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自然)’ 혹은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누구나 잘 알고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막상 뜻을 말해 보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고 정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자연을 사전에서는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저절로 된 그대로의 현상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다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등으로 풀이되어 있지요. 그러므로 이를 종합 정리하면 저절로 이루어진 순리에 맞는 일정도가 무난한 풀이일 듯합니다.

10월 초하룻날에 내가 밖에서 돌아오니 아이들이 땅을 파서 움집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무덤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며 어째서 집안에다 무덤을 만들었느냐.” 하니, 아이들이 이것은 무덤이 아니라 토실(土室)입니다.” 하였다. “왜 이것을 만들었느냐.” 하니, “겨울에 화초나 채소,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네들에게는 몹시 추울 때라도 이곳은 훈훈한 봄 날씨 같아서 손이 얼어터지지 않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하였다.

음력으로 10월이면 초겨울입니다. 날이 쌀쌀해지니 아이들이 마당에 나무와 흙을 이용해서 움집을 만든 모양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웬 무덤이냐고 묻습니다. 아이들의 대답은 오늘날 우리가 온실이나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농산물 저장과 따뜻한 작업장 확보. 거기에 더하여 오늘날에는 비닐하우스를 통해 철 이른 작물이나 과일까지도 대량으로 길러서 소비자에게 공급하니 단순한 저장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한 셈이군요.

이 글은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토실을 허문 데 대한 이야기[壞土室說]>, 동문선(東文選)96권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추울 때 농작물도 보관하고 좀 따뜻하게 지내자고 아이들이 집 안에 움집을 하나 지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별로 맘에 안 드셨던 모양입니다. 제목에 따르면 그것을 허물었다는군요. 도대체 왜 그러셨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진 출처 : 필자
사진 출처 : 필자

나는 화를 내며 말하였다. “여름은 뜨겁고 겨울은 추운 것이 사계절의 정상적인 이치이니, 만일 이와 반대로 된다면 곧 괴이한 것이다.[夏熱冬寒(하열동한), 四時之常數也(사시지상수야). 苟反是則爲怪異(반시즉위괴이).]  옛 성인이 만드신 제도에 추울 때는 가죽옷을 입고 더울 때는 베옷을 입게 하셨으니, 그렇게 준비하면 넉넉한 것인데, 또 다시 토실을 만들어서 추위를 되돌려 따뜻하게 만든다면 이것은 하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은 뱀이나 두꺼비가 아닌데, 겨울에 굴속에 엎드려 있는 것은 대단히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길쌈이란 것은 알맞은 때가 있는 법인데, 하필 겨울에 해야 한단 말이냐. 또한 봄에는 꽃피고 겨울에는 시드는 것이 초목의 정상적인 성질인데,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이것은 이치를 어기는 물건인 것이다. 이치를 어기는 물건을 길러서 제때가 아닌 시기에 즐길 거리로 삼는 것은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니, 이런 것은 모두 나의 뜻이 아니다.[春榮冬悴(춘영동췌), 草木之常性(초목지상성). 苟反是亦乖物也(구반시역괴물야). 養乖物爲不時之翫(양괴물위불시지완), 是奪天權也(시탈천권야). 此皆非予之志(차개비여지지).]  그러니 너희들이 빨리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나는 너희들을 용서 없이 매질하겠다.”

는 파리할 ’, ‘는 어그러질 ’, ‘은 즐길 입니다. 문장이 다소 길지만 선생께서 단숨에 한 호흡으로 말씀하신 것이라 중간에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말씀도 무시무시합니다. 토실을 만드는 것은 괴이(怪異)한 일이며 이치에 어그러지는 물건[괴물(乖物)]을 만드는 것이니 이는 곧 하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일이다. 선생이 이렇게까지 격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선생의 경고에 매가 두려웠던 아이들은 재빨리 토실을 무너뜨렸고, 거기에 썼던 재료까지 다 불태우고 나서야 선생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지셨답니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생활에 편리하자고 새로운 발명품을 만드는 건 발전이고 진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우리에겐 더 자연스러운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생의 격노가 아주 터무니없어 보이진 않습니다. 요즈음 언급되는 자연주의 농법이니 친환경 농법, 유기농법 등이 모두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는 이른바 자연스러운농법 아니던가요?

사람 인()과 할 위()를 합치면 거짓 위()’가 됩니다. 사람의 작용이 들어간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거짓이라는 전제가 글자 만드는 원리에 깔려 있는 셈입니다. 딸기는 언제 나오나? 참외, 수박은 언제가 제철인가? 이런 건 더 이상 시험 문제로 낼 수도 없습니다. 제철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채 이른바 철없는과일을 먹어온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지난여름은 유난히도 뜨거웠습니다. 시원하자고 틀어놓은 에어컨이 내뿜는 열기로 바깥 공기는 더 뜨거워지고, 그래서 에어컨을 더 세게 틀어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열대야 신기록마저 세웠다고 하더군요. 그 시각 이웃나라엔 폭풍과 폭우가 몰아치고, 전 지구가 난리였습니다. 선생의 견해가 옳다 그르다 말하기에 앞서 기상이변과 기후 위기로 몸살을 앓는 오늘날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글이 아닐까 합니다.
 

※ 《동문선(東文選)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지어진 우수 작품을 모은 선집이며, 이미 번역되어 한국고전종합DB에 올라 있는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귀한 내 것을 내 것인 줄 모르고 쓰지 않으면 남의 것이 됩니다. 이 코너는 동문선에 실린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잊을 뻔했던 내 것을 되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조경구(趙慶九) : 국문학을 전공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전적 정리 번역 등의 일을 했으며, 한문 고전의 대중화에 관심을 갖고 <한문에게 말걸기, 다락원, 2005.>, <1등 했는데 왜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풀빛, 2015.>, <아하, 자연에서 찾은 비밀, 한국고전번역원, 2016.>, <우리가 만난 신비한 소녀, 정인출판사, 2018.> 등의 책을 썼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조경구 서포터즈 벗  op9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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