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식 고취와 거의 무관한 ‘한국사’ 수능시험

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기출문제 20번 문항(출처 : 교육과정평가원)
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기출문제 20번 문항(출처 : 교육과정평가원)

4년 전 대학수학능력(약칭 수능)시험 20번 문항이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 시절, 국민의 힘 국회의원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중학생도 안 틀릴 문제”(조선일보), “초등학생도 풀 수 있는 문제, 보너스 문제”(중앙일보), “공부 안 해도 풀 수 있는 문제, 정부 맞춤형 문제, 너무 쉬워... 한글 읽기 테스트 문제”(매일경제), “황당 수능 한국사 20번 문제”(경남도민일보), “역대 모든 한국사 문제 중 가장 쉬웠을 문제”(경향신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응시하는 초등학생이 적지 않은데, 그것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릴 정도의 문제”(오마이뉴스), “쉬운 걸 넘어 부끄러운 수준”(이데일리) 등 언론이 일제히 문제 삼았습니다.

2024학년도 수능 <한국사> 기출문제(출처 : 교육과정평가원)
2024학년도 수능 <한국사> 기출문제(출처 : 교육과정평가원)

그런데 그러한 출제 경향은 이후에도, 그리고 4년이 돼가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7월 11일 전국에서 시행한 2024학년도 고3 전국학력평가 <한국사> 모의평가 문제(출처 : 인천시교육청)  수능 문제나 모평 문제처럼 5지 선다형 문제로 출제하기보다 <박종철 열사와 6월 민주항쟁의 연관성에 대해  논하고  6월 민주항쟁이 지니는 역사상 의의에 대해 서술하시오>라고 논술형으로 출제한다면 역사의식을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문제가 될 수 있겠다.
7월 11일 전국에서 시행한 2024학년도 고3 전국학력평가 <한국사> 모의평가 문제(출처 : 인천시교육청)  수능 문제나 모평 문제처럼 5지 선다형 문제로 출제하기보다 <박종철 열사와 6월 민주항쟁의 연관성에 대해  논하고  6월 민주항쟁이 지니는 역사상 의의에 대해 서술하시오>라고 논술형으로 출제한다면 역사의식을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문제가 될 수 있겠다.

단순 암기하면 풀 수 있는 문제 중심으로 출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명박 정권 당시, 정권 탄생 1등 공신인 뉴라이트 세력들은 집권하자마자 기존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집요하게 헐뜯었습니다. 특히 2008년 금성출판사 『한국사』 교과서가 30년대 항일무장투쟁인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을 서술한 걸 문제 삼았습니다. 당시 『한국근현대사』 과목은 수능 사회탐구 11개 과목 가운데 세 번째 선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과목입니다.

뉴라이트 세력들은 자신들이 2005년부터 기획한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2008년 출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2009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2013학년도 수능시험부터 정규 교과목인 『한국근현대사』 과목을 단칼에 폐지해 버렸습니다. 대신 『한국사』 교과서 내 근현대사 비중을 높이겠다고 큰소리쳤지요. 제가 볼 땐 모두 속임수 같습니다.

기존 11개 사회탐구 과목 가운데 『국사』를 선택하는 비율이 일곱 번째로 매우 낮았는데 수험생들이 근현대사가 통합된 『한국사』를 선택할 리 만무했습니다. 실제로 서울대를 입학하려는 수험생의 경우, 서울대가 수능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다 보니 등급이 낮아질 것은 자명한 이치라 학생들 다수는 수능 『한국사』를 외면했습니다.

2015년 10월 24일 박근혜 정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투쟁 집회(출처 : 하성환)
2015년 10월 24일 박근혜 정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투쟁 집회(출처 : 하성환)
2015년 11월 17일 여의도고등학교 양희주 선생님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반대 피켓 시위하는 장면(출처 : 하성환)
2015년 11월 17일 여의도고등학교 양희주 선생님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반대 피켓 시위하는 장면(출처 : 하성환)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 들어서서 북서유럽처럼 자유발행제로 전진하기보다 역주행했습니다. 2014년 박근혜 정권은 검정제 『한국사』 교과서조차 “학생들에게 부정적 역사관을 심어준다”며 교과서 검정 체제를 ‘국정제’로 바꾸려고 난리를 부렸습니다. 일선 교사들의 거센 저항에도 박근혜 정권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재춘, 이명희, 권희영, 이배용, 이인호 등 관변학자(?)들을 총동원해 국정제를 옹호했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황교안, 김을동, 원유철, 황우여, 강은희, 조전혁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기존 『한국사』 교과서가 ‘이념상 좌편향’이거나 ‘전교조 교과서’라는 등 선동을 일삼았습니다. 다행히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집권 3일째 되는 2017년 5월 12일, 『한국사』 국정제정책을 전면 폐기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검정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건강한 역사의식을 평가해야 할 수능 『한국사』 문제가 지극히 단편 지식을 묻는 평이한 수준으로 출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인문학 논술 문제(출처 : 하성환)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잘 쓸 수는 없다. 그만큼 독서와 토론이 중요한 이유이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인문학 논술 문제(출처 : 하성환)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잘 쓸 수는 없다. 그만큼 독서와 토론이 중요한 이유이다.

프랑스처럼 교과서 자유발행제 체제는 아니더라도 논술형 문제로 출제한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좀 더 교양 수준을 높이는 역사서를 다양하게 읽고 생각을 나눌 것입니다. 북서유럽 국가에서 독서와 토론 수업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절대 평가 논술형을 취한  외국 사례(출처 : 경기도교육연구원)  대한민국 수능 <한국사> 과목은 절대평가이다. 50점 만점에 40점 이상이면 1등급이다. 문제는 단순 지식을 묻는 쉬운 문항임에도  수험생 절반 이상이 50점 만점에 20점도 받질 못한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역사교육, 역사의식은커녕 역사에 대한 무지를 조장하고 방치한 상태다.  
절대 평가 논술형을 취한  외국 사례(출처 : 경기도교육연구원)  대한민국 수능 <한국사> 과목은 절대평가이다. 50점 만점에 40점 이상이면 1등급이다. 문제는 단순 지식을 묻는 쉬운 문항임에도  수험생 절반 이상이 50점 만점에 20점도 받질 못한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역사교육, 역사의식은커녕 역사에 대한 무지를 조장하고 방치한 상태다.  

선다형에서 논술형으로 평가 방식을 바꾸면 교수-학습 방식이 바뀝니다. 이것은 혁신학교에서 이미 검증된 사실입니다. 프로젝트 수업이 일상화된 혁신학교에서 아이들이 좀 더 책을 많이 읽고 모둠별 토론을 즐겨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가 복지 국가로서 토대만 확고히 구축한다면 평가방식의 변화는 아이들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변화된 평가 방식과 독서와 토론이 일상화된 학교 모습에서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 바로 자율성이 쑥쑥 자라납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존중하는 마음, 바로 시민성(citizenship)이 싹트고 성장합니다. 무엇보다 진리를 추구하는 지적 호기심이 내면에서 모락모락 피어나지요.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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