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급히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
3월 중순의 일이었다. 동네 이웃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부자감세의 실제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약 100억 원대의 부자로서 부동산만 해도 60억 원이 넘는 자산가로 2022년에 종합부동산세를 1,860만 원을 냈는데 2023년에는 250만 원을 냈다는 것이다. 1년 사이에 무려 85% 이상 세금이 감면되어 1,810만 원의 불로소득이 생긴 것이었다. 웬만한 아르바이트 1년 인건비를 나라에서 세금을 감면해 주었으니 얼마나 신이 났으면 전화에 대고 자랑할까? 1년 사이에 부동산 공시가가 대폭 내린 결과라는 것이다. 나는 배가 아팠지만 "세금 많이 내니 애국자입니다 ."하고 통화를 마쳤다.
나라가 부자가 되었는지, 개인이 부자가 되었는지 나는 집 한 채 가지고 부족한 연금에 맞춰 검소하게 살아가는데 주변에서 100억 원 대의 부자들을 더러 보게 된다. 아무래도 그런 부자들과는 동등한 인간으로 친해지기 어렵다. 의례적인 이웃 이상으로 관계가 발전하기 어려운데, 마치 길에서 고급 외제차를 발견하고 부러워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러나 이런 대폭적인 부자감세는 나라를 거덜내고 망해 먹으려는 작심이 아니고는 결단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작년에 건전재정을 외치면서 서민지원 예산을 대폭 깍아내리고도 87조 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고 총선 다음 날인 4월11일 늑장 발표를 하여 또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87조 원의 재정적자는 위의 예에서 보듯 부자감세에서 발생한 천문학적인 세수 펑크의 참담한 결과인 것이다. 2021년 코로나 시국에서 불과 10조 원의 자영업자 코로나 지원금을 결사 반대한 홍남기 기재부 장관은 결국 건전재정 명목으로 지원금을 무산시켰는데, 왜 윤석열 정부의 기재부는 87조 원이나 세수가 적자나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무기력한 것인가? 검찰의 캐비닛이 무서운 것인가?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부자감세를 통해 윤석열 정부에 호감을 가지게 하면서 총선에서 여당을 지지하도록 유도한 부자들의 숫자가 국민의 10%, 500만 명이라면 이미 유권자 10% 이상을 먼저 차지하고 치룬 총선으로 관권선거, 불공정선거, 기울어진 운동장 선거라고 아니할 수 없다. 역대 어느 정부가 나라의 곳간을 헐어 나라가 망하든 말든 이렇게 노골적으로 매표(買票)행위를 했던 적이 있는가? 참으로 무시무시한 역대급 정권이다.
세금은 민감한 사안이다. 세금 잘못 건들면 정권이 날아갈 만큼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안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조심조심 접근하고 다루어야 한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집값이 올라도 재산세 몇 만 원 오르는 것은 참지 못하고 정권을 비판하며 반대파로 돌아서 버리는 것이 비정한 현실인 것이다. 민심이 이러한데 부자감세로 수천만 원씩 꿀맛을 본 사람들이 다음 정부에서 세금을 증세로 복귀한다면 가만히 있을 것인가? 아마도 이를 뿌득뿌득 갈며 정부를 저주할 것이다. 세금은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세금 내리는 것은 신중해야 함에도 윤석열 정부는 완전히 개판을 처놔서 다음 정부에서도 쉽게 손을 못대고 그러다 보면 재정적자는 계속되고 적자를 줄이려면 축소재정을 짜야 하고 나라살림은 계속 쪼그라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그 뿐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민생공약 전국 투어를 하며 1,000조 원에 이르는 개발 공약을 남발하며 노골적으로 관권선거를 자행하였다. 거짓말도 한두 번이라야 속지 전국을 헤집으며 진정성 없이 내지르는 대통령의 공약은 일찌감치 입벌구라는 것을 전국민은 알아 버렸다. 검사 시절 말만하면 기자들이 받아적는 꿀맛에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것인가? 심지어 민생투어를 즐기는 듯한 모습에서 "국민을 바보로 아나~" 라는 힐난이 저절로 나왔다.
총선 출구조사에서 야권 200석 이상의 예상이 나왔을 때는 정말 놀라웠다. 아무리 조중동이 윤석열 정부를 쉴드쳐도 대다수의 국민은 진상을 다 알고 있었구나. 역시 성숙한 깨시민들이라고 존경의 마음이 우러났지만 총선 다음날 아침의 결과는 다소 아쉬운 것이었다. 특히 박빙의 승부처로 격변이 예상되었던 부산 경남이 예상 외로 국힘당이 압승한 것은 많은 생각을 하도록 했다. 1992년 14대 총선 당시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이 남긴 '우리가 남이가~'라는 그 유명한 말이 생각났다. 문재인 前대통령이 민주당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면서 부산 경남의 보수세력이 결집했다고도 하고 누구는 부산 경남 '선관위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심하기도 한다. 혹자는 샤이 보수가 출구조사에 응하지 않아서 조사가 틀렸다는 것이다. 샤이 보수는 왜 당당하지 못하게 출구조사를 회피하는가? 자기들의 선택이 부끄럽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현상이다. 아무튼 결국 '우리가 남이가~'로 수렴하며 도루묵이 되어 버리는 부산 경남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한국경제신문은 민주당이 50.5% 득표율로 45.1%를 득표한 국힘당 보다 불과 5.4% 승리한 결과로 지역구를 64%나 석권했다고 아주 불공평하고 억울하다는 식의 기사를 써댔다. 그러나 세부적인 사항을 분석해 보면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먼저 영호남의 인구비율을 보자. 호남에 비교해서 인구가 두 배 이상 많은 영남의 국힘당 몰표를 빼면 다른 지역(수도권, 충청권)의 민주당 득표율은 60%를 넘나들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경제신문은 2년 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불과 0.7%, 24만표의 신승(辛勝)으로 권력을 100% 장악하고 검찰독재로 나라를 거덜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역감정을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총선에서 충청권의 표심과 선택은 너무 존경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내심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 고향이 공주로서 충청권에서 '묻지마 투표를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결과는 압도적으로 매서운 윤석열 정부 심판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옛날 양식있는 우리의 어른들은 내 자식이 질못하면 먼저 회초리를 들어 호되게 내려치며 엄하게 교육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남이가~'라며 잘잘못도 따지지 않고 묻지마 투표를 하는 것과는 너무도 비교가 되는 경탄스러운 표심이었다. 이번의 총선은 충청도민의 민주와 정의의 살아있는 양심이 건곤일척의 대한민국을 구해낸 선거였다. 매화는 향기를 팔지않고 정숙한 여인은 절개를 팔지않고 충신은 나라를 팔지않는다. 해상왕국 백제를 품었던 충청도는 역시 충절의 이름값을 단단히 하였다.
50년 이상 계속되는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양비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물론 조중동류의 수구언론이 물타기 왜곡으로 사람들을 세뇌한 결과이다. 특히 호남은 80년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많은 시민이 신군부의 폭력에 희생된 상처를 안고사는 피해자들로서 그러한 광주의 정신이 87년의 대통령 직선제 민주화를 견인하는 큰 버팀목이 되었고 그렇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표행위는 바람직한 것이지 몰표라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격려하고 칭찬해야 될 지역정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남의 지역감정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영남이 배출한 걸출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이해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떠난지 45년이 지났는데도 새로운 정치를 생각하지 못하고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떠벌리며 자기들의 정치적 야욕과 흑심만을 단도리하는 정치꾼들에게 현혹되어, 같은 국민으로서 '광주의 恨'을 어루만져 달래주지 못하고 어찌 억울한 가슴에 못질을 하는지 그 완악한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박대통령이 살아있다면 과연 자기를 팔아먹는 수구적인 정치꾼들을 좋아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기로에 서있다. 영남이 변해야 대한민국이 산다. 나라의 운명과 미래가 영남에 달려 있으니 영남이 정말 충청권처럼 멋있게 변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총선패배 후 고백했다. "국힘당은 영남 지역당이다. 국힘당은 이제 해체해야 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제법 바른 말을 했다. 사실 나는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신한국당(국힘당 전신)은 해체 되는 줄 알았다. 또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에 새누리당도 사라지는 줄 알았다. 이승만의 자유당으로 부터 국힘당까지 이어지는 친일파, 군사독재세력, 기득권세력 등이 수없이 당 이름을 바꾸며 환승을 거듭하는 것을 언제까지 바라봐야 하는가? 이제는 정말 국힘당은 해체하고 사라져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름만 바꾸는 '해쳐모여'가 아니라 국힘당에 몸 담았던 정치인들은 모두 정계은퇴를 해야 한다. 이제는 합리적 보수정당 민주당과 사회민주주의를 당 강령으로 채택한 조국혁신당의 두 정당으로 정계가 개편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세계의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될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詩)
편집 : 조형식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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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입만 열면 포퓰리즘은 마약이라면서 본인이 세금감면 마약을 살포하는 것은 모르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