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그를 찾는다.
왜 그를 찾을까?

(출처:필자)
(출처:필자)

사람들을 만나면 대뜸 묻는다
요즘 뭘 하고 지내세요
묵묵부답 상대를 본다. 특히 할 말이 없다
다시 쳐다보며 무슨 재미있는 일 있으세요
나는 빙그레 웃고 먼 산을 본다
별스럽게 하는 일도 없지만 내세울 것이 없으니 할 말도 없다
무슨 일 있어요 또 묻는다
뭘 하기 위해 사는 건가, 살기 위해 뭘 하는 건가, 그게 그건가
그냥 건네는 인사말인 줄 알지만 참 딱 할 때가 많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상대방은 다짜고짜 묻는다
나이가 몇 살입니까
멀뚱하게 쳐다본다
고향이 어디십니까
점점 더 심해진다
자기소개는 말 한마디 않고 계속한다
직업이 무엇입니까
취조 하는 것인가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형제자매가 몇 명입니까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문제인가, 현재 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별 상관 없는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말할 것도 없지만 말하고 싶지도 않다
대부분 사람들이 다 그렇다
아주 당연한 듯이 그렇게 묻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러함이 없다
그저 한가함과 느긋함이 있을 뿐이다
무엇을 묻거나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왔냐고 쳐다보지도 않고 가느냐고 인사하지도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이것저것 서두르지 않으므로 정신과 마음이 혼미하지 않다
그와 함께 하면 심신이 평온하고 천지만물을 가만히 볼 수 있다

보잘것 없이 초라하고 초췌할 때도,
자존감이 넘치고 자랑스러울 때도 찾는다.
그를 찾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어찌 보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내가 어떤 처지라도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왜 왔냐고 묻거나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더구나 나의 외모와 치장 및 상황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난 그를 좋아하고 즐겨 찾는다.
그는 내 휴식처요 내 안식처다.
그에게 가면 심신이 편안하고 정신과 영혼까지도 평화롭다.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준다.
사실은 내게 무관심하고 정도 없다

새싹이 돋고 꽃 피는 봄날에도,
비 오고 바람 부는 여름날에도,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날에도,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날에도,
그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맞아 준다.
1년 365일 사시사철 그는 변함이 없다.
내 처지의 곤궁과 풍족,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를 가리지 않는다.
특별히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낮이나 밤이나 상관 없이 찾는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땐 왜 기분이 좋냐 묻지 않고,
내가 우울할 땐 왜 우울하냐고 묻지 않고,
내가 슬플 땐 왜 슬프냐고 묻지 않는다.
그는 나의 상태와 상황에 대해 관계없이 일관되게 나를 대하고 맞이한다.
어떤 상황 하에서도 나를 반기거나 홀대하지 않는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그냥 그대로 둔다
그래서 나는 그를 무한히 신뢰하고 좋아한다
나를 대하는 성정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를 따르지 못한다.
그는 나의 진정한 이웃이요 내가 존경하는 스승이며 나의 사랑하는 벗이다.

그의 표정은 항상 일관된다.
꾸미거나 단장하지 않는다
표정이 없다고 할까 무정하고 무심하다
나의 방문을 기뻐하거나 나빠하지 않는다.
더구나 반기거나 기다리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 찾아도 늘 그대로고 무표정하다.
내가 좀 뭐라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고 응답하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나 한없는 은혜를 베풀지만 보답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아는 자만이 안다

외부적인 것에 전혀 영향 받지 않고 나를 맞아주고 대한다.
그렇다고 나를 응원하거나 격려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를 믿고 좋아한다.
그에게 고맙고 감사하지만 그런 것에 개념치 않는다.
때로는 내가 푸념하고 얼굴을 찡그리고 불량한 태도를 취해도 그는 다 받아 준다.
받아 준다기보다 그냥 놔둔다.
그는 나의 어떤 언행에도 개의치 않고 대접과 대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의 부족함과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지속된다.
그와 같은 성향을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지만,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 없다.
그가 아니라 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세상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푸대접하더라도, 오직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난 족하고 행복하다
세상은 늘 시끄럽고 복잡하다
사람들이 만든 현실은 혼돈과 혼란 그 자체다
사람들은 그렇게 수시로 변하고 자기 권익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그런 양태에 한마디 할 수도 있으련만 무관심하고 관여하지도 않는다
그의 관용과 포용은 무한하다.
초연하다 할까? 초월자라 할까?
그에겐 희노애락이 없으니
신의 경지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결 같을 수 있으리라

그의 한없이 높고 넓은 마음이 부럽기는 하지만 나는 그를 따를 수는 없다.
다만 그를 본받으려 노력할 뿐이다
인생은 생각이 있고 꿈을 꾸는 여정과 같다
아침 동편에 해가 뜨는가 하면, 중천에 둥실 뜬 한낮이 되고, 어느새 서산 너머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든다
사는게 뭔지 삶의 굴레는 어디까지인지 어리석게 묻지만 오늘도 하루가 잘 지나갔음이 고맙고 감사하다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다
오늘도 그와 함께 한다

편집:김태평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자연의 순리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