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부모세대'라는 근본문제
숙소는 북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에 정하였지만 행진코스는 교외지역을 경유하면서 나아갔다. 덕분에 작은 주거도시에 살고있는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서남향의 비탈에 와이너리가 있다. 햇볓을 잘 받는 이런 건조한 비탈밭은 좋은 와인포도가 생산될 필요조건이다. 필자가 예전에 살펴본 세계적 와이너리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명품 포도밭은 물을 끼고 있는 동향 내지는 동남향 비탈지에 많은 편이다. 떠오르는 매일아침의 햇살이 새벽 이슬을 걷어내면서 포도송이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요는 외부로부터의 적절한 자극이다. 무언가 제대로 결실을 맺으려면 그러한 자극이 보약이다.
마을 지나면서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팜플렛을 나눠주면서 설명하니 영어를 잘 알아 듣는다. 발음은 필자보다 더 낫다. 이것저것 많이 묻는다. 걸어서 온 것, 앞으로 갈 것을 설명하니 감탄연발이다.
아이들이 먼저 나그네와 셀피를 찍기 시작한다. 필자는 배낭에 갖고 다니는 지도를 꺼냈다. 이번 유럽순례를 위해 다시 만든 작은 사이즈의 순례지도다. 아테네출발때 꺼낸 이후로는 처음이다. 아이들도 이 사진을 찍어갔다. 그들에게 무슨 기억으로 남을까.
넉넉하게 쌓아 놓은 장작과 새로이 짓고 있는 건물. 이를 보고 있자니, 우리가 사용해온 온돌난방 방식이 생각났다. 유럽의 벽난로나 연통방식으로는 열손실이 크다. 온돌은 최소한의 장작으로도 밤새 뜨끈하게 잘 수 있는 전통적인 난방방식이다. 요즘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많이 채용하고 있다고 한다. 기후위기시대에 지구촌에 널리 공유되면 좋겠다. 특히 겨울이 긴 지역에서는. 필자도 이즈음 온돌을 그리워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편리만을 편협하게 추구한 나머지, 우리세대는 거의 영구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핵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
핵발전소는 아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존재다.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부모세대의 자세를 그대로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아이들은 나중에 생각할 것이다. '우리 부모도 우리에게 이런 강요를 했으니 우리도 아이들에게 그런 짓를 해도 돼!' 바로 이 문제가 무엇보다 크다. 이런 식으로 내려가면 인류는 자멸을 피할 수 없다.
원전은 인류의 양심마저 파괴하는 존재다. 우리는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무책임하게 낳은 핵쓰레기의 처리에 대해 두고 두고 후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이 무렵 길가에서 만난 주민들중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나그네를 보면서 중국인이냐 하고 확인하는 이들이 있었다. 사우스 코리언이라고 하니 안심을 한다. 상황이 심상찮다. 이 바이러스의 문제는 잠복기에도 전염이 된다는 것. 그래서 지구촌이 좁을 지경으로 퍼지고 있다. 필자의 순례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
편집: 이원영 객원편집위원
(글쓴이 이원영은, 국토미래연구소장이자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 대표로서, 주로 도보행진을 통하여 탈원전운동 및 핵폐수투기저지운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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