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더 이른 5시10분전에 숙소를 나선다. 전날밤에도 비가 왔다. 이틀 연속 밤마다 비가 와서 기온이 낮아진 것은 다행이다.
여유로워 보이는 공원의 벤치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어느 분인가가 에밀리아로마냐지방의 산업군을 우리말로 정리해 놓은 게 보인다. 감사히 인용한다. 여기에 보면 파르마지방의 주된 산업군이 등장한다.
Parma시로 접어든다. 이 도시는 맛의 도시로 유명하다.
요리명장을 배출하는 학교로 유명한 ALMA리는 곳이 이 도시의 10km 북쪽에 있다.
도시의 역사기록을 담은 홍보판이다.
이윽고 멋진 광장을 만난다.
잠시 노천카페에 머물면서 오렌지 주스를 한잔.
과일행상이 보이길래, 마늘과 자두를 사고자 하였으나,
이 주인장이 땀을 흘리는 나그네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인정넘치는 셀피다.
더위에도 힘차게 걷고 있는 K-나그네에게 환호하는 운전자들.
좋은 자전거길이 등장한다.
고풍스런 저택이 보이길래 검색해보니 최근에 영업을 개시한 고급호텔이다. 아마도 옛성을 개조했을지도.
이 지도는 유럽의 발전소 분포지도다. 이 자료를 보면 알프스의 수력발전이 엄청남을 볼 수 있다. 알프스의 위용은 자연뿐 아니라 인공문명에도 뻗치고 있다. 이탈리아는 탈원전 모범국가다. 로마시절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인류사를 리드해왔던 이탈리아로부터 얻을 지혜는 무궁무진하지만, 그런 가운데 현대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는 것은 바로 탈원전의 결행과 그 흐름이다.
원래 이탈리아는 20세기 후반 현대적 과학기술도 뛰어나서 인공위성발사 선진국이기도 하다. 이 나라가 원전도 4기나 가동하고 있던 차에, 체르노빌 사고 직후에는 국민투표로 모두 중단시킨 역사가 있다.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시스템이 가동된 것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 원전재건설 움직임이 있다가, 후쿠시마 사고 직후 다시 국민투표로 건설추진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원래 수력과 태양광 발전에 유리한 조건인 이 나라는 재생가능에너지 비중도 20%로 유럽목표치인 17%를 상회하고 있는 편이다. 천연가스 조달도 러시아쪽 비중이 높긴 하지만 지리적 여건상 다른 곳에서 조달하기가 용이하여 에너지문제가 여유가 있어 보이는 편이다.
그러는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원전해체부문이다. 해체의 기술면에서는 수준급의 역량을 비축하는듯이 보이는 가운데, 문제는 핵폐기물처분장의 결정이 지지부진한 것. 입지를 둘러싼 의사결정이 2022년 당시까지도 헤매고 있다. 가동을 중단한지가 30년이 넘는데 아직도라니. 이는 과거 원전을 가동했던 나라들 그리고 현재 가동중인 나라들 모두의 고민일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핵폐기물의 유일한 매립 처분장으로 완성된 핀란드의 '온칼로'는 모델이 될 수 없는 것이, 그러한 매립 암반의 조건이나 지역주민의 동의 두 가지 장벽을 동시에 넘기가 어떤 나라라도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원전, 즉 핵발전소는 이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아니라 처분불가능한 핵폐기물을 생산하는 '핵폐기물 공장'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이탈리아는 탈원전 그리고 원전해체 둘 모두 모범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심도있게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특히 원전해체 현황은 몇달전 필자가 기고한 다음 글의 자료가 되어주었다.
태양광설비를 럭셔리하게 리노베이션 해주겠다는 광고판. 이탈리아 태양광은 수력과 비슷할 정도로 많은 전기를 만든다.
일조량을 나타낸 이 지도를 보면 이탈리아는 태양광발전이 유리한 나라다.
이탈리아 순례에서의 전형적인 아침식사
Reggio Emilia라는 도시에 이른다. https://it.m.wikipedia.org/wiki/Reggio_Emilia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모를, 시가지 깊숙이 멋진 광장이 있다.
그동안 밑창이 닳아서 걷기에 불편하던 중, 도시에 들를 때마다 수선소를 검색해서 들렀지만, 한국과 베트남 같은 밑창보강 서비스는 불가능하였다. 오늘도 마찬가지. 겉보기에 멀쩡해보이는 신발이지만 걸은 거리로 치면 거의 1천키로가 된다. 평균수명은 지나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새 신발을 사서 갈아신는다. 한국이라면 보관해두었다가 수선하면 되지만 여기서는 애석하게도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다. 순례 시작한지 이번이 8번째쯤 된다. 아듀~ 정들었던 신발이여..
사진의 가운데 남자가 일행들과 앉아서 담소하던 중, 지나가던 K-나그네를 보더니 말을 붙였다. 그러더니 시원한 생수를 안기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다.
홍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감탄한 두 미인이 K-나그네를 사이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어느 숙소부근에서 만난 주민들
다음날 새벽 모데나시 행정구역으로 접어든다.
이 부근에서 편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시골길로 접어든다. 약간 돌아가는 길이다.
SS9도로는 밀라노와 볼로냐를 잇는 도로다. 지금 걷는 동네는 그 아래쪽 농촌이다.
들판의 일출은 여전히 멋있다.
저멀리 능선이 이탈리아 중심부를 종단하는 아펜니노산맥이다. 이 지역이 속한 Modena는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고향이라고 K-독자가 알려준다. 파바로티는 이런 풍경을 보면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을까. 며칠 후면 저 산맥을 넘어 피렌체로 갈 것이다.
예상했던 루트가 철로에 막혔다. 구글지도에는 넘어갈 수 있다고 나와있지만. 어쩔 수 없이 길이 없는 민가의 농지를 통과해서 돌아가야한다.
희미하게 난 농지를 가로질러, 정상적인 길로 접어든다. 새 길을 개척하는듯한 멋진 체험이다.
시가지 초입의 과일채소가게에서, 사람들과 친해졌다.
잘라놓은 수박을 사서 먹고 있노라니,
가게주인의 아들이 나그네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묘령의 아가씨가 관심을 보인다. 볼로냐대학에서 수의학을 연구하는 분이다.
그러고 보니,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명차도 모데나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https://en.m.wikipedia.org/wiki/Modena
1인승 전기자동차가 중심시가지를 활보한다.
한국에 친구가 있다는 이 시민은 K-나그네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고 싶다고 한다.
또다시 농촌길로 접어든다. SS9 찻길이 불편한데다, 지도처럼 멀리 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로 보고, 걷기 좋은 새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나란한 두 길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루트가 농지안에 있을 것으로 짐작하면서~ 과연 희미한 길이 있다. 앞서간 누군가가 걸어갔던 길이다.
새로운 시도가 성공한 댓가로,
아름다운 숲속길을 걸으면서~
이윽고 하천을 넘는 다리가 나왔는데,
평상시에는 개방되어 운영되는 댐 위의 다리다.
이런 범람원에 상류로부터 흘러온 빗물을 담아 수력발전을 하는 비어있는 댐이자 범람원이다.
범람원의 넓이가 꽤 넓다. 검색해서 범람원을 살펴보니 면적이 상당하다. 이만한 양의 물그릇이 전기도 만들고, 지하수를 함양해서 식수로도 활용될 것이다. @구글지도
이를 보니 우리의 4대강 논의가 생각난다. 오래전부터 4대강문제의 해법은 재자연화인데, 궁극적인 해법의 하나는 옛 범람원을 존중하여 가급적 복원하여 활용하자는 방안이 있었다.
새 길을 찾으려는 시도가, 뜻하지 않은 풍요로운 경험을 안겨준 하루였다.
코리아를 좋아하는 어느 주민이 차에서 세우고 내려서 나그네를 쫒아 왔다.
나그네에게 먹을 것도 잔뜩 안겼지만, 가벼운 것만 받기로 한다. 그 일행도 함께 왔다. 그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는 정답게 셀피.
젤라또 가게의 디자인이 멋있다. 들어가서 맛을 보지 않을 수 없다.
토요일 자전거를 열심히 밟던 주민이 자전거를 세우고는 기다린다.
이런 길이 많아서 걷기가 좋은 날도 있다.
지난달 26일경 뮌헨 근교를 지나면서 그 지역의 언론에서 게재한 필자의 인터뷰 기사를 최근 지인이 번역해주셨다. 그중 주요내용을 발췌하여 정리하면, 이교수는 "3번의 큰 원전사고에도 불구하고 국제연합 등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수 만 년간 계속 방출되는 방사성폐기물을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불행이다. 더 불행한 일은 자녀에게 나쁜짓을 저질러도 되는 것처럼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파괴의 길이다. 인류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것이 순례를 시작한 출발점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아름다운 국토, 그리고 인류의 삶은 그냥 내려온 게 아니다.
볼로냐에 도착하고 있다. 이탈리아 중세지도를 보면 볼로냐는 교황령 영토로 오랫동안 내려왔다. 시진은 인터넷 자료.
볼로냐 시내 입구의 인상적인 예술작품
볼로냐 시내에 보이는 굴절 버스의 멋진 디자인
5시쯤 숙소에 도착한 후, 이 버스를 타고 한국식당에 가서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배불리 먹는다. 큰 도시의 장점이다. 볼로냐는 자체인구는 38만이지만 광역권인구는 100만이다. 밀라노에서 볼로냐까지 240km를 걸어서모두 756km를 걷고 있다. 내일은 열흘만의 휴식이다.
며칠전 새로 신은 신발이 잘 맞지 않은듯, 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게 가라앉지 않아서 고전을 했다. 쉬는 날 저녁에 보니 숙소인근에 종합병원이 있다. Ospedale Maggiore "Carlo Alberto Pizzardi" 라는 이름의 공공병원이다. 치료도 할 겸, 경험삼아 이 병원의 응급실에 가보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려 치료도 받고 약 처방전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구글번역기가 제 구실을 했다. 친절함은 물론이고, 치료비를 받지 않는다. 놀라운 이탈리아 의료시스템이다.
볼로냐 대학은 천년전에 현대적 대학시스템을 최초로 출발시킨 대학이다. 즉, 강의와 논문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서 학생에게 수업의 객체와 연구의 주체 기능을 동시에 도입하였다.
특히, 박사논문에 심사와 디펜스 과정을 둔 것이 컸다. 이를 필자가 해몽한다면,
1) '지적호기심과 그 성과'라는 학생내부의 충분조건과
2) '실질적 기여에 대한 평가'라는 외부적 필요조건을
교차시키는 균형점을 대학체제의 주춧돌로 삼은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씨줄과 날줄이 교차되어야 옷감이 된다. 아빠와 엄마가 있어야 아이들이 제대로 클 수 있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균형을 잃으면 절름발이가 된다.
사진은 볼로냐대학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연구센터.
그런 본질에 기반한 균형을 창안하고 치열하게 계승해왔기에, 천년전 설립한 볼로냐대학이 현대에도 세계톱레벨에 가까운 수준을 보이고 있다. 평상시 도시인구는 40만이지만 강의시즌에는 50만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그즈음 마침 허위로 한 '김건희 박사논문'에 면죄부를 준 한국의 어느 대학의 소식이 들린다. 심사와 디펜스과정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균형을 잃으면 곧바로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한국의 대학은 병들어 있다.
전통과 현대가 함께 살아숨쉬는 도시다.
볼로냐 도심을 벗어나서 아펜니노 산맥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숙소에 다가갈 무렵 보이는 주거용 건물. 옥상을 숲처럼 가꾸고 있다.
이제부터 이탈리아반도의 등뼈역할을 하는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피렌체(Florence)로 간다.
편집: 이원영 객원편집위원 leewysu@gmail.com 조형식 편집위원
(글쓴이 이원영은, 국토미래연구소장이자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 대표로서, 주로 도보행진을 통하여 탈원전운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