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외세 의존적 국내 수구 세력이다. 일본 내 지식인들이 일제의 한국 침략과 역사왜곡을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데 반해, 국내 수구 친일 세력은 "일제 침략이 한국에 도움이 됐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었다"라며 일본 극우와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이런 자들의 적지 않은 인사가 보수 정부의 국정에 깊이 관여해왔다.
국제 관계와 정의에 대한 역사적 통찰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4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국제 관계에서 정의라는 것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강자가 원하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는 순응할 수밖에 없는 국제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2천여 년 뒤 문명화된 유럽에서 장자크 루소는 당시 왕정국가들의 전쟁과 정복을 비판하며, 국제법이 강자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껍데기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루소는 인간 사회 이전의 자연 상태에서 자연법이 인간의 연민과 동정을 바탕으로 도덕과 정의를 규정했듯이, 국가 간 국제법 역시 인간애를 최고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간에도 정복이 아닌 인간애가 정의를 규율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장자크 루소 " 인간 사회 불평등 기원론")
현실과는 다르더라도 연민, 동정심, 인간애는 호혜 평등, 주권 존중, 평화주의 지향이 국제법의 기본정신이란 이론적 이유이다.
독도 문제, 힘의 논리와 정의의 부재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80년이 지났다. 그동안 일본은 고노, 고이즈미, 무라야마 등 외교적 담화를 통해 일제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 불법 지배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하지만, 교과서 왜곡, 위안부 강제 동원 부인, 식민 지배를 통한 한국 근대화론 등 일부 정치인의 망언 등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공식적인 외교청서, 국방백서 등에서 독도 일본 고유 영토라고 기술하고, 내각 관방에 영토주권 대책기획조정실 설치, 영토주권 전시관 운영, 초중고 사회과 학습지도 요령에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로 명기하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 기술하고 있다. ( 홍성근(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광복 80년 독도 한가(2025.8.11. 사) 평화통일시민연대 평화포럼 발제 )
잘못된 역사 교육과 독도 일본 영토라는 홍보 등으로 일본 국민의 다수는 독도를 일본 땅으로 알고 있다.
개인이나 국가 간 이해 충돌은 법적 문제로 이어진다. 독도 문제는 이미 한일 간 해결이 어려운 영토·영유권 문제가 됐다. 법은 상식과 도덕의 최소한이어야 하지만, 현실의 법은 논리와 주장 싸움이며 왜곡, 과장, 조작, 허위가 개입한다. 법은 당사자가 대등한 입장에 있을 때만 상식과 정의가 작동한다. 힘이 대등하지 않으면 빼앗기고 지배당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국제 관계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양심적 지식인의 목소리와 국제적 해법
2010년 '한일 병합조약 원천무효 공동성명'을 주도하고 2019년 만해평화상을 수상한 일본 양심적 지식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주장한다. 그는 "일본이 한국 식민지 지배를 반성한다면,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이며 한국의 지배가 불법이라는 주장은 도의적이지 않다"라고 말한다. 와다 교수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는 것이 도의적·현실적으로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며, 대신 한국은 독도를 유엔해양법조약상 배타적 경제수역(EEZ) 기점으로 삼지 않고 일본 어민의 어업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한겨레 신문 길윤형기자 2019.10.19. 기사)
와다 하루키 교수 외에도 일본 내 여러 지식인이 역사 왜곡을 비판하며,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기술한 교과서 채택에 반대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일본 사회당(jsp)이나 일본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있는 일본 공산당(jcp) 역시 여론과 표를 의식하면서도 일제의 한일 병합, 조선 침략, 강제 노역, 위안부 성 노예 등에 대해 일본 정부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독도 문제는 한일 대화 테이블에서 논의해야 할 과제로 주장해 왔다.
독도 문제는 본질적으로 단순하다. 독도가 문제가 된 시점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 과정에서 강제로 일본 영토로 편입한 때다. 일본의 메이지 정부 태정관(1877), 외무성(1870), 해군성(1899, ) 육군성(1875)에 이르기까지 공문서에서 독도는 한국 땅이라 인정하고 있다.(선문대 이동원 박사“ 일본의 독도 영유 주장의 국제법적 불법성”)
그런데 문제가 꼬인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체제에서 미국의 반공 정책에 따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때문이다. 미국은 패망한 일본을 냉전체제 협력자로 키우기 위해 독도를 반환 대상에서 제외했다.( 와다 하루끼의 동북아시아의 영토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후 한일협정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억지 주장했고, 미국의 압박과 돈에 급했던 박정희 군사정부가 이를 배척하지 못하며 독도 영유권을 공히 주장(밀약) 하는 굴욕적 협정을 맺었다.
한국의 자주 의식과 주권 수호의지
일본은 G7 강대국이며 경제력이 한국보다 앞선다. 한때 한국 경제는 일본 의존도가 높아 기술 협력이 없으면 기반이 붕괴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존재했다. 하지만 독도는 법적·지리적·역사적으로 한국 고유 영토이며,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들도 이를 인정한다. 한국은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으며 국방력 역시 일본을 능가해 일본의 무력 침탈이나 국제재판소 제소 가능성은 거의 없다. 1960~2000년대 한일 간 국력 차이가 매우 컸음에도 일본은 독도를 빼앗을 방책이 없었다.
문제는 외세 의존적 국내 수구 세력이다. 일본 내 지식인들이 일제의 한국 침략과 역사왜곡을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데 반해, 국내 수구 친일 세력은 "일제 침략이 한국에 도움이 됐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었다"라며 일본 극우와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이런 자들의 적지 않은 인사가 보수 정부의 국정에 깊이 관여해왔다.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섬나라로, 지진·해일·해수면 상승 등으로 국가 생존이 위협받는다. 모든 국가는 생존 전략을 추구하며 , 이를 경제력·국방력·외교력과 결합시켜 실행한다. 한국에서 친일 등 외세의존세력이 득세해 국민의 자주 의식과 주권 의식이 약화되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황당한 국제적 조작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투키디데스의 말처럼, 개인이나 국가 관계에서 정의는 힘이 대등할 때만 통한다.
편집: 김영수 객원편집위원. 조형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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