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평등한 참여 기회 갖는 추첨식 시민의회로 국민주권제 실효성 높여야

3권 분립만으로 민주주의 지켜지지 않아

불안으로 가슴조이며 보내야 했던 시간이 짧지 않았다. 윤석열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어느 곳도 온전히 믿을 만한 곳은 없었다. 윤석열과 관련한 여러 사건과 의혹은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이태원 참사, 채상병 사망 사건, 양평고속도로 특혜, 명품가방 뇌물, 주가 조작의혹 등은 일명 이채양명주로 회자되기까지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약밀수 의혹, 공천개입 의혹, 의료 대란, 외교 참사 등도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이런 통탄스러운 만행이 계속되었지만 입법부도, 사법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통제는 고사하고 협력하거나 비호하는 무리들이 많았다. 국민주권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촛불과 응원봉을 든 국민들은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을 파면시켰지만, 그 이후에도 윤석열과 그 동조자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지귀연 판사와 심우정 검찰총장, 조희대 대법원장 등은 법의 상식을 넘는 행위로 국민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그 결과는 이재명을 역대 대선 최다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국민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이제야 불안감을 조금은 덜고 뉴스를 볼 수 있다고들 한다.

 

대통령 바꾸는 것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되지 못해

국민은 내란을 막아냈고, 대통령을 바꾸는 데까지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제도를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여러 차례 대통령을 끌어내렸지만, 민주제가 파괴되는 수난은 반복되었다. 권력을 상호 견제시키기 위해 삼권을 분립시켜 놓았지만 그들은 한 통속이 되어 민주제를 파괴하였다. 심지어 국민이 직접 선출한 입법부마저도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도 제 역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얼마나 불행하고 어리석은 역사의 반복인가? 지금과 같은 제도의 미비함을 그대로 둔다면 또 그런 어리석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다행이 이번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를 개혁하고, 국민의 주권을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생각보다 빨리 정치사회외교 등을 안정화시키고, 차관과 공공기관장 등 임용에 국민추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도의 미비함을 그대로 둔 채로 마치 시혜를 베풀 듯 정치를 하는 것은 고맙기는 하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은 채, 시혜로 주는 혜택은 지도자가 바뀌면 언제든 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민주국가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윤석열이 나와서 하루아침에 민주제를 파괴할 수 있었던 것도 제도의 미비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때 개헌을 비롯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았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여당 국회의원을 180석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제도 개선을 외면하였다. 그 무능함과 배신감이 윤석열을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제도 개선 없는 개혁은 항구성 보장할 수 없어

이재명 대통령은 현충원 방문록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 국민과 함께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국회에서 있었던 취임 선서에서도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강조하였다. 이는 헌법 1조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게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되려면, 권력을 국민이 직접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키고, 외교 참사를 일으키고, 국회가 신뢰를 잃고, 법관이 법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라를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고 할 수 없다. 만일 국민 소환제’, ‘국민 투표제등이 제도화되어 있었다면 윤석열의 만행도 이토록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수준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민주당에 공이 넘어갔다. 민주당이 419, 6월항쟁, 2018촛불혁명 이후에 보여주었던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다시 보인다면 수구정당인 국힘당에 못지않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이제 일시적인 이벤트성 시혜보다는 멀리 내다보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탄탄한 민주국가가 되려면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민주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민주국가라면 주권자인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정의적 행동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그들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비리를 방지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막연한 바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에 적합한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3권 분리와 선거제만으로는 부족하다. 특권을 갖게 된 그들은 서로 견제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 결탁하여 함께 부조리를 행하고 숨겨주고 감싸주며 부패를 일상화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자신들의 특권으로 여겨왔다. 우리나라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선거로 정치인을 선출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국민이 직접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참정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시민의회 전국 포럼 워크숍 장면(2026. 06. 04 공주)
시민의회 전국 포럼 워크숍 장면(2026. 06. 04 공주)

국민주권국가라면 국민이 권력을 통제할 수 있어야

국민이 직접 그들을 소환도 할 수 있어야 하고, 국민이 직접 그들의 특권을 통제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들이 정의로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국민이 직접 감시하고 통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이 직접 입법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국민의 참정권이 실제적이고 일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명실 공히 국민주권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아테네식 추첨제로 선출한 시민의회가 실효성이 높은 제도로 지지 받고 있다. 시민의회는 추점제라서 선거제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인구통계학적 비례에 맞추어 추첨제로 선출하고 숙의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에, 훨씬 공정하게 민심을 반영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다.

투표로 선출하는 현재의 입법부는 부유한 엘리트가 아니면 진출이 어렵다. 그리고 한 번 당선되면 특권자의 지위를 누리려하고, 그것을 자기 직업처럼 여겨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정당의 통제를 받는다. 그런데 정당은 특정지역, 특정계층, 특정집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치가 그러하니 그들은 노동자, 농민, 어민, 소상공인 등의 주권을 진정성 있게 대변하지 못한다. 그들은 약자를 위한 법을 만들지 못한다. 그들은 지역 차별 방지를 위한 법을 만들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출산률 최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자살률 최고도 해결하지 못하고, 교육지옥도 해결하지 못하고, 극심한 지역갈등도 해결하지 못하고, 수도권 일극 집중현상도 해결하지 못하고, 기후환경 위기도 해결하지 못한다. 그들은 힘이 있는 부자들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고, 그들은 수도권 투표권자들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고, 그들은 특정 종교인들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고, 그들은 기득권층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연령별, 성별, 직업별, 지역별로 균형을 맞춰 추첨된 시민이 토론과 숙의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한다면, 이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대통령보다 좋은 제도 갖춰야 민주국가 지킬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게 실현되려면 국민이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대통령의 덕성으로 국민을 섬기는 것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항구성이 없다. 늘 덕성을 갖춘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항구성이 없으면 그것은 국민의 것이 아니다. 그것 자체가 당연한 국민의 권리임에도 대통령의 시혜처럼 주어지는 것이라 결코 국민이 그 주인이 될 수 없다. 국민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인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어야 항구성을 가진다. 부조리와 반민주적 특권행위의 재발을 막고, 그런 행위가 일어났을 때에 통제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 장치로서 공정하게 구성된 시민의회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편집 : 이현종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이현종 객원편집위원  hhjj55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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