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정(出征)의 바람은 불어오누나. ‘주역’에서 숫자 5는 바람과 통한다. 5월이 간다. 그저 가지는 않는다. 바람은 부드러우나(손·巽)나 때로는 저 깊은 바닷속까지 잘 들어가(입·入) 뒤엎어버리는 성질을 드러낸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변곡점이라 할 만한 5월의 큰일을 생각한다. 1948년 5·10총선거(대한민국 최초 보통선거),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1년 5·27 “전두환, 물러가라” 김태훈(다두) 민주열사 산화, 2009년 5·23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얼마 후 2009년 8·18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2017년 5·10 제19대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등이다. 이런 도도한 역사의 격랑을 거치며 극복한 덕인지,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대한민국 지위를 ‘선진국 그룹’으로 격상하였다. 한국은 ‘눈 떠보니 선진국’(최태웅, 2021.8.)이라는 평판에 적지 않은 사람이 공감했다. 아직은 ‘앉으나 서나 선진국’은 아니라는 뜻이렷다.
동요 ‘시냇물’(이종구 작사, 권길상 작곡)이 머릿속을 스친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냇물이 강물을 이루고, 그 강물이 주요 고비에서 변곡점을 만들며 넓은 바다로 가듯이, 대한민국은 유엔(UN)이 인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대한민국의 냇물은 5대양으로 간 셈이다. 6대륙이 대한민국의 상품이 팔리는 시장으로 바뀌도록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뿌린 피땀의 덕이리라.
2022년 3·9대선과 5·10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 벌써 인지 이제야 인지 헛갈리나 2년이 지났다. 5대양 6대륙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영토에 어떠한 격랑이 몰아치는지, 최근 한국 증시는 ‘벼락 거지’ 신세라고 한다. 세계 주요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3년간 부진했던 중화권 증시마저 큰 폭으로 반등하는데도 한국 증시는 제자리걸음만 하는 탓이다.
지금의 정부는 역대 여느 정부보다 우량자산을 이어받았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그룹’이고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 하지 않았는가. 어떤 자에게는 그 자산이 악성부채일 거다.
최근 2년간 경제활동을 하면서 눈 귀에 와 닿는 정보로 보건대, 지금 정부의 각종 정잭은 5대양 6대륙에 걸친 광활한 경제영토를 한반도의 휴전선 이남, 한라산 이북으로 빠르게 좁히는 위대한(?) 성과를 거양하였다고 봐도 큰 잘못은 아니리. 대한민국 자산이 늘기는커녕, ‘눈떠보니 선진국’은 어느새 ‘벼락 거지’라고 신세타령하게 생겼다. 대한민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포함한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남사스럽겠다.
오늘부터 약 3년, 날 수로는 천7십8일을 지금처럼 대내외정책이 끊이지 않는다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으로 둘러싸인 계곡에서 양쪽 산자락의 풀을 능동적으로 뜯어 먹으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대한민국 경제주체는 어떤 상황에 부닥칠까?
삼사일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정노트를 다룬 기사를 보고 알아차렸다. ‘우리가 혈맹이라 믿어온 미국은 참으로 냉혈 하구나.’ 1997년 12·18대선에서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 날 19일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으로부터 온 축하 전화는 차기 대통령인 당신을 한번 시험해 봐야겠다는 내용으로 ‘겁박’에 가까웠다. 곧바로 파악한 우리나라 외화 보유액은 연말 기준 ‘-6억~9억’ 달러였다. 12월 22일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부 차관은 급거 방한하여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 대사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면접시험을 보였다. 12월 24일, IMF와 13개 선진국은 12월 말까지 100억 달러를 조기 지원하겠다고 통보했다.
다시는 우리 대통령이 미정부 차관에게, 우리 국민이 미국 국민에게 피 말리는 면접시험을 보지 않도록 천지신명이 돕는지 출정의 바람이 개별경제주체의 가슴에서 일렁이는가보다. 출정(出征)! 출(出)하니 곧 정(征)이로다. 出 = {凵, 屮}은 위 튼 입구, 즉 땅 위로 싹이 돋아나는 모양이고, 征 = {彳, 正}은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세상을 올바로 잡는다는 뜻으로 보인다.
출정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귀에 맴돈다, ‘광주출정가’(최은기 작사, 범능 스님 작곡)···.
*이 글은 <남도일보>(2024.05.27.)에 실린 칼럼입니다.
원문 보기: [남도일보 화요세평]2024년 갑진 5월, 대한민국 출정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72723
*관련 기사: 산화 40주년 김태훈(다두) 민주열사 추모 축문(한겨레:온, 2021.05.27.)
https://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16
편집 : 형광석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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