런 수준이고 '반민특위'가 무엇인지 단어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도 넘는 암담한 현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역사와 시사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투표는 꼭 한다는 슬픈 역설에 있다. 그들이 이렇게 중요한 투표행위를 제대로 할 것인가? 그저 눈감땡감 식의 투표를 할 확률이 아주 높다는 데에 국가적 비극이 시작된다. 기득권자들은 교묘히 언론을 장악하여 국민이 각성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여론을 분탕질 하는데, 물인지 술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취해서 휘청거리고만 있다.

​함석헌 선생님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모든 것의 밑이 뜻이요 모든 것의 끝이 뜻이다. 뜻 품으면 사람, 뜻 없으면 사람 아니고, 뜻 깨달으면 얼, 못 깨달으면 흙'이라고 일갈하셨다. 즉 생각을 품으면 사람이고 생각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흙이라는 말씀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볼 부르제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역설하였다.

5년 전에 폐방된 '개그 콘서트'에서 키 큰 개그맨이 단골로 외치는 멘트가 있었다. "도라지 먹고 돌았냐. 미나리 먹고 미쳤냐. 생강 먹고 생각 좀 해" 엉뚱한 개그 상황에서 터지는 멘트에 시청자는 폭소를 터뜨렸지만, 뒷맛은 씁쓸한 여운을 남기곤 했다. 어느 세월에 시민들이 '생각하는 백성'으로 깨어나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 될 것인지 아득하고 암울하기만 하다.​​

꽃은 꽃다운 마음과 생각이 있어야 피는 것일까/ 서서울호수공원 수련. 필자사진
꽃은 꽃다운 마음과 생각이 있어야 피는 것일까/ 서서울호수공원 수련. 필자사진

 

조형식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조형식 객원편집위원  july2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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