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내란 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권력을 가진 자가 일으킨 희대의 사건으로 나라의 모든 것들이 막혀버렸다. 헌법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뒤엎으려 한 대역죄이며, 국가 질서를 무너트린 반란이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가 연결점을 찾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 잠겨 있다. 나라가 문제가 생기니 어느 순간부터 나의 신체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나의 신체 상태는 나라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비상계엄으로 나라가 내란 상태에 빠지고 2개월이 지날 즈음에 정맥 혈전증에 걸린 것이다. 정맥 혈전증은 피떡이 정맥을 가로막아 생기는 것이다. 혈전으로 인한 것이지만 정맥이 이를 허용한 것이니 정맥의 반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피를 응고시키는 효소와 피의 응고를 막는 효소 간의 균형이 어느 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신체의 정상적인 시스템을 무너트린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반란이 아닐 수 없다.
병원에 입원하여 혈전 용해주사와 약을 투약한 지도 이제 1주일이 지나갔다. 팔뚝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다. 마치 난폭한 누군가에게 심한 고문을 받았거나 앙심을 품은 광기 어린 어떤 여인에게 물어뜯기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팔뚝 정맥의 여기저기에 간호사가 정맥주사를 놓거나 피를 뽑느라 생긴 현상이다. 팔뚝뿐만이 아니다. 손등에도 시퍼런 자국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팔뚝에 있는 혈관이 잘 안 잡히면 간호사는 쉬운 길을 택한다. 손등에 있는 정맥은 주사바늘을 쉽게 찌를 수 있다. 대신 환자는 괴롭고 불편하다. 손등 정맥에 주사바늘이 꽂혀 있으면 사소한 동작들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간호사들은 환자 팔뚝의 정맥이 시퍼렇게 멍이 들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환자의 정맥에 주사를 정확히 찔러 넣는데 신경을 쓸 뿐이다. 그래도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으려면 모든 걸 감내해야 한다.
위헌적인 비상계엄으로 인해 윤석열이 파면되었지만 국민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듯이 나에게 불쑥 찾아든 정맥 혈전증은 팔뚝의 정맥에 시퍼런 멍자국을 남겼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간호사가 곤하게 자고 있는 나를 깨운다. "환자님, 일어나세요. 링거 주사 맞을 시간입니다. " 나는 눈을 비비며 얼른 오른팔을 내민다.
그런데 왜 하필 새벽에 주사를 놓는가. 하루에 4번씩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6시간에 한 번씩 주사를 맞아야 하니 새벽 시간을 피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오후 3시와 9시, 그리고 오전 3시와 9시. 이렇게 주사를 맞는다. 그러니 새벽시간에 맞아야 하는 건 말하자면 최적의 시간배분으로 말미암은 결과이다.
링거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을 보다 보면 스르르 잠이 든다. 고요한 병상에서 새벽에 깼다가 다시 드는 잠은 꿀처럼 달다. (2월 병상일지)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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