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본 료칸(일본 전통 숙박 시설)에 묵은 적 있다.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있는 핵폐기물 처분장에서 일본 반핵운동가와 한바탕 집회에 참여할 예정이었고 근처의 작은 료칸을 찾았다. 변두리에 있어서 조용한 료칸의 다다미방은 깨끗했는데, 깔끔한 아침을 내어 주는 분의 정성이 고마웠다. 30대 남성으로 구성된 일원은 작은 사발에 퍼 주는 밥을 받았는데, 쌀이 좋아서 그런가? 과연 일본 밥맛은 기막혔다. 한데, 감질이 났다. 일본 사람은 이렇게 조금 먹나? 궁금해 하면서, 쑥스러움을 감내하고 서너 차례는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일본은 요즘 가격이 폭등한 쌀로 혼란스럽다고 한다. 소규모로 포장한 다양한 품종 중에 익숙한 상표를 조금씩 구매하던 시민은 매대가 텅 빈 슈퍼마켓에서 어안이 벙벙하더니, 사재기에 돌입했다는 게 아닌가. 한국 여행하고 돌아가면서 무거워도 쌀을 챙기는 관광객이 있을 정도라는데, 농민의 창고를 뒤져 훔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독특한 품종을 유지하면서 남거니 모자라지 않게 생산하던 일본인데, 무슨 영문일까? 밥맛을 유별나게 따지는 일본인이지만, 밥상에 올라온 음식의 재료를 보면 채소나 육류의 비중이 쌀보다 높다. 쌀이 갑자기 모자라게 된 이유는 흉작일까? 흉작의 이유는 기후 변화일까?

일주일 21끼를 모두 밥으로 챙기는 남편은 핀잔 받기에 십상이다. 아내가 저녁 약속 여부를 묻는 이유는 밥상을 준비해야 할지 말지 궁금한 까닭인데, 약속이 있다고 하면 편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중년 가정은 일주일 21끼 중 밥은 몇 끼나 먹을까? 당뇨가 있어서 하루 3끼는 꼭 먹지만, 점심과 저녁 약속, 회의 마치고 이어지는 뒤풀이에서 밥을 외면하곤 한다. 주말 점심을 분식으로 해결하곤 하니, 밥은 10끼 내외가 아닐까? 모르긴 해도 독립한 뒤 아침을 먹지 않는 아이는 밥 이외의 식단이 훨씬 많을 텐데, 우리나라에 갑자기 쌀이 부족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인가?

 

(출처 :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출처 :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미국은 달걀이 부족해졌다고 한다. 2022년부터 조류 인플루엔자가 확산해 공급이 부족하게 되었다는데, 부활절에 삶은 달걀 대신 감자를 삶아 신도에 나누어 주는 교회가 등장하고, 플라스틱이나 찰흙으로 만든 달걀 장난감이 인기를 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나라에서 급히 수입한 주가 있다는데, 1인 소비량이 우리보다 많은 미국에서 달걀은 필수 식자재일 텐데, 당분간 혼란스러울 것이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물러난 뒤 산란계를 확보하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만, 대응을 잘하면 같은 현상은 재현되지 않을 것인가?

되도록 생활협동조합에서 유기 농산물을 구하려 노력하는데, 달걀은 필수다. 철사로 만든 닭장을 적으면 3층, 많으면 5층 이상 쌓은 비위생적인 양계장에서 1년 정도 달걀을 낳다가 폐기되는 닭의 몰골이 비참하기 때문이지만, 인간의 탐욕에 희생되는 산란계가 낳은 달걀은 사실 달걀이 아니라, 달걀을 닮은 화석 연료인 까닭이다. 산란계를 먹이고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따지면, 달걀로 얻는 열량의 적어도 4배 이상의 화석 연료가 들어간다. 그뿐인가? 하도 밀집해 사육하는 바람에 병원균과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된다. 확산 속도가 빠르면서 위험한 조류 인플루엔자가 특히 그렇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00년 이전, 우리나라에 조류 인플루엔자는 없었다. 아니 없었다기보다 관심 가질 일이 없었을 것이다. 2000년 이전의 우리 양계장 풍경은 달랐다. 부지런한 농부가 키우며 달걀과 닭고기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철새가 찾는 갯벌을 광활하게 매립한 자리에 산란계 밀집시킨 대형 양계장을 다닥다닥 붙여서 경쟁적으로 달걀을 생산하자, 조류 인플루엔자를 비롯해 많은 감염병이 번지고 말았다. 양계장만이 아니다. 옆구리가 부딪힐 정도로 밀집시켜 도살하는 돼지도 마찬가지다. 구제역이 번지면 농정 당국에 비상이 걸리는데, 소도 피하지 못한다. 문제는 돼지와 소도 차라리 화석 연료라는 사실이다.

과도한 화석 연료 소비로 기후 위기가 심각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쌀보다 고기, 그리고 밀을 훨씬 더 소비하는 우리나라는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곡물은 소비량의 거의 80퍼센트를 수입하는데, 사료로 가공되는 양이 많다.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으려면 미국은 그 무게의 16배의 사료를 먹인다. 돼지는 절반 정도인데, 사료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도 비슷하다. 사료가 되는 미국산 옥수수와 콩은 재배 과정에 상당한 석유를 동원해야 한다. 거대한 농기계, 화학 농약, 수송과 저장에 들어가는 석유의 열량은 옥수수나 콩의 10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미국산 쇠고기 1킬로그램은 대략 160배의 화석 연료인 셈이다.

일본은 올해 충분한 벼를 심을 것이다. 미국도 조류 인플루엔자 극복에 나설 것인데, 우리의 식탁은 언제까지 식구의 밥상을 보장할 수 있을까? 기후 위기는 점점 심각해지는데 얼마 버티지 못할 석유는 물론이고, 온난화를 억제하려고 소비를 줄이는 석탄의 매장량도 충분하지 않다. 세계 인구는 늘어나는데, 자동차와 반도체 팔아서 수입하는 식량으로 배부르게 먹는 우리는 다가올 식량 위기를 얼마나 인식하는가? 미래세대의 생존을 염두에 두고 대처하는가? 기후 위기보다 무섭게 다가올 굶주림은 혼란스러움을 넘어 파국을 예고할 텐데.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60+기후행동 운영위원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60+기후행동 운영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기사입니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박병상 독자  Brilsymb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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