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원주민이 살고 있을 때 영국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왔다. 원주민 입장에서 보면 침입자들이었지만 원주민은 내치지 않았다. 이들이 생명을 부지할 수 있도록 음식을 나눠주고, 모든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면서 함께 살았다. 그렇게 이민에 성공하자 유럽계 백인들이 대량 밀려들어 왔고 그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자신들이 주인인 양 행세하기 시작했다. 원주민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고, 원주민을 학살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과 같은 이민자가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치고, 각종 '이민자 추방법'을 만들어 이민자를 내쫓고 있다. 자신들이 바로 이민자의 후손이었음을 잊었음에 틀림없다. 이스라엘 유대인이 나치에 학살당한 기억을 잊어버리고, 가자지구에서 인종 학살자가 되기를 자청한 것처럼....

<'Donde Voy'>

미국 국경을 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의 고달픔과 막막함을 담은 노래가 있다. 'Donde Voy'다.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가 부른 곡이 널리 알려졌지만, 이 노래를 부른 원곡자는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다.

그는 1955년 텍사스주 남부, 멕시코 가까운 샌안토니오 시에서 멕시코 이민자 가정의 1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멕시코 전통 음악과 라틴 팝을 즐겨 들었다. 고교 졸업 후 라디오 방송사에서 부른 노래가 차트에 오르고, 1979년 포크송 창작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컨트리 가수의 백업 보컬로 활동하다가, 1989년 데뷔 앨범 <My Homeland>에 수록된 'Donde Voy'가 인기를 끌면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노호사가 'Donde Voy'를 만든 건 1988년이다. 1987년 미국이 제정한 '이민 개혁 및 통제법'으로 멕시코 이민자의 불법 체류 규제가 심해졌다. 부모님이 멕시코 이민자였다. 아버지는 합법적 이민자였고, 어머니는 불법으로 건너왔다가, 결혼해서 시민권자가 되었다. 부모님 지인 중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자들이 많았다. 부모님은 이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 이민자의 어려움을 봤고, 그 영향을 받아 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불법 이민자의 사면을 단행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스페인어로 부르는 가사는 이렇다. 

'Donde Voy'(어디로 가야 하나) 

Madrugada Me Ve Corriendo  / 희미한 새벽녘, 나는 달리고 있네 
Bajo Cielo Que Empieza Color / 태양 빛으로 물드는 하늘 아래
No Me Salgas Sol A Nombrar Me / 태양아, 부디 내 모습을 비추지 말렴
A La Fuerza De 'La Migracion' / 이민국에 신고되지 않도록

Un Dolor Que Siento En El Pecho  / 내 가슴에 느껴지는 이 고통은 
Es Mi Alma Que Llere De Amor / 쓰라린 사랑의 상처
Pienso En Ti Y Tus Brazos Que Esperan / 당신 품 안을 생각하면서 
Tus Besos Y Tu Passion / 당신의 키스와 애정을 그리워하네

Donde Voy, Donde Voy /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Esperanza Es Mi Destinacion / 희망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네 
Solo Estoy, Solo Estoy / 나 홀로 외로이, 나 홀로 외로이 
Por El Monte Profugo Me Voy /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Dias Semanas Y Meces  / 하루 이틀, 날들은 지나가는데
Pasa Muy Lejos De Ti / 점점 당신도 나에게 멀어져 가네
Muy Pronto Te Llega Un Dinero / 곧 당신은 돈을 얼마 받게 될 거야 
Yo Te Quiero Tener Junto A Mi / 그 돈으로 내 곁에 외주면 좋겠는데

El Trabajo Me Llena Las Horas / 매일 많은 일로 시간에 쫓기면서도
Tu Risa No Puedo Olividar / 당신의 미소를 떠올리곤 하지 
Vivir Sin Tu Amor No Es Vida / 당신 사랑 없이 사는 삶은 의미가 없고 
Vivir De Profugo Es Igual / 도망자처럼 사는 것도 의미가 없네

Donde Voy, Donde Voy /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Esperanza Es Mi Destinacion / 희망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네 
Solo Estoy, Solo Estoy / 나 홀로 외로이, 나 홀로 외로이 
Por El Monte Profugo Me Voy /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Donde Voy, Donde Voy /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Esperanza Es Mi Destinacion / 희망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네 
Solo Estoy, Solo Estoy / 나 홀로 외로이, 나 홀로 외로이 
Por El Monte Profugo Me Voy /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Donde Voy'의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희망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네. 나 홀로 외로이, 나 홀로 외로이...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가사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런 가사에 이노호사의 진정이 담긴 애틋하고 애처로운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 곡이 되었다. 멕시코 이민자라면 눈물을 훔치진 않고선 들을 수 없는 연민 가득한 노래다.

<멕시코 이민의 고난 역사>

멕시코인들은 미국이 존재하기 수 세기 전부터 현 미국 남부와 서부 지역에 살았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1848년부터 멕시코인의 미국 이민이 시작되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두 나라의 심각한 경제적 격차, 쉽게 얻을 수 있는 취업 기회로 인해 멕시코 이민자들은 뚫린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왔다. 단속도 느슨해서 미정부는 사업주가 값싼 노동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눈감아줬다.

지난 170년 동안 멕시코 이민자들은 주로 농업, 목축업, 철도 건설, 광업 등에서 일했다.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이들은 도시에서 건설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했다. 오랫 동안 멕시코인은 미국 저임금 노동시장의 주요 원동력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백인 노동자와 중산층 미국인들은 세계화로 미국의 탈산업화가 가속되면서 임금이 하락하고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자, 자신들의 불행을 이민자 탓으로 돌렸다. 이에 히스패닉계의 인구 증가로 인한 인종 변화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 반이민 정서가 확산했다. 

멕시코인의 이민에 대한 규제는 역사가 길다. 1885년 '미국 외국인 계약법'으로 시작해서,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된 후 1930~1942년에는 50만-2백만명의 멕시코인들을 추방했다. 이 때 미국 시민권자도, 어린이도 가리지 않고 멕시코인이라면 추방했다. 인력수요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1987년 제정된 '이민 개혁 및 통제법'은 이민부 예산 90%를 국경 검문에 쏟아부으면서 국경 단속을 강화했다. 1996년 '불법 이민 개혁 및 이민자 책임법'은 국경 순찰대가 국경에 도착하는 모든 사람을 사법 심사 없이 입국, 구금,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난민과 망명 신청자에게도 적용했다. 단순 경범죄와 비폭력 범죄도 가중 중범죄로 재정의하여 자동으로 강제 추방했다. 불법 이민자는 사회 보장 혜택과 연방 학생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이 금지되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2002년 '강화된 국경 보안 및 비자 입국 개혁법'이 제정되면서 불법 이민과 국가 안보가 결합했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는 소탕 작전 중에 체포된 불법 멕시코 이민자들은 지문 채취, 법정 제재 또는 출입국 기록 없이 국경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2005년 '국경 보호, 반테러 및 불법 이민 통제법'이 제정되어 고용 확인 요건은 보다 엄격해졌고, 허가 없는 미국 입국에 처벌을 부과하고, 망명 및 테러리스트 추방을 강화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카운티를 가로지르는 22km 길이의 국경 장벽 건설에 자금을 지원했다. 이 법은 서류 미비 이민자를 돕다가 적발된 사람, 물이나 음식을 제공하거나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을 범죄자로 취급했고, 음주 운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합법적 이민자도 추방했다. 모든 무단 입국 및 재입국을 장기 구금 대상이 되는 가중 중범죄로 분류했다. 

이 법으로 2001년~2008년까지 부시 대통령은 외국인 1,030만 명을 추방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9년~2016년에도 외국인 520만 명을 추방했다.

이 법으로 라틴계 이민 사회는 분노했다. '이민자 권리 운동'이 탄생했다. 2006년 4월 10일을 "이민자 사회 정의를 위한 전국 행동의 날"을 정하고 60개 이상 도시에서 대규모 행진과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어떤 인간도 불법이 아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9·11  납치범들은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다", "우리가 추방된다면 돌아올 것이다."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이민자 권리 운동'으로 인해 이민 개혁은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2010년 이들의 요구를 담은  ‘드림액트’(Dream Act·이민개혁법안)가 연방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 통과를 앞두고 있었지만,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로 좌절됐다. 민주당 당원들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 어려서 미국에 들어온 젊은이의 합법화, 그들 부모에 대한 사면을 주장했지만, 공화당원들은 사면 요구에 대해 (反)이민 성향을 드러냈다.

그 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청소년 추방 유예 조치(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DACA)'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이들은 임시 체류 신분을 얻었다. 16세 생일 이전과 2007년 6월 이전에 미국에 입국한 사람들에게 2년 취업을 허가(갱신 가능)했고, 추방을 면제했다. 

트럼프는 2015년 6월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연설에서 멕시코 이민자들을 겨냥해 "멕시코가 자국민을 보낼 때, 그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보내고 있고, 그 문제들은 우리와 함께 가고 있다. 그들은 마약을 가져오고 있다. 그들은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강간범이다. 몇몇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실제로 2017년 1월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청소년 추방 유예 조치'(DACA)를 종료하라고 명령했다. 캘리포니아 와 다른 몇 주는 소송을 제기해서 DACA 폐지를 금지했지만, 대부분 주에서는 DACA 종료에 따른 임시 취업 허가 취소와 추방이 계속되고 있다.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인구 중 멕시코계 인구는 10.8%다. 그중 뉴멕시코, 텍사스, 캘리포니아는 30%가 넘고 애리조나와 네바다는 20%가 넘는다. 네바다를 제외하고 모두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국경에서 매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입국하려다 죽었다. 2022년에만 최소 750명이 국경을 넘다 죽었다. 주로 열사병, 탈수, 고열, 익사, 장벽 추락사, 교통사고, 과잉 단속 등으로 사망했다. 빈곤, 갱단 폭력, 열악한 통치 등을 피해 미국 국경을 넘는 사람들.... 보다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자 했던 그들의 희망은 장벽에 막혔고, 죽음이 막았다.

바이든도 얼마 전 난민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멕시코 국경 잠정 폐쇄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 대선 전 여론을 의식한 처사다. 올 11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반인권적 이민 정책은 강화될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대규모 추방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니 말이다. 만약 해리스가 된다면? 그는 자메이카와 인도 이민자의 딸이다. 아마도 뜨거운 감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Donde voy'를 한 번 더 소개한다. 2017년 박기영이 부른 곡이다. 수정같이 청아하고, 따뜻한 감성이 묻어있는 목소리가 애절한 가사와 참 잘 어울린다.

 

참고 사이트 : 위키백과
참고사이트 ": : https://oxfordre.com/americanhistory/display/10.1093/acrefore/9780199329175.001.0001/acrefore-9780199329175-e-146

참고기사 : <한겨레> 멕시코 국경 잠정 폐쇄한 바이든…'반이민 정서' 올라타기
참고 기사 : <한겨레21> “반이민 잡귀 물렀거라”
참고 기사 : <한겨레21> 미국이 뿌린 씨앗 국경 앞에 도착했다
참고 기사 : <연합 뉴스> 티시 이노호사 28년만에 내한 "이민자·난민 인권존중 필요하죠"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