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생각들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있지만 대상은 아니다. 중복도 있으므로 고려하면 좋겠다. 여러 차례에 걸쳐 싣는다.
<아침단상:가난>
ㅣ.
특정 종교를 떠나 주(절대자, 하느님, 상제님, 부처님, 알라님, 공자님 등)는 이미 줄 것을 다 주셨을 겁니다. 어찌 보면 주는 이제 빈손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반면 인간들은 두손에 가득 쥐었고, 가슴으로까지 넘치게 안았으며, 그래도 남아돌아 별도 외부 창고를 짓고 거기까지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주라고 보챕니다. 마땅히 어디다 어떻게 쓸지도 모른 채. 그저 달라고만 합니다. 사는데 그리 많은 돈과 물질이 필요 없는데 말입니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암담하고 안타깝습니다.
2.
노래를 작사작곡하신 분께서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대략 짐작은 갑니다. 주체할 수 없는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알기에, 자신부터 겸손한 맘으로 가난해지겠다고 다짐하면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3.
부자와 권력자 그리고 높은 권좌에는 善德이 없습니다. 혹 있다해도 많이 많이 부족합니다. 진리와 애틋한 정, 선덕은 가난과 낮은 곳에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가질 것 다 갖고 있으면서도 종교와 신앙을 빙자하여, 남의 것까지 빼앗으려는 음흉함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게 아닐까 합니다.
4.
모든 종교와 신앙은 <가난>, 여기에 근본교리와 교칙이 있지 않을까요? 거기에 신이 계실 것입니다.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이미 다 주고 다 받았음을 깨우친, 깊은 성찰의 자세요 태도일 것입니다. 더더 갖겠다는 욕망을 버리고, 이미 줄 것은 다 주셨고 받을 것은 다 받았음을 되새기며, 자신부터 작아지고 가난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게 진정한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이른 아침, 그런 맘으로 나직하게 <가난함을 주소서>를 듣고, 불러 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편집: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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