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인 자아 찾기

 감정줄: 우리 관계를 묶는 보이지 않는  

나는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에 대해 탐구해왔다. 특히 한국 사회의 가족 관계에서 자주 목격되는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얽힘의 근원을 파헤치다 '감정줄'이라는 개념에 다다랐다. 2017년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감정줄이 무엇이고, 왜 우리를 괴롭히며, 어떻게 끊어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2025년 현재도 LA 에서  이 분야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파시즘에 빠지는 이유도 결국 '감정줄' 때문이라고 본다. 이는 개인들이 건강한 심리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특정 지도자나 집단에 정서적으로 과도하게 얽매이면서 비판적 사고를 잃고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되는 현상과 연결된다. '감정줄'이 개개인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집단적 융합을 심화시킬 때, 전체주의적 사고와 행동 양식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김반아
출처 김반아

 

엄마와 나를 묶는 '감성 탯줄'의 변질

아이가 태어날 때 신체적인 탯줄은 곧바로 끊어진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성 탯줄'은 어떤가?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감성적으로 연결되는 통로인 이 탯줄은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한 후에도 많은 경우 끊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건강한 관계라면 아이가 자아의식을 갖고 독립적인 사고체계를 구축하면서 감성 탯줄은 점차 약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로를 존중하는 '생명줄'이 들어서야 한다. 엄마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성숙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가진 엄마들이 자신의 결핍을 아이로 채우려 하거나, 아이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통제할 때 이 '감성 탯줄'은 변질되어 '감정줄'이 된다.

감정줄은 모든 꼬인 관계에서 감정의 줄다리기를 일으킨다. 특히 한국의 모녀 관계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서로에게 더없이 친밀하지만, 이상하게도 존중하지 않는 관계다. 엄마가 말을 시작하면 나는 이미 엄마의 의도를 눈치채고 답답해지고, 엄마는 나의 차가운 반응에 못마땅해하고 섭섭해하는 전형적인 '감정줄 관계'다. 한국 사회 특유의 '정'이 '한'으로 이어지는 기제이기도 하다.

'감정적 폭력' 세대 대물림

나는 이 문제에 일찍이 주목했고, 내 삶 속에서 직접 풀어갔다. 『딸은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라는 책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녀 관계에서 미성년 자녀에게 엄마는 강자이고 자녀는 약자다. 비록 오늘날 자녀들이 강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 체계를 보면 그 위계질서는 확연하다. 엄마의 말투는 일반적으로 수직적이고 하향적이며, 자녀들은 엄마의 언어를 통해 압박받고 감성적 폭력도 경험한다. 딸의 마음속에는 존중받지 못한 데서 오는 화가 쌓인다.

물론 엄마도 화가 많고 화병을 앓기도 하지만, 엄마의 화는 딸에게서 온 것이라기보다 여러 곳에서 복합적으로 쌓인 것이다. 엄마 또한 자신의 엄마로부터 대물림받은 부분이 크다는 사실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딸에게 화를 전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거의 모두 오래된 감정줄이 있다. 특히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처럼 이성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가까워져 '감성적 근친상간'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고부 갈등 역시 엄마와 아들의 과도한 밀착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의 '' '감정줄': '한국 엄마 바이러스'

한국 사회에는 적정 거리를 두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감성적이고 정이 많은 한국인의 특성상, 친밀함을 넘어 개인적 영역을 쉽게 침범하곤 한다. 마치 운전할 때 차간 거리를 두지 않아 사고가 나듯, '정'이라는 이름 아래 적정 거리에 대한 개념이 부재한 경우가 많다.

엄마들은 자식의 내면세계에 깊숙이 들어가고 성인이 되어서도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엄마병' 혹은 '엄마 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였다. 수직적이고 밀착된 한국식 정서는 가부장적 전통에 뿌리를 두며, '갑질 문화'가 형성되기 쉬운 토양이 된다. 적정 거리가 부재하면 갑을 관계에서는 무시와 음성적 폭력이 만연하기 쉽다.

'감성독립선언'으로 나를 해방하다

꼬인 관계를 청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사십대에 '감성독립선언장'을 써서 어머니께 보냈다. 감정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려는 가장 전략적인 방식이라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감성독립을 선언하는 것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것과 비슷한 해방감과 주체적인 의지를 느끼게 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혼란스러워하셨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6개월이 걸렸고,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성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관을 깊이 성찰하는 계기를 얻었고, 우리 사이에 의식적인 존중과 신뢰의 관계가 싹트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창조적인 삶을 위해 서로 마음을 모으는 동지가 되었고, 나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 한반도 중립화 운동을 하고 있다.

내가 어머니에게 화가 났던 것도 결국에는 어머니가 물려받은 부권주의 시대의 문화와 그 덫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 위에서 중첩된 **‘나 자신에 대한 화’**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홀로 설 수 없던 데서 오는 나 자신의 불만스럽고 미숙했던 마음이 엄마를 원망했던 것이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정립하는 데 2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어머니는 내 마음이 흡족할 때까지 노력하셨고, 나는 결국 어머니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생명모성' 한국, 그리고 인류적 해결책

나는 하버드 교육대학에서 교육철학을 연구하며 미국 공교육이 영성을 배제한 자아 실현(Self-actualization) 현실주의 교육으로 인해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키웠다고 박사 논문 주제(“Self-transcendence and Education”)에서 비판했다. 그리고 '생명모성 철학'을 정립하며 영성과 감성을 통합하는 관계 치유 활동에 몰두했다. 이는 남이 쓴 것을 읽고 정리하는 '머리 작업'이 아니라, 인간적 상호 신뢰를 통해 일구어 내며 관계 안에서 '생명을 살리는' 힘을 만들어내는 '실천적 각성의 과정'이었다. 이 방식으로 하면 해결되지 않는 인간관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내 뿌리가 있는 곳이기에,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내 인생을 종합하고 정리하기 위해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살며 내 자신의 생명모성 실현을 하고자 하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매년 한국을 찾았다. 한국의 남남갈등 문제, 남북관계의 문제, 이 모두가 우리 전통 속의 가부장제도와 밀착된 관계라는 사실을 인류학자인 언니와 형부의 눈으로 확인해 나갔다. 그리고 이 문제를 철학적인 차원에서 한반도 중립화(이제는 K-Neutrality) 운동과 연결하며 풀어갔다.

한국인에게는 기본적으로 강렬한 모성이 있다. 내면에 맺히고 왜곡된 부분이 치유되면 그 자리에 '생명모성'이 충만하게 들어차게 된다. 나는 오래 전부터 한국 여성들이 사회적 대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과 교육열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생명모성'의 기운이 퍼질 수 있으며, 인류적 해결책 또한 한국에서 나올 수 있다고 믿어왔다.

나는 이 '감정줄'이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그동안 감정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가정과 직장에는 감정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존재하는데, 이들 모두 무엇이 정상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감정줄'이라는 이야기를 그룹 대화의 주제로 삼으면 낡은 관계에서 벗어나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나는 '감정줄', '존중', '생명 모성' 이 세 단어만 널리 퍼져도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김반아 객원편집위원  vanak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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