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C 서구사회 여성은 남편의 법적 소유물이자 장식품
고대 아테네 사회에서 여성들은 감금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성들은 남자가 갈 수 없는 높은 층이나 집과 떨어진 뒤채에 머물렀으며 여자 노예를 대동하지 않고서는 외출할 수도 없었고 집에서는 말 그대로 감시하에 놓여있었다.(주1 민주주의가 발달하였다고 주장하는 유럽과 미국에서조차 19c 말까지 여성은 남편의 법적 소유물이자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19c 중엽 미국에선 남편이 아내를 합법적으로 구타할 수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서양 사회에선 적어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이자 '이성이 미약한 존재'로 규정됐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장 자크 루소 등 서양 철학자들 절대다수가 그러한 철학적 · 생물학적 믿음을 자신의 신념으로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주2 프랑스 혁명기 가장 진보적인 자코뱅파 사상가들조차도 여성에 대한 편견은 매우 고약했다. 엄격하게 이야기하자면 서양 사회에서 20c 전까지 여성은 적어도 인간이 아닌 셈이었다.
실제로 여러 세기 동안 여성들은 남성들과 정치권력을 공유하기에는 너무나 '비이성적인 존재'라고 간주하여 투표권 등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거부당해 왔다. 플라톤, 홉스, 로크, 루소, 쇼펜하우어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철학자들은 남녀 간의 자연적 차이를 강조했다.(주3
「프랑스 인권선언」(1789)에 등장하는'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조문에서 '인간'은 '남성'에 한정한다. 즉, 「프랑스 인권선언」은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프랑스 혁명기 당시엔 여성의 인권은 존재하질 않았다. '여성이 남성처럼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여성도 프랑스 국민의 대표로 의회 단상에 오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여권 운동가 구즈(O. Gouges)(주4 가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처형되던 시절이 바로 이성을 절대시하던 18c 프랑스대혁명 시기였다.
*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선구자 : 울스턴크래프트(M. Wollstonecraft)
따라서 페미니즘의 기원은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도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는 사상들과 행동들이 존재했지만 여성해방을 추구하는 사상이자 여성해방을 실천하고자 하는 운동으로서 페미니즘은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급진적인 민주주의 이념으로 등장했다(주5 고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이를 열렬히 지지했던 페미니즘의 선구자 울스턴크래프트의 등장도 바로 이 시기이다.
페미니즘(Feminism)이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로 바로 세워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규정하려는 사상적 경향과 여성주의 운동 일체를 일컫는다면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정치적 권리와 사회경제적 권리를 향상하기 위한 일체의 운동적 흐름과 남녀평등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의 1세대는 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교육 기회와 정치적 권리를 보장한다면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참여를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 Wollstonecraft)와 존 스튜어트 밀(J. S. Mill), 그리고 밀의 사상적 동반자이자 연인인 해리엇 테일러(H. Taylor)를 들 수 있다.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들에게 가장 원했던 것은 인간다움이었다. 그녀는 여성이 〞이성을 멀리하고 남편이 즐겁기를 원할 때마다 남편 귀에다 듣기 좋게 딸랑이를 울려대야 하는〝, 〞남편의 장난감, 그의 놀이개〝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시 말해서 여성은 다른 사람의 행복이나 완전함을 위한 〞단순한 수단〝 내지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은 '목적'이고 자결 능력 속에 그 위엄성이 들어 있는 합리적 행위자이다」(주6
울스턴크래프트는 아버지의 폭력성과 자신의 불행한 삶을 딛고 뒤늦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져 스스로 여성의 주체적 인간화를 위해 학교를 설립하지만 실패한다. 그러나 울스턴크래프트는 영국 아나키즘의 선구자 윌리엄 고드윈(W. Godwin)을 만나면서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교류하였고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열렬히 환호하며 『여성의 권리 옹호』(1792)라는 페미니즘의 선구적인 불후의 명작을 출간한다.
* 루소 : 열등한 이성을 지닌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하는 것은 자연법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콩도르세, 탈레랑을 비롯해 많은 지식인과 교류하며 논쟁하였던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의 여성관을 예리하게 비판하며 여성의 자각과 교육, 그리고 여성의 평등을 주장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루소의 교육소설『에밀』(1762)을 증오하면서 '열등한 이성을 지닌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하는 것이 자연법'이라고 강변한 루소의 여성관과 교육관을 비판한다. 여성에게는 인내심과 순종, 쾌활함, 유연성 같은 덕목들을 교육하고 남성들에게는 용기와 절제, 불굴의 정신, 정의 같은 덕목들을 가르쳐야 한다(주7 는 루소의 주장을 통렬히 논박한 것이다.
실제로 18c 진보적인 계몽사상가 루소는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른 본성을 지녔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본성에서 기원하는 여성의 역할을 '지적인 작업'이나 '공적 권리의 행사'가 아니라 '아이의 양육'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급진적인 자코뱅파 역시 여성을 정치 밖으로 끌어내 가족 안에 유폐시켰으며 시민성(市民性)을 남편과 아버지의 특권으로만 연관 지었을 뿐이다.(주8
1. 자유주의 페미니즘 : 남성과 동등한 교육 기회와 사회진출 요구
여성의 참정권 운동을 '시간 낭비'로 치부한 사상적 한계를 노출하긴 했지만,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이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시대에 당당히 여성의 인권을 주창하며 여성의 자각과 교육적 평등을 강조한 페미니즘의 선구자임이 분명하다.
또 다른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은 자신의 오랜 연인이자 아내가 된 해리엇 테일러로부터 사상적 영감을 받으면서 여성의 인권 신장과 정치적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영국 사회에서 19c 100년 동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다. 그는 아내 해리엇 테일러와의 오랜 교분 속에서 아내가 프랑스 여행 도중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해리엇 테일러!, 칼라일보다 더 훌륭한 시인이요, 나보다 더 뛰어난 사상가이자 내 생애의 영광이며 으뜸가는 축복, 당신은 나에게 하나의 종교이고 가치의 근본이며 내 생활을 이끌어가는 표준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존 스튜어트 밀은 아내 해리엇 테일러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저술한『여성의 종속』(1869)에서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교육 기회와 사회적 진출 그리고 여성들이 정치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영국 사회가 변화할 것을 촉구한다.
「여성에게 보다 완벽한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 인간 사회의 여러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크게 유익한 여성의 위대한 지적 능력을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성의 능력도 그에 비례해서 향상될 것이다. (중략) 이렇게 여성의 교육 수준을 남성과 똑같은 수준으로 올리고 평등한 참여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여성의 활동 범위가 대폭 늘어날 것이다」(주9
참고로 1530년-1730년까지 영국 남성의 문맹률은 0%(성직자)-85%(노동자)였고 여성 문맹률은 89%였다. 1630년-1760년까지 스코틀랜드 남성 문맹률은 28%인 반면, 여성 문맹률은 80%에 이르렀다. 러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혁명 전 짜르(Czar)체제에서 문맹률은 22%였는데 1917년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정부의 최우선 정책으로 문맹퇴치운동 결과 1926년 24-25세 남성 문맹률은 4.3%로, 19세 여성 문맹률은 11.8%로 크게 낮아졌다.(주10
실제로 밀(J. S. Mill)은 여성의 참정권을 공약으로 내걸고 스스로 하원의원이 되어 의정활동을 펼치는 것에서 나아가'전국여성 참정권 단체연합'(1867)을 결성해 적극적으로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밀의 노력은 19c 말 - 20c 초 여성운동가 에밀린 팽크허스트의 '여성 사회정치동맹'(1903)으로 이어져 여성참정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1918년 유럽 사회에서 선구적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다. 물론 30세 이상, 유산계급 여성의 경우인데 10년 뒤 1928년에는 영국의 모든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게 되며 이는 다른 나라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교육기회와 사회적 진출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임을 선언한 것으로 남성의 영역에 여성을 끌어들임으로써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이나 부속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 파악하려는 페미니즘의 개척기 선구적 이론이다. 즉, 여성을 남성의 재산, 내지 장식품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규정하며 남성과 동등한 교육기회와 자아실현을 요구한 여성주의 운동이다.
2. 급진적 페미니즘 : 60년대 뉴레프트 운동의 영향으로 출현
1960년대 말에 등장한 급진적 페미니스트(Radical Feminist)들의 시각으로 볼 때 페미니즘 운동의 시작은 당연 185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출현한 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이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1세대 페미니즘'이라 명명했고 급진적인 자신들의 페미니즘을 '2세대 페미니즘'으로 불렀다.(주11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은 1960년대 뉴레프트 운동, 즉, 신좌파 운동의 여파로 미국 뉴욕과 보스턴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억압당하는 계급으로서 여성의 존재를 자각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1967년 - 1971년 사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데 국제적인 여성운동기구인'레드스타킹(Redstockings)' 등 급진적인 여성해방운동 단체를 결성하여 '레드스타킹 선언(Red Stocking Declaration)'(1969)을 발표한다. 이 선언에는 억압의 근원이 남성임을 선언하고 여성을 분리시키는 어떠한 인종적 · 경제적 · 교육적 특권도 반대한다는 억압받는 여성의 전면적 해방을 선언하고 있다. 나아가 억압의 주체인 남성지배적인 사회체제의 변혁을 위해 즉각적인 정치행동을 전개하는 것을 주요활동으로 삼고 있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역사상 최초의 피지배 집단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여성억압은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보편적 현상으로 인식하며 여성 억압은 계급사회 철폐와 같은 다른 사회변화들에 의해서도 제거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뿌리가 깊어 근절하기 가장 어려운 억압형태임을 고백한다. 또한 여성 억압은 피해자에게 가장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나 압제자와 피해자 모두 성차별적 편견으로 인해서 종종 그 고통이 인식되지 못한 채 진행된다고 주장한다.(주12
따라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단순히 사회제도 및 법규범의 개혁으로 여성의 억압을 해체할 수는 없다고 보고 근본적인 사회체제의 변혁을 요구한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임신 · 출산과 관련된 여성의 재생산 능력이 불평등 사회 속에서 어떻게 여성을 통제하고 있는가를 분석하였고 더불어 여성의 우월적 특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주13 대표적인 급진적 페미니스트로는 '레드 스타킹(Redstockings)' 발기인이자 『성의 변증법』(1970)을 저술한 파이어스톤(S. Firestone)과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힘의 관계로 규정하여 성(性)을 지극히 정치적인 성격으로 해석한『성의 정치학』(1970)을 저술한 케이트 밀렛(K. Millet)을 들 수 있다.
* 급진적 페미니즘 :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 !!!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진정한 여성해방은 여성의 생물학적 성(性)으로서 성(性) 정체성이 여성 억압의 중요한 원인이므로 출산과 양육 등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추구한다. 그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해 여성의 출산과 양육을 여성 스스로 통제함으로써 여성해방을 추구한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오늘날 대학가에 '여성학'의 등장을 가져온 운동으로서 이후 급진적 페미니즘의 한 갈래인 문화적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으로 분화 계승된다.
3. 문화적 페미니즘 : 여성학 연구 발달에 기여
문화적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性)으로서 여성의 특성을 긍정적인 자원으로 주목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특성으로 간주하여 온 자연 친화성과 연민, 온화함을 '여성다움'이라는 남성주의 시각으로 규정하기보다 여성의 특성과 고유성은 남성에 비해 우월한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획득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기존 사회제도에 편입할 것을 강조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과 달리 남성 중심으로 짜여진 사회제도를 부드러움과 자연 친화성, 그리고 연민이라는 여성적 가치와 특성으로 새롭게 디자인하여 재구성할 것을 강조한다. 지난 20여 년간 괄목할 성장을 거듭한 '여성학'연구의 성장의 기저에는 문화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다.
4.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 여성 억압과 불평등의 원인은 사적소유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Marxism Feminism)은 여성 억압과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을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사적소유에서 찾는다. 여성 모순의 궁극적 요인을 계급모순에서 찾는 것이다. 엥겔스는 일부일처제를 사적소유의 승리에 기반한 최초의 가족 형태로 보았다. 그는 최초의 노동 분업을 아이를 낳기 위한 남성과 여성의 분업으로 보았으며 나아가 역사 속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 대립을 일부일처제 결혼제도에서 나타나는 남녀 간 적대의 발전과 일치하고 최초의 계급 억압을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일치한다고 보았다.(주14
실제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역사적으로 여성의 억압이 사유재산의 발달과 그에 따른 계급사회의 출현으로부터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성의 억압과 사회적 불평등은 자본주의 착취구조에서 비롯되는 만큼 이를 해체함으로써 여성해방과 평등사회 실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억압과 불평등 구조가 사회경제적 계급모순의 결과물이기에 여성이 남성의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 사회경제적인 독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c 근대 여성은 저수지처럼 거대하게 형성된 저임금 산업예비군, 바로 저임금 노동 계층이었다. 근대여성의 낮은 지위와 가사노동의 이중적 역할은 수탈적 성격의 자본주의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여성에게 강제된 역할이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스스로 차별적 지위를 향상하고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과 불평등의 원인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오직 사적소유 즉 자본과 노동의 문제로 한정하여 원인을 계급 모순에서만 찾고 있는 점에서 이론적 한계를 지닌다. 왜냐하면 여성 억압과 불평등은 자본주의와 무관하게 오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계속 기능해 왔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도 집단으로서 여성은 집단으로서 남성에게 불평등 구조 속에서 여전히 억압당해 왔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여성학자 정희진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머니 억압의 역사는 자본주의 역사보다 20배는 더 오래되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희망과 자신에게 부과된 희망을 구별하지 못한다.」(주15
5. 사회주의 페미니즘 : 여성 억압의 원인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질서
사회주의 페미니즘(Social Feminism)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이 남녀 차별주의나 마르크스 페미니즘처럼 계급 차별주의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여성 억압의 원인을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사회모순과 가부장제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라고 본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계급차별주의보다 루이 알튀세르나 위르겐 하버마스와 같은 20c 사상가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여성의 억압보다 노동자의 억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여성해방은 노동해방 다음에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평가 절하하였다고 비판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불만이 제기되면서 등장했다.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의 혁명동지였던 클라라 제트킨의 사례는 그 적절한 경우이다. 클라라 제트킨이 여성 공산당원들에게 성 문제나 결혼문제를 토론하도록 권유했다가 레닌에게 혁명 의식을 고양해야 할 중요한 시간에 사소한 문제를 논의하게 했다고 호되게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처럼 자본주의 체제의 타도도 중요하지만 가부장제 역시 타도해야 할 중요한 목표라고 역설한다. 오히려 가부장제 질서를 혁파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닌다. 계급모순은 여성의 현실적 억압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소외된 여성 억압의 원인은 인간 정신 깊은 심연 속에 묻혀 있는 것으로 확신했다.
가까운 사례로 미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정책을 살펴보자. 신자유주의 경제사조를 앞세워 부도덕한 자본주의 체제를 마침내 괴물로 타락시킨 레이건 행정부의 복지개혁 과정에서 우리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사고의 결정판을 읽을 수 있다. 레이건 행정부는 복지수당이 최저임금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복지에 의존하는 여성을 '게으른 인간'으로 취급하고 전체 복지 수혜자의 44%가 흑인 여성이라고 폄훼하였다.(주16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이중 삼중으로 소외된 주변부 여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바라보기보다는 가부장적 사고를 은근히 드러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레이건 행정부는 독신모 가운데 미혼모가 많아지자, 부도덕이 판을 쳤다고 비판했다.
사실 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추구한 복지개혁의 진정한 의제가 어디에 있었던가! 독신모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과 함께 기업에 여성 등 저임금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복지국가를 침몰시키는 것에 그 정책의 의도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사회주의 페미니즘 : 자본주의 + 가부장제 두 머리 짐승의 타도
따라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 머리 짐승인 자본주의 체제와 가부장제 질서'를 동시에 변혁할 것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이론가로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과 이리스 영(Iris Young), 그리고 앨리슨 제거(Alison Jaggar)를 들 수 있다.
6. 에코 페미니즘 : 자연을 파괴한 서구의 남성중심성 비판
에코 페미니즘(Eco Feminism)은 여성과 자연을 파괴하는 서구의 남성중심주의 행태를 비판하는 생태 여성주의 운동을 일컫는다. 에코 페미니즘은 근대 서양의 이원론적 세계관, 내지 환원주의를 비판하는 사상이자 운동이다. 이 운동은 1970년대 서유럽에서 처음 등장하였고 에코 페미니스트의 대표주자로는 독일 녹색당을 이끌었던 페트라 켈리를 들 수 있다. 에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 도본느인데 그녀는『페미니즘 또는 파멸』(1974)이라는 책에서 여성 억압과 자연 억압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피력하였다.
에코 페미니즘은 자연과 여성을 지배하고 파괴해온 서구의 남성중심성을 통렬히 비판한다. 즉 에코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자연에 대한 억압의 구조가 동일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서구 문명은 남성이 주도했고 문명은 곧 남성을 상징하기에 문명이 자연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듯이 이성이 발달한 남성이 감성적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서구의 남성중심적 세계관에 기초한다. 그리하여 에코 페미니즘은 수천 년 동안 남성이 지배하고 주도한 오늘날 서구 문명이 전쟁과 학살, 자연파괴, 핵개발, 환경오염 등 부정적 결과만을 초래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 에코 페미니즘 : 행동하는 비폭력 여성 생태운동
그리하여 생명의 담지자인 여성이 근대 산업문명 속에 배태된 남성 중심 · 이성 중심 · 물질 중심 · 차별 중심의 세계관을 거부하고 여성적 감성과 부드러움, 차이의 공존과 배려적 삶의 태도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비폭력 생태운동이 에코 페미니즘이다.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가 관여한 인도의'칩코(Chipko) 운동'은 에코 페미니즘 운동의 대표 사례이다.
'칩코(Chipko) 운동'은 1974년 27명의 북부 인도의 여성들이 고향에서 나무의 벌목에 항의한 운동으로 여성 스스로 목숨을 걸고 나무에 직접 매달려 벌목공에게 자신들을 베어 넘기도록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가장 전투적인 운동이었다. 결국 '칩코 운동'은 승리하였고 힌두어로 '얼싸안기'라는 의미를 지닌 '칩코'운동은 수천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생명의 숲을 여성들이 나무를 얼싸안으면서 구해내었다.
오늘날 열대우림은 <지구의 허파> 구실을 한다. 산소를 뿜어내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문제는 햄버거 한 개를 소비하면 1.5평에 해당하는 숲을 파괴한다는 사실이다. 아마존 열대우림 한 그루를 베어내며 환경 파괴를 자초하는 셈이다. 불행하게도 중앙아메리카 농지의 2/3가 햄버거 패티용 소 방목을 위해 이미 목초지로 변했다. 중앙아메리카 이민자가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국경을 넘는 이유들 중 하나다. 농사지을 땅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햄버거 커넥션은 아마존 열대우림 또한 2/3를 이미 파괴했다. 매년 남한 면적만큼 열대우림이 파괴되는 끔찍한 현실이다. 세계 3대 환경운동단체인 <지구의 벗> 회원들이 미국 거대 자본에 맞서 열대우림에 올라가 집을 짓고 살면서 극한 투쟁을 전개하는 배경이다. 일본 포경선에 맞서서 고래잡이 작살 앞에 자기 몸을 쇠사슬로 묶어가며 투쟁했던 그린피스 회원들의 극한 투쟁 이상이다. 1974년 '칩코(Chipko) 운동'에서 승리한 투쟁을 학습한 방식이다. 그러다 가끔 국경 근처에서 환경운동가들이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슬픈 소식을 뉴스로 접한다.
다음은 에코 페미니스트 반다나 시바가 노래한 칩코 여성들의 투쟁을 그린 내용이다.
「진리를 위한 투쟁은 시작되었다.
신시아루 칼라에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시작되었다.
말콧 타노에서
자매여, 그것은 우리의 산과 숲을
보호하려는 투쟁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고
살아있는 나무들과 개울의 생명을 포옹하여
너의 가슴으로 전해주었다.
산을 채굴하는 행위에 저항하라
그것은 우리의 숲과 개울을 파괴하게 만드나니
생명을 위한 투쟁은 시작되었다.
신시아루 칼라에서」
이렇듯 에코 페미니즘 운동은 다른 어떤 페미니즘 운동보다 실천적인 여성운동으로서 '행동하는 페미니즘'의 성격이 가장 강렬하다.
<참고문헌>
주1 : 프리드리히 엥겔스, 김경미 옮김, 『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 (책세상, 2007) 99쪽.
주2 : 고대 서양 학문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자연 상태의 결함'으로 보았고 중세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성을 '불완전한 남성'으로 파악했으며 근대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한 계몽사상가 루소는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이성을 지닌 존재'로 규정하였다.
주3 : 제인 프리드먼, 이박혜경 옮김, 『페미니즘』 (이후, 2008). 58쪽.
주4 : 구즈(Olympe de Gouges)도 콩도르세처럼 남성에게 부여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여성에게도 적용할 것을 요구하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선언'(1791)을 발표했다.
주5 : 권현정 외,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 가족과 성욕을 둘러싼 쟁점들』 (공감, 2003) 72-73쪽.
주6 : 로즈마리 퍼트남 통, 이소영 옮김, 『페미니즘 사상』 (한신문화사, 2006) 26쪽.
주7 : 로즈마리 퍼트남 통, 이소영 옮김, 위의 책, 23쪽.
주8 : 권현정 외, 위의 책, 76쪽.
주9 :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여성의 종속』 (책세상, 2006) 162-163쪽.
주10 : 거다 러너, 김인성 옮김, 『역사 속 페미니스트』 (평민사, 2006) 64-67쪽.
주11 : 권현정 외, 위의 책, 69쪽.
주12 : 로즈마리 퍼트남 통, 이소영 옮김, 위의 책, 86쪽.
주13 : 장미경, 『페미니즘의 이론과 정치』 (문화과학사, 2002) 23쪽.
주14 : 프리드리히 엥겔스, 김경미 옮김, 위의 책, 101쪽.
주15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12) , 65쪽.
주16 : 낸시 홈스트롬, 유강은 옮김,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메이데이, 2012), 362쪽
* 이 글은 2014년 글쓴이가 <사회철학 에스프레소>에 쓴 내용을 다시 수정하고 일부 보완하여 다듬은 글임을 밝힙니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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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사회를 해체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중에 부족한 노동인력을 충당하고자 여성들을 노동시장에 끌어낸 이후
가정의 유지와 아이들의 양육은 등한시되어, 급기야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고 말았습니다.
남여평등이라는 미명하에 남성보다 더 술담배를 많이하는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젊은 여성들은 같은 여성인 늙은 여성을 원시인 취급합니다.
자연이 부여한 남여의 고유한 개성을 지키면서 상호 존중하는 남여평등의 문화가
시급히 재정립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