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크의 무장투쟁이나 카탈루냐의 독립투쟁을 잠재운 것은 무력에 의한 진압이 아닌 화해와 타협, 상생이었다.진보의 가치로 과감하게 지역과 계층의 통합을 통해 스페인의 단결을 추구한 것이다.

바르셀로나 도심에 걸려 있는  에스텔라다(estelada)카탈루냐 독립 상징깃발(하). 카탈루냐 주기(상)/ 사진출처: 필자
바르셀로나 도심에 걸려 있는  에스텔라다(estelada)카탈루냐 독립 상징깃발(하). 카탈루냐 주기(상)/ 사진출처: 필자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이 수해 지역 발렌시아 파이포르타를 찾아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출처: 한겨레 2024.11.4.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이 수해 지역 발렌시아 파이포르타를 찾아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출처: 한겨레 2024.11.4.

군림하는 국왕

20여 일 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최근 유럽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특히 스페인 내전 관련 소설 등을 감동 깊게 읽었다. 특히 카탈루냐에서 조지 오웰의 흔적을 살피고 ,우리 역사와 비교하며 스페인의 역사, 정치 현실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마침 발렌시아에 묶었을 때 스페인 역사상 최악의 대홍수가가 났다. 호텔방 TV는 홍수 뉴스특보로 도배를 했다. 국왕 부부가 성난 수해 피해 국민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고 진흙 세레까지 당하는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스페인 국왕은 현실 사회 정치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카탈루냐 분리독립이나 지브로 올타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페인 헌법상 국왕은 스페인을 대표하고 군의 최고 통수권자이다. 스페인만의 독특한 역사 문화적 배경이 스페인의 정치문화를 만들고 있다

떠도는 카탈루냐 공화국

지난 8월 수배, 도피, 망명 중인 카탈루냐 공화국(지방정부)의 전 수반 카를레스 푸지 데몬 Carles Puigdemont이 바르셀로나를 깜짝 방문하여 의회 연설을 마치고 사라졌다. 스페인 경찰은 범법자 카를레스 푸지 데몬을 체포하는데 실패했다. 도망 중인 그는 올해 지방의회 선거에서 카탈루냐 의원으로 당선되어 주의회 의원 신분이다. 푸지 데몬은 2017년 스페인 중앙정부가 극렬 반대하는 카탈루냐 분리, 독립 국민투표를 추진하던 카탈루냐 주 정부 대표였다. 그는 사법당국의 체포를 피해 국외로 망명해 아직까지 해외를 떠돈다. 2019년 스페인 최고법원은 카탈루냐 독립을 추진하던 주 정부 인사들을 유죄 판결했다. 정치에 불간섭을 원칙으로 하는 국왕이 카탈루냐 분리독립운동을 비판했다. 유죄 판결 이후 카탈루냐는 이에 항의하는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막아서는 독립선언

스페인에 있어 카탈루냐와 바스크 분리독립 문제는 오래된 골치거리였다. 7~8년 전만 해도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문제는 전 세계적 관심사였다. 카탈루냐 지방정부는 2017년 카탈루냐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선포도 했다. 실제 카탈루냐 공화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한 나라도 있었다. 스페인 중앙정부로서는 아무리 역사적 배경이 있고 지역주민이 원한다 해도 국가가 쬬개지는 것을 방기할 리가 없는 것이다. 바스크 지역의 경우도 분리독립을 추진했고 한때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 조직도 있던 지역이다. 스페인 중앙정부가 카탈루냐 지방정부의 분리독립 국민투표와 독립 선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주 정부 고위 책임자를 체포,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우리와 같고 다른 점

스페인 역사에서 카탈루냐와 바스크는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카스티야 레온 지역과 차별되는 지역정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남한의 5배 이상 되는 영토이지만 인구는 우리나라 남한보다도 적다. 같은 나라라 하지만 역사적 배경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들이 존재한다. 오랜 세월 대립, 반목하고 심지어 참혹한 내전을 치르고 그 후과로 학살과 탄압, 차별, 그 고통의 세월을 지고 산 지역들이 엄존하는 것이 스페인이다. 역사, 문화, 언어에 차별성으로 민족주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편 우리는 영토도 작고 5천 년 같은 역사, 같은 언어를 사용해온 단일 민족으로 스페인과는 역사, 문화적 배경이 크게 다르다.

그러나 좌우 이념 대립, 참혹한 내전에 의한 학살과 탄압, 지역감정에 의한 상처가 엄존하는 현실은 우리랑 같다. 이데올로기의 대립, 전쟁의 야만성이 부른 참혹한 상황은 헤밍웨이의 대작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의 찬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탄생시켰다. 한반도 분단체제 아래에서 발생한 제주 4.3,  광주학살을 소재로 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작품도 궤를 같이한다.

​그렇지만 스페인 내전은 2차대전 이전의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 간의 전쟁이었고, 한국전쟁은 전후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한 후 그 질서를 지켜내고자 하는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만일 파시스트 프랑코가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했다면 2차대전이 발생 안되었을 수도 있고 따라서 냉전구도에 의한 한반도 비극이 잉태되지 않았을 수 있었다.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체제가 남긴 정전체제가 해체되지 않아 핵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엄혹한 환경이라는 점에서도 스페인의 내부 갈등과는 비교가 안되는 상황이다.

   산체스 스페인 총리 연임 성공/ 사진출처: 한겨레2023.11.17​
   산체스 스페인 총리 연임 성공/ 사진출처: 한겨레2023.11.17​

사회 노동당  총리의 역할

베드로 산체스 스페인 집권당 사회노동당(사회주의 노동당:psoe) 총리는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 받은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주 정부 인사들을 전격 사면 조치했다. 산체스 총리랑 사회노동당은 수도 마드리드가 본산이다. 사면조치에 대해 스페인 대부분 지역 국민들은 극렬한 반대 시위를 전개했다. 카탈루냐 와 바스크를 제외한 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등 많은 지역의 국민들이 산체스 총리의 카탈루냐 범법자들에 대한 관용, 사면 조치에 저항했다.

프랑코 치하에서 탄압받던 스페인 사회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프랑코를 지우고, 카탈루냐를 포용하고 대화, 협력, 연대한 것이다. 사회 노동당은 스페인 내전 당시 인민전선의 한 축이었으며 바르셀로나를 거점으로 연대하던 진보세력의 동지였다. 카스티야의 오랜 중심지였던 마드리드가 내전 당시 반파시스트 전선의 수도였던 이유이다.

스페인 사회 노동당은 프랑코 독재 시절 해외로 떠돌다가 스페인 민주화 이후 활동을 시작했다. 집권 이후 프랑코 치하의 탄압, 역사왜곡, 희생된 민주인사의 명예를 복원 시켰다. 프랑코의 무덤까지 파 이전시켰다. 

산체스 총리는 카탈루냐 출신이 아님에도 국민의 화합과 상생, 민주, 보편적 인권을 선택했다. 공산당 인사도 내각에 참여시켰다. 산체스 총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과 학살을 비판하고 미국, 프랑스 등 서방 선진국(G7)국가들이 인정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더 나가 남미의 트럼프라는 아르헨티나의 밀레이와 각을 세우고 아르헨티나 주재 스페인 대사를 본국으로 초치하기도 했다.

​프랑코 사후 스페인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국민적 민주역량, 국왕의 민주주의 수호 의지, 카탈루냐, 바스크 지역의 주민의 진보 의식의 고양과 무관하지 않다. 프랑코 독재 치하에서도 카탈루냐, 바스크 지역은 끝없는 민주화 투쟁이 이어졌었다. 바르셀로나가 사회 노동당과 이념적 궤를 같이하기에 카탈루냐 분리독립 세력과 대화와 타협이 가능했던 것이고 지역주의를 넘어서 인간 존엄, 사회정의의 이념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카탈루냐 독립 세력 사면 논란…야당 대규모 반대 시위 사진출처: 한겨레 2023-11-13
카탈루냐 독립 세력 사면 논란…야당 대규모 반대 시위 사진출처: 한겨레 2023-11-13

 

사라진 카탈루냐 분리독립 만세

작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카탈루냐 의회는 카탈루냐 지역당이 아닌 중앙정치의 사회 노동당 계열이 다수당이 되었다. 분리, 독립 주장이 사라졌다. 카탈루냐 독립 좌파당의 세력이 축소되었다. 다시 파시스트 가 민주와 인권을 탄압하고 카탈루냐를 억압, 차별하지 않는 한 카탈루냐 독립만세는 부르지 않을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진보의 메카이다. 사회 노동당과 카탈루냐는 하나로 가는 중이다.

바르셀로나 전 시장은 주거복지운동, 시민인권, 기후환경운동을 가열차게 전개하던 시민운동가 출신이었다. 재선을 하고 기후 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괄목할 만한 조치를 이끌어 전 세계 도시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의 젊은 철학자 사이토 코헤이는 그의 명저에서 아다 콜라우(ada collau) 전 시장을 겁 없는 도시(fearless city) 바르셀로나 시장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사회 노동당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지역 좌파 정당 출신인 아다 콜라우가 3선에 실패했다. 대신 psc(카탈루냐 사회당 )의 진보 시장(jaume colboni)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화해와 상생, 그리고 역사청산

산체스가 이끄는 스페인 사회 노동당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1당을 내주고 진보세력, 카탈루냐 지역 당들과 연대하여 연립정부를 끌고 있다.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반이민자 정서로 스페인 vox 등 극우세력이 부상하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 이태리의 이태리 형제당, 독일의AFD 등 폭넓게 극우가 약진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함에도 반파시즘 연대로 유럽은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있다. 스페인이 국가의 분열을 막고 화합, 연대를 성사시키는 것은 법과 힘을 앞세운 강력한 통치에 있지 않다. 치열했던 바스크의 무장투쟁이나 카탈루냐의 독립투쟁을 잠재운 것은 무력에 의한 진압이 아닌 화해와 타협, 상생이었다. 진보의 가치로 과감하게 지역과 계층의 통합을 통해 스페인의 단결을 추구한 것이다.  짧은 스페인 여행을 통해 몸으로 공부한 내용이다.

내전의 역사를 공유하는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정전체제, 전쟁 위험 속에 살고 있다. 남과 북이 분단된 속에 동, 서로 나뉘고, 자산과 소득에따른 신 계급으로 분열에 분열을 하고 있다. 또한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더이상 민주주의 후퇴는 없을 줄 알았지만 정치검찰과 그 사법카르텔에 의해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가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다시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수구 반민주, 반평화 카르텔을 퇴출시키고 진정한 민주적 보수와 진보의 정치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산체스 총리가 스페인 현충원에 묻혀있던 파시스트 프랑코 시신을 파내 역사 청산을 했듯이 우리도 반평화, 반민주 세력을 청산하고 민주주의, 남북화해, 평화체제를 세워야 한다.

편집 : 심창식 편집장, 양성숙 편집위원

김영수 주주  kimy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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