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발 무궁화 열차

한낮의 따가운 햇살 아래 알곡들이 여무는 풍요로운 들판이 차창 밖에 펼쳐지고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열대야가 이어져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고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 드높아도, 한가위를 앞둔 들판의 곡식들은 묵묵하고 의연하다. 올 들어 유난히 어긋나는 계절의 순환을 굳건히 견디며 늦어지는 가을을 수굿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부산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고 느긋하게 무궁화 열차로 돌아가는 모처럼의 열차 여행이다. 배정된 발표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새벽에 출발하는 KTX를 타야만 했다. 내려올 때는 꾸벅꾸벅 졸거나 준비 자료를 확인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산과 들, 맑은 하늘과 구름이 차창 밖을 유유히 흘러간다. 그리고 이 모든 풍경을 담은 냇물이나 강물이 간간이 나타나, 철길을 가로지르거나 나란히 흐르다가 아득히 멀어져간다. 멀어지는 풍경이 아쉽고 그립다면, 새로 다가오는 풍경은 반갑고 설렌다. ‘모든 만남과 인연이 이러할 수 있다면…’ 부질없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늘 분주하면서도 반복적이었던 일상의 한 자락을 뚝 끊어내어 누리는 혼자만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다.

 

배정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잠시 짬을 내어 자갈치 시장에 들렀더니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왁자지껄, 술렁거리는 삶의 활기가 참으로 좋았다. 덩달아 싱싱해져서 질펀한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다가 하마터면 예약해 놓은 열차를 놓칠 뻔 했다. 서둘러 부산역으로 달려와 출발 직전에 간신히 올라 탄 서울행 무궁화 열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도심을 빠져나와 들판을 달리고, 나는 차창 밖 풍경에 오롯이 빠져버렸다.

비어 있던 내 옆자리에 새로운 승객이 앉게 되자 비로소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생선 비린내에 신경이 쓰였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돌아오니, 미동도 없이 우아하게 앉아 책 읽기에 골몰하고 있던 옆자리 여성이 조용히 일어나 창가의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옷차림과 몸가짐이 단정하고 세련된 여성이었다. 독서에 집중하는 모습 또한 요즘의 열차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기에 호기심이 살짝 생겼으나 고맙다는 눈인사만 가볍게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읽던 책을 다시 펼쳐 든 그녀의 손에 내 눈길이 무심히 닿았고, 고된 노동의 흔적이 실리지 않은 희고 가녀린 손가락에서 무색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반지를 보았다.

능숙한 솜씨로 생선을 다루던 자갈치 시장 아지매의 투박하고 거친 손, 마디 굵은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금반지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반지가 어울리는 손가락이 따로 있다는 생각에 공연히 쓸쓸해져서 가만히 내 손가락을 들여다보았다. 문득, 아주 빠르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다. 비슷한 상황이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게 누구랴? 많이 컸구먼! 어이구, 깜찍스럽기두 허지.”

엄마 손에 이끌려 외할머니 댁 대문을 들어섰을 때 반색하며 맞아주던 은례 어머니. 내 단발머리를 쓰다듬던 은례 어머니의 손길이 원피스 앞섶의 리본이며 레이스를 신기한 듯 부러운 듯 어루만질 때, 쑥스러운 내 눈길이 또 하나의 쑥스러운 눈길과 마주쳤다. 제 엄마 치맛자락에 반쯤 몸을 숨긴 수줍은 은례였다.

행랑채에 살면서 부엌일을 거들어주던 은례 어머니. 외할머니는 ‘바지런하고, 솜씨 좋고, 말 티 없고,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늘 ‘서방을 잘못 만나서…’로 마무리하셨다. 무던하고 소박한 심성을 지녔던 그 아주머니의 순한 눈빛에 어리던 서글픈 기운과 은례의 남루했던 치마저고리와 검정 고무신- 그러한 것들의 의미를 그때는 잘 알지 못하였다. 외할아버지 회갑잔치로 온 동네가 떠들썩하였던 그 며칠을 은례와 어울려 신나게 뛰어놀았을 뿐이다.

 

잇달아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외할아버지 회갑 잔치가 끝나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탔던 완행열차 3등 객실은 비좁고 후덥지근한 데다 공기마저 탁했다. 지독한 멀미 끝에 꾸역꾸역 토하고 있는데 아마도 2등 칸으로 가는 중이었을 내 또래의 예쁜 소녀가 질겁하며 토사물을 피해 지나갔다. 멀미에 지쳐 몽롱한 와중에서도 나는 보았다. 눈부시게 하얀 그 아이의 원피스와 레이스 달린 양말과 반짝이는 구두, 그 아이의 손을 잡은 여인의 멋진 썬 글라스와 영화배우처럼 곱고 화려한 모습을… 은례가 은근히 부러워하던 내 분홍빛 원피스와 빨간 운동화는 갑자기 촌스러워졌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알았던 내 엄마는 가사에 찌든 초췌한 아낙이 되어버렸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 장면과 기억은 생생하건만, 그때 어린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던 미묘한 감정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먹거리와 물건들이 귀하고 궁핍했던 시절, 가난한 이웃들만 접하던 나에게 무척 낯선 존재였던 그 소녀와의 열차 속 짧은 만남- 아마도 나에게는 세상살이의 고르지 않음에 대한 첫 눈뜸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 댁 찬광에서 꺼내 온 과줄이며 부침개를 내게서 받을 때마다 왠지 주저하며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던 은례의 마음을 뒤늦게 헤아리면서, 언제부턴가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었다.

 

아직 가을빛을 얻지 못한 진초록 숲이 차창 밖으로 흘러간다. 저 숲 어디에선가 구절초 꽃망울이 벙글고 산밤이 영글고 있을 것이다. 은례와 함께 뛰놀던 외할머니 댁 뒷산, 보랏빛 산도라지 꽃 피어나고 머루랑 다래가 익어가고 개암이 영글어 떨어지던 그 산이 그립다. 방학 때 외가에 가면 늘 단짝 동무가 되어주었던 은례가 가족들과 함께 도시로 이사를 가버려, 영영 만날 수 없었던 그해 여름을 지금도 아프게 기억한다. 오래전에 외가마저 떠나 전설처럼 까마득히 멀어진 그 산골 마을이 사무치게 그립다. 은례가 그립다.

지랑 풀 곱게 엮어서 풀각시를 만들어 건네주던 은례의 손을 생각한다. 아마도 고된 세상살이를 수십 년 겪어냈을 그 애의 손은 지금쯤 반지가 어울리는 고운 손은 아니겠지만, 바지런하고 솜씨 좋은 엄마를 닮아 날렵하고 야무졌던 그 손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잘 살고 있을 것만 같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 치마폭 가득 개암이며 산머루를 따다 주던, 낡았을망정 넉넉하고 당당하였던 은례의 무명치마를 생각한다. 가느스름한 눈매, 둥그스름한 얼굴 윤곽으로만 기억에 남은 그 애를 우연히 스치거나 만난다 해도 서로 알아보기 어렵겠지만,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 씀씀이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살이의 그늘과 상처를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 은례와 함께 산으로 개울로 논두렁으로 마냥 쏘다니며 놀던 추억은 내 생애의 한 자락을 순수와 해맑음으로 채색한 한 폭의 수채화이다. 나는 그 수채화를 곱게 접어 가슴 한구석에 간직해두고 세상살이가 폭폭할 때마다 펼쳐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차창 밖에는 어느덧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열차 안에는 전깃불이 켜졌다. 환한 불빛을 안고 어둠 속을 달리는 열차는 밖에서 바라보면 무척 따스하고 평화롭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차창에 얼비치는 승객들의 모습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먹거리와 물건들이 흔해졌고, 옛날에는 어렵고 불편했던 일들이 지금은 쉽고 편리해졌는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옛날보다 행복하지 않은 듯하다.

내 마음은 다시금 삶의 활기가 펄펄 넘치던 자갈치 시장으로 달려간다. 씨억씨억한 경상도 사투리의 자갈치 시장 아지매들, 그 당당하고 꿋꿋한 생명력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환하다.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생선 비린내, 이젠 괜찮다. 바닷바람에 실려 온 갯내음 한줌 묻혀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차창 밖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두워진 밤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홀로 빛나고 있다. 곧이어, 숨어 있던 크고 작은 뭇별들이 돋아날 것이다.

 

 

편집: 박춘근 편집위원,  조형식 편집위원

이문복 주주  anak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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