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년 칼럼 ; 기우는 시대정신과 뒤바뀐 조국의 국기

2019년 군함도 현장. [박정우]
2019년 군함도 현장. [박정우]

역사는 현실의 근간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뿌리는 지금의 기둥이자 가지, 나아가 열매로 이어진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된다면 자연스레 썩은 과실이 맺힐 테다. 당연히 문드러진 기둥은 언젠가 쓰러지기 마련이다. 아픈 역사를 두고 진실을 수호하지 못하는 경우는 잊히거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수정하는 상황이겠다. 아쉽게도 우리는 현재 두 경우의 수와 모두 맞서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2015년 군함도(하시마섬) 이후 9년 만에 굴욕은 되풀이됐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실수도 반복됐다. 당시 일본은 노동의 ‘강제성’에 관해 명확히 게재하겠다는 약속을 토대로 등재를 이뤄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세계유산 등재 투표권을 얻으면서 이번 사도광산 등재에 앞서 피해국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고 반영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강제동원’이라는 내용은 사도광산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의 협상 및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일본 언론은 한일 정부가 강제동원 표현을 쓰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국회는 정부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정부(외교부)는 등재 전 “사도광산, 우리 정부 입장 미반영 시 등재 반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군함도 뒤통수 이후 ‘학습’ 없었나

2015년, 군함도가 등재될 당시에도 사토 구니 전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한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한 것을 알리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등재 이후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간 사실이 없다”라며 입장을 뒤집었다. 이번 사도광산은 아예 강제성에 대한 언급조차 없는 실정이다. 지난 7월27일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결정과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 것”이라며 “한반도 출신을 포함한 모든 사도광산의 노동자를 추모한다”라고 말했다. <일요서울>

여기서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이라는 의미를 부정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임재성 변호사는 한겨레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역사를 포기했다”라며 “2015년 군함도 때보다 훨씬 후퇴해, 사실상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일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얻어냈다’라고 말하지만, 거짓말에 가깝다. 외교를 포기해놓고, 외교를 했다는 거짓말”이라고 일갈했다. 

필자가 ‘그 섬’에서 굴종했던 것들

2019년경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식을 치르기 위해 군함도를 방문한 적 있다. 당시 현장은 배를 예매하는 안내소부터 항구, 선박, 섬 내부, 해설까지 전부 왜곡의 온상이었다. 수많은 군함도에 대한 예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일본인 해설사의 “군함도에서는 고된 노동이 이뤄졌지만, 임금이 높아 조선인들이 앞다퉈 오고 싶어 했다”라는 설명이었다.

항구에서 출발해 군함도 땅을 밟는 순간 현장 관리자들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분리해 경로와 해설을 달리했다. 이어 추도식도 제지당해 항구에서 술잔을 올렸었다. 패기 넘치던 20대 대학생은 무기력한 현실 앞에 큰 좌절감을 맛봤다. 결국, 추도문은 읽지 않았다. 차마 희생자분들을 위로한다는 말을 뱉을 수 없었다. 최소한의 양심이자 염치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 관련 입장문’을 통해 사도광산 사태에 대해 정부 책임을 물었다. 우 의장은 “불법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의 피해국인 ‘대한민국 정부’로서 합당한 대응을 촉구한 국회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할 뿐만 아니라 국민적 상식과 보편적 역사 인식에서 크게 벗어났고,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상식을 뒤엎는 발언들이 청문회장에서 나오곤 한다. ‘상식’이라는 말이 무서워지는 요즘 어쩌면 상식과 몰상식 중 권력이 기운 곳이 후자라면, 진실도 고개를 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위 1% 권력이 일제강점기 때 우리의 국적은 일본이었다고 한다. 서서히 99%의 정의가 오류가 되고 있다. 역사가 수정될 때 나무는 쓰러진다. 아쉽게도 여유로움은 갈아탈 나무가 있는 몰염치들의 편인 듯하다.

편집 : 심창식 편집장, 양성숙 편집위원

박정우 주주  justiceloveagain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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