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케르"

"살해해도 처벌받지 않고, 제물로도 바쳐질 수 없는 자." 조르조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에서 정의한 이 고대 로마의 인물은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쉰다. 단지 이름만 다를 뿐이다.

그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대변자였고, 국가기관 곳곳의 엘리트 집단인 기득권 세력의 판을 흔든 존재였다. 브라질의 룰라와 대한민국의 이재명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과 제도로 위장된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정치가 아닌 폭력에 의해 '법의 경계 밖으로 내던져진 정치적 생명체들'이었다. 즉 법적 생명은 남아 있지만 정치적 생명은 부정당한 존재들이었다.

호모 사케르란 법의 내부나 외부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법의 폭력에 노출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이라 불렀다. 폭력적 정치 권력의 말미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겨우 생명만을 유지하는지를 두 사람을 통해 확인했다. 이 개념은 고대 로마의 잔재에 머물지 않고 21세기, 정치와 법이 엉켜버린 신자유주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날카롭게 되살아난다. 그 중심에 룰라와 이재명이 있다.

변방에서 온 장갑공장 출신 이재명 대통령과 구두닦이 출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현지 시각 17일 캐나다에서 양자 회담을 했다. 룰라는 브라질의 북동부 빈민가 출신으로, 글을 배우기도 전에 공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손가락을 잘린 자수성가형 정치인이었다. 이재명은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에 팔이 끼여 굴절되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했던 '소년공'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엘리트 정치 경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기득권과는 반대되는 경로로 가난한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권력에 접근했다. 이들은 민중의 고통을 경험했고, 서민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며, 제도 바깥에서 제도를 개혁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바로 그 점에서 그들은 당 내외의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고, 폭력 정권은 ‘법의 기술자들’을 통해 이들을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폭력 정치를 수반한 법기술자들의 모의와 언론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정치적 제거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브라질에서는 ‘라바 자투’ 부패 수사라는 거대한 캠페인이 룰라를 겨냥했다. 모루 판사는 검사와 짜고 ‘기소만 해라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모의 내용도 밝혀졌다. 대법원은 나중에 룰라를 무죄 선고했지만,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지 못했던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이는 법이 정치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법비가 법을 통해 제거시킨 대표적인 사례였다.

한국의 이재명은 검찰 특수부에 의해서 수십 건의 수사를 받으며 ‘정치적 사법 리스크’의 아이콘이 되었다. 기소와 수사, 수백 번의 압수 수색, 무차별 언론 보도로 인한 여론재판이 반복되며 마치 법의 피고석에 서 있는 죄인처럼 묘사되었다. 그러나 많은 혐의가 기각되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판단되었다. 일부 재판은 법 기술을 활용하여 정치검찰의 입맛대로 판결을 내렸다. 특히 조희대 대법원장과 아홉 명의 대법관들은 오천이백만 국민이 선출할 권리를 자신들이 빼앗으려는 파렴치한 법기술을 부렸다. 이들은 여전히 정치 영역과 법의 영역을 모호하게 넘나들었다. 법이 정의 실현의 도구가 아니라 정치적 제거의 기술로 오용되면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룰라와 이재명은 법의 보호로부터 배제되었지만, 정치 권력은 여전히 이들의 몸과 언어, 이미지를 통제하려 했다. 폭군 정치와 법비 권력의 결합은 이들의 정치적 생존뿐 아니라, 사적인 삶과 감정, 과거의 발언과 인간관계까지 죄악시했다. ‘살려두되 철저히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들은 법의 이름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도, 공정한 대우도 부정당한 채 공적 공간에서 매도되었다.

호모 사케르는 단지 고대의 망령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더 빈번하게 출현한다. 법이 중립성을 잃고 권력의 도구가 될 때, 제도는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패와 무기로 작동한다. 

룰라는 그 모든 탄압을 이기고 대통령직에 복귀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재명 또한 수 없는 압수 수색과 재판 그리고 테러와 저격 등 끊임없이 공격과 위협의 사선을 극복하고,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두 사람은 살아있는 호모 사케르이다. 또한 법의 형태를 갖춘 민주주의가 어떻게 허무하게 무너지며, 그 법이 무기가 되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수가 되는지를 증명해 낸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법과 정의는 언제 정치가 되며, 그것들은 언제 민주시민들의 탄압의 도구가 되는가? 호모 사케르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그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거울이다. 룰라와 이재명에게 가해진 법적 정치적 폭력은 그들을 겨눈 것이 아니라, 시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겨눈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호모사케르에 대한 경고이다. 룰라와 이재명의 정치적 회복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법과 정치, 권력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근본적 재구성의 출발점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장

한창섭 주주  hansop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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