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선전 22
반구동 울산여중 앞 우리 분식 집은 나름 선전하였다. 그러나 우리 집이 장사가 잘 되자 여기 저기에 분식집이 생겨났다. 어머니도 새로운 호떡 맛을 내기 위해 여기 저기 다니며 새로운 레시피를 익혀 이겨내었다. 겨울에도 늘 시멘트 바닥에 서 있어야 해서 동상에 걸릴 지경이었지만 더 힘든 것은 아버지의 몸이 다시 악화된 것이다. 아버지는 부산 백병원에 입원하셨다. 나는 서울에 있어 잘 내려가지 못하고 어머니, 수동이, 여동생 명이가 병원과 가게를 돌아가며 지켰다. 어느날 아버지가 어머니를 병실 동료들에게 "제가 홀아비가 아닙니다" 하고 자랑을 하니 "저런 미인을 혼자만 보려고 안 데려 왔구나" 하고 손뼉을 치며 놀렸다. 아버지는 일단 퇴원하시고 어머니는 장사를 이어갔다.  (1999년 삽화)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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