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파시즘도 민주주의란 제도를 타고 기어 오른다.
따라서 극우의 준동에 진보평화세력은 연대하여야 한다.
불의의 세력과 싸워야
체 게바라가 1967년 볼리비아에서 제국주의 세력과 싸우다 죽었을 때 세계적인 석학 프랑스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는 인류 중 가장 완전한 인간의 삶을 살았다고 추모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전 세계의 지성은 애도했다. 유럽의 68혁명과 미국의 대대적인 반전운동과 인권운동을 촉발시켰다. 그가 산 삶은 인간에 대한 헌신적 사랑과 불의에 대한 투쟁, 행동하는 양심 자체였다.
일제하에 젊은 조선인 독립투사들은 일제의 침략과 수탈, 학살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였다. 그 전통을 이어 이승만 독재정권과 싸움의 선봉에 젊은 학생들이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와 투쟁의 일선에도 역시 젊은 학생들이 있었다. 현행 헌법체제를 만든 1987년 6월항쟁 역시 젊은 청년 학생들의 정의로운 투쟁의 결과물이다.
인류를 구원할 듯 하던 볼세비키혁명은 100년도 못가고 붕괴됐다. 2차대전 이후 치열하게 대립하던 이념 대결의 냉전체제는 끝이났다. 이제 사실상 이데올로기는 수렴되었다. 그럼에도 승자를 자처하는 자본주의 질서는 인간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천부적 질서인 것처럼 인식된다. 정의와 사랑, 도덕의 이념은 사라지고 경쟁, 승자독식, 탐욕,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념의 몰락인가, 정의(justice)의 후퇴인가
인간존엄, 평등, 자유, 휴머니즘, 평화 이런 가치는 진보의 핵심가치이다. 영국 노동당은 온건한 사회주의, 진보주의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의 극우정권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전 대표인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은 현 노동당 대표(키어 스타머keir starmer)와 노선 갈등으로 다음달 총선에 그의 현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당 대표를 지낸 유능하고 존경 받는 지도자가 현 지도부와 당의 노선, 정책에 대해 갈등하는 것이다. 현 노동당 지도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 학살을 비난하는 강성 제레미 코빈을 반유대주의라고 제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적인 좌파 정당이란 영국 노동당에서 생기는 일이다. 미국과 유럽사회에 만연한 반이슬람주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파시스트, 네타냐후의 침략, 학살 만행을 진보정당이 방관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선진국에서 이스라엘의 규탄 시위는 반유대주의라고 매도되고 있다.
며칠 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 출마자들이 대거 의회로 진입했다. 평화, 복지, 인권, 기후 환경을 주장하는 세력은 위축되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 국민연합(RN)의 급부상에 방어조치로 의회해산을 선언했다. 그런데 국민연합과 보수 공화당의 연합론이 나오는 걸 보면 프랑스에서 극우 총리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태리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독일 AFD,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극우세력은 히틀러,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추앙한다. 이들은 이민자 반대, 이슬람 증오, 경제, 사회적 평등에 반대를 한다. 이는 많은 유럽 사회의 백인들이 민주주의의 기본가치, 보편적 인간 존엄을 존중치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인류는 과거 이태리 무솔리니, 나치 히틀러, 스페인 프랑코, 일본 도조 히데끼의 파시스트의 만행을 역사에서 겪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현재 벌어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전쟁은 극우 젤런스키, 네타냐후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 더욱이 극우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내의 반전평화 세력을 탄압하면서 대학살극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윤석열 정권도 세계적 극우세력과 상당 부분 궤를 같이한다. 극우들이 내세우는 자유지상주의를 입에 달고 산다. 여소야대 국회에 상황이라 그렇지 과반의석을 정부여당이 확보했다면 극우 검사독재가 노골화되었을 것이다. 소수 여당임에도 야당과 협치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시행령통치, 국회 통과 입법안 거부, 검찰통치가 만연하고 있다. 자유만세, 부자 감세, 남북긴장고조 등 전형적인 극우 통치이다. 이것은 칭하자면 검사 파시즘이다. 국민적 원성이 높아 총선에서 대패 했다. 그럼에도 국정운영기조의 변화가 없다.
정의, 소중한 진보적 가치
행동하던 기성세대는 보수화되고, 젊은 세대는 물질만능주의에 분노를 할 줄 모른다. 각자 도생 시대이다. 과거 젊은 세대는 불의에 분노했다. 정의를 위해 한 목숨 바치던 인물도 많았다.이제 젊은 세대에게 행동하는 양심, 정의의 투사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그들의 시대적 환경은 과거와 달라 돈과 권력, 출세, 개인주의에 올인한다. 물질 만능세태의 잘못된 교육이 빚어낸 후과일 것이다.
그렇지만 첨단 물질문명이 고도화되는 속에 빈부격차는 극심하고 생존 자체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여기에 평화 없는 전쟁, 인종차별, 기후위기 까지 행복한 인류의 세상은 아주 멀리 있다. 반인간적 질서가 엄존한다.
정의, 평화, 인간존엄의 진보적 가치가 역시 강조되지 않을 수 없는 이치이다. 극우 파시즘도 민주주의란 제도를 타고 기어 오른다. 따라서 극우의 준동에 진보평화세력은 연대하여야 한다. 불의의 세력과 싸워야 파시스트시대를 막을 수 있다. 사회적 정의가 완전 몰락하기전에 행동해야 한다.
노암 촘스키는 말한다 “ 세계의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인류에게 재앙이 닥칠 것만큼은 확실하다.
편집 : 심창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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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십년간의 시행착오를 격으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겠지만 암울한 세계정세는 더욱 기승을 불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