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 이루어 가는 평화
1월 3일, 50년 동안 살았던 캐나다 몬트리올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사회 정의에 헌신한 인류학자였다. 인류학이라는 학문과 60년 이민 생활의 경험을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으며 살아갔다. 캐나다 연방 정부 CIDA에서 제3국을 돕는 일에 헌신하며 약자들에게 회복력, 연민, 불굴의 정의 추구라는 깊은 메시지를 남겼다. 따뜻한 미소와 헌신적인 삶의 태도를 지닌 그녀는 친구와 동료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다. 독서 클럽 활동을 통해 배움에 대한 열정을 나누었고, "엿장수 구학영" 번역 등 역사적 불의를 밝히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인류학자 Eric Schwimmer와 몬트리올에 정착하여 오타와에서 일했던 그녀는 요리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따뜻함을 나누었다. 요리는 그녀에게 문화적 고립과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녀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이태리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결혼한 아들 Felix 가족은 주로 이탈리아어로, 몬트리올에서 태어나 이웃에 사는 남자 친구와 결혼하고 퀘벡 대학교 교육 철학 교수가 된 딸 Marina 가족은 주로 프랑스어로 대화한다. 미국과 호주에서 온 가족들이 모이자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한쪽에서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래는 박유진의 영문 추도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박유진입니다. 옥경님의 동생 중 막내입니다. 옥경님은 열 살 어린 저를 "내가 오랫동안 업고 다녔던 동생이야!"라고 말하며 늘 즐거워했습니다.
반아님과 민들레 북클럽의 말씀은 옥경님의 정신, 용기, 연민, 그리고 삶을 아름답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옥경님의 삶의 다른 한 측면, 즉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일선님과 마찬가지로, 옥경님은 인생 후반부에 깊은 치유와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옥경님은 진실과 용기로 이 여정에 들어섰고, 갈망했던 깊은 치유와 이해, 변화를 찾는데 성공했습니다. 아들 펠릭스도 한국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의 얼굴에서 빛나는 광채를 보았다고 언급했습니다. 옥경님은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가장 큰 업적은 얼굴과 눈에 드러난, 그녀 스스로에게서 나온 빛나는 광채이었습니다.
제주 다이빙 여성에 관한 옥경님의 책은 혹독한 환경 속 제주 여성들의 힘에 대한 사랑과 한국의 깊은 정신 속에서 고향을 찾는 마음을 결합한 책입니다. 그 책은 자녀, 손자,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가장 힘든 순간을 마주할 때,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존재하는 내면의 힘이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본인처럼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메시지입니다.
옥경님은 일찍 집을 떠났고 중년이 되어서야 더 깊은 영적 이해를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적 코치이자 멘토이며 직업상 리더십 교육자입니다. 옥경님의 인생 후반기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큰 특권이었습니다.
아래는 옥경님의 영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 여러분, 너무 오래 저를 슬퍼하지 마세요! 저를 축복해주세요. 두려움 없는 정신, 용기, 진실에 대한 사랑, 모두를 위한 정의를 축복해주세요. 이 땅에서 실천되는 보편적인 사랑의 정신을요. 저와 함께 축복해주세요. 그 안에서 저와 하나가 되어주세요.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그동안 종종 냉정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분과 의견이 달라서라기보다는, 저의 부족함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을 더 깊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아픔이 남아있는 육신에 갇혀 있을 때, 저는 어떻게 더 잘 사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해심이 부족했습니다. 지금은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이해합니다.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모든 사랑과 이해, 감사를 드리지 못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후회스럽습니다. 과거의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언니의 장례식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보낸 일주일은 우리 모두에게 내면의 치유의 시간이었고 큰 축복이었다. 우리 사남매는 서로를 냉철하게 견제하며 살아왔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의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물리적, 정신적으로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가족 전체를 온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과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모임을 통해 목격하게 되었다.
우리는 반복된 이민 생활 속에서 한국 전통의 폐단과 분단이 우리 가족에게 남긴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겨운 과정을 거쳤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모두 격렬하게 부딪히고 갈등하며 몸부림쳤다. 언니는 일찌기 집을 떠났고 후에 퀘벡의 프랑스어권에서 살게 되었다. 토론토에서 30여 년 초기 이민자의 삶을 살은 어머니가 제주도로 역이민하면서 언니의 한국과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수 년에 걸친 삶의 예술 세미나를 통해 영성에 대한 이해와 내면의 치유를 경험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즈음 몬트리올에 거주하는 캐나다코리아연합회 김수해 회장과 인연이 닿아 함께 평양을 방문하면서 한국 근대사의 현장으로 들어섰다. 언니의 마지막 평양 방문은 작년 10월이었는데, 다녀온 후에는 생기가 넘치고 무척 행복한 모습이었다는 것이 몬트리올 친지들의 말이었다.
북한과 가슴이 단절된 사람들에게는 2024년 10월 언니의 평양 여행에 대해 발표한 것이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언니 자신에게는 인생의 정점을 찍는, 조국을 하나로 잇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있는 일이었다. 그런 후에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들을 활짝 피어난 사랑으로 감싸고 환하게 비춰주었다. 언니는 그렇게 평화가 되었다.
편집 : 김반아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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