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저 건너 숲속에 사는 백설 공주랍니다.” “뭬야? 이런 요망한 거울을 보았나.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소릴 함부로 내뱉는 게야. 내 너를 당장 요절을 내 주마. 에잇.” 휘익쨍그랑. 산산조각 난 거울. 동화와 사극이 뒤섞였지만 거울에겐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군요. 거울은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요?

고려 시대 문장가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선생의 <경설(鏡說)> 거울 이야기동문선(東文選)96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깨지지(?) 않으려면 거울이 어떻게 대답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거사(居士)에게 거울이 하나 있는데, 먼지가 잔뜩 끼어서 흐릿한 것이 마치 달빛이 구름에 가린 것과 같았다. 그러나 거사는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면서 마치 얼굴을 단장하는 것처럼 하였다.
손님이 그걸 보고 물었다. “거울이란 모습을 비춰주는 것이요, 그게 아니라면 군자가 대하면서 그 맑음을 취하는 것이다. 지금 그대의 거울은 비가 오는 듯 안개가 낀 듯 흐릿하여 모습을 비춰주지도 않고 맑음을 취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대는 오히려 밝은 거울을 보듯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어찌 이치에 맞겠는가.” 

거사는 선생 자신을 가리킵니다. 선생이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좀 이상합니다. 먼지가 잔뜩 낀 흐릿한 상태라 하였으니 거울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거울 아닌 거울인 셈입니다. 얼굴을 비추지도 못하는데 마치 잘 보이는 거울인 양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단장을 합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손님의 질문 속에 거울의 본질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첫째, 거울은 모습을 제대로 비출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비추어보지 않더라도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서 보는 사람이 그 맑음을 거울삼아 보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의 답변입니다.

거사가 말하였다. “거울이 밝으면 잘생긴 사람은 좋아하지만 못생긴 사람은 싫어한다.[鏡之明也(경지명야), 姸者喜之(연자희지), 醜者忌之(추자기지).] 그렇지만 세상에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기 때문에 못생긴 사람이 만일 한 번 거울을 보면 반드시 깨뜨려 부숴버리고야 말 것이니 차라리 먼지에 흐려진 상태로 있는 것만 못하다.”

사진 출처 : 필자
사진 출처 : 필자

은 예쁠 ’, ‘는 더러울 ’, ‘는 꺼릴 입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 비추는 도구이니 예쁜 사람은 예쁘게 보일 것이요 추한 사람은 추하게 보일 것입니다. 예쁨과 추함이 자기에게서 비롯된 것인데 사람들은 엉뚱하게 거울 탓을 합니다. 심지어 거울을 깨버리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흐린 상태로 있는 게 낫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단점을 지적하면 격노하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는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괜히 나섰다가 깨지지 않으려면 강제로 입틀막당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입꾹닫해야 한다는 교훈. 마무리 말씀입니다.

먼지로 흐려진 거울은 겉은 더러울지라도 그 맑은 바탕은 없어지지 않았으니 훗날 잘생긴 사람을 만난 뒤에 다시 갈고 닦아도 늦지 않다. , 옛적에 거울을 보는 사람은 그 맑음을 취했다면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그 흐림을 취하는 것이니, 그대는 무엇을 이상하다고 여기는가.”  손님은 이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쏟아지는 소나기는 우선 피하고 훗날을 기약하겠다. 원래 깨끗한 바탕이야 없어지지 않을 테니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난 다음에 쓴소리건 뭐건 의미가 있을 것 아니겠는가. 거울 얘기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바른말 하고 쓴소리 하는 얘기였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 그걸 변명해주는 아부꾼이 판치는 시대에 괜히 혼자 나서서 바른말 하다가 산산조각으로 깨지지 말고 당장은 몸을 사리겠다는 선생의 생각. 어찌 보면 무신 집권기를 살아가야 했던 선생의 얄팍한 처세술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현명한 자기 보신 같기도 합니다. 손님이 대답하지 못한 건 선생의 말이 맞아서 그런 것일까요 어이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 《동문선(東文選)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지어진 우수 작품을 모은 선집이며, 이미 번역되어 한국고전종합DB에 올라 있는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귀한 내 것을 내 것인 줄 모르고 쓰지 않으면 남의 것이 됩니다. 이 코너는 동문선에 실린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잊을 뻔했던 내 것을 되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조경구(趙慶九) : 국문학을 전공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전적 정리 번역 등의 일을 했으며, 한문 고전의 대중화에 관심을 갖고 <한문에게 말걸기, 다락원, 2005.>, <1등 했는데 왜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풀빛, 2015.>, <아하, 자연에서 찾은 비밀, 한국고전번역원, 2016.>, <우리가 만난 신비한 소녀, 정인출판사, 2018.> 등의 책을 썼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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