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최자영교수 소개>

옮긴이는 서양 고대사의 한 축인 그리스사 전공자 최자영 교수다. 경북대학교를 나와 그리스 이와니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역사고고학 PhD, 의사학 MD)를 받았다. 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아, 현재 한국의 헌법과 법률에도 다소간 지식과 식견(온에 연재하고 있는 국회무용론은 바람직한 국회 정립을 바라는 강한 은유-메타포)을 갖추고 있다. 언어의 마술사로 알려진 데모스테네스 변론의 완역 출간에 즈음하여 한겨레 본지에 서평이 실렸으며, 최자영교수는 한겨레·온의 필진이라 여기에 소개한다.

출처:한겨레신문.데모스테네스(전 7권), 데모스테네스 지음, 최자영 옮김, 나남, 각 권 2만~3만원
출처:한겨레신문.데모스테네스(전 7권), 데모스테네스 지음, 최자영 옮김, 나남, 각 권 2만~3만원

덧붙임: 한겨레 본지(2026.4.25. 조일준기자)의 서평입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주소: https://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1194208.html

 

<번역서 데모스테네스 약술>

고대 아테네의 고명한 변론가 데모스테네스 작품의 완역에 부쳐(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옮긴이 최자영)

고대 아테네 고명한 변론가 데모스테네스(384~322 B.C.)의 작품이 우리말로 완역되어, 한겨레신문 세상의 “모든 텍스트”에 소개되었다(조일준 선임기자, 2024.4.25.). 최자영 한국외국어대 겸임교수의 6년여에 걸친 노고의 결실이 전 7권으로 출간된 것이다. 최 교수는 그리스 국가장학생(1987~1991)으로 유학해 역사고고학박사 학위(1991)를 받은 고대 그리스의 정치와 법제 전문가다.

데모스테네스가 민회와 법정에서 발표했던 변론문들은 문학, 철학, 역사 등 인간의 사고를 거쳐 재생산되는 제2차 문헌이 아니라, 이해당사자 간의 논쟁을 직접 전달하는 현장의 언어인 동시에 당시 그리스 폴리스들의 모습을 생중계처럼 보여주는 ‘아고라(광장)의 언어’이다. 

최자영 교수에 따르면, “기득권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국민의 정치적 발언권이다. 데모스테네스 변론은 당시 그리스의 최고 의결기구이던 민회와 민중의 발언권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더욱 정치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처럼, 민회가 잘못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는 바로 정치가를 탄핵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뽑기만 할 뿐,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것은 반쪽 민주정치일 뿐, 완전한 민주정치가 아니다”,오늘날 한국 사회의 전도된 민주정치를 바로 잡으려면, 하향적 권위주의를 불식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강화로 민주정치의 근본을 다져야 한다”, “중앙 국회의 정당정치 만능의 권력구조를 타파하고, 지역분권과 지역정당을 활성화해야 한다”, “중앙 국회 중심의 내각제 혹은 책임총리제 담론을 탈피하고, 동시에 중앙집권의 획일적 시각에서 규정하는 ‘지역갈등론’을 시정하고, 오히려 각 지역의 고유성과 창조성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만치 민주정치의 앞날을 약속하는 것이다.

데모스테네스 번역본의 서문에는 고대 아테네 사회와 민주정치의 실태에 대해 우리가 흔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여섯 가지 사항이 소개되어 있다. 데모스테네스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당시 사회의 모습들은 이 같은 오류를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출처:한겨레신문.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의 대리석 흉상. 작가 미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출처:한겨레신문.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의 대리석 흉상. 작가 미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첫째, 고전기 아테나이에서는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획일적 가치관의 도덕이 최소화되었다. 도덕 기준은 다소간 상대적이었다. 예를 들면, 흔히 도덕, 윤리 등으로 번역되는 ‘에토스(ethos)’는 ‘바람직한 것’, ‘좋은 것’의 가치관을 함의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관습이라는 뜻으로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현상은 시민 민중의 민회가 모든 결정의 중심에 섰던 민주정체에서는 획일적 가치관을 강요할 수 있는 권력의 주체가 따로 없었다는 정치․사회적 환경에 기인한다.

둘째, 고대 그리스를 가부장제 사회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아테나이는 물론 다른 폴리스도 흔히 다소간 공동체사회였다. 각 가문 혹은 촌락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활공동체 내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공동체적 규제에 귀속된 점에서 그러하다. 토지에 대한 권리는 공동체에 귀속되었으며, 상속도 일정 범위 내에 남자가 없을 경우 여계(모친이나 딸)를 통해 이루어졌다. 여성도 경우에 따라 출신 가문의 상속권은 물론, 출가 시 지참금 형태로 재산권을 행사했다. 이 같은 사회․경제적 권리는 여성을 가문이나 폴리스 내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했고, ‘여성 시민(politis)’으로 명명했다.

셋째, 근대국가와 같은 정부(arche)가 존재하지 않았던 폴리스에서 시민권은 각 가정에서 적자로 인정됨으로써 성립했다. 온갖 권력의 주체가 중심에 있지 않고, 각 가정(oikos), 가문, 촌락 등에서 기원한다는 점에서, 아테나이 폴리스의 민주정체는 원심적 무정부(anarchia)의 권력구조에 입각해 있었다.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폴리스 공동체가 필요할 때 각 가정에서 비용과 인력으로 의무를 부담하겠다는 각오와 맹세를 통해 비로소 주어졌다.

시민의 자격은 권리에 우선하여 폴리스가 존립하는 데 필요한 각종 의무 부담의 주체가 됨으로써 성립한 것이다. 그 시민들이 민회에서 최고 결정권을 행사했고, 그 이상의 권위나 권력 주체는 없었다.정부와 같은 권력 주체가 없었던 점에서 이른바 무정부라고 명명할 수 있는 상태는 권력의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 ‘무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으로 구성된 민회, 혹은 추첨된 시민들로 구성된 민중재판소(dikasterion)가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권력과 권위를 누가 행사하는가 하는 문제이지, 질서 혹은 무질서의 담론과 무관하다.

넷째, 현재 흔히 회자하는 ‘공화주의’ 담론은 고대 아테나이 민주정체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공화’를 민주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양자는 기원과 담는 내용에서 큰 차이가 있다. ‘공화주의’란 민주적 다수결을 부정하고, 민중의 상식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심의(숙의)를 요구하고 대의체제를 지향한다. 그 대의제에 ‘시민’이라는 말을 붙여 ‘시민의회’라고 명명해도, 결국 그것은 ‘의회’의 일종으로 현재의 국회와 같은 속성을 갖는다.

민주의 담론은 소수가 구성하는 ‘의회’의 합리성이나 전문성 등이 아니라, 대의체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의 장치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그 궁극적 견제의 권한은 민중 시민 상식에 의한 다수결로 환원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얼마나 현명하게 결정하는지가 아니라, 권력의 오․남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견제하느냐가 관건이다. 잘못된 결정은 재고해서 수정하면 된다. 그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대중이 중우(衆愚)라면, 누구나 중우를 피할 수 없다. 이는 다수 소수를 막론한다. 수가 많고 적고에 따라 중우의 속성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다섯째, 민주정치가 단순히 다수의 통치라든가, 다수 민중은 무지하므로 현명한 최선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은 중우 이론의 모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치는 다수의 통치가 아니라, 부자가 아닌 빈민 민중(demos)의 중심이 되는 정치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민주정치(demokratia, 빈민정치)와 과두정치(혹은 귀족정치)의 차이점은 다수 혹은 소수의 수가 아니라, 빈자와 부자 양편 중 누가 지배하는가 여부에 있다. 가난한 동시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자유인이 지배하는 것이 민주정치(빈민정치)이다. 부자 및 귀족이 지배하고 동시에 이들이 소수라고 한다면 이는 과두정치(소수정치)이다. 민주정치의 본질은 다수가 아니라 빈자가 지배자인 것이고, 과두정치는 소수가 아니라 부자가 지배하는 것인데, 이때 다수와 소수라는 사실은 우연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현명한 최선자의 정치가 바람직하며 민중은 무지몽매하고 참주적 오만을 범한다는 개념은 오류이다. 더 현명한 최선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람 사이의 불평등을 전제하고, 그 불평등 가설은 권력을 장악하고 전유하는 데 이용되는 하나의 허상(이데올로기)이다. 현명한 이와 무지몽매한 이가 따로 존재한다는 인간 불평등 가설은 경제적 부와 정치적 권력에서의 불평등으로까지 확대되며, 사회 전반에 걸친 보편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허상으로 작동하게 된다.

민주의 실현을 위해 두 가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소수의 손에 권력이 있으면, 그 소수는 다수보다 더 부패하기 쉽고 매수당하기도 쉬운 것이 명백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권력이 집중될수록 부패하기 쉽고 견제하기도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권력은 가능한 한 분산되어야 한다. 권력의 집중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속물근성으로 인해, 쉽게 독재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섯째, 고대 아테나이에서는 민중의 민회(demos 혹은 ekklesia)가 최고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500인 의회(boule)는 민회의 하부 기관으로 결정권이 없었고, 민회의 결정 사항을 시행하고 감독하는 집행 기관이었다. 민주정치의 중심은 민중의 상식과 권력이 움직이는 민회에 있었을 뿐, 의회 등 다른 어떤 대의체제가 아니었고, 또 합리성, 전문성 등에 입각한 것이 아니었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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