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 공공성을 높이는 방식이 상생하는 길
의료대란이 파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총선 2개월을 앞두고 갑자기 윤석열 정권은 의대 증원 2,000명을 내질렀습니다. 다분히 총선용 호객행위였습니다. 최근 국회 상임위 국정 질의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스스로 ‘2,000명은 근거 없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러함에도 국민이 지지하는 유일한 정책이다 보니 총선 패배 후에도 윤석열 정권은 국민의 불편과 환자들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통행입니다. 내년 입시에서 의대 정원을 1,509명 늘린다고 확정했습니다.
의사를 길러내는 의과대학 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의학교육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성토합니다. 윤석열 정권은 해부 실습용 시신, 일명 카데바가 부족하면 수입해 오겠다고 합니다. 현재 해부 실습 당시 카데바 최대 인원이 7~8명입니다. 그런데 내년엔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현재 의과대학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지 않고 있기에 대부분 유급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년에 신입생 4,500명에다 올해 유급된 의대생 3,000명을 더하면 수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강 대 강 대치 국면은 바뀔 줄 모릅니다.
의사협회는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제대로 논의하자고 합니다.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의대 증원을 하되 과학적 근거를 갖고 논의하자고 합니다.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은 얼마나 의사가 더 필요한지 과학적으로 수계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식 기구를 발족해서 결정하자고 합니다. 문제는 윤석열 정권이 갈등 조정자로서 역할을 포기한 상태라는 데 있습니다. 전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방치된 형국입니다. 국민의 고통은 나몰라라 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면서 공권력을 동원해 의사들을 범죄시하며 겁박하는 데 망설임이 없습니다. 의사들 자존감을 있는 대로 짓밟고 대화의 상대로 생각지도 않습니다.
의사, 간호사, 한의사 또한 각각 직역마다 직역 이기주의에 갇혀 의료인으로서 연대와 협력은커녕 대한민국의 의료 발전을 위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대로 가다간 연말에 의료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예견합니다. 의대교수들이 보기에 의대생들이나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미 의료대란은 의료대란 수준을 넘어서서 의료파국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10년이 아닌, 그 이상이 될 거라 분노합니다.
해법은 간단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의료서비스를 시장의 원리에 내맡긴 채, 이해관계에 따라 아웅다웅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애용하는 자유시장 원리에 내맡기면 시장의 원리 속성 상 의료 불균등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계층 간 의료격차가 지금보다 훨씬 심화해 같은 공동체 내에서도 의료천국-의료지옥이 연출될 수 있습니다. 시장의 원리와 자유주의를 맹신하면 19세기 야만 사회를 재현하게 됩니다. 그런 사회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의료대란은 시장의 원리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의료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가 의료, 주거, 교육 모든 면에서 공공성이 너무 취약한 사회라는 데 있습니다. 시장의 원리를 맹신한 사회에선 도덕성 상실을 넘어 불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의료 과소비 현상이나 과잉진료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이유입니다. 의료공공성이 취약하고 일상이 시장의 논리에 포획돼 있다 보니 해법으로 전혀 생각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건 의료권은 헌법에 명문화된 사회권적 기본권이자 인권의 핵심입니다. 아플 땐 피부 색깔이나 국적, 재산의 유무를 떠나서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시장의 원리에 방치한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정부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시장의 원리를 맹신한 상태에서 의료수가를 일부 조정하거나 현실화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매우 근시안적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시장의 원리에 푹 젖어 있고 그 결과 필수 의료 분야와 지방 의료가 고사 직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료대란을 해결하는 방식은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공공의료인(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을 증원하는 방식으로 의대 증원을 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럽은 의사가 거의 준공무원 수준입니다. 그렇기에 의대 증원 발표에 의사단체가 쌍수로 환영합니다. 유럽 의사들이 도덕성이 뛰어나고 대한민국 의사들 의료윤리가 바닥이어서 생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의사들 가운데엔 소명의식으로 혼신을 다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의료 대란이 시작하는 2월 시점에 전공의들이 대학 병원을 빠져나가고 그 공백을 의대교수들과 간호사들이 메웠습니다. 그 와중에 부산대 의대교수 한 분과 서울대 의대 교수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넉 달이 지난 지금 대학병원 휴진을 이해할 만도 합니다. 왜냐하면 과로사는 시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원리가 90% 의료계를 지배하는 현실에서 대한민국 의사들 대부분은 자영업자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최소 30명 이상 환자를 진료해야 손익 분기점에 이르고 60~70명 환자들을 진료하면 나름 수익을 창출합니다. 시장의 원리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의사들이 영리를 추구하는 이유입니다. 3분 진료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철저히 시장의 원리에 내맡긴 상태가 대한민국 의료서비스 산업의 부끄러운 현주소입니다.
따라서 뇌심혈관내과, 뇌전증 중증환자를 비롯해 기피 의료 분야인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중증 외상, 응급의학, 신경외과, 흉부외과를 중심으로 공공의사를 배출하면 됩니다. OECD 평균치(55.1%)는커녕 프랑스 공공병원 비율의 절반인 30%만 공공병원을 늘려도 K-의료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한방과 양방이 거버넌스를 구축해 협진한다면 K-의료는 방탄소년단처럼 전 세계에 K- 의료문화를 널리 확산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인류애를 실천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공의사 비율은 2013년 11.4%에서 2022년 10.2%로 갈수록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서 거꾸로 시장의 논리가 강화돼 온 탓입니다.
국립의료원이나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의 경우, 현재 5.7% 수준을 프랑스 절반(30%)만큼만 늘려도 삶의 질이 훨씬 나아질 것입니다. 참고로 2022년 말 현재 OECD 평균치는 공공병원(55.1%), 공공병상수(72%)이고 대한민국은 공공병원(5.2%), 공공병상수(8.8%), 공공의사(10.2%)입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경남지사 시절, 진주의료원을 전격 해체했습니다. 적자구조라서 없애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매우 천박한 정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래 공기업이나 공공의료시설은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설립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접근 방식이 자유시장 논리로 매우 위험하다 못해 불순한 행정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갑시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방 의사, 공공의사 중심으로 매년 4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했을 때 의사단체는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의대생, 전공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생각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의사 증원이 필요 없다 해도 그것은 의료 시장의 영역에서 그러할 겁니다. 의료공공성의 영역에선 의사를 증원해야 마땅합니다.
생각건대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그래서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강력한 시장의 원리를 폐기하고 의료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의료공공성을 높이지 않은 채, 낙수효과 운위하면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은 얄팍한 속임수이자 대국민 사기극일 뿐입니다. 윤석열 정권은 지금 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왜 무도한지, 왜 무지한지, 왜 무법한지, 그 민낯이 드러나는 중입니다. 굳이 채해병 사건이 아니더라도 윤석열 정권이 지속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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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주취, 알콜성치매 운전자가 대한민국 호를 더이상 운전하지 못하도록 특단의 조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래의 싸이트에 들어가 시면 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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