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권력과 민주주의의 위기
합법 권력을 불법적으로 전복하고 탈취하는 행위를 쿠데타라 할 수 있다. 이는 국민 다수의 의지와 헌법 질서를 배반하는 범죄이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다. 권력이란 타인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힘이지만,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남용되고 부패한다.
우리는 비상계엄이란 친위 쿠데타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민주주의를 유린한 비상계엄 아래에서 선량한 시민이 학살당한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기리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도래했다.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희생과 투쟁 속에 성숙했고 발전했다. 권력의 속성상 민주적 통제, 주권자의 참여가 수반되지 않으면 권력은 폭력이 된다. 이 기회에 군부 쿠데타와 시민항쟁의 역사를 공유한 프랑스 역사적 사례를 돌이켜 보면서 공화정,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 국가폭력, 시민 항쟁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반복되었던 쿠데타 역사
근대 민주주의의 신호탄이었던 프랑스 혁명을 무너뜨린 것은 혁명을 실천하던 프랑스 군대였다. 절대왕정을 붕괴시키고 주권 재민의 공화국에 복무하던 나폴레옹이라는 장군에 의해 주도되던 그 군대는 공화국을 파괴하였다. 그는 군대를 동원해 의원들을 감금하고 1799년 11월 9일(브뤼메르(Brumaire)18일), 스스로 황제에 오르며 군사독재를 시작했다. 그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되면서 제1제정帝政은 끝났다.
반세기가 되기 전에 쿠데타의 비극은 희극으로 재연되었다. 1851년 나폴레옹의 친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3세)은 그의 삼촌처럼 12월 2일에 의회를 해산하고 의원들을 체포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삼촌과 조카가 같은 방식으로 쿠데타를 자행한 것이다. 이에 저항하던 시민들은 거리에서 무참히 학살당했다.
칼 마르크스는 이 사태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의 재판再版이라 명명하며, "역사적 사건은 한 번은 비극으로,또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라고 했다.
나폴레옹 쿠데타로부터 160년이나 지난 1961년 4·19 혁명으로 탄생한 후진국이던 한국의 민주 정부는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로 무너졌다. 이후 박정희는 3선 개헌과 유신헌법을 통해 영구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유신 체제는 민주공화정을 사실상 부정하는 친 외세 군사독재 정권이었다. 학생과 노동자, 시민들의 저항이 이어졌고, 결국 1979년 부하 김재규의 총탄으로 유신 체제는 끝났다.
그러나 50일도 지나지 않아 박정희 양아들을 자처하는 전두환 신군부가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 민주주의 후진국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실행되었던 것이다.
시민항쟁의 비극: 파리코뮌과 광주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유와 평등, 존엄을 추구하는 하늘 같은 존재이다. 억압과 탄압, 불평등, 빈곤, 생존의 고통은 저항을 부른다. 민주주주의, 공화정을 사람 세상의 원리임을 계몽 받은 시민은 자각한다. 그들은 살기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운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1871년, 나폴레옹 3세의 제정帝政 붕괴 이후 파리 시민들은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고 자치 정부를 구성했다. 재판관도 시민이 선출했으며, 공직자에게는 노동자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고 국민소환제를 시행했다. 외국인과 여성도 차별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 없이도 도둑 하나 없는 사회 질서를 유지했다. 그것은 완전한 민주, 인본사상의 발로였다. 자치와 윤리가 살아있던 이 공동체는 베르사유 정부군의 공격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5월 22일부터 29일까지 3만 명 이상의 시민이 학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1980년, 대한민국에서도 국민은 '서울의 봄'을 열망하며 민주화를 요구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비상계엄 해제와 민주 인사 석방을 요구한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시민들은 저항했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은 총기를 휴대했음에도 어떠한 약탈 도 없이 질서를 지키며 자발적으로 치안과 공동체를 유지했다. 5 ·18 광주는 헌법을 유린한 불법 권력에 맞선 정당한 시민 항쟁이었다. 이는 동학농민운동, 3·1운동,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같은 역사적 맥락에 있다. 이처럼 우리 민주주의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87년 유월 항쟁의 희생과 투쟁으로 민주공화정은 쟁취된 것이다.
프랑스는 파리코뮌의 비극을 딛고 제3공화정을 공고히 했고, 그 정신은 1968년 5월 68혁명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오늘날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파리와 광주는 시대와 장소, 결이 다소 달랐지만 본질적으로 민주, 인간 존엄, 민주공화정을 수호, 실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있다.
5·18 정신은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 헌법 수호, 공동체 윤리와 시민 자치의 가치 그 자체다. 이는 앞으로 헌법에 명문화되어야 하며, 민주공화국의 정체성과 국가 규범, 교육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시대착오의 친위 쿠데타, 그리고 내란 종식
쿠데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1세기 선진국에서 쿠데타가 발발했다. 그것도 친위 쿠데타란 내란이 터졌다.
광주항쟁과 87년 6월 항쟁 등으로 6공화국이 출범한지 40년 다 되어간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군사강국, 문화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친위 쿠데타) 이 선포됐다. 황당한 일이다. 시대착오이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를 일깨우게 한다.
친위 쿠데타, 12.3 비상계엄은 주요 국회의원 등 정치적 반대세력의 체포, 국회 무력화, 선관위 침탈, 언론장악 등을 계획한 것으로 헌재 재판에서 밝혀졌다. 역사에서 보던 쿠데타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80년 광주학살의 공포가 밀려온다. 노상원 수첩에 있는 광주학살을 뺨치는 잔악한 계획들은 제대로 수사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12.3 비상계엄은 국민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끔찍한 비상계엄, 광주 학살의 망령, 수많은 사람들은 그날의 트라우마, 내란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아무튼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파면되었다. 하지만 내란 수괴 윤석열은 석방되었고 내란범죄의 수사는 미진하며 내란 옹호, 동조세력이 활개친다. 친위 쿠데타를 옹호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훼 모욕하는 정치세력들이 곳곳에 활개치고 준동한다. 이제는 6·3 선거혁명을 통해 내란을 종식시키고, 진정한 민주공화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
편집: 김영수 객원 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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