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문학은 번창할 수 있다
'The Korean liberal arts can thrive'
한국 인문학의 발원지를 찾아서/'서울' 편
"어떤 의미에서 서울은 곧 한국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살림
한국의 K-철학! 원효 이래...연암 박지원-임화-김수영-이정우로 이어져...
한국 근대의 사유, K-철학은 종로에서 피어났다
독일의 국민적 근대 철학자 헤겔의 대저 <정신현상학>의 핵심개념은 ‘자기의식’이다 그것이 타인이든 자신이든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의식을, 대자적 자각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앞서가는 영국과 프랑스를 둘러보고 충격을 받은 후진국 철학자의 독일적 자존심을 드러낸 철학의 외화된 표현이라 할 것이다.
나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엇인가 물음이 시작되었을 때 자신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먼서 근대 의식이, 하나의 국민적 자기의식으로서의 근대적 주체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자기의식으로서의 조선의 근대적 의식이 싹을 틔운 것은 바로 우리라는 대자적 자기의식이자 자각이었다. 중국을 둘러보고 내놓은 연암의 <열하일기>가 그 핵심적 증거다. 당시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돌고 돈다고 보았던 중세적 미몽이 뇌를 감싸고 있던 시대에 우리에 대한 주체적이고 근대적 자의식이 가능하기 위한 계몽적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대등한 의식으로서의 근대적 평등의식이다 이것을 잘 드러낸 사고가 바로 조선의 보편-개별논쟁의 결과 탄생한 낙론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이다. 조선(인)과 중국(물), 주체와 객체가 다르지 않다는 주체의 선언, 곧 나에 대한 자의식에서 조선적 의식이 비롯되고, 바로 여기서 한국의 자의식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오늘 세계의 문화를 리드해 가고 있다
우리에게 이런 주체적이고 개방적인 근대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된 계기는 유명론적 개별의식을 지닌 현실학파, 낙론洛論*으로 대변되는 북학파의 거두 홍대용, 박지원으로부터였다. 그들로부터 발원하기 시작한 조선적 자아의식은 임화에게, 다시 김수영에게, 그리고 오늘 이정우에게 이어져 K-철학의 물결로 넘실거리고 있다
1, 연암 박지원의 근대의식
"너희 인간들이 이치를 말하고 성을 논할 때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거리지만, 하늘이 명한 입장에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같이 만물 중 하나다"
-박지원, <열하일기> 중 '호질'에서
이것은 하나의 이솝적 언어로 시휘를 꺼려 중국 어느 다포의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베낀 것처럼 아닌 시늉을 하고 있지만, 바로 여기에 사람이나 범이나, 조선이나 중국이나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곧 세계의 중심이라는 조선 철학자의 주체적인 눈깔이 담겨 있다
2, 임화의 네거리의식
오오 그리운 고향의 거리여! 여기는 종로 네거리,
나는 왔다, 멀리 낙산 밑 오막살이를 나와 오직
네가 네가 보고 싶은 마음에......
넓은 길이여, 단정한 집들이여!
높은 하늘 그 밑을 오고가는 허구한 내 행인들이여!
-임화의 '다시 네거리에서' 중에서
여기, 조선학의 거두 임화에게 네거리는 희망의 거리이자, 순이와 내 행인들로 상징되는 조선민중의 꽃이 피어 날 거리로서의 아름다운 미래의 거리를 표상한다
3, 김수영의 토박이의식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중에서
여기, 종로에서 태어났다는 남다른 토박이의식을 지닌 김수영에게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 종로는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깃든 곳이다
4, 이정우의 지평적 사고
"철학자들은 늘 '세계 전체'를 논하곤 하지만 그러한 논의들은 사실상 특정한 세계-지평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정우의 <세계철학사1>(길)도입 부분
이것은 기철학이라는 동북아 고유의 한국철학적 세계-지평 위에서 세계 철학을 꼬나보것다는 세계적인 유명론 철학자의 비범한 눈깔이 아닐 수 없다 그래 한국적 눈깔을 단 대중적이고 역사적인 세계철학사 강의가 이뤄졌던 인사동 네거리 동일빌딩 705호실은 오늘 한국 K-철학의 진정한 산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사유가 꽃을 피운 한국철학의 고장이 바로 종로라는 점이다
-'사진엽서-전차', 서37007, 서울역사발물관 소유
종로는 조선의 명소일뿐 아니라 기호학적인 의미에서 장소적으로 하나의 결절점a node에 위치, 인문적으로도 조선 민중의 정신이 깃든 곳이며, 민중문화의 발상지...
그리고 서울은 오늘 K-컬쳐의 배꼽이 되었다
이제 어떤 의미에서 서울은 곧 아테네다
난 그렇게 본다
*글쓴이 주: 잘 알다시피, 조선 후기에 탄생한-세계철학사적 의의를 지닌, 오늘 K-철학의 모태가 된- 한국의 보편-개별논쟁은 바로 호락논쟁으로, 그 핵심은 인물성론이다. 즉 당시 변화해가는 동북아의 국제정세를 두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티케 정립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호서, 오늘의 충청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당 한원진 학파(노론 우파)는 중국과 조선은 다르다, 인물성이라고 보편적인 전통논리를 따르먼서 명나라를 멸망시킨 오랑캐나라 청을 공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북벌론을 지지했고, 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연암파(노론 좌파)는 중국이나 우리나, 인간이나 동물이나, 주체나 객체나 다르지 않다는 인물성동이라는 개별 주체들의 대등한 자아의식을 드러내고 해외의 우수한 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개방적인 북학론을 지지하였다. 전자를 '호론'이라 하는 이유는 충청도 지역을 예로부터 금강의 별칭이라는 호강에서 비롯된 것이고, 후자를 '낙론'이란 칭하는 것은 낙양이 주나라의 수도로 서울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객원편집위원: 김상천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