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기획 전시
2024. 6. 18(화) ~ 2024. 10. 9(수)까지
미국 서부 여행을 다녀오고 북미 원주민에 대한 연민이 가득할 때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회 소식을 들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무조건 가봐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4. 6. 18(화) ~ 2024. 10. 9(수)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에는 북미 원주민의 삶과 예술을 보여주는 회화, 복식 등 151점이 전시되었다. 북미 원주민 570여개 부족은 아메리카 대륙에 널리 퍼져 살았다. 따라서 지역에 따라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43개 부족의 공예품과 회화 등이 전시되었다. 이를 다 기록할 순 없어서 현재와 연관성이 짙은 회화 십수 점만 소개하고자 한다.
<넓은 땅만큼 다양한 문화>
북미는 땅이 아주 넓다. 미국 내에서도 1년 내내 추운 곳, 항상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곳과 비가 적게 오는 곳, 대평원이나 사막 등 지역마다 날씨가 다르다. 날씨가 다른 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언어나 습관도 다르다. 크게 10개의 문화권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북미 원주민에게 자연은 선물이자 축복이었다 그들은 자연에 늘 감사하고 존경을 표했다. 다양한 자연환경에 따라 정착하여 농사를 지은 부족도 있었고, 대평원 사람들처럼 들소를 쫓아 이동하며 살았던 부족도 있었다.
북미 원주민의 집도 자연환경만큼이나 다양하다. 북극은 '이글루', 북동부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롱하우스', 북서 해안은 삼나무를 이용한 '플랭크 하우스', 남서부에는 진흙과 지푸라기 벽돌로 만든 '어도비'와 나무 벽에 진흙을 덧대어 만든 '로그 호간', 남동부는 열대기후에 적합한 고상 가옥인 '치키', 남중부는 짚으로 만든 '그래스 하우스', 대평원은 '티피' 등이 있다.
<대평원 원주민 부족의 보금자리, 티피(Tipi)>
찰스 크레이그(Charles Craig(American, 1846–1931))가 그린 '응컹그그레이 유트족의 보금자리'인 티피다. 찰스 크레이그는 원주민은 아니나, 원주민의 삶을 보고 영향을 받아 몇 년 동안 원주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려냈다.
대평원에 사는 부족들은 들소 떼를 따라 이동하는 삶을 살았기에 조립과 해체가 간편한 '티피'를 치고 살았다. 티피는 땅바닥에 나무 말뚝을 박고 원래 그 위에 들소 가죽을 덮었지만 19세기 후반 들소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천으로 대체되었다.
티피의 둥근 바닥은 대지를 의미한다. 가운데 세운 기둥은 땅과 하늘을 이어준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티피는 큰 원을 이루어 배열되고 그 안에 개별 가족의 티피가 작은 원을 그린다. 북미 원주민은 원을 아주 중요시했다. 세상이 모두 둥그렇고 그 안에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과거, 현재, 미래도, 죽은 자의 영혼과 산 자의 영혼도 모두 둥근 원 속에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 뉴멕시코 테와 마을의 '어도비'(adobe)>
이 그림은 호피족 작가 '댄 나밍가'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증조모이자 유명한 도예가인 '남페요'의 '어도비' 집을 그린 것이다. 북미 원주민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날씨에 가장 적합한 집을 지었다. 어도비는 모래 함유율이 높은 진흙에 물과 짚을 섞어서 벽돌로 지은 집이다. 미국 남서부의 건조한 환경에서도 1,000년 이상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산타바바라는 어도비 집들이 도시 전체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1925년 대지진 후 산타바바라는 새로 짓는 건물을 어도비 벽돌을 사용하여 짓도록 법을 제정하면서 독특한 전통 건축양식을 보존하고 있다.
<대평원 원주민의 들소 사냥>
들소 떼를 쫓는 원주민 사냥꾼을 그린 그림이다. 들소는 대평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들소는 음식뿐만 아니라 ‘티피’라는 보금자리, 겨울을 견딜 수 있는 따뜻한 털, 도구를 만드는 뼈 등을 아낌없이 주었다. 하지만 미정부는 대륙횡단 철도를 놓기 위해 들소 떼의 학살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1879년에는 들소가 100마리 정도만 남았을 정도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 들소가 사라지자, 원주민들은 굶주렸다.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삶의 방식도 무너져버렸다.
<'딘 콘웰'의 '골드러시 II'>
딘 콘웰(Dean Cornwell (American, 1892-1960))은 미국의 삽화가이자 벽화 작가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의 학장'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20세기 전반기 내내 미국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독보적 존재였다.
1848년 캘리포니아주에서 골드러시가 일어났다. 당시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원주민 약 30만 명이 곳곳에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금광이 발견되면서 많은 이주민이 금을 찾아 서부로, 서부로 옮겨왔다. 원주민들은 강제로 이주당했고 이주민들이 가져온 질병에 시달리면서 한 번 더 절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그림은 골드러시를 쫓아 캘리포니아에 온 사람들의 집단 이주를 묘사하고 있다. 오른쪽에 무기를 들고 움직이는 군중은 급하다. 그들은 곧 원주민들의 삶을 추월하여 칩입할 것처럼 보인다.
<'노만 로크웰'의 'The Stagecoach'(역마차)>
노만 로크웰(Norman Rockwell / American, 1894 1978)은 미국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는 평생 4,000개 이상의 작품을 제작한 다작 예술가였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포함한 40권 이상의 책에 삽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아래 그림과 같이 미국에 대해 이상적이거나 감상적인 묘사로 인해 화단의 평은 그리 높지 못했다.
1939년 서부 영화 <역마차>를 1966년에 리메이크 하면서 광고한 삽화다. <역마차>는 1880년 역마차 운전수 두 명이 애리조나주에서 뉴멕시코주로 이동하는 모습을 담았다. 영화에서 북미 원주민은 아무 이유 없이 정착민을 공격하는 극단적이고 단순한 야만인으로 나온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서부 개척을 장려하고 그곳에 사는 원주민을 쫓아내도 된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데 이용되었다.
<'프리츠 숄더'의 'Indian Power'(인디언의 힘)>
프리츠 숄더(Fritz Scholder / 1937~ 2005년)는 미네소타주 브레켄리지에서, 캘리포니아 원주민인 루이세뇨(Luiseño)의 피를 갖고 태어났다. 고등학생 시절, 그의 스승은 저명한 수족 예술가인 '오스카 하우'였다. 위스콘신 주립대학교에 입학하여 여러 작가와 공부하면서 합동전을 열었는데 그의 작품은 뛰어난 호평을 받았다. 이어 개인전을 열었고 새크라멘토 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아메리카 인디언 예술 연구소('I.A.I.A./Institute of American Indians Arts)에서 고급 회화 및 현대 미술사 강사가 되었다. 1969년 I.A.I.A.를 사임하고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여행했다.
프리츠 숄더는 원주민으로 성장하지 않았지만 현실 속의 원주민 모습에서 많은 문제를 보았고, 이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1967년 시리즈로 그린 'Real Indian'은 즉시 논란이 되었다. 숄더는 원주민 그림에 성조기, 맥주 캔, 고양이 등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냉소적이지만 이런 그의 솔직함과 진실성은 한 세대의 아메리카 원주민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72년 작품인 'Indian Power'는 전시회의 대표 사진으로 뽑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응원을 받은 그림이 아닐까 한다.
이 그림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미국 흑인 육상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받은 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올리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흑인의 가난을 상징하듯 맨발로 시상대에 오른 뒤, 미국 국가가 울릴 때 고개를 숙이고 검은 장갑을 낀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미국에서 한창이던 흑인 저항운동인 ‘블랙파워’에 지지를 표시한 행동이었다. 이 모습은 ‘블랙 파워’의 상징이 되어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프리츠 숄더는 이에 감명 받아 말을 탄 채 주먹을 힘껏 들어올린 원주민을 그렸다. 이 작품은 1970년대에 복제되어 미전역의 원주민 집과 사무실에 걸렸다. 스스로 의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강한 신념을 담고 있는 이 그림은 원주민의 자결권과 행동주의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프린츠 숄더 자신은 시위 화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의 그림은 그 역할을 해낸 것이다.
<'프리츠 숄더'의 '소총을 들고 앉아 있는 인디언'>
'Indian Power'를 그린 프리츠 숄더가 1976년 그린 '소총을 들고 앉아 있는 인디언'이다.
프리츠 숄더는 북미 원주민의 낭만적 이미지와 고정관념에 대항해 현실을 바로 보는 작품을 그렸다. 그는 비원주민 화가들이 초연한 표정의 ‘고상한 야만인’, ‘전쟁을 좋아하는 부족’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온 것에 반대했다. 이러한 이미지로 그려진 원주민은 사실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비원주민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 소총을 든 원주민은 고독한 공격자의 이미지이지만, 프리츠 숄더는 스스로와 가족, 공동체를 지키는 보호자의 이미지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주디스 로우리'의 'Jingle, Jingle'(딸랑, 딸랑)>
주디스 로우리(Judith Lowry / 1948~)는 북미 원주민 아버지와 오스트렐리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원주민 예술가다. 그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미용사로 일하다가 30대에 들어와서야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훔볼트 주립대학교에서 미술 학사 학위를, 치코 주립대학교에서 회화 및 드로잉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소비주의, 패션, 관계, 죽음, 현대 사회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제 등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주디스 로우리의 부족이 모여 살던 땅에 카지노가 들어섰다. 카지노가 들어서자, 원주민 공동체에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미 원주민에게 없던 탐욕과 부패가 발생했다. 원주민 공동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카지노 비리를 폭로하려다 그녀의 사촌은 살해됐다. 그녀는 카지노에서 일어난 실제 체험 상황을 고발하고 죽은 사촌을 추모하고자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강렬하고도 슬픈 그림이다.
2편에 계속
참고 사이트 : 위키백과
참고 사이트 :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안내
참고 기사 : ‘검은 장갑’ 시상대의 노먼, 사후 공로훈장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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