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신하(臣下)’라고 썼지만 그건 왕조 시대의 용어, 요즘으로 치면 고위공직자(高位公職者) 정도가 무난하겠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제법 높은 자리에서 나랏일을 한다는 점은 같으니까요. 최근 벌어진 ‘내란(內亂)’ 사태와 그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수많은 ‘신하’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섬기던 주인을 지키겠다고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 ‘의리’ 있는 신하, 내가 상급자로서 잘못된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억울하게 처벌되는 부하들을 선처해 줄 것을 호소한 ‘의리’ 있는 신하. 저 ‘의리’와 이 ‘의리’는 왜 이렇게 다를까요.
고려 전기 문신 정항(鄭沆, 1080~1136) 선생은 <서상화(瑞祥花)>라는 제목의 칠언절구를 지으셨는데, 이 시는 《동문선(東文選)》 19권에 실려 있습니다. ‘서상화’는 ‘인동(忍冬)덩굴의 꽃’이라고도 하고 ‘동백(冬柏)꽃’이라고도 하지만, 글자 그대로 ‘상서(祥瑞)로운 꽃’이라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하기야 모진 겨울을 견뎌내고 새봄에 피어나는 꽃이라면 무엇인들 상서롭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상서 보니 기뻐라 가지 가득 봄이여 / 新祥喜見滿枝春(신상희견만지춘)
과연 오늘 아침에 반가운 손님 맞이하였네 / 果向今朝得好賓(과향금조득호빈)
꽃은 한 집안의 상서, 어진 이는 나라의 상서 / 花瑞一家賢瑞國(화서일가현서국)
누가 꽃 사랑 거두어 사람들에게 몽땅 옮길까 / 誰收花愛摠移人(수수화애총이인)
‘摠’은 모두 ‘총’, ‘移’는 옮길 ‘이’입니다. 너도나도 새봄에 피는 꽃을 손님처럼 반깁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여린 꽃, 그게 너무 대견하고 고마워서 그러는 것이겠지요. 오늘 아침엔 가지 한가득 꽃이 피었습니다. 모두들 박수 치며 꽃을 반길 때 시인 혼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렇게 겨울 이겨냈다고, 상서롭다고, 꽃에게는 박수 쳐주면서,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훌륭한 사람들에게 박수 못 칠 게 뭐람. 꽃 애지중지하는 것만큼만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 쏟고 돌보아주고 격려해 보라지. 이 나라에 얼마나 상서로운 신하가 많아지겠어. 그게 훨씬 더 중하지.’ 꽃구경하면서도 세상을 걱정하는 시인의 마음이었습니다.
정항 선생보다 후대에 태어나신 고려 문신 최해(崔瀣, 1287~1340) 선생은 <북으로 가는 악정 윤신걸을 보내며[送尹樂正莘傑北上]>라는 제목의 오언고시를 지으셨는데, 이 시는 《동문선》 제4권에 실려 있습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는 삶이여 / 人生一世間(인생일세간)
운명이란 하늘에 달려있는 것 / 有命懸在天(유명현재천)
궁함과 달함은 각각 자기 분수 / 窮達各其分(궁달각기분)
오직 현처럼 곧은 도가 귀하다네 / 惟道貴如絃(유도귀여현)
어찌할까, 대의를 굽히는 사람 / 奈何枉尋者(내하왕심자)
유유히 백 명 천 명씩이나 되지만 / 悠悠動百千(유유동백천)
선생은 내면에 믿는 바 있으니 / 先生中有恃(선생중유시)
외부의 어떤 것도 흔들지 못한다네 / 物莫外相牽(물막외상견)
바라건대 시종을 한결같이 지켜 / 願言一終始(원언일종시)
이름과 절개 모두 완전하시기를 / 名節兩俱全(명절양구전)
‘懸’은 매달 ‘현’, ‘枉’은 굽을 ‘왕’, ‘尋’은 찾을 ‘심’인데 여기서는 ‘여덟 자[八尺]’를 뜻하는 글자로 쓰였습니다. ‘恃’는 믿을 ‘시’, ‘牽’은 끌 ‘견’, ‘俱’는 함께 ‘구’입니다. ‘왕심(枉尋)’은 《孟子(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오는 말로 ‘이익을 위하여 올바른 도리를 굽히는 것’을 뜻합니다. 맹자의 제자 진대(陳代)가 맹자께 적당히 굽혀서 제후를 만나볼 것을 청하자 맹자께서 하신 말씀이, “무릇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편다는 것은 이익(利益)으로 말한 것이다. 만일 이익으로 말한다면 여덟 자를 굽혀서 한 자를 펴 이로울 경우에도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夫枉尺而直尋者, 以利言也. 如以利, 則枉尋直尺而利, 亦可爲與?〕”입니다.
이익과 도리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영원한(?) 고민거리입니다. 저 위에 나왔던 두 종류의 ‘의리’도 이익과 도리 사이에서의 선택이 달랐을 뿐입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는 이들에게 맹자께서 슬쩍 던져주신 말씀. “자신을 굽힌 사람이 남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경우는 없는 법이다.[枉己者, 未有能直人者也.]”
악정(樂正) 벼슬을 하던 윤신걸(尹莘傑, 1266~1337) 선생이 정치적인 이유로 미움을 받아 북쪽으로 쫓겨나는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전송하는 자리에서 전하는 최해 선생의 당부.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올바른 도리를 지키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익에 휩쓸릴지라도 악정만은 흔들리지 않으셔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잘 하고 계시지만 끝까지 그 곧음을 지켜 후대에 명예를 남기시기 바랍니다.’
이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글을 읽다가 혹 뜨끔하신 분들도 있을까요? 뜨끔하실 분들이라면 이미 올바른 선택을 하셨겠지요. 기록에 따르면 최해 선생도 성격이 강직하고 타협을 몰라 조정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말년에는 농사를 지으며 저술에 힘쓰셨다고 하는군요.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비겁한 놈들은 득세하고 올곧은 놈만 맨날 쫓겨나는 게 이 세상인가 봅니다.
편집 : 조경구 객원편집위원, 히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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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선(東文選)》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지어진 우수 작품을 모은 선집이며, 이미 번역되어 한국고전종합DB에 올라 있는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귀한 내 것을 내 것인 줄 모르고 쓰지 않으면 남의 것이 됩니다. 이 코너는 《동문선》에 실린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잊을 뻔했던 내 것을 되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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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상한 세월이 무서워
서둘러 꽃잎 떨구고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