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생각들로 순서도 정오(正誤)도 없다. 오호(惡好)와 시비(是非)를 논할 수는 있지만 대상은 아니다. 중복도 있으므로 고려하면 좋겠다. 여러 차례에 걸쳐 싣는다.

출처:필자
출처:필자

 

1.

살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별의별 만남을 다 갖는다. 어떤 만남은 선물처럼 다가와 성공 인생을 만들고, 어떤 만남은 상처로 남아 오래도록 아프다. 그러나 그 모든 만남은 결국 한순간 작은 ‘틈’에서 비롯된다.

2.

문틈이 있어야 사람이 드나들고, 창틈이 있어야 바람과 빛이 드나든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생각과 마음에 틈이 있어야 남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빈틈 없이 닫힌 사람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다. 정(情)을 주고받을 통로인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삶은 단단해 보이지만 건조하고 각박하리라.

3.

틈은 태생부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살면서 생길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 틈은 부족하고 모자람의 일종으로 흠과 단점이라 할 수 있지만,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므로 틈 관리도 잘해야 한다.

4.

누구나 한때 자신을 스스로 지키겠다고 마음의 틈을 조이고 닫아 버린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무심한 말에 다치고,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고립을 자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외로움이다. 자신을 해치려는 이는 사라졌지만, 따뜻하게 감싸준 이도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차라리 작은 틈이라도 두었더라면, 자신을 꿰뚫는 아픔이 있었겠지만, 그보다 큰 위로가 들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5.

건물도 마찬가지다. 지진을 견디는 비결은 의외로 약간의 ‘틈’이다. 외부 충격에 완강하게 버티려다가는 쉽게 금이 가고 무너진다. 하지만 틈새는 충격을 흡수하고 완화한다. 나무도 건물도 흔들려야 할 때는 흔들려야 넘어지지 않는다. 사람도 그렇다. 강력하게만 버티다간 어느 순간 좌절하고 무너질 수 있다. 누르면 조금 들어가 주고, 밀면 물러나고, 때로는 넘어질 수도 있어야 한다. 이는 굴복이나 비겁함이 아니라 삶의 지혜다. 부드러움은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은, 자연이 가르쳐 준 동서고금의 오래된 이치이고 진리다.

6.

물론 모든 틈을 다 내어 줄 수는 없다. 무례와 탐욕 앞에 허술한 틈을 내보이는 것은 어리석음일 뿐이다. 한 땐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찌 완벽할 수 있겠는가? 진실한 사람과의 만남에는 반드시 숨 쉴 틈이 필요하다. 그 틈을 어느 정도 내고, 또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인생의 양질을 결정하리라.

7.

마음의 틈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더욱 중하고 귀하다. 자신이 먼저 작은 틈을 내어 줄 때, 상대도 서서히 자신의 틈을 드러낼 것이다. 때로는 그가 끝내 틈을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다. 스스로 열린 틈을 지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신 삶은 덜 쓸쓸할 것이기 때문이다.

8.

결국 세상은 서로의 틈을 통해 이어간다. 부모의 틈을 통해 아이가 태어나고, 친구의 틈을 통해 위로가 전해지며, 스승의 틈을 통해 지혜가 전수된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소중한 경험 대부분은 누군가 내어 준 틈의 결과가 아닐까. 돌아보면, 자신의 허술함을 비웃던 이도 있었지만, 그 틈을 통해 자신을 감싸 준 이도 있었다. 상처와 은혜가 뒤엉킨 그 기억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흠 많고 결점 많은 자신을 받아 준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이렇게 의연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감사하다.

9.

삶의 마지막까지 그 틈을 통해 감사하며 살고자 한다. 완벽한 성벽을 쌓는 대신, 바람과 빛이 드나드는 틈 한둘쯤은 남겨두리라. 누군가 그 틈으로 들어와 내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으로써 나 또한 누군가의 틈으로 들어가 그에게 머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편집: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조형식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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