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글의 나아갈 방향과 현실 인식

1. 글로벌문자시대, 한글은 어티케 진화해야 할까

"언어는 언중의 사회적 합의체인 텍스트이지 고정된 실체도, 자의적인 형태도 아니다"(늘샘 김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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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글학자도 한글운동가도 아니다. 나는 다만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일개 서생일 뿐이다. 비전문가였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말글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 20년 동안 (대)학교와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글쓰기를 지도했던 경험과 실제 작품 생산의 현장에서 언어를 다루어야 할 한국의 작가로서 우리말글, 한글에 대해 느끼고 숙고한 바가 있어 한글날을 빌어 나의 소견을 솔직하게 밝히고자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평소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오고 있던 차, 에고적 자기애의 단계를 벗어나지 모하고 자뻑에 빠진 일부 훈민정음 학자와 한글운동가의 행태에 참을 수 없는 국민적 수치와 모욕을 느껴서다.

먼저, 한글학자 김슬옹의 경우

그는 훈민정음과 이를 만들었다는 세종대왕의 절대 신봉자다. 그러나 그의 학자적 주장은 과도한 자기애다. 오늘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단순한 군주를 넘어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 그는 세계언어사에 선례가 없는 훈민정음을 만들어 오늘 우리의 문자생활과 문화창조의 근간을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 한 자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좀 거리를 두고 사료를 보먼 알 수 있듯이, 세종이 혼자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독단이 아닐 수 없다. 훈민정음은 분명 정인지, 성삼문 등 집현전의 사대부 언어학자들이 만들어 바친 세종대의 문자다. 세종이 뛰어난 학자인데다 언어학에 대한 무비의 실력을 갖춘 것은 틀림없으나 그가 혼자 만든 것은 분명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걸 대서특필 과장해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고개를 숙이게 하는 데 일조한 김슬옹은 세종의 영웅만들기에 이용된 어용학자, 눈 먼 국뽕지기다.

자, 제대로 보자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말 그대로 백성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군주의 사고를 반영하고 있는 워딩이 아닌가. 그렇다먼 그는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했을까. 그것은 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새로 만든 문자로‘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등을 제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즉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백성의 풍속을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즉 백성에게 통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서 어려운 한자가 아닌 간이하고 쉬운 문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진시황의 문자통일을 통해 보건대, 정치의 통일은 곧 문자의 통일과 한쌍을 이루는 것이다. 이 문자를 만든 것은 진시황이 아니라 이사, 이사가 아니라 하급관리였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진시황, 이사, 하급관리들은 왜 주대의‘대전大篆’을 두고 이를 간략하고 쉬운‘소전小篆’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당연히 대전이 복잡하고 불편해서 소통에 지장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단하고 일정한 규칙을 지닌 문자체계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소전小篆’이라는 새로운 기호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것을 정리해 놓은 것이 그 유명한 <설문해자說文解字>다 그러나‘소전’은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다.

훈민정음도 마찬가지다. 신라의 설총 이래, 그러니까 한자를 표기수단으로 했던 당제唐制의 영향 아래에서도 하나의 자의식의 소산으로 통일 국가 신라의 문자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 우리 말을 표기하는 수단이 이두吏讀, 향찰鄕札, 구결口訣 등으로 복잡하고 불편하나마 모양을 유지하다가 고려를 지나 조선을 개창, 안정을 누리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군주는 문자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것은 또 그것대로 강만길(<분단시대의 역사의식>)의 말대로, 민중의식의 성장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다시말해 훈민정음은 설총 이래 이어온 우리말글의 발전적 종합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세종 혼자 100% 창제했다는 것은 참으로 초등학생이 배꼽을 잡을 유치한 얘기다. 글자의 형태만 하더라도 해례본에 분명히‘글자는 고전을모방했다字倣古篆'고 나와 있거니와, 그러니까 진시황대의 소전小篆이 자음과 모음의 결합원리에 따라, 가령‘문文’의 발음은 ‘무無’와 ‘분分’의 반절, 즉 성모聲母인 ‘ㅁ’과 성운聲韻인 ‘ᅟᅮᆫ’의 결합으로 ‘문’이라는 소리값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설문해자>의 사례처럼, 그들은 불경을 번역하먼서 자음과 모음을 축으로 하는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음운 이론을 적용하여 자신들의 한자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이는 정음의 제작에도 크게 영향을 줬던 것임 - 무론 우리의 훈민정음은 자연과 발성기관을 본따서 만든 거이므로 이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과학적이다. 

더욱이 인도와 중국의 문자가 이원적二元的인 구조임에 비해 우리의 글자는 초성/중성/종성의 삼원적三元的이라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다. 알파벳만 보더라도 꾸준히 발전해간 역사를 지니고 상호영향을 지닌 것임을 볼 때, 대체 고유한 문화가 드물거니와 훈민정음 또한 당시의 지배적인 중국의 한자와 인도어 등 타 문자의 형태의 영향을 받고 전래의 우리말글을 계승, 발전, 종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체계를 갖춘 문자로 만든 것이지 이를 두고 세종 혼자 다 해냈다는 것은 학자적 자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엄밀한 분석태도와 객관적 비판정신은 학자의 기본 아닌가.

자, 하나의 유비적 사례로 지난 정권하에서의 남북정상의 만남을 통해 보자. 이는 결코 문재인 대통령 혼자 만들어낸 게 아니다. 주변의 통일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고, 또한 권력 행사의 중심인 국민의 지지와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광화문 촛불로 상징되는 전국민의 반통일세력에 대한 단죄와 통일에 대한 역사적인 물결이 하나의 세력으로, 권력으로, 정치적 결단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것이지 대통령 혼자 해 낸 게 아니다. 무론 지도자의 안목과 결단, 리더십이 궁극적으로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가 혼자 할 사안이 아닌 것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다.

나라가 집이라먼 풍속은 가정이다. 가히 가화만사성은 국가백년지대계다. 이런 사실을 정확히 간파한 세종이 용비어천가와 더불어 삼강행실도, 오늘의 윤리교과서를 최초로 제작, 보급했다는 데서 우리는 훈민정음 창제의 진의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당시의 풍속과 윤리를 주도한 사대부 지식인이 만든 훈민정음은 성리학의 음양오행사상에 기초하여 자음子音과 모음母音,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라는 음소音素에 바탕을 두게 된 것이다. 이는 그대로 자연과 발성기관을 모방한 데서 나온 것으로 매우 과학적이고 유물론적인 기초에 부합하는 고중세적 인식론의 소산이다.

이렇게 당시의 사회역사적 상상력과 동아시아 음운학의 상호문화적 영향 관계에 기초해도 한참이나 부족한 터에 훈민정음과 이를 단독으로 만들었다는 세종에 대한 도를 넘은 과도한 찬사와 칭송은 참으로 보기 민망하고 부끄러운 처사가 아닌지... 학자의 자세는 최소한 진실에 대한 끈질긴 거리두기가 아닌지...

다음, 한글운동가 이대로의 경우

이대로는 학자보다 운동가에 가깝다. 학자가 지식으로 무장해 있다면 운동가의 갑옷은 실천이다. 중요한 건 학자가 소경처럼 눈이 멀게 되먼 진실을 볼 수 없다는 것이고 운동가가 외눈박이가 되면 한쪽만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대로, 그는 뭐 한글이 좋으니 이대로 죽 가자는 현실순응주의자confirmist다. 이런 그의 주장은 한글이 최고이자 최선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즉 그는 철학이 시대의 딸이고, 도덕윤리가 역사적 산물이듯이, 언어 또한 역사의 산물이고 그러니 시대변화에 따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금언maxim을 무시하고 있다.

훈민정음이 문치를 통해 국가백년을 기약하고자 했던 뛰어난 군주의 고뇌의 결과였다먼, 한글은 근대국가로서의 나라세우기가 좌절당했던 일제식민시기에 태어났다. 즉 훈민정음이 정치적 소산이라먼, 한글은 역사의 산물이다. 자, 이것은 곧 자세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지만 ‘형태소’ 개념에 기초한 한글이 근대 언어학에 부합하는 당대 최고의 문자이먼서 민족혼을 지니게 된 소이도 여기에 있다.

자, 그렇다먼 먼저 한글이 어떤 근대적 의미를 지닌 문자인지 보자.

근대언어인 한글에 초석을 놓고 이를 굳건히 한 이는 주시경과 이극로다. 주시경은 배재학당에서 선교사 아펜젤러에게 근대 영문학의 핵심개념인 ‘형태소’를 익혀 ‘늣씨’(송철의)라는 우리말 형태소를 만든 선각자이자 독립운동가다. 이극로는 만난고투를 헤치고 독일대학에 가서 근대 언어학을 배워 민족운동과 접목시키고 조선어학회를 이끈 불굴의 한글운동가다. 여기, 근대국어운동사 초기의 두 선구자의 공통점은 ‘근대’와 ‘민족’이다. 그래 주시경과 그의 후학들과 이극로 등 조선어학회가 주도하여 만든 한글맞춤법과, 이 한글맞춤법의 핵심이 어법에, 형태소에 있다먼 이것과 근대, 민족은 대체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가.

우선, 근대 어법의 핵심으로 기능하고 있는 ‘형태소’는 근대 부르주아 언어학의 태두 소쉬르의 이론에 근거한다. “언어는 형태이지 실체가 아니다”(<일반언어학강의>) 여기, 언어는 (고정된) 실체라는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고대적 심급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형태form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의적이지만 이들이 만든 언어적 형태가 하나의 이상적 꼴을 형태화한다는 것이 근대의 나라세우기nation building와 겹치게 되먼서 우리의 말꼴세우기는 이데올로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곧 죽음을 각오한 독립투쟁사였다.

형태소 중심의 어법語法은 근대 부르주아 주도의 문자문화, 독서문화와도 관련이 있는 이론이다. 즉 형태소는 ‘꼬치’라고 소리나는 대로 써 오던 것을 그 본래 있다는 원형을 밝혀 - 그러나 정확하게 말해서 김치처럼 본래의 원형은 없다-‘꽃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이건 대단한 혁명이었다. 즉 소리대로 써 오던 전래의 표음주의에서 표의주의로의, 소리 중심의 음소音素에서 뜻 중심의 의소意素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것으로 원형을 밝힌다는 것은 부르주아의 개인주의 정신에도 맞는 것인데다 그들의 독서문화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소리에서 ‘뜻(어법, 형태소)’으로, 이는 실로 문자사의 대혁명이라고 아니할 수 없고, 그것은 고중세 구술문화에서 근대의 문자문화의 대변혁이었고, 무엇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독립운동과 근대 부르주아의 멘탈리티가 겹치고 있다는거, 바로 여기에 한글혁명의 위대한 성과와 한계가 있다.

자, 그런데 이렇게 큰 의미를 지닌 한글에 무슨 한계가 있다는 것인가.

훈민정음이 유교사상을 내면화하고 있던 사대부 지식인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리하여 음양오행사상을 근간으로 ‘자모子母’중심으로 만들어진 동아시아적인 가치가 훈민정음 체계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먼, 이와는 달리 근대의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의 개인주의, 민족주의 이념을 기치로 내건 부르주아 지식계층이 만든 근대 영어가, 이들의 영향을 받고 태어난 우리의 한글이 영어를 본으로 삼아‘형태소形態素’중심으로 만든 것은 매우 모던한 것이었고, 이것은 당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세계사적 언어의 대응이었다. 당시 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 회원 거의 모두가 교사이자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이 그 명백한 증거다.

그렇다보니, 그러니까 자연 부르주아 지식계층이 주도하여 한글을 만들다 보니 서울 중산층의 말이 본이 되었다. 자연 지방사투리가 밀려나고, 표준어가 어법이 되고 국가의 언어정책으로 시행되다 보니 일상의 소박한 입말口語들이, 가령‘핀지’와 ‘편지’의 경우(조정래의 <태백산맥>)처럼 진실한 생활감정을 담은 말글들이 무시되고 소외되었다.

즉 근대언어는 내부 식민지 언어로서 그 부르주아적 위계를 지닌 차이의 언어로 기능하였다. ‘자장면/짜장면’논쟁이 대표적이다. 무슨 소리인가. 왜 부르주아 중산계층을 대변하는 지식인들은 자장면을 선호하고, 언어대중들은 짜장면을 좋아할까. 여기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기호가 박혀있다. 즉 자장면과 짜장면의 차이는 문법적으로만 보면 순수음과 전탁음(된소리)의 차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거친 노동과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살아가고 있는 부르주아의 멘탈리티와 비록 거칠고 고되지만 진실되게 살아가고 있는 풀꽃대중들의 생생한 삶이 대립한다.

이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지금은 인터넷 키보드에 기반한 전자글쓰기 시대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읽기에서 쓰기로의 혁명이 일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부르주아가 아니라 국민 대중이 권력의 중심에 선 대중헤게모니시대다. 자연 언어는 간편화 경향을 띠고 감성화 추세가 대세다. 즉 근대의 형태소와 완곡한 표준어에 기반한 맨데이터리한 강제적인 어법 체계에 일대 수정이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다. 사실 근대의 어법체계는 이미 무너졌다. 한국의 메이저 출판사인 창비와 열린책들에서는‘도스토예프스키’를 현실음에 맞게‘도스또예프스끼'로 표기하고 있다. 나도 이 글에서‘못하고’를‘모하고’로 썼다. 키보드 상에서 받침을 치는 것은 매우 불편할 뿐 아니라 간단하게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대중의 현실적 감성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격변하는 세계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는 실질적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잠시 중국을 보자. 중국의 어려운 한자어가 오늘 국제어, 세계어가 된 것은 단순히 경제력의 힘만이 아니다. 그들은 과감하게 수천 년 지속되어 오던 표의 체계, 어법 시스템을 버리고 로마자로 병음화, 표음화하고 과감하게 대중의 백화문을, 구어를 수용함은 무론 구래의 형태조차 완전히 버리고 간체화함으로써 문맹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세계어로 거듭나고 있다.

돌아보건대 ‘훈민정음’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한글’로 거듭났던 것처럼, 이제 ‘한글’도 다시 우화등선하여 ‘한국어’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 한글학회여, 지난 시절의 영웅담만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김슬옹 박사, 이대로 선생이여! 과거로 돌지 말고 지금, 여기를 보고 미래로 가야 하지 않것는가.

자, 그렇다면 너의 주장은 무엇이더냐. 나의 주장하는 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행 한글맞춤법 제1장 1절은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하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이에 대해 나는 앞에서 해설하고 주장한 내용을 귀납하여“한국어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그 현실적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로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언어적 보편성을 따르먼서 우리말글의 특수성을 유지함은 무론 현실적인 적합성까지 갖춘, 그야말로 세계사적 의의를 지닌 글로칼한 한국어를 탄생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참고로 더 자세한 내용은 졸저 <텍스트는 젖줄이다>(2014, 소명출판)의 ‘한글맞춤법의‘근대’적 의미‘를 일독하기를 바란다.

 

2. 한글맞춤법, 무엇이 문제이고 왜 문제인가

- 나는 지난 회에‘글로벌문자시대, 한글은 어티케 진화해야 할까’를 타이틀로 언어 문제에 대한 도발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 한글이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화해 왔던 것처럼, 오늘의 한글 또한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된 것은 바로 시대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대의 언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다시피, 근대의 주체를 벗어던진 탈주체, 탈근대 시대다. 즉 지금은 지식인이 아니라 대중이 헤게모니를 쥔 대중서사시대다. 그렇다먼 논의의 방향과 지향성은 분명하다. 다시말해 지금 우리의 언어는 대중의 기호와 취향과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자, 이것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한글맞춤법 문제의 (대)전제를 이루고 있다. 잘 알다시피, 한글은 대한제국기의 산물로 태어났다. 주시경이 명명했다는‘한글’이라는 명칭은 정확하게는‘대한제국의 글’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사실은 주시경이 당시 대한제국이 만든‘국문연구소(1907)’의 칙임관이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칙임관勅任官’은 대한제국 때, 대신의 청으로 임금이 임명하던 나라의 벼슬이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오늘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 한글은 근대국가이데올로기의 산물임을 엿보게 한다. 그러니까 한글은 철저하게 근대화의 산물이고, 주시경은 이런 한글의 근대화의 개조開祖임에 틀림없다 할 것이다.

이런 한글은 어티케 탄생하였는지 보자. 한글은 이미 세종대에 만들어진 훈민정음의 근대적 버전이다. 훈민정음이 대한제국의 글, 한글로 실질적으로 공식적인 자리를 찾게 된 것은 1894년의 갑오개혁이었다. ‘法律 勅令 總 以 國文爲本 漢文 附 譯 或 混用國漢文(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을 본으로 삼고 한문번역을 붙이거나 또는 국한문 혼용을 한다)’(고종의 칙령 제1호 14조)는 과도기적 표현을 언급했으나 국가의 의지로 공식적인 언어표기수단을 정식화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갑오개혁 자체가 일제의 강요로 강행된 것이어서 이를 실현하기는 어려운 데가 있었다. 오히려 공식적인 한글사용은 서재필, 주시경이 관여한 민간신문인 <독립신문>(1896)에서 몇 년간 유지되었을 뿐 정부의 공식문서는 국한문을 중심으로 한 일본식 표기법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가운데서 주시경은 개인적으로 국어연구학회(1908)를 설립, 국어 연구에 매진하였다. 주의해서 잘 보자. 주시경이 설립한 학회는 ‘국어’를 전제하고 있다. 주시경이 국가가 임명한 연구자로 나라를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언어독립투사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국어라는 말을 쓰지 모했다. 합방 이후, 국어의 지위를 누린 것은 오히려 일본어였고, 우리의 국어인 한글은 조선어로, 지방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어에서 조선어로, 한 개 언어의 표기는 이렇게 간단치 않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주시경이 초석을 놓은 한글 운동은 근대 국어를 정립하는데 진정한 기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자, 나는 여기‘근대’라는 말을 한정사로 박아 넣었다. 그냥 넣은 말이 아니다. 바로 이 말이 또한 이 글을 이끌어 나가는 모티프가 되고 있음을 눈치 빠른 독자는 알 것이다. 자, 그렇다먼 이왕에 나온 이야기니 대체‘근대’와‘국어’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좀 밝혀보자. 근대를 국어사전(이기문 감수)에서 찾아보니,

1, 지나간지 얼마 안 되는 가까운 시대. 2, 역사의 시대 구분의 한 가지, 중세와 현대의 중간 시대, 국사에서는 조선 시대의 후기가 이에 해당됨.(국어사전의 정의)

라고 적시되어 있다. 자, 이것은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설명이다. 근대의 의미가 이것뿐인가. 좆도 아닌 늘샘이 아는 대로의 근대의 의미를 정의해 보자.

근대는 역사상에 있어서 산업혁명을 통해 물적 권력을 얻은 시민 부르주아 세력이 모든 권력의 중심에 서서 이룬 자본주의에 기반한 정치경제체제이자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배타적인 식민권력체제이며, 하나의 일관된 소통체제를 요구했던‘상상된 공동체’가 중심으로 부상되었던 시기.(늘샘의 정의)

이런 의미를 배경으로 해서 근대의 언어는 결코 중성적인 언어가 아니요, 일정한 지향성을 지닌 언어임을 예측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오늘 무심코 대하고 있는 근대언어인 한글(맞춤법)은 부르주아의 언어이자 식민제국의 언어이며, 전체주의 언어임을 알 수 있다. 가령,‘국민國民’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민은 결코 우리가 만든 말이 아니다. 국민은‘황국신민’의 준말로, 천황제를 기축으로 하는 근대군국주의 국가 일제가 만든 식민언어다. 철학이 시대의 아들이듯이, 언어 또한 시대의 아들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제대로 의식하지도 모한 채 이렇게 일제가 만든 말을 한글인양 무심코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메리카America 미국은‘아미리고’미국에서 언제부터‘米國’이 되고, 다시 오늘‘美國’이 되었나. 오른쪽을 뜻하던‘right’가 어찌하여‘좋다’는 뜻을 함축한 우익을 대변하는 언어가 되었나.

윤석렬은 왜 그렇게 제멋대로의‘자유’라는 말을 강조하나...등등 이런 사례들은 언어가 결코 노트럴한 기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언어는 결코 나를 위해 울리지 않는다.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을 지녀야 함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먼 언어를 통한 의식의 해방이야말로 인간해방을 맞이하는 최초의 날카로운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전쟁터다. 언어가 이데올로기 전쟁터인 것은 한글맞춤법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쓰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이것은‘한글맞춤법 제1장 총칙 제1항’으로 우리의 말글생활을 규율하는 대원칙이다.

자, 그러니 오늘의 주제를 환기해 보자. 한글맞춤법 무엇이 문제이고, 왜 문제인가.

(* 교보문고 이미지 캡쳐입니다.)
(* 교보문고 이미지 캡쳐입니다.)

가령, 다음 사례를 통해 보자. 여기, <불평등의 대가>라는 저서명을 읽는다고 하자. 이것을 읽을 때 쓰여진대로 ‘불평등의 대가’라 읽을 사람이 있는가. 현실을 무시하고 이를 그대로 ‘불평등의 대가’로 읽는 것은 진공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의 언어현상도 지금, 여기라는 구체적인 인과의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라는 구체적인 크로노토포스한 시공간의 지각적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히 ‘댓가’ 또는 ‘대까’로 읽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억지로 현실음을 버리고‘대가’라고 읽는다면 이것은 언어의 이상일 따름이지 현실이 아니다. 즉 한글맞춤법의 규정을 따라 소리규정보다는 어법규정, 즉 현실음보다는 이상음을 따르게 된다먼 한글맞춤법은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 최소한 <불평등의 댓가>로 표기해야 한다. 이렇게 한글맞춤법이 현실음과는 거리가 먼 이상음을 따르고 있는 것에는 원래의 이상적인‘형태form’를 따라야 한다는 부르주아의 형식주의 언어관을 엿보게 한다. 이것은 사실 현실음parole보다는 이상음langue을 중시한 부르주아 언어학자 소쉬르의 한국적 버전이 아닌가.

자, 이렇게 한글맞춤법이 현실성이 없고 겉돌고 있는 데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좀 보자. 한국인의 말글생활을 규율하고 있는 한글맞춤법은 우선 표기부터가 모순이다. 명제는 단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리규정과 어법규정을, 그것도 이율배반의 상호충돌하는 명제를 억지로 조합해 놓았다. 자, 그렇다먼 소리규정과 어법규정은 왜 모순인가. 이는 곧‘대가’를 소리대로 하먼‘댓가(또는 대까)’이지만, 어법대로 본래의 형태대로 밝혀 적었으니‘대가’가 된 것이다. 그러나‘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한글맞춤법 규정대로 한다먼‘댓가’도 맞고‘대가’도 맞다. 그래 한글맞춤법에 따라 우리말을 표기해보먼 단일한 표준어는 없는 셈이다. 시상에 이런 모순이 어디 있고, 이런 역설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염려 마시라. 이를 역으로 보자먼 한글맞춤법은 전통을 무시하지 않으먼서도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는 대승적 지혜를 보여줬으니...곧 소리는 소리대로 인정하되, 모든 문자는 그 본래대로의 형태를 밝혀 적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세웠던 것이니...뭐 조건을 달기는 했으되 어법에 손을 들어줬으니...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한글맞춤법 제정의 성문화과정(근대 문자로서의 한글의 탄생)에서 역사적인 문자전쟁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맞춤법 제정을 전후하여 소리 규정을 대변하는 조선어학연구회(박승빈)와 어법 규정을 대표하는 조선어학회(이극로)간 일대 사활을 건 문자투쟁이 장안을 흔들어놓을 만큼 대단하였다.

자, 이것은 눈을 씻고 다시 보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그래 박승빈, 최남선 중심의 조선어학연구회는 옛것 그대로가 좋다며 전통의 자연음에 기반한‘소리’를 중시했던 것이요, 근대적 자의식을 지녔던 주시경 학파ecole라 할 조선어학회는‘어법’을, 그러니까 근대의 형태소를 중시했다. 이것은 그대로 전근대와 근대의 역전 드라마가 아닌가. 그래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먼서 태어난 한글은 나라세우기nation-building와도 관련되는 정신의 독립을 암시하는 것이지만,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민족국가의 성립, 민족어의 필요성과도 연관된 것 아닌가 아, 씨파!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낸 근대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에 빛나는 문자대혁명이 아닌가. 그러나 결코 자만할 일이 아니었다. 사실 오늘 한글맞춤법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

 

3. 한글혁명에 가려진 또 하나의 문자혁명의 역사

한글혁명이 피를 흘려야만 이룰 수 있었던 고독한 근대의 문자혁명이었음은 조선어학회 사건(박용규의 <조선어학회 항일투쟁사>, 한글학회)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곧 새로운 나라세우기가 그대로 새로운 언어세우기였음을,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근대민족국가의 성립이 그대로 상상된 언어공동체로서의 근대언어의 성립과 일치하는 고투의 혁명의 문제였음을 일깨운다.

여기, 새로운 나라세우기와 일치된 맥락에서의 새로운 언어세우기로서의 한글맞춤법을 주도한 이들이 당대 지식인 중심의 조선의 부르주아시민이었음을 볼 때, 이것은 확실히 근대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의 일환이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또한 이들이 주도한 근대문학이 왜 시민문학이고, 이런 시민문학의 수단인 언어가 왜 시민 주체의 성격을 지닌 의소(뜻) 중심의‘형태소’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곧 형태소 중심의 부르주아 언어를 기반으로 한 한글맞춤법이 민중의 언어와는 괴리를 지닌 개인주의 모럴을 지닐 수밖에 없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형태소가 일상에 기반을 둔 현실음보다는 현실을 벗어난 한가한 부르주아의 이상을 담은 ‘순수음’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근대철학과 미학의 개조開祖 칸트의‘물자체’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되었던 것도 바로 이런 근대 부르주아의 이념을 구축적인 constructuve 새로운 철학이념이었기 때문이고, 이런 사유에 기반한 소쉬르의 형태중심주의가 현실음parole보다 이상음language에 기초해 있는 이유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임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먼 그는 조선어학연구회의, 귀족 중심의 자연음과 조선어학회의, 부르주아 중심의 이상음에 맞서 민중 중심의 현실음을 중시한 현실주의 언어학파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문자혁명의 과정에서 중요한 시각을 지녔던 현실주의 언어학파는 바로 홍기문, 임화의 경향문학 그룹이었다. 카프KAPF를 중심으로 한 경향문학그룹은 조선민중의 해방으로서의 문학의 기치를 든 문학그룹이다.

따라서 그들은 조선민중이 처한 현실을, 일상에서 체험하고 겪는 진실된 언어에 큰 관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 임화가 단테의 ‘속어론俗語論’에 큰 관심을 보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바로 여기에‘존재(생활)는 의식(언어)보다 선행한다’는 마르크시즘 명제의 조선적 리얼리즘으로서의 현실주의적 언어학파의 이론적 근거가 자리한다. 그래 카프의 맹주 임화가 조선의 근대문학 혁명의 일환으로서의 언어혁명에 적지 않은 관심을 지니고 조선의 문자혁명인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에 큰 관심을 보였던 이유도,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1930년대 쇠망하는 조선학을 메트로학으로 정초한 임화! 그는 시인으로, 또한 비평가로, 문학사가로서 뿐만 아니라 이와나미문고의 문화침략에 맞서 학예사學藝社의 편집주간으로 김태준 등과 더불어‘조선문고’를 통해 <원본 춘향전>, <조선소설사> 등을 비롯 적지 않은 당대의 일급 서적들을 펴내었고, 그 자신 또한 <문학의 논리>, <조선민요선> 등 조선의 민족문화건설의 최일선에서 파수역을 감당해냈다. 그래 발군의 임화의 임화다움은 시인으로서도 비평가로서도 문학사가로서만도 아니었다. 임화를 임화답게 한 것은 바로 언어사상가로서의 임화였다. 그만큼 임화는 조선의 뛰어난 언어사상가였다. 과연 그럴까. 이것은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카프와 학예사를 통해 조선 청년 임화가 보여준 문학혁명의 대전제는 바로 언어혁명(‘가톨릭 문학 비판’)이었다. 자, 여기 언어혁명의 전제는 현재 심급의 언어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자, 그렇다먼 당시 이런 현재 심급의, 그러니까 조선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단계로서의 조선어학회 중심의 언어혁명의 문제는 무엇인가 보자.

“현대 이전에도 우리는 우리들의 조상을 제단祭壇 앞에서 부를 때 중국어로 불렀다. 또 수백년 전부터 우리들의 성명은 한자로 되어왔고, 우리가 읽고 배워야 할 모든 역사적 기술, 공문서, 비석, 과학상 철학상 노작, 문학작품 대부분이 이국어異國語인 한문으로 기술되었다. 그때의 공용어는 물론 상류 계급의 담화, 서한, 의사 발표 모두는 한문이었었다. 금일에 있어도 우리는 한문 없이는 글을 쓰지 못하고 외국책을 번역할 수도 없다.이러한 한자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2,30년 전에 우리들의 선배는 창정創定된 채로 누백년 동안 방치되었던‘훈민정음’을 재평가하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언문일치의 근대적 어문을 수립하며 같은 조선의 방언적 차이를 통일하고 혼폐混廢 혼란된 문법, 어휘를 정리하려는 열혈적 노력을 지불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조선의 경제의 미숙과 한 개 커다란 생활상의 변이 때문에 모든 것은 야생적인 채로 방기되고, 전혀 다른 한 개의 보다 강고한 새‘한문적 세력’의 크나큰 영향을 받으면서 금일에 이르렀다.”

-임화, ‘조선어와 위기하의 조선문학’(1936, 조선중앙일보), 소명출판

자, 이것은 당시 조선의 문자생활의 심급의 어떠한, 그러니까 우리가 주시경을 비롯한 선배들의 열혈적 노력으로 비록 중국어, 한자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의 현실은 만족스럽지 모하다는 진단이자 비판이다. 그것은 무론 조선의 경제의 발전의 미숙에서 비롯된 문제요, 그것은 또한 한 개 커다란 생활상의 변이, 즉 일제의 조선병합으로 인한 문제가 아닌가. 그래 우리의 문자혁명은 제대로 진척을 보지 모한 가운데 보다 강고한 새‘한문적 세력’의 크나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그래 여기 보다 강고한 새‘한문적 세력’은 누구를 말함인가 이것은 한 개 생활상의 커다란 변이라는 말과 더불어 바로 빌어먹을‘이솝적 언어’가 아닌가.

그러니까 그는 일제 당시 총독부의 눈치를 보느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모하는 문화적 질식상태에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밖에 없던 조선식민지 문화인이었다. 그래 문맥으로 보아서 잘 알 수 있는 것이지만‘전혀 다른 강고한 새‘한문적 세력’’은 바로 한자 중심의 일본문체를 쓰는 세력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한자어 중심의 일본어를 쓰는 식민세력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사실에 있어서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선어학회의 말글혁명에 대한 임화의 비판이었다.

그래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오늘 나를 비롯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민주주의民主主義, 공산주의共産主義, 혁명革命, 추상抽象, 교양敎養, 문화文化, 절대絶對, 자본資本, 국민國民, 고전古典, 헌법憲法, 지식知識, 경제經濟, 민족民族, 철학哲學, 이성理性, 비평批評, 해방解放, 시장市場, 방법方法, 자연自然, 공화共和, 이론理論, 사상思想, 시간時間, 세계世界 등...”이들이 모두 일제가 만든 새로운 근대 한자어임을 우리는 의식하지 모한 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은 분명 조선어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말글이 아니요, 이것은 중국에 기반을 둔 중화적 세계라는‘관념적’ 언어도 아니요, 이것은 가장 많이 회자되는‘민족’이니, 아니‘국민’만 보더라도 일제의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감염된‘전체주의적’언어다. 그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 감염된 한자어를 기반으로 한 전혀 다른 강고한 식민권력의 언어가 일상화되고, 이에서 크게 나아가지 모한 한글맞춤법에 대해 민중의 삶에 기반한 유물론적이고 현실주의 언어관을 지닌 임화는‘조선어학회류의 관념론’(‘언어의 마술성’)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먼 당시 조선어학회의 문자혁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계층이 대부분 일본 내지에 가서 교육을 받고 온 중류사회의 지식인들(교사, 언론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회적으로 쓴 말이 바로 “표준말은 현재 서울의 중류사회에서 쓰는 말로써 한다.”(한글맞춤법 총론 2항)는 조항이 아니었던가. 이것은 분명 저 스피노자의 말(<에티카>)대로,“덕의 첫째가는 기초는 자기 존재를 보존하는 것”이라는 불변의 명제를 증명하는 사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요는 현재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말이 결코 조선의 민중들의 언어와는 괴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글맞춤법의 혁명은 미완의 상태에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그 현실주의적 언어관으로,

“근대 시민계급의 문화적 지배 수립에 있어도 그들의 민족국가의 확립과 한가지 민족어의 통일-표준어의 확립, 봉건적 격리의 유물인 방언의 소멸을-성취한 것이다. 그러나 이 통일어=표준어란 사실은 시민 자신의 계급적인 언어를 일반 국민의 형식으로 일반화시킨 데 불과하다.”

-‘언어의 마술성', 소명출판

"......이 두 가지의 확립의 표준과 준거점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현실생활 가운데서 대다수 인민이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다.”

-‘예문의 융성과 어문정리', 소명출판

라며 랑그보다 빠롤을 중시하고 김동인의 단편, 이광수의 <무정> 등이 이룬 근대적 언어혁명을 평가하는 가운데서도 최서해, 특히 일제하 조선문학 최고의 성취를 이룬 이기영의 <고향>을 크게 주목하고 제대로 평가한-왜냐하먼 그것은 무엇보다 조선 민중의 일상에서 채취한 생생하고 리얼한 풍속미, 비속미를 함께 갖춘 위대한 현실미를 지닌 조선 최고의 문학적 성취였기 때문이다-탈근대언어사상가로서, 굴강한 의지를 지닌 궁핍한 시대의 조선문화의 파수였던 임화의 위상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결론삼아 하는 말이지만, 그대 한글학자, 한글운동가여! 훈민정음, 한글 코스프레에 능한 국뽕 사제들이여! 철지난 영웅만들기에 급급한 것은 무엇이고, 빌어먹을 현실순응주의에 눈깔이 삐지 않았는가. 그대들이 자랑하는 조선의 언어가 환골탈태하기 위해서 할 일은 먼저 오늘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한 조선의 참혹한 죽음으로서의 자본주의 현실을 주목할 일이고, 그런 그들이 마주한 참혹한 현실언어로서의 파토스적 감정에 주목할 일이고, 무엇보다 이 땅의 언어로 낳은 이땅의 열매로서의 영롱한 조선의 철학을 구워내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난 그렇게 본다 끝.

*보다 자세한 것은 졸저 <청년 임화>를 참고해 주기 바란다.

*추신: 이상으로 나의 한글에 대한 해묵은 소견을 소상히 밝혔거니와, 훈민정음 연구와 한글 운동에 헌신적으로 투신하고 있는 김슬옹 박사님과 이대로 선생님에 대한 인격모독은 추호도 없으며, 다만 한글의 발전을 위한 뜨거운 충정에서 비롯된 격한 에너지의 발산으로 보실 줄 믿는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참고> 늘샘 김상천은 형태소에 기초한 근대 표준 어법이 부르주아 중심의 획일적인 언어 표현 양식이자 문화다양성을 해치는 비민주적인 잔재로 규정해 현실음을 중시하는 대중서사, 대중평자시대를 역설하는 문예비평가입니다.

글 가운데 하면(->하먼), 겠(->것), 못(-> 모), 어떻게(->어티케)로 표현하오니 참고하길 바랍니다.

김상천 주주  critic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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