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이어야 할 집이 사고파는[買賣] 곳으로 변하면서 재산을 늘리는 수단이 된 지 오래입니다. 내 집값 올려 줄만한 정치인이면 어떤 못된 짓을 저질렀어도 눈감고 뽑아주는 시대,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내 집 한 채 마련하려고 영끌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아예 포기해버리는 시대입니다.

동문선(東文選)100에는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노극청전(盧克淸傳)>이 실려 있습니다. 노극청이라는 분의 삶을 기록하여 전()한 글이 <노극청전>이며, 특별히 집을 팔고 사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고려 시대의 주택 매매라니 이건 또 무슨 좋은 정보인가? 관심이 확 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극청(盧克淸)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모른다. 벼슬은 미관말직인 직장동정(直長同正)에 그쳤다. 가난해서 살던 집을 팔려고 했는데 마침 일이 있어서 다른 곳에 간 사이에 아내가 낭중(郞中)인 현덕수(玄德秀)에게 백은(白銀) 열두 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 노극청이 돌아와서 이야기를 듣고는 은 세 근을 가지고 현덕수에게 갔다.

당시의 화폐단위는 은덩어리였던 모양입니다. 팔려고 애쓰던 집을 자기도 없는 사이에 마침 아내가 팔았으니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은 세 근을 들고 집을 산 사람을 찾아갔을까요? 거래가 무사히 성사되었으니 술 한 잔 하자고? 아니면 혹시 그 은이 불량품이 아닐까 의심해서? 노극청의 말을 들어봅니다.

노극청이 말하였다. “내가 예전에 이 집을 살 때는 아홉 근을 지불했소. 그런데 몇 년 동안 살았고 또 그동안 수리한 것도 없는데 세 근을 더 받는다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소. 그러니 이 세 근을 돌려드리겠소.”

이런, 방심하다 허를 찔렸습니다. 구입한 가격보다 돈을 더 받는 건 경우에 맞지 않아서 돈을 가져왔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요? 어차피 가난한 처지라서 집을 팔았다면, 이익을 남겼다고 좋아하거나(우리들 대부분이 그렇게 합니다), 한술 더 떠서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받아낼 걸하며 안타까워하거나(이게 우리 실제 모습에 훨씬 더 가깝겠군요), 아니면 모르는 체 그냥 받아 두거나(이런 경우도 제법 있겠지요)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요? 시세가 그래서 그렇게 받은 걸 굳이 찾아가서까지 돌려주려 했다는 게 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현덕수씨는 또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아니, 어쩌면 좋아했으려나.

그런데 현덕수 또한 의로운 선비인지라 거절하면서 말하였다. “어째서 당신 혼자만 경우를 지키고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가.” 그러고는 끝내 받지 않았다.

사진 출처 : 필자
사진 출처 : 필자

현덕수 또한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우리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습니다. 뛰어넘은 게 아니라 기대와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이 사람들 이거 미친 거 아냐? 고개를 저어 봅니다. 그러다가도, ‘혹시 저게 맞는 거 아닐까? 생각해보면 저러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한데.’ 이쯤에서 우리의 생각도 살짝 흔들립니다. 현덕수의 반격에 노극청은 또 어떻게 반응했을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노극청이 말하였다. “나는 평생 동안 의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소. 그런데 어찌 싼 값에 집을 사서 비싸게 파는 것 같은, 재물을 탐내는 더러운 짓을 할 수 있겠소? 만일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그 값을 다 돌려드릴 테니 다시 내 집을 돌려주시오.”

타협의 여지가 없는 단호박입니다. 안 받겠다면 집을 도로 물려라. 안 팔겠다. 허허, 이 일이 과연 어떻게 마무리되었을까요?

현덕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았다. 그렇지만 곧 탄식하면서 내가 어찌 노극청만 못한 사람이 되겠는가.” 하며, 마침내 그 은을 절에 바치고 말았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며, “말세의 풍속이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인데도 이러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末俗奔競之時(말속분경지시), 亦有如此人者乎?(역유여차인자호?)]” 하였다.

은 달릴 ’, ‘은 겨룰 ’, 그러므로 분경(奔競)지지 않으려고 몹시 달리며 다툰다는 뜻인데 여기서 더 나아가 벼슬을 얻기 위하여 엽관 운동을 하는 일을 뜻하기도 합니다. 돈이 되었든 권력이 되었든 이익만 쫓아다니는 사람만 가득한 세상에서 돈 더 받기 싫다고 찾아가 돌려준 사람이나, 억지로 돌려받았지만 부당한 돈이라는 생각에 전액을 절에 기부한 사람이나, 이야기를 듣고 감탄한 사람들이나, 그런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전한 사람이나 모두 대단하고 특별해 보입니다.

이건 시대를 거꾸로 사는 이야기 아니냐? 반문하실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지금 시대가 거꾸로 흐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읽다가 살짝이라도 감동을 받았다면, 너도나도 이익만을 향해 달려가는 정신없는 이 세상을 조금은 멈춰 세우고 되돌아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동문선(東文選)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지어진 우수 작품을 모은 선집이며, 이미 번역되어 한국고전종합DB에 올라 있는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귀한 내 것을 내 것인 줄 모르고 쓰지 않으면 남의 것이 됩니다. 이 코너는 동문선에 실린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잊을 뻔했던 내 것을 되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조경구(趙慶九) : 국문학을 전공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전적 정리 번역 등의 일을 했으며, 한문 고전의 대중화에 관심을 갖고 <한문에게 말걸기, 다락원, 2005.>, <1등 했는데 왜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풀빛, 2015.>, <아하, 자연에서 찾은 비밀, 한국고전번역원, 2016.>, <우리가 만난 신비한 소녀, 정인출판사, 2018.> 등의 책을 썼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조경구 서포터즈 벗  op9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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