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冬至) / 신덕룡
폭설이다. 하루종일
눈이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이 지워졌다.
눈을 감아도 환한 저 길 끝
아랫목에서 굽은 허리를 지지실 어머니
뒤척일 때마다 풀풀, 시름이 날릴 테지만
어둑해질 무렵이면 그림자처럼 일어나
홀로 팥죽을 끓이실 게다.
숭얼숭얼 죽 끓는 소리
긴 겨울밤을 건너가는 주문이리라.
너무 낮고 아득해서
내 얇은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눈그늘처럼 흐릿해서 들여다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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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4절기 중, 12월 하순에 있는 ‘동지’(冬至)입니다. 밤이 가장 길고 한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지요. 태양이 하늘에 떠있는 시간을 기준 삼아 만들어진 4계절의 절기 중에 ‘춘분(春分), 하지(夏至), 추분(秋分)’이라고 하면 그다지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동지’라고 말하면 바로 팥죽이 떠오릅니다. (하긴, '하지 감자'가 있기는 하네요.~^^)
신덕룡 시인의 ‘동지(冬至)’라는 시를 읽어보면, 가족들이 무탈하게 기나긴 겨울 한철을 잘 보낼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으로 동짓날 전날 밤을 새워 팥죽을 끓이시던 고향 집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시인은 폭설이 내려 앞길이 보이지 않는, 눈쌓인 고향길을 밟으며 정겨운 고향집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훤하게 보이는 고향길 끝에 있는 오래된 집 아랫목에는, 아마도 어머니가 굽어진 아픈 허리를 지지고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 어두운 밤이 되면, 조용히 여기저기 쑤시는 몸을 일으켜 썰렁한 부엌으로 내려가 동지 팥죽을 끓이시겠지요. 가마솥에서 팥죽 끓어 오르는 소리가 ‘숭얼숭얼’ 들리는 듯 합니다. 그 소리는 다름아닌, ‘자식들이 기나긴 겨울을 무탈하게 보내기’를 하늘에 비는 늙으신 어머니의 주문(呪文)과도 같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 입속으로 중얼거리시던 기도 소리는 이제 불효(不孝)한 시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눈으로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시인은 예전 동짓날을 맞아 어머니 생전(生前)에 고향집을 찾아가던 눈내리던 그 날을 회상하며 이 시를 썼는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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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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