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기억합니다.

출처: 김반아
출처: 김반아

 

나의 시작을 품어준 도시 서울에게, 그리고 내가 고향이라 불렀던 모든 곳들의 변함없는 정신에게, 저는 가슴 가득한 추억과 감사함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삶의 여정은 저를 당신의 분주한 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바다를 건너 브라질, 캐나다, 그리고 미국까지 왔지만, 당신이 제 안에 심어준 뿌리는 깊고 단단합니다.

바로 이곳, 저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저는 비로소 제 과거의 중요한 한 분, 할아버지 이종만 선생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1977년 평양에서 돌아가셨고, 저는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그분의 존재는 제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1975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어려운 경로를 통해 평양에 가서 할아버지를 만나셨는데, 1949년 할아버지께서 학회 참석차 평양에 가셨다가 '철의 장막'이 드리워지면서 생긴 28년간의 단절 끝에 이루어진 가슴 아픈 재회였습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할아버지는 이념적 분열의 희생양이 되어 남한에서는 잊혀진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미래 세대가 그분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할아버지의 삶과 업적에 대한 책을 엮어 그분의 유산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헌신해 왔습니다.

한국 전쟁의 혼란은 서울에서의 제 어린 시절을 뒤흔들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난민이 되어 울산 시골, 동해 바다로 튀어나온 할머니의 고향 용잠에서 피난처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3년 동안 안식처가 되어준 부산으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용잠은 제게 가장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할아버지께서 태어나서 성장한 후,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나섰던 곳이었고, 할머니의 집은 저희에게 더없이 소중한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낚싯배에서 막 잡아 올린 해산물과 제주도의 고된 삶을 피해 온 많은 해녀들이 매일 채취한 해산물의 그 비할 데 없는 신선함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일 년 내내 할머니께서 정성껏 빚으시던 절묘한 수제 쌀 막걸리 식초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할머니의 수많은 채소 반찬과, 특히 회, 가리비, 낙지에 곁들이면 환상적인 맛을 내던 고추장의 비밀 재료였습니다. 외삼촌의 고래잡이 배가 고래를 잡고 돌아왔을 때 가끔 맛보았던 고래고기의 특별한 기억도 또렷합니다.

전쟁 후 저희는 서울로 돌아왔고, 저는 이화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여학교였던 이화는 제게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60년 만의 동창회는 예상치 못한, 다소 충격적인 경험을 안겨주었습니다. 해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거의 알지 못했던 몇몇 옛 동기들은 놀랍도록 강한 반북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북한에 있는 친척들과의 관계를 이야기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냉담하고 폐쇄적이며 적대적이었고, 제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깊은 분열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만약 제가 한국에 계속 머물렀다면 삶이 얼마나 제한적이었을지 종종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재된 한계가 있는  세상에 갇혀 있다는 생각은 제가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저의 여정은 언제나 확장과 더 넓은 지평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손주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한국의 전통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적인 삶의 방식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정(情)'이라는 개념으로, 거래적인 관계와는 거리가 먼 깊은 애정과 충성심을 구현합니다. 그것은 피상적인 것을 초월하여 진정한 연결을 촉진하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저의 직업 생활은 교육, 특히 영성 교육에 헌신해왔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저는 한국 중립화 운동에 깊이 관여해왔습니다. 저는 한국이 정치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영구 중립'을 그 지도 원칙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번성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저에게 중립은 단지 정치적 염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교육, 중립 지대에 머무르기, 그리고 어떤 종류의 파벌주의도 피하기 위한 결정적인 목표이며, 다른 모든 미덕을 포괄할 수 있는 공유된 가족 가치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고향, 당신은 저의 존재의 직물 속에 깊이 짜여져 있습니다. 소중한 추억들과 존재와 부재 모두에서 배운 교훈들이 어우러져 저를 이루고 있습니다.


*참고: 이 글은 미국 한인 단체 Korean American Story.org 가 주최하는 'Letters to My Hometown'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영문으로 작성한 편지 형식의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편집: 조형식 편집위원

김반아 객원편집위원  vanak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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