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 제도적 한계 드러나
시민의회로 직접민주주의 실현해야
국민 70% 가까이가 채 상병 특검법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을 포함하여 벌써 열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윤석열은 사회계약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군주군가의 왕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당 국회의원은 노골적으로 그런 대통령의 호위병노릇을 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24%인데도 말이다. 민심을 짓밟는 정치를 하고 있는데도 어쩌지를 못하니 답답할 뿐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국회의장 후보를 선출하며 국민과 당원의 뜻과는 다른 후보를 선출하였다. 투표용지에 잉크가 마를 새도 없이 민심을 거스른 것이다. 국회의원은 1인1인이 입법기관이라서 자신의 뜻대로 선택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입법기관으로서 역할은 어디까지나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리이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특별한 권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가? 이 또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투표 끝났으니 그래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더 답답하다.
이 두 사례만으로도 투표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가 얼마나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는 잘 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항상 선거때는 살갑고도 애절하다. 그러나 투표 이후의 결과는 실망을 안겨주지 않을 때가 없었다. 투표만 끝나면 국민은 무력한 백성으로 전락된다. 세월호에서 희생되고, 이태원에서 희생되고, 급류에 휩쓸려 희생되어도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다면 이는 제도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추첨제로 대표를 선출하는 시민의회 제도이다. 어떤 이는 추첨제로 선출된 의회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생학자 골턴마저도, 우수한 한 사람의 판단보다 다중의 판단이 훨씬 지혜롭고 정확하다는 것이 실험에서 드러나자 다중지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유한 엘리트들만이 당선되기 쉬운 투표제와 달리, 추첨제는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균형감 있게 선출될 수 있어서 민심을 고르게 반영할 수 있다. 선거비용이 없기 때문에 부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공천을 받을 필요도 없기 때문에 비굴하게 줄서기 할 필요도 없다. 특권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권력을 이용한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도 없다. 보좌관을 두지도 않고, 의정비를 지급하지도 않으니 많은 예산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당장 국회를 없애고 시민의회로 완전 대체하자는 것도 아니다. 국회는 그대로 두되, 국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국회를 견제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선거법 개정・국회의원 특권 제한・헌법개정 등은 국민들의 요구가 매우 높지만, 국회는 당리당략이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입법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시민의회라면 이러한 일들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전문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추첨으로 구성된 집단이 투표로 선출된 집단보다 훨씬 공정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증명되었고, 실제 아일랜드와 벨기에와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주 등 여러 국가에서 증명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핵발전소 문제를 두고 의회에서 결정하지 못한 것을 공론화위원회에서 숙의 과정을 통해 권고안을 내서 긍정적 평가를 받은 좋은 경험이 있다.
오는 6월이면 22대 국회가 개원을 한다.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현재의 헌법은 1987년 군사정부의 정권연장용으로 개정되었다.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오히려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조항들이 많다. 그래서 개헌 얘기가 솔솔 흘러나온다. 필요하다. 더 나은 헌법을 만드는 일은 국회의 의무이다. 지금 세계는 대의정치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뛰어넘는 직접민주주의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개헌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시민의회를 헌법기관으로 규정하여 진정한 국민주권의 시대를 열어가게 해야 한다.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된 국민주권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그리해야 마땅하다. 그리하면 22대 국회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한 획을 긋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 되겠지만, 만일 당리당략에 끌리어 개헌을 유보하거나 조잡하게 끝낸다면 민심의 저항을 받을 것이며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편집 : 이현종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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