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계성(鷄聲)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계성과 그의 아내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계성의 아들이 생전에 부모를 정성껏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묘소 앞에 움막을 짓고 여러 해 동안 기거하다가 그만 자신도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이에 나라에서 그 아들의 효성을 기려 효자문을 두 개 세워 주었다. 그 뒤 마을 이름이 쌍문동(雙門洞)이 되었다.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의 유래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적 가치를 실제 삶에 구현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집 앞이나 마을 앞에 세워준 정려문(旌閭門)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문의 영광이자 마을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양반세도가에서는 더러 남편 따라 죽으라고 아내에게 자결을 강요하기도 했었다죠. 이런 거 세우는 게 옛날 얘기만은 아닙니다. 요즘도 어디 가면 고시에 합격했거나 좋은 대학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더군요. 물론 이 현수막은 개인이 내건 것이고 곧 철거해야 할 것이긴 하지만 집안의 자랑거리를 남에게 과시하는 기능은 정려문과 유사해 보입니다.

동문선(東文選)19권에는 고려 후기 문신 조인규(趙仁規) 선생의 <아들들에게 보임[示諸子]>이라는 오언절구가 실려 있습니다. 집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임금을 섬김에 마땅히 충성을 다하고 / 事君當盡忠(사군당진충)
남을 대함에 마땅히 지성스러워야 한다 / 遇物當至誠(우물당지성)
바라노니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써서 / 願言勤夙夜(원언근숙야)

모두 네 구절인데 세 구절만 먼저 봤습니다. ‘은 사물이지만 남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나라에 충성하고 다른 사람에게 지성으로 대하라. 가훈이나 급훈, 교훈으로도 적당하겠습니다. ‘은 일찍 이므로 勤夙夜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실천하란 뜻입니다. 따로 빼놓은 마지막 구절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요?

너를 낳아 준 부모를 욕되지 않게 하라 / 無忝爾所生(무첨이소생)

은 더럽힐 ’, ‘는 너 입니다. 너를 낳아준 부모, 특히 이 애비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누가 나쁜 짓을 저지르면 많은 사람들이 부모를 들먹이면서, 도대체 가정교육이 어땠기에 애가 저 모양이냐고 비난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점에서-물론 부모도 자식의 거울이긴 하지만- 타당한 지적으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이 아버지는 애비를 욕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아들들에게 선언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자식이 잘못하면 애비가 나서서 온갖 권력과 금력을 동원해 이를 무마하고 덮는 걸 봅니다. 욕먹기 싫어서겠죠. 애초에 욕먹을 짓을 하지 않으면 될 텐데 말입니다. 그 자식이 , 내가 잘못하면 우리 부모가 욕을 먹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만 해도 세상에는 범죄가 많이 줄어들 수 있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해 봅니다.

사진 출처 : 필자
사진 출처 : 필자

동문선19권에는 오언절구만으로 분량이 모자랐는지 칠언절구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고려 초기 문신 최승로(崔承老, 927~989) 선생의 <다른 사람을 대신해 먼 곳의 임에게 부치다[代人寄遠]>라는 작품을 봅니다.

떠나는 수레 한번 작별한 뒤 몇 해나 지났나 / 一別征車隔歲來(일별정거격세래)
몇 번이나 애써 누대에 올라 기대고 바라보았는지 / 幾勞登覩倚樓臺(기로등도의루대)
서로 그리워하는 괴로움 비록 이와 같을지라도 / 雖然有此相思苦(수연유차상사고)
공 없이 빨리 돌아오는 것은 원치 않는답니다. / 不願無功便早廻(불원무공편조회)

은 칠 ’, ‘은 사이 뜰 ’, ‘는 볼 ’, 는 돌아올 입니다. 전쟁인지 부역인지로 낭군이 멀리 떠나 벌써 몇 년이 흘렀군요. 그리움에 수없이 다락에 오르는 게 괴롭다고 하면서도 공은 세우고 돌아오라니, 이 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느낌이 애매합니다. 공을 세워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충성을 바쳐 정려문이라도 받게 하거나 연금이라도 두둑하게 챙기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는 뜻인가요?

공 못 세워도 좋으니 그저 몸성히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보통 아낙의 심정일 텐데 많이 어색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다시 보니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쓴 편지였군요. 아무리 글 모르는 아낙을 대신해 쓴 편지라지만 속마음을 너무 왜곡하신 거 아닌가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아든 낭군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 차라리 글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나라에 충성하라는 유교이념을 아주 잘 구현한 시라고 평가했기에 동문선을 편집하면서 이 작품을 뽑아 넣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으로 넘기겠습니다.
 

※ 《동문선(東文選)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지어진 우수 작품을 모은 선집이며, 이미 번역되어 한국고전종합DB에 올라 있는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귀한 내 것을 내 것인 줄 모르고 쓰지 않으면 남의 것이 됩니다. 이 코너는 동문선에 실린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잊을 뻔했던 내 것을 되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조경구(趙慶九) : 국문학을 전공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전적 정리 번역 등의 일을 했으며, 한문 고전의 대중화에 관심을 갖고 <한문에게 말걸기, 다락원, 2005.>, <1등 했는데 왜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풀빛, 2015.>, <아하, 자연에서 찾은 비밀, 한국고전번역원, 2016.>, <우리가 만난 신비한 소녀, 정인출판사, 2018.> 등의 책을 썼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조경구 서포터즈 벗  op9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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