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겨진 보물
숨겨진 보물 : 우리 모두, 언젠가는 떠난다.
나의 할아버지는 내가 대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나는 사촌동생과 허청에서 뛰어놀았다.
외할머니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나중에 알았다.
할머니는 내가 부안에서 근무할 때 둘째인 나의 부모님이 모시는 집에서 돌아가셨다. 그래도 연수원에 갔다. 싸가지.
장인어른은 순천 작은 처남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오토바이 사고로 연유한 수혈로 인해 촉발된 간암때문에.
나의 아버지는 일제징용과 한국전쟁부상, 농부, 제재소/연탄배달/손수레 이삿짐으로 과도한 노동과 형제로 인해 축적된 화로 인한 치매, 알츠하이머로 2011년에 돌아가셨다.
나의 첫 번째 외손녀는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산후조리원 조무사에 의해 질식사했다. 세상에...집사람은 짐승처럼 울었다. 나는 자식을 잃은 딸과 그 어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아무것도 없음에 망연자실.
꽃다운 열 여섯에 시집살이를 시작한 어머니를 2022년 3월에 잃었다.
어머니 떠나기 3일 전에 며느리는 아직 세상 빛도 보지 못한 아기를 놓쳤다. 다음 해에도 아이는 생명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
어렸을 때 복막염으로 고생했다던 나의 둘째 누이는 어머니 떠난 1년 반 후 세상을 등졌다. 벌써 1년 반이 훌쩍 지났다.
그럼에도 새로운 생명은 우리에게로 왔다. 2020년 대만에서의 간절함은 비록 코비드로 힘들었어도 10월에 손녀로 꽃피웠다. 2024년 걱정스러웠던 생명의 줄기는 2025년 1월에 우리에게 손자로 왔다. 이제 한참 예쁘고 귀여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마무리할 때다. 그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언제 떠나도 충분히 아쉽지 않도록 오늘을 살아야겠다.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자식들에겐 그럴 수도 있을것같다. 그런데 무촌인 부부 사이에도 가능할까? 반쪽이 없어도 생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까?
엄마인 여성들은 생명의 전수자로서 끈끈한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남자들은 마누라 없으면 허수아비다. 생명의 알곡을 지켜내는 역할이야 평생 업이었으니까 잘해왔지만 쓸쓸한 빈 들판이 되면 무슨 의미인가.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조형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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