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화의 프로시는 과연 일본좌파문학을 어설프게 답습한 것이었나
중요한 것은 우선 객관적인 사실의 문제입니다. 그래 염무웅의 말대로 과연 임화의 프로시가 일본좌파문학을‘어설프게’답습한 것인지...나카노 시게하루와 임화의 대표시를 차례로 비교해 보것습니다.
1,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나카노 시게하루
신(辛)이여 잘 가거라
김(金)이여 잘 가거라
그대들은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品川驛)에서 차에 오르는구나
이(李)여 잘 가거라
또 한 분의 이(李)여 잘 가거라
그대들은 그대들 부모의 나라로 돌아가는구나
그대들 나라의 시냇물은 겨울 추위에 얼어붙고
그대들의 천황에 반항하는 마음은 떠나는 일순(一瞬)에 굳게 얼어
바다는 비에 젖어서 어두워가는 저녁에 파도소리 높이고
비둘기는 비에 젖어서 연기를 헤치고 창고 지붕위를
날러 나른다
그대들은 비에 젖어 그대들을 쫓아내는
일본의 천황을 생각한다
그대들은 비에 젖어서 그대들을 쫓아내는
그의 머리털 그의 이마 그의 안경 그의 좁은 이마
그의 보기 싫은 곱새등줄기를 눈앞에 그려본다
비는 줄줄 나리는데 새파란 시그낼은 올라간다
비는 줄줄 나리는데 그대들의 검은 눈동자는 번쩍인다.
그대들의 검은 그림자는 개찰구(改札口)를 지나
그대들의 하얀 옷자락은 침침한 프랫트폼에 휘날려
시그낼은 색을 변하고
그대들은 차에 올라탄다
그대들은 출발하는구나
그대들은 떠나는구나
오오!
조선의 사나이요 계집아이인 그대들
머리끝 뼈끝까지 꿋꿋한 동무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뒷방패 앞방패
가거든 그 딱딱하고 두터운 번지르르한 얼음장을
두둘겨 깨쳐라
오랫동안 갖히였던 물로 분방한 홍수를 지어라
그리고 또다시
해협을 건너 뛰어 닥쳐오너라
고베(神戶) 나고야(名古屋)를 지나 도쿄(東京)에 달려들어
그의 신변에 육박하고 그의 면전에 나타나
그를 사로잡어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
그의 멱 바로 거기에다 낫살을 겨누고
만신의 튀는 피에
뜨거운 복수의 환희 속에서
울어라! 웃어라!
2,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임화
항구의 계집애야! 이국의 계집애야!
‘독크’를 뛰어오지 말아라 ‘독크’는 비에 젖었고
내 가슴은 떠나가는 서러움과 내어 쫓기는 분함에 불이 타는데
오오 사랑하는 항구 ‘요꼬하마’의 계집애야!
‘독크’를 뛰어오지 말아라 난간은 비에 젖어 있다
“그나마도 천기天氣가 좋은 날이었더라면?”......
아니다 아니다 그것은 소용없는 너만의 불쌍한 말이다
네의 나라는 비가 와서 이‘독크’가 떠나가거나
불상한 네가 울고 좋아서 좁다란 목이 미여지거나
이국의 반역 청년인 나를 머물러두지 않으리라
불쌍한 항구의 계집애야ㅡ울지도 말아라
추방이란 표를 등에다 지고 크다란 이 부두를 나오는 네의 사나이도 모르지는 않는다
제가 지금 이 길로 돌아가면
용감한 사나이들의 웃음과 알지 못할 정열 속에서 그 날마다를 보내이던 조그만 그 집이
인제는 구두발이 들어나간 흙자죽밖에는 아무것도 너를 맞을 것이 없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항구의 계집애야!ㅡ너 모르진 않으리라
지금은‘새장 속’에 자는 그 사람들이 다ㅡ 네의 나라의 사랑 속에 살았던 것도 아니었으며
귀여운 네의 마음 속에 살었던 것도 아니었었다
그렇지만ㅡ
나는 너를 위하고 너는 나를 위하여
그리고 그 사람들은 너를 위하고 너는 그 사람들을 위하여
어째서 목숨을 맹서하였으며
어째서 눈 오는 밤을 몇 번이나 거리에 새었던가
거긔에는 아무 까닭도 없었으며
우리는 아무 인연도 없었다
더구나 너는 이국의 계집애 나는 식민지의 사나이
그러나ㅡ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너와나ㅡ 우리들은 한낱 근로하는 형제이었던 때문이다
그리하야 우리는 다만 한 일을 위하여
두 개 다른 나라의 목숨이 한 가지 밥을 먹었던 것이며
너와 나는 사랑에 살아왔던 것이다
오오 사랑하는‘요코하마’의 계집애야
비는 바다 위에 내리며 물결은 바람에 이는데
나는 지금 이 땅에 남은 것을 다 두고
나의 어머니 아버지 나라로 돌아갈려고
태평양 바다 위에 떠서 있다
바다에는 긴 날개의 갈매기도 올은 볼 수가 없으며
내 가슴에 날든‘요코하마’의 너도 오늘로 없어진다
그러나 ‘요코하마’의 새야
너는 쓸쓸하여서는 아니 된다 바람이 불지를 않느냐
하나뿐인 너의 종이우산이 부서지면 어쩌느냐
어서 들아가거라
인제는 네의‘게다’소리도 빗소리 파도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가보아라 가보아라
나야 쫓기어나가지만은 그 젊은 용감한 녀석들은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쇠창살 밑에 앉어 있지를 않을 게며
네가 있는 공장엔 어머니 누나가 그리워 우는 북륙北陸의 유년공이 있지 않으냐
너는 그 녀석들의 옷을 빨아야 하고
너는 그 어린 것들을 네 가슴에 안어 주어야 하지를 않겠느냐ㅡ
‘가요’야! ‘가요’야! 너는 들어가야 한다
벌써‘싸이렌’은 세 번이나 울고
검정 옷은 내 손을 몇 번이나 잡아당겼다
인제는 가야한다 너도 가야하고 나도 가야한다
이국의 계집애야!
눈물은 흘리지 말아라
거리를 흘러가는‘데모’속에 내가 없고 그 녀석들이 빠졌다고ㅡ
섭섭해 하지도 말아라
네가 공장을 나왔을 때 전주電柱 뒤에 기다리던 내가 없다고ㅡ
거기엔 또 다시 젊은 노동자들의 물결로 네 마음을 굳세게 할 것이 있을 것이며
사랑의 주린 유년공들의 손이 너를 기다릴 것이다ㅡ
그리고 다시 젊은 사람들의 입으로 하는 연설은
근로하는 사람들의 머리에 불같이 쏟아질 것이다
들어가거라! 어서 들어가거라
비는‘독크’에 나리우고 바람은‘덱기’에 부딪친다
우산이 부서질라ㅡ
오늘ㅡ 쫒겨나는 이국의 청년을 보내주던 그 우산으로 내일은 내일은 나오는 그 녀석들을 맞으러
‘게다’소리 높게 경빈거리[京濱街道]를 걸어야 하지 않겠느냐
오오 그러면 사랑하는 항구의 계집애야
너는 그냥 나를 떠내 보내는 서러움
사랑하는 사나이를 이별하는 작은 생각에 주저앉을 네가 아니다
네 사랑하는 나는 이 땅에서 쫓겨나지를 않는가
그 녀석들은 그것도 모르고 갇혀 있지를 않은가 이 생각으로 이 분한 사실로
비둘기 같은 네 가슴에 발갛게 물들어라
그리하야 하얀 네 살이 뜨거서 못 견딜 때
그것을 그대로 그 얼굴에다 그 대가리에다 마음껏 메다 쳐버리어라
그러면 그때면 지금은 가는 나도 벌써 부산, 동경을 거쳐 동무와 같이‘요코하마’를 왔을 때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서러웁던 생각 분한 생각에
피곤한 네 귀여운 머리를
내 가슴에 파묻고 울어도 보아라 웃어도 보아라
항구의 내의 계집애야
그만 ‘독크’를 뛰어오지 말아라
비는 연한 네 등에 나리우고 바람은 네 우산에 불고 있다
자, 나는 이 두 작품을 어티케 비교 설명해 내야 할지... 내 앞에는 여기 실로 어마어마한 시대의 걸작들이 놓여있습니다. 우선 공통점부터 보것습니다. 두 작품은 모두 뛰어난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 내리는’/‘우산 받은’,‘시나가와역’/‘요코하마의 부두’...두 작품의 제목에 드러나고 있는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 공간을 점하고 있는데, 여기 ‘상징적symbolic’이라는 언사는 ‘일단’심리적 요소와 관련된 것으로, 이 작품들의 성공요건을 이루는 일차 요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인 용어나 이름, 평소에 접하기 쉬운 그림 따위에 통상적인 명백한 의미 말고도‘특정한 함의’가 덧붙여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상징’이라 부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과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는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의미가 아닌 특정한 함의를 지닌 상징적 기호입니다.
즉 우리는 일상적인 날씨가 아닌 비가 오는 배경이 지닌 상징적 의미로서의 어두운 의미를 연상하게 되는 것이고, 더구나 역이나 부두는 만나고 떠나는 곳인데, 여기서는 이별의 공간으로 두 작품 모두 ‘국외추방’이라는 특정한 의미를 전하기 위한 상징적 공간으로 채택된 것이니, 가령 일제시기 ‘목포의 눈물’이라는 시대의 설움을 절실하게 노래한 애상적이고 서정적인 대중가요가 만주로, 북간도로, 하와이, 일본으로 그 어딘가로 살기 위해 정든 항구를 떠나야만 했던 시대고로서의 아픔을 지닌 디아스포라 조선 동포의 설움이 지금도 뼈아픈 공감을 자아내고 있거니와, 꼭 그처럼 여기 역과 부두는 더구나 ‘비 내리는’ 이미지로서의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토포스의 설정은 독자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상징으로서 시적인 성공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두 작품에서 우리는 애상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넘어 불같은 서정성과 함께 뜨거운 서사성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과연‘국외추방’이라는 시적 소재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카노 시게하루에게는 황국신민이, 일본의 노예로서의 그들의 국민 되기를 거부하는 조선인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러하고, 임화에게는 노동쟁의로 추방되는 조선 청년 노동자의 심정을 아름답고도 진실하게 투사해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추방서사’로서의 디아스포라적 의미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난과 전쟁, 또는 쟁의와 관련되어 인류애적 의미를 지니고 숭고한 그 무엇으로 나의 가슴을 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이 두 작품에서 우리는 국제적 연대라는, 즉 민족 간의 에스니한 감정을 넘어선 프롤레타리아 국제성으로서의 인류애적 해방서사로서의 의의를 지닌 조선 - 일본 간의 연대의식에서 피어난 특이한 <프로노동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이 이렇게 그 뛰어난 상징성과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노동해방서사로서의 인류애적인 숭고한 의의를 드러내고 있는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으먼서도 우리는 하나의 동질성을 지닌 작품에서도 질이 다른 그 무엇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과연 작품에 있어서의 질quality의 문제입니다. 양quantity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베르그송에 있어서의 ‘미적 강도aesthetic intensity’의 문제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한 반복에서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카노 시게하루의 작품에서도 무론 그 뛰어난 상징처리를 비롯하여 선연한 분노의 감정을 공유하고자 하는 연대의식의 소산으로서의 일본좌파문학 발군의 이론가이자 걸출한 시인이 보여준 프로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거니와, 그러나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목적의식이 강하게 느껴지고,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감정처리의 생경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한국의 독자로서 우리가 이 시를 감상한다고 할 때에 있어서 솔직히‘울어라’,‘웃어라’라는 시적 명령에 없지 않은 민족 감정을 확인하게 되는 것 또한 무시 모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화자는 하나의 지도 차원이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조선의 노동자를 대하고 있다는 데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에스니한 민족적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그 기회주의적이고 나약한 지식인의 본질의 일부로 그가 결국 일본측 사정이 어려워지자 전향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고베(神戶) 나고야(名古屋)를 지나 도쿄(東京)에 달려들어/그의 신변에 육박하고 그의 면전에 나타나/그를 사로잡어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그의 멱 바로 거기에다 낫살을 겨누고/만신의 튀는 피에/뜨거운 복수의 환희 속에서/울어라! 웃어라!
그리고 여기 ‘만신의 튀는 피’니, ‘복수의 환희’니 하는 표현들, 이것은 분명 감정 과잉이라고 할 것으로, 다시 말해 김동인의 이른바 “주먹 마치 시”(여기, ‘마치’는 지금의 ‘망치’입니다)의 일종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때 조선 경향문학의 비판의 대상이었던 과격하고 거친 표현이 아무래도 아쉬움으로 남는 게 사실입니다.
자, 그렇다면 임화의 시는 과연 어떨까? 임화의 시가 나카노 시게하루 시의 격정에 감발이 되어 답시를 쓰게 할 만큼 시게하루 시의 격정을 우리가 느끼지 모하는 바가 아니나, 우리가 임화의 프로시에서 하나의 미적 강도로서의 시게하루의 시와 다른 마치 하나의 불덩어리를 안은 듯 시적이고 예술적인 격정에 넘친 페이소스를 느끼먼서 또한 대리석처럼 차가운 그 무엇으로서의 냉정하고도 성숙한 표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은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입니다.
그러나 시를 유심히 보건대, 임화의 시에는 상징적 처리도 좋고 더구나 ‘계집애’라는 정감 있는 언어를 박아넣고 여성 이미지를 끼워 넣음으로써 로맨틱한 색조를 발하고 있지만(무론 이것이 그르칠 경우에는 외려 약한 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임화의 시에서 시게하루의 시와는 또 다른 시적 질감에 있어서의 남다른 감흥을 느낀다먼, 그것은 보다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차원에 있어서의 한 인간의 내면의 진실로서의 시적 진실이 그득하게 작품 전편에 넘쳐 흐르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먼서 또한 우리가 임화의 시에서 시게하루의 시와 다른 그 무엇을 느꼈다먼 그것은 바로 한일연대의식이라는 ‘이상적’관념에 매인 화자의 모습이 아닌 민족의 ‘현실적’감정을 지닌, 그리하여 ‘너’와 ‘나’로서 분명한 차이를 지닌 진실한 화자의 감정 그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감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임화의 시에 하나의 지배적인 이념소로 등장하고 있는 요소는‘항구의 계집애’로 표상되고 있는‘너’라는 기호입니다.
그러나 이‘너’라는 타자의 기호가 문법적 표지를 넘어 자신이 사랑하지만 사랑해서는 아니 될 관계로서, 그러니까 여기‘나’와‘너’는 인류애적 의미와 민족적 의미가 복잡하게 뒤엉켜있는 것으로서의 모순된 이데올로기적 감정 기호입니다. 사랑에도 이념의 공기가 이렇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니, 이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하나의 나타남으로서의 현상학이 아닌가. 그래 그는 온통 이 계집애에 대한 의식의 처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치 천재적인 작곡가 베토벤의 명반 ‘운명’의 기본 음조 ‘짜자자잔~’이 다양하게 변주되먼서 이를 데 없는 고전의 맛과 깊이를 더하는 것처럼, 꼭그처럼 우리는 임화의 이 작품에서도‘항구의 계집애’는 끝없이 변주되어 “이국의 계집애/사랑하는 항구 ‘요코하마’의 계집애/불쌍한 항구의 계집애/너는 이국의 계집애/사랑하는‘요코하마’의 계집애/‘요코하마’의 너/‘요코하마’의 새/‘가요’야/항구의 내의 계집애...” 등 다양한 아바타로, 천의 얼굴로 나타나고 있어 감상의 맛과 깊이를 더하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조선 민중의 혼을 대변하는 시적 화자인 임화의 의식의 끈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심리적 매개 요소로 또한 진실한 모습으로서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약한 모습이기도 한 그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성異性과, 그것도 적대국의 계집애와 사랑에 빠진 한 인간의 솔직한 모습으로서의 이야기도 이야기대로 진실하게 토로되고 있지만 역시 우리가 임화의 프로시에서 줄기가 다른 그 무엇으로서의 감동의 결을 느끼게 되고,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임화의 프로시에서 그 예술적 승화로서의 격정에 넘친 서사시로서의, 서정적 우물에 빠진 나약한 인간을 넘어 그 성숙한 의미에서 사유의 진전으로서의 하나의 운동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헤겔적 의미에서의 즉자적卽自的 서정의 범주를 넘어선 ‘대자적對自的’인식으로서의 서사적 영토의 세계입니다.
영토, 그것은 과연 정주를 넘어선 새로운 범주의 사유가 아닌가. 그러니까 그는 하나의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개인적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 대자적 거리로서‘요코하마’라는 이국적 공간에서 마주한 너를 대자화하먼서 ‘너는 이국의 여인’이라는 대상화된 거리 이쪽에 심리가 닿아 있으며, 그곳에 바로 하나의 초자아로서 ‘나는 식민지의 사나이’라는 새로운 시적 영토로서의 조선 청년의 표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술은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바로 여기서 우리는 그깐 감정 하나 주체하지 모하고 인정에 얽매어 있는 나약한 자신을 초극하고자 하는 식민지 청년 임화의 결연하고도 격렬한 시대적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데서 그 비교할 수 없는 감격의 순간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오 사랑하는 ‘요코하마’의 계집애야
비는 바다 위에 내리며 물결은 바람에 이는데
나는 지금 이 땅에 남은 것을 다 두고
나의 어머니 아버지 나라로 돌아갈려고
태평양 바다 위에 떠서 있다
바다에는 긴 날개의 갈매기도 올은 볼 수가 없으며
내 가슴에 날든‘요코하마’의 너도 오늘로 없어진다
그래 임화를 가장 앞서서 날서게 비판하고 있는 김윤식(<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조차 이 작품을‘카프시인으로서의 단계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올바로 평가한 이유가 있고, 가장 정직한 비평의 사제 김용직(<임화문학연구>)은 임화의 시에는 ‘줄기가 느껴진다’ 하고, 이 작품이 나카노 시게하루의 시보다 훨씬 낫다고 평한 것입니다. 이에 덧붙여 글쓴이가 보기에 임화의 이 시는 조선 저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자, 그렇다먼-좀 길어졌습니다만-이번에는 실질적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임화 저항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인지, 이렇게 미적으로 뛰어난 서사적 시를 낳은 실제적 힘은 무엇인지 작품의 내재적인 성취 배경을 좀 살펴보것습니다. 잘 알다시피, 임화는 일찍부터‘조선 민중’에 대한 편애(‘혁토’, 1927)를 드러낸 프로시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김태준의 걸작 <조선소설사>(1933)에 대한 경쟁의식을 느끼고는 그 역시 걸작 <개설신문학사>(1939)를 쓴 것인데, 이 두 작품은 모두 일제에 대한 민족적 저항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눈여겨 보았던 대목은 학예사 발간의 <증보 조선소설사> 서문에 임화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이 책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일가一家의 생각이 있었다”라며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있는 그의 내면의 초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임화라는 초상을 그리고자 할 때에 있어서 그는 참으로 큰 욕망을 지닌 조선의 대문화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 임화는 학예사 주간으로 일본의 이와나미岩波 문고의 문화침략에 대한 대적 의식으로 ‘조선문고’라는 타이틀을 걸고 암흑기 저 야광주와도 같이 조선학의 보물로서의 은칼, 금칼처럼 번쩍이는 걸작들을 줄줄이 쏟아냈거니와, 이 중에서 또한 나의 눈깔을 자극하는 것은 ‘예언例言’(인용자-일러두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나 개인으로 보면 년래로 틈틈이 관심해 오든 민요 공부의 일소산으로” 그가 직접 편집한 <조선민요선>(1939)이라는 작품입니다.
여기, 우리가 또한 시선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오늘의 <삼대목>이라 할까, 조선의 <시경> 또는 <만엽집>이라 할 적지 않은 분량의 두터운 이 책에서 임화의 편집 의도를 눈여겨보게 되는데 바로 서정가요보다 ‘서사가요’에 압도적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시대 배경도 배경이거니와, 공전의 프로시를 낳은 임화에게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일입니다.‘조선 민중’도 그렇고‘틈틈이 관심해 오던 민요 공부’도 그렇고 임화의 시가 민중적인 서사 경향을 띠고 조선 재래의 고유한 이야기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과연 일가를 이룬 조선학의 대부로서의 하나의 내재적 가치에 주목할 바의 ‘조선적인 것’ 그것입니다.
웃녁새는 우로가고
아랬녁새는 아래로가고
전주고부 녹두새야
두룸박 딱딱
우여!
웃논에 차나락심고
아랫논에 매나락심어
울오라비 장개갈때
찰떡치고 메떡칠데
네가다-까먹나
우여!
-‘녹두새야’, 임화 편 <조선민요선>, 학예사
여기, ‘녹두새’는 우리가 익히 알던 그 파랑새요, 외세를 상징하는 이솝적 언어로서의 바로‘그 새’입니다. 이것은 기왕의 참요讖謠에 가까운 파랑새 노래보다 훨씬 민중적 원형에 가까운 이야기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데 적지 않은 의의가 있는 작품입니다.
자, 여기 민중적 원형이라는 것은 바로 조선 민요의 기본형이라 할 4 4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향가를 비롯 시조는 무론 별곡과 더불어 조선적 호흡에 가장 알맞은 기본형을 노정하고 있는 이 노래 또한 4 4조 기본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4 4조 기본형이 여기, ‘녹두새야’처럼 점차 분화, 서사화하먼서 그 민중적 이야기 형태로서의 자기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노래에서 이야기에로의 형식적인 변환으로서의 장르의 진전은 또한 자유로운 의식의 분출로 나타난 세계적인 현상이 아닌가 말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우리는 저 서양 문화와 문명의 기원이라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가 실은 노래(민족적 형식)에서 이야기(시민적 형식)로 전이되어 가는 전형적인 당대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그것은 다시 ‘사포’ 등 자유로운 그리스의 서정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거니와, 중국의 노래 또한 시경의 4언에서 시작되어 이 시경의 4언을 부정한 것이 조조를 비롯한 한漢의 악부 5언이요, 이 5언 악부를 또한 부정하고 나선 것이 당唐의 7언시 절구요, 백거이의 장편이 아닌가, 이 7언을 또 부정하고 일어난 것이 송사宋詞로, 명/청대의 소설로, 근대의 백화시, 현대의 신시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던가.
이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노래 또한 고대시가를 비롯 향가의 기본형은 4구체 또는 4언시 형태로 시작되어 8구체,‘사뇌가詞腦歌’라는 10구체로 점차로 분화, 완성되었으며, 고려가요와 조선의 별곡체(정철)와 연시조(윤선도), 특히 장형 사설시조(‘장진주사’), 그리고 서사민요에 이르러서는 그 자유분방한 욕망의 형식으로 분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의‘녹두새야’는 그중에서도 그 자유로운 서사적 분화를 느끼기에 충분한 정도로 그 노래가 지닌 정형적인 틀은 기본대로 유지되먼서 자유로운 이야기의 강물로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가령,“웃녁새는 우로가고/아랬녁새는 아래로가고”를 전통의 4 4조 기본형에 맞추먼“웃녁새는 우로가고/아랬녁새 아래로가”가 될 터이지만 벌써‘는’과‘고’가 추가됨으로서 그 말하고자 하는 민중적 화자들의 서사적 의지와 꿈, 욕망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첨가한다는 것은 상대의 주장에 토를 다는 것이니 자기화의 표지가 아닌가 하는 말입니다. 그래 조사‘는’은 대상에 대한 미적 거리두기로서의 자기화를,‘고’역시 하나의 객관적 인식으로 대상을 노트럴하게 포착하고자 하는 자기화의 표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4 4조 기본형에 따라붙는 ‘는’과 ‘고’라는 첨가어로서의 조사형태는 - 마치 막연하고 단순한 ‘山山’에서 자아의식이 성장하먼서‘ 산은 산이다山是山’로 좀더 분명하고 분화된 형태로 발전되어 가는 것처럼, 꼭 그처럼‘아랬녁새’와‘아랬녁새는’은 관념산수화와 진경산수화처럼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 하나의 차이로서의 자기화를 위한 문법적 표현이자 서사적 개입으로서의 산문적 형식으로, 이렇게 노래에서 이야기에로의 산문화 과정은 역사상 시민의식의 성장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항구의 계집애야! 이국의 계집애야!
‘독크’를 뛰어오지 말아라‘독크’는 비에 젖었고
내 가슴은 떠나가는 서러움과 내어 쫓기는 분함에 불이 타는데
오오 사랑하는 항구‘요꼬하마’의 계집애야!
‘독크’를 뛰어오지 말아라 난간은 비에 젖어 있다
자, 여기 임화의 가장 아름다운 시라 할 이 격정에 넘친 서사시에서 우리는 분명 하나의 시이자 소설로서의 그 불일불이不一不二한 조선적 형식으로서의 서사성을 보게 되지 않는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기본적으로 그 조선적 정조인 4 4조 기본형의 충실한 반영이자 부정이고, 그 자유로운 영혼이 뿜어내고 있는 산문혼의 발산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기어코 ‘난간은 비에 젖어 있다’라고 그 서술형(~어 있다) 어조로서의 묘사적이고 소설적인 문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실 그 객관적인 인식의 차원에서 보아도 그렇거니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대자화시키기 위한 강조 차원에서의 고려가 하나의 산문적 거리를 유지한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것으로, 이것은 권위와 영탄으로 일관하던 공소한 봉건적 인식에서 벗어난 현실적 감정의 형식적 투영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한정사‘–은’에서 그 차이로서의 현대인의 예민한 감수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먼서 또한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과연 민중의 이야기로서의 서사성이 지닌 그 간접적인 처리 방식으로서의 민중적 지혜와 직접적인 드러내기로서의 소박함이 아닌가 말입니다. 즉 전남 전주지방에서 채록된 이 서사가요에서, 그러니까 당시 민중들의 인식으로‘웃녁새’는 중국의 되놈들이요,‘아랬녁새’는 일본의 왜놈들이 아닌가. ‘전주고부 녹두새’는 이들과 한패나 다름없는 지배자들에 대한 우회적 표현이요, 중국놈 일본놈이 물러난 자리에 심은 차나락과 매나락을 까먹는 새는 바로 조병갑 등 민중의 생명을 빨아먹는 기생충들이라는 것 아닌가.
더욱 “네가다-까먹나”라는 직접적이고 섬뜩한 대목으로서의 거침없는 목소리로서의 민중의 노래와 서사형식은 앞에서 본 바 있는 “보아라! 어느 누가 참말로 도적놈이냐?”(‘네거리의 순이’) 라는 거침없고 대담한 민중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즉 ‘녹두새야’는 외세에 대한 저항이자 지배자의 학정에 대한 비판이니, 뭐 반제반봉건의 기치를 든 조선 민중의 드높은 기개를 잘 보여준 민요의 절창이 아닌가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또한 어조입니다. 대상을 간접화법으로 처리하먼서도 ‘녹두새야’하고 호명하는 데는 죄지은 자들을 돌아보게 하는 섬뜩한 효과가 있고, 반면 ‘웃논’,‘아랫논’,‘찰떡’,‘메떡’,‘장개간다’등은 을매나 정겹고 활기가 넘치는 고유어의 열병식인가. 더욱 중요한 것은‘우여!’라는 간투사interjection입니다. 감탄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독립된 의미로 외세와 봉건세력들의 착취적 현실(‘까먹나’)에 대한 강한 배척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생동하는 기호표지입니다.
강한 서사적 환기력을 지닌, 그러먼서도 우회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의지를 지혜롭게 투사하고 있는... 우리는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에서도 ‘우산’을 비롯 ‘비’와 ‘바람’, ‘한 일’ 등 우회적 성격을 지닌 임화 프로시로서의 상징적 요소와 더불어 “녹두새야”처럼“이국의 계집애야!”하고 호명하는 언사의 활용 등 사회적 환기로서의 서사적 요소를 지닌 그 저항적 기표로서의 민중 언어의 생생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거니와, 무론 이것은 임화 개인의 연극 체험과 무관하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이 시가 조선민요의 전통에 면면히 이어져 온 민중의 문법을 계승하여 만든 작품으로 그 내재적 기원을 지닌 조선적 내러티브로서의 서사적 성과라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이처럼 임화의 프로시가 관념 과잉의 ‘주먹 마치 시’도 아니고 더욱이 나카노 시게하루의 전편前篇을 뛰어넘어 조선적 내러티브로서의 고유한 서사성을 지녔으먼서도 하나의 아름다운 가편佳篇으로서의 저항적 프로시의 대표작이 된 데에는 그 ‘심려한’ 상징의 힘이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임화, 그는 ‘임林다다’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을 만큼 한때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바도 있거니와, 모더니즘은 저 김수영의 화려한 도시의 여자들을 닮은 시처럼 경쾌하고 발랄한 사고와 신선한 감각적 이미지의 사용 등과 관련된 것으로, 현대 문명의 이면으로서 이런 모더니티의 어두운 지대의 하나가 또한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상징은 앞에서 말한 바 특정한 함의로서의 심리적 의미보다는‘정치적 무의식’으로서의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령, 그 세계의 문학사조 상으로 볼 때에 있어서 보들레에르, 랭보, 베를렌느 등의 프랑스 상징주의는 퇴폐적 사랑과 방황 등‘저주받은 시인’으로서의 데카당한 이미지로 연상되고 있는 면을 지닌 것도 없지 않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사실 궁핍하던 시기의 반항적인 임화와도 잘 어울리는 이미지로 그에게는 ‘마르크스 보이’로서의 반항적 이미지와 함께 저 보성고 동료 이상처럼 어딘지 모르게‘부랑아’같이 타락한 - 그러나 당시 임화가 한때 수염을 기르고 (일제가 만든-글쓴이) 교과서를 팔아 조타모를 사서 쓰고 다녔다는 일화들은 그것은 엄격하게 말해서 시대와 불화를 일으킨 낯선 타자로서 민족의 이상인 국가건설의 길이 막히고, 청년의 나아갈 길이 또한 막힌 데 대한 개인적 울분이자 사회적 불만으로서의 미적 청년의 시대적 포즈라 할 것입니다 - 뭐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씌워져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 프랑스의 저주받는 시인의 가장 대표적인 시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울고만 있는 너는,
말해 봐,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베를렌느,‘하늘은 지붕 위로’, <예지>, 민음사
여기, 이 작품을 보았을 적의 조선의 미적 청년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정적인 것 이상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청년의 나아갈 바에 대한 격정에 넘치는 그 무엇으로서의 대자적 인식이 아닌가 말입니다. 즉 프랑스의 데카당한 상징주의 시풍은, 그러나 데카당을 너머 식민 청년의 삶을 사로잡은 미적 저항의 한 수단으로서의 하나의 예술적 돌파구가 되었다 할 것입니다.
아무러기로 청년들이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여,
이 바다 험한 물결 위에 올랐겠는가?
첫 번 항해에 담배를 배우고
둘째 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 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임화,‘현해탄’중에서
이런 사실은 ‘과연’ 다만 임화가 돈과 명예와 출세를 위해 현해탄을 건너간 속물적 위인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모순을 ‘부정할’ 의식을 지닌 문제적 개인으로 자신을 대상화시킬 수 있었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눈깔을 뜬 식민지 조선 청년임을 엿볼 수 있는 시적 표지poetic signature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때의 ‘부랑청년’에서 ‘저항청년’으로, 다시 ‘조선의 청년’으로 나아갔던 임화! 이것은 어티케 가능했던 것인지, 이것이 단순한 외적 영향만의 문제인지...
주의해서 잘 보아야 할 것은 역사상의 프랑스 상징주의 사조의 출현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이해 가능한 것으로, 그러니까 이것은 저 루카치(<역사소설론>, 거름)의 말대로, 1789년에서 1848년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부르주아 혁명이 민중들의 현실적 열망을 채워주지 모한 데서(즉 프랑스 산업화 초기 부르주아들의 민중에 대한 배반), 다시 말해 그것은 홉스봄(<혁명의 시대>, 한길사)의, 이른바 한때의 혁명의 열풍이 지나고 왕정복고와 관련된 반동 선풍이 가져온 결과로 그것은 철학에 있어 실증주의(꽁트, 이폴리트 텐)로, 소설에 있어 자연주의(플로베르, 졸라, 모파상)로, 시에 있어서는 상징주의(보들레에르, 랭보, 베를렌)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사회적 경향으로 가장 대표적으로 보들레에르의 ‘우울’이 상징하듯이, 프랑스의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좌절이 모더니즘과 상징주의로서의 새로운 예술 사조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구인회’등 도회의 아들이라는 모더니즘의 출현으로 나타났거니와, 그러나 빛과 어둠을 함께 지닌 시대의 그림자로 가령 염상섭의 <만세전>(원제목은 <묘지>, 1922)처럼 “생활에 대한 회의, 환멸은 드디어 그것의 무자비한 폭로로 향하여 자연주의 문학으로 하여금 부정의 문학을 만들었다.”는 문학사가 임화의 진단대로 3.1 혁명의 좌절이 ‘창조’(1919), ‘폐허’(1920)와 ‘장미촌’(1921), ‘백조’(1922) 등 일련의 모더니즘 계열의 자연주의(김동인, 염상섭)와 낭만주의적 상징주의(홍사용, 나도향, 박종화, 박영희, 이상화)의 출현이라는 형국을 낳은 조선적 국면과도 그대로 상통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1920년때 초기-인용자)의 시문학은 우리들 가운데의 어떤 비평가가 정당히 지적한 바와 같이 로맨티시즘의 황금기였다.
-임화,‘1933년의 조선문학의 제 경향과 전망’에서
그러나 하나의 과도기의 문학(임화)으로 - 그러니까‘백조’계열의 낭만주의에서 경향문학으로, 다시 카프의 계급문학으로 이행된 것은‘조선민족 생활의 거대한 내용으로 발전하는 계급적 분화, 노동자 계급의 성장은 1923~4년에 이르러 거대한 비약의 시기를 현출케 하여 문학적 생활 위에도 그 커다란 그림자를 던졌기 때문입니다’(동일서) - ‘흰 물결’이라는 뜻 그대로‘백조白潮’를 비롯한 낭만주의적 상징주의는 다만 좌절만이 아니라는데 그 깊은 뜻이 있고, 한편 슬픔과 좌절이라는 깊은 경험에서 오히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한 데 또한 그리하여 시적 풍요를 낳는데‘혁혁하게’기여한 것을 우리는 한때의 임화가 그토록 좋아한 바로 저 보들레에르와 랭보, 그리고 베를렌느에게서 보는 것이고, 우리는 어둠이 빛을 잉태하듯이‘혁토’와도 같이 헐벗고 궁핍한 조선적 현실에서 하나의 과도기로서 또한 새 시대의 반짝이는 흰 물결白潮로서의‘백조’에서 ‘카프KAPF’로 나아간 상징적 민족시인 이상화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징주의 시인들은 또 하나의 꺼질 줄 모르는 문학적 이상으로서의 낭만주의자들로서 정치적 좌절과 심리적 파열 속에서 시대 현실에 대한 거부심리를 진실하게 표현하되 특정한 함의를 지닌 정치적 무의식의 언어로 거기 깊은 뜻을 쟁여 놓았던 상징계의 비밀결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 하나의 낭만적 이상으로 이상화의‘나의 침실’이 ‘부활의 동굴’이 되었던 것이 그것이고, ‘빼앗긴 들’이 ‘해방 공간’을 상징하게 된 것이 또한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이상화의 친구인 임화에게 닿아서는 조선의 불령선인들을 보호하는 은신처로서의 ‘골목’(‘네거리의 순이’)이 되었던 것이고, 그 빼앗길 수 없는 들이자 조선 민중의 혼으로서의 ‘종로 네거리’와 ‘순이’(‘네거리의 순이’, ‘다시 네거리에서’)가 또한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에서의 ‘나는 식민지의 사나이’라는 청년의 민족적 자의식은 특정한 함의를 지닌 상징으로‘독립된 나라의 청년’을 암시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가편인‘우리 오빠와 화로’에서‘천정을 향하여 기어 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 - 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와‘화로는 깨어져도 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라고 뇌이는 강철 같은 가슴을 지닌 화자의 정념 속에서 나 또한 하나의 순수한 독자로서 김팔봉처럼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운 그 무엇을 느끼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의 시가 관념 과잉에 빠지지 않고 그 풍요한 함의를 넘어 시적 상징으로서의 메타포를 지닌 비밀결사로서 민중의 절대적 사랑과 지지를 받은 조선의 저항시가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대체 임화, 그는 기실其實 조선 민중의 정령nymph이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여기, 민족주의 시인 이상화와 계급주의 시인 임화의 만남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일제 식민지 시대의 계급문학 운동은 보다 넓은 의미의 저항적인 민족문학 운동이라는 범주 안에서 검토하지 않으먼 안 되는 것으로, 계급문학 운동은 식민지 시대에 이루어진 넓은 의미의 민족문학 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 프로시의 시적 성취를 뛰어넘은 임화 프로시의 성취는 저 드너른 장강처럼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국내외의 전통적 자산과 문화적 조류를 대승적으로 수용, 자기화한 풍요한 민족문학 유산으로, 그것은 또한 ‘세계성worldhood’을 지닌 한국 저항시의 계보적 기원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것입니다. 대체‘관념 과잉의 미숙한 조잡’은 무엇이고,‘일본좌파문학의 어설픈 답습’은 또한 무엇인지, 이 어찌 악의적인 마음의 발현이 아닌지, 우리는 임화의 사례를 통해 하나의 극장의 우상으로서의 음모가 지금도 여전히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일상화된 악마적 현실을 보고 있지 않은지...
나는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참고> 늘샘 김상천은 형태소에 기초한 근대 표준 어법이 부르주아 중심의 획일적인 언어 표현 양식이자 문화다양성을 해치는 비민주적인 잔재로 규정해 현실음을 중시하는 대중서사, 대중평자시대를 역설하는 문예비평가입니다.
글 가운데 하면(->하먼), 겠(->것), 못(-> 모), 어떻게(->어티케)로 표현하오니 참고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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