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갈 여행을 통한 인문학 향연

2020년 교사 세미나를 통해 글쓴이는 일제강점기 최고의 노동소설이 『인간 문제』(1934)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인간 문제』는 1928년 12월 테제에 기초해 ‘노동자, 농민 속으로!’라는 기치로 내걸고 1930년대 초 ‘혁명적 노조 운동’(일제 공문서 용어 ‘적색노조운동’)을 시대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던 강혜원 선생님이 발제를 하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인간 문제』를 쓴 작가 강경애를 접했다.

강혜원 선생님은 일찌기 박영신 선생님과 함께 쓴 『교실 밖 국어여행』(1992)을 펴내 국어와 문학사에서 학생들의 시야를 한껏 넓혀준 분이다. 해직 이후 『우리 교육』 기자로도 분투하던 선생님은 복직 이후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한국 문학사 1·2』(2012)를 펴냈다. 학교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키우고 삶을 성숙시키는 행복한 국어 시간을 지향한 결과물이다. 나이 40세가 넘어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다는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 영국 가다』(2013)를 썼다. 한 달 살기 여행을 통해 세계 문학 기행에 도전한 셈이다. 이번 교사 아카데미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삶과 역사> 또한 ‘포르투갈 한 달 살기’의 결과물이다.

리스본의 대표 관광지를 두루 다니는 28번 트램(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리스본의 대표 관광지를 두루 다니는 28번 트램(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강연에 앞서 선생님은 포르투갈 관련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2014)을 소개해 주었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2004년 파스칼 메르시어가 쓴 작품 『리스본행 야간열차』(2004)을 원작으로 하는 ‘의식의 추리물’ 영화다. 영화를 보지 못한 글쓴이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20c 독재 치하 포르투갈을 시대 배경으로 한 영화 같았다.

독재정권을 붕괴시킨 <카네이션 혁명>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육군 군사박물관(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독재정권을 붕괴시킨 <카네이션 혁명>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육군 군사박물관(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독재 정권 하 포르투갈 지식인의 치열한 삶과 죽음을 추적해 가며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포르투갈 독재를 종식시킨 「카네이션 혁명」(1974)을 이야기할 땐 세계적인 인권운동단체, 앰네스티(AI)가 문득 떠올랐다. 앰네스티 탄생 배경 국가가 포르투갈이다. 60년대 초 독재 시절 포르투갈 청년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대화를 나누며 리스본 술집에서 “자유를 위하여!”라고 건배하자 경찰에 체포돼 투옥된다. 그 소식을 접한 영국인 변호사 피터 베넨슨이 구속된 대학생들 탄원을 호소하며 탄생했기 때문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이어서 선생님은 포르투갈 시민들에게 오늘날도 여전히 사랑받는 포르투갈 국민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를 소개해 주었다. 우리나라 김소월, 윤동주에 비견될 정도로 포르투갈 시민들에게 추앙받는 국민 시인으로 설명해 주셨다.

포르투갈의 땅끝 사그레스(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이베리아 반도 서쪽 포르투갈은 유럽대륙의 끝자락이다.
포르투갈의 땅끝 사그레스(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이베리아 반도 서쪽 포르투갈은 유럽대륙의 끝자락이다.

다음으로 지중해 문명의 주변부 국가이자 유럽대륙의 끝자락 포르투갈이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대항해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선생님은 15-16c 대항해 시대와 노예사냥, 그리고 해외 식민지 건설에 박차를 가한 시대 배경과 중심인물, 그리고 건축물을 하나씩 소개해 주셨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5-16c 대항해 시대 동양에서 수입한 향신료에 세금을 매겨 그 세금으로 지은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이른바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건축물로 1497년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로 항해하기 전에 머물렀던 공간이자 수도원 부속 성당 묘지에 그 자신이 묻혀 있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5-16c 대항해 시대 동양에서 수입한 향신료에 세금을 매겨 그 세금으로 지은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이른바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건축물로 1497년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로 항해하기 전에 머물렀던 공간이자 수도원 부속 성당 묘지에 그 자신이 묻혀 있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오늘날도 포르투갈 ‘해양 왕자’로 기념되는 대항해 시대 엔히크 왕자를 비롯해 적지 않은 역사 속 인물과 사건들을 소개해 주셨다. 그 가운데 글쓴이 머리에 꽂힌 내용은 정복자의 시각이 아니라 보편적 시각에서 신대륙 ‘노예 사냥꾼’ 콜럼버스처럼 인도항로 개척자 바스쿠 다가마 역시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노예를 사냥했음을 알게 됐다. 선생님은 대항해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2004)의 한 대목을 인용해 이렇게 표현했다.

“인류는 15세기와 17세기 사이에 중요한 전환기를 맞으면서 지구의 모든 곳을 탐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래서 유럽의 대여섯 국가들에서 대규모 함대를 세계 곳곳으로 용감하게 파견하기 시작했다. 물론 함대마다 그 모험의 동기는 다양했다. 분수에 넘치는 야망, 재화에 대한 탐욕, 국가적 자존심과 국가 간의 경쟁심, 종교의 맹목적 광신, 죄수의 대량 사면, 과학적 탐구심의 발동, 모험에 대한 심한 갈증, 스페인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의 고용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 등에서 우리는 탐험대를 유럽 밖으로 내밀었던 압력의 요인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항해가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구를 하나로 묶고 지역주의의 문제를 일부 해소하여 인류를 하나의 종으로 통합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도 행성 지구와 인류 자신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은 송동훈 작가의 『대항해 시대의 탄생』(2019)을 인용해 15-16c 대서양 노예무역을 시작한 포르투갈 대항해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무자비한 폭력에 기반함으로써 인류사에 크나큰 비극을 낳았고 그 비극의 크기는 감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라고 갈무리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강연 가운데 인상 깊은 대목은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1995)였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떠나서 청년 시절 용접공 출신으로 작가 스스로 포르투갈 근현대사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왔음에 적이 놀랐다.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도 50대 후반이라는 사실과 오랜 독재에 항거하며 강제 추방당한 삶, 그리고 공산당 당원이었다는 사실 앞에 『눈먼 자들의 도시』와 이후 『눈 뜬 자들의 도시』(2004) 모두 대의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위험 신호를 소설로 형상화시킨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피카소가, 카뮈가, 사르트르가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던 것처럼 사라마구 역시 독재와 전체주의에 항거하는 차원에서 공산당원이 되었을 거라 짐작한다. 그것은 마치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 차원에서 코뮤니스트가 되었던 수많은 항일 투사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마치 이육사가 의열단 군관학교인 「조선혁명정치군사학교」 제1기 졸업생으로서 자신이 쓴 졸업 연극 작품에서 마지막 ‘공산혁명 만세’를 부르짖는 것과 같으리라!

물론 글쓴이 자신의 주관적 해석이지만 사라마구의 작품들이 민중을 개돼지로 아는 정치인들을 맹신하는 오늘날 정치풍토에 교훈을 던지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우리 현실은 영호남 지역 갈라치기를 넘어서서 이대남, 이대녀 성별 갈라치기, 나아가 세대별 갈라치기를 시도하는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 현실에 ‘눈 먼 자’가 아니라 눈 뜬 시민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라마구의 작품 탄생의 배경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기암절벽인 라구스(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라구스의 노을 풍경이 아름답다.
기암절벽인 라구스(출처 : 강혜원 선생님 제공) 라구스의 노을 풍경이 아름답다.

여행은 우리에게 삶의 쉼이자 상처 받은 기억에 대한 치유로서 삶을 재충전시킨다. 나아가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삶의 깊이를 더함으로써 자신을 성숙시킨다. 그만큼 여행은 우리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나아가 자연 속에서 인간 자신을 해석하는 <철학하는> 시간임을 느끼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만큼 훌륭한 교육은 없는 것같다. 강혜원 선생님이 펼치는 인문학 향연 앞에 마음은 이미 포르투갈을 향하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파티마 성모 발현과 함께 선생님이 서너 시간을 트래킹하며 아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강추한 포르투갈 아름다운 산을 걸어보고 싶었다. 글쓴이가 역량이 부족하여 선생님이 소개한 포르투갈 관련 여러 권의 책과 영화, 그리고 강연 내용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마음 한 편 아쉬움이 크다.

참고로  <좋은 세상 연구소> 교사아카데미에서 강혜원 선생님이 강연한 내용 목차는 다음과 같다.

Ⅰ. 들어가는 이야기 - 왜 포르투갈이었을까?

Ⅱ.  여행지에서 만나는 무수히 많은 삶의 이야기

       첫걸음 - 구비구비 아픈 포르투갈 역사를 잠시 엿보다 (리스본)

       둘째 걸음 - 페소아와 사라마구, 내면의 탐색과 사회의 탐색은 맞닿아 있다 (리스본)

       셋째 걸음 - 다른 세계를 향한 끝없는 꿈, 대항해 시대 (벨렘지구, 호카곶, 라구스, 사그레스)

       넷째 걸음 - 구원을 향한 인간의 몸짓 (파티마, 브라간사, 브라가)

Ⅲ. 마무리 - 어느 곳에나 귀 기울여야 할 삶의 이야기가 있다 (포르투, 코임브라, 기마랑이스 등)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