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눈감지 않으셨고
광주 공동체의 아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나누셨으며
오월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외치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고개를 숙이고 위와 같이 추모사를 남겼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인을 가까운 곳에서 보살피던 김현주 선생(광주인성고교 교사, 전교조 광주지부장)은 말한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이번 불법 계엄과 내란에 맞서 도청 앞 민주광장을 찾곤 하셨습니다. 2024년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1980년 오월이 45년의 세월을 넘어온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오늘이 있습니다. 부디 가신 곳에서는 맘고생 몸고생 덜 하시며 지내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산 자의 몫을 다하기 위해 다시 걷는 걸음으로 선생님의 삶을 추모하겠습니다.”

한편, 고인의 40년지기인 김민곤 선생(서울참교육동지회장)은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읊었다.

“늙고 병든 몸
한 줌 재가 되어 항아리에 담겼네
이제 이별 의식을 집행할 시간
너른 묘역에 진혼곡 장중히 울리고
추념문 앞 제대에 하늘로 오르는 연기
살아온 시간 흔적들이 나열되고
메마른 말들이 추억 담아 흩어지네

아들딸 둘, 그리고 말 없는 아내
그 속마음 우리 어찌 헤아리리

제2묘역 한 자 깊이 구멍을 파고
골호를 내려 태극기를 덮네
그래 그대 이 나라에 청춘 바쳤으니
대통령도 조기를 보내고 뭇 벼슬아치들 조의 표했네

잘 가세요
고이 잠드세요
옆에 며칠 먼저 온 이인호가 있고
저 너머 윤영규 권영국 오종렬 동지가 있고
시민군 동지들 민족 민주 열사들 두루 누웠으니
낮에는 햇빛 구름 시간이라 심심해도
밤은 바람 타고 여러 영령 노닐 때이니
휘영청 달이 밝거나 별이 쏟아지는 밤
철창치고 감방 벽 두드리듯 통방하여
이승살이 추억담도 나누고
세상 어지럽히는 악귀들 혼낼 계획도 짜시고
그리하시고

잘 가세요
고이 잠드소서
정해직 동지”

위에서 언급한 네 분의 열사는 모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5•18 유공자로 5•18민주묘지에 묻혀 있다.

⁕윤영규: YMCA 중등교사협의회 3대 회장, 전교조 초대 위원장, 5.18기념재단 이사장, 동아시아 평화·인권 한국위원회 공동의장 역임,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이인호: 1989년 당진상고에서 해직, 1994년 만리포고 복직, 2020년 천안여고에서 정년퇴임, 전교조 당진지회장•천안지회장, 전국교사연극모임 대표 역임

⁕권영국: 공주사범대학교 재학 시절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구속, 전교조 충북지부 초대지부장 역임하면서 구속•파면

⁕오종렬: 전남 고흥에서 중학교 교사로 부임, 금산초등학교•광주 동명여중•전남대 사대부속고교•전남고•전남여고 등에서 교사로 재직, 한국진보연대 총회 의장, 5.18 민족통일학교 초대 이사장 역임

고 정해직 선생의 장례식에는 가족, 친지, 그리고 150여 명의 지인이 끝까지 함께하였다. 한가운데 아들, 정광모 씨가 묵념하고 있다. 2025. 10. 12. 김민곤
고 정해직 선생의 장례식에는 가족, 친지, 그리고 150여 명의 지인이 끝까지 함께하였다. 한가운데 아들, 정광모 씨가 묵념하고 있다. 2025. 10. 12. 김민곤

 

5•18 북한 개입설의 장본인 전두환, 그리고 나팔수와 끄나풀들

1980년 5월 24일,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던 전두환은 광주항쟁 당시 4차에 걸쳐서 언론인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다. 보충하면, 그는 전남도청 집단 발포 이튿날부터 언론사 간부들을 불렀다.

5월 22일(목): 신라호텔, 기관장(사주)
5월 24일(토): 신라호텔, 편집국장
5월 26일(월): 롯데호텔, 정치부장
5월 27일(화): 플라자호텔, 사회부장

“광주 사건은 일찍이 여수 반란 사건처럼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처럼 과격분자의 투쟁 형태로 되어 있다. 김일성이 정면 전쟁으로 쳐들어온다면 미군도 있고, 당당하게 싸울 것이지만 김일성은 영리하게 2~3천 명의 비정규군에 의한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

1980년 5월 24일 전두환이 언론사 편집국장단과 비공개 간담회에서 한 말로, 뉴스타파가 입수해서 공개한 문건이다. 입때까지 ‘5·18 북한군 개입설’의 단초로 작용하는 전두환의 위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관’의 사주를 받아 그날 이후 의도적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날조하고 신봉하는 무리가 늘어난다. 게다가 일부 종편 채널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입맛에 맞는 탈북민을 내세워 “5•18 당시 북한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해 왔다”라는 식으로 거짓을 되풀이함으로써 법적 제재를 받기도 했지만, ‘광주 사태’의 ‘북괴 개입설’은 끝 간 데 없이 퍼져 나간다.

뉴스타파, 강민수, [12·12 특별 기획], 2020년 5월 15일

 

악담패설을 일삼는 소설쟁이들

“5•18은 북한에서 내려보낸 600명의 특수부대원(일명 ‘광수’)이 일으킨 폭동”,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 사건”,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일성 찬가” 따위는 이미 진부한 사술이다.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집적거린다. 이름 가리고 뒤에 숨어서 그대를 음해하고 광주를 능멸하는 자, 부지기수다.

•“절라도 대깨문들의 말의 신빙성은 짱깨수준이라 패스” -ache****-

•“당신은 천성적인 데모꾼은 아닌가요?” -uc******-

•“너네들은 종북좌빨갱이” –jpho****-

•“이 시기에~~~왠 5.18~~~ ~~~~시도때도 우려먹는~~~지역감정 ~~~이젠 약발 다했다~~” -sodi****-

•“국민들분리시키는 좌파들 5.18이야기는 선거철만되면 어김없이 나오네 ㅋㅋ” -jjk9****-

•“5.•8 마패 들고 설치는 문씹새 패거리들” -태극기 혁명전사 노이린-

악담패설을 일삼는 소설쟁이들이 줄을 잇는다. 귀신 아홉 죽은 것 보았다는 인간 말종들까지 ‘더러온 긔운’이 온누리에 늘비하다. 남은 분들 대부분 60•70세대라 지독한 병마가 언제 숨통을 조일지 모르는데 아야, 어째야 쓰꺼나? 병귀보다 지독한 왜곡과 폄훼와 질시를 어찌 견딜 수 있을까?

명색이 국회의원이던 김순례(제20대, 자유한국당)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으로 일궈낸 자유 대한민국의 역사에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라고 으르고,

5•18 민주화운동을 폭도, 선동이라고 표현한 댓글에 ‘좋아요’를 누른 당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손가락 운동을 조심하겠다.”라고 조롱하지 않았던가?

그런가 하면, 조선일보마저 ‘극우 논객’이라고 칭한 지만원(시스템클럽 대표)은 어떤가?

대구에 사는 한 일베는,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난사한 M16에 맞아 숨진 희생자(당시 무등중학교 3학년)의 관 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와 누나를 가리키면서, ‘시신을 안치한 관’을 ‘홍어가 들어 있는 택배물’로 취급한다.

지만원은 이에 분노한 사람들을 향해 “아프리카만도 못한 후진국 현상”으로 “수천의 빨갱이들이 온갖 저주들을 퍼부었다.”라고 매도했다. 사과문을 쓴 일베를 두고는 “법 밖에서 ‘신사도’를 보여주었는데 ‘광주족’들은 이런 신사도를 악용했다.”라고 주장하면서, “사자에 대한 모욕죄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검사의 1년 구형을 대한민국 검찰의 체면과 공신력을 깎는 망언”으로 규정했다.

KBS 광주, ‘5·18이 만든 12·3의 밤’에서 갈무리, 2025. 5. 12.
KBS 광주, ‘5·18이 만든 12·3의 밤’에서 갈무리, 2025. 5. 12.

 

전두환을 계승한 ‘불세출의 망나니’

말해서 뭣하랴!
‘괴물’, ‘극우 망언자’로 회자하는 자들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두말없이 원조는 5•18을 기획하고 광주를 난도질한 전두환이다. 그리고 그 전가를 아비로 삼아 비상계엄을 발동한 윤석열을 보라! ‘비상계엄’ 하나만으로도 그는 전두환을 계승한 ‘불세출의 망나니’로 등극한다.

윤석열은 한 예능 프로에서 5•18 당시 자신이 무슨 정의와 민주를 부르짖다가 수배자로 몰려 도망 다닌 양 능청스레 둘러댔다. 광주 사람들조차도 그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태생적 입벌구족(입만 열면 구라까는 족속)의 전형이다. 그러니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을 빼면 정치를 잘했다.”라는 말을 뇌까리지만, 따지고 보면 죄다 새빨간 헛말이다.

조금만 더 꿰뚫어 보라. 아마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이랬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바로 나 윤석열의 롤 모델이다. 왜 민족시인 서정주는 그분께 ‘일해’라는 호를 진상하고, 단군 이래 가장 온화한 미소를 가진 대통령이라고 칭송하지 않았는가? 맞다! 그분은 불세출의 영웅이요, 단군 이래 가장 뛰어난 대정치가시다. 내가 믿는 하나님과 천지신명 앞에서 고백한다. 군사 쿠데타와 5•18이야말로 실로 길이길이 계승 보전 발전시켜야 할 국가적 이념이 아니겠는가!!!』

이런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다시 대한민국(RESET KOREA)!’, ‘다시 윤석열(YOON AGAIN!)!’을 되뇌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2025. 11. 7.)
MBC, 뉴스데스크(2025. 11. 7.)

 

5•18! 대한민국 민중 항쟁사의 끝이기를

“80년 5월 27일 당일
도청 등에서 19명이 총상 등으로 사망하였으며
그 후 고문 후유증 등을 앓다가 사망한 동지들이 47명
오늘 정해직 동지가 48번째입니다. 살아 있는 180여 명 중에서 병상에서 힘들게 지내는 이들도 40여 명 됩니다.”

이양현 선생(광주민중항쟁 최후의 시민동지회 부회장)이 추모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아하, 천계로 입성하는 증표가 따로 있었구나. 48번이라…. 어찌 그리 빨리 가셨는가? 등 떠민 자 아무도 없을 테니, 그대 거기서도 스스로 나섰는가? 그나저나 아,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스러져야 광주에 평화가 올까? 아니, 과연 광주의 항쟁은 5•18로 끝날까? 참말로 광주만의 항쟁으로 끝날까? 자꾸만 자꾸만 ‘대항쟁’을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불길한 예감은 나만의 강박인가? 아서라, 그대를 믿는다. 그대가 말한 대로 광주는 죽지 않고 영원할 테니….

1980년 5월!
광주의 하늘과 땅이 피로 물들던 날, 모두가 숨죽인 채 골방에 숨어 광주를 보지 않으려고 광주를 듣지 않으려고 너나없이 광주를 탈출할 때, 광주 사람 아닌 그대, 광주로 달려가 광주사람이 되어 누구보다 뜨겁게 광주를 보듬고 같이 울었다!

그대는 시민군 최후의 민원부장으로서 치열하게 계엄군과 맞닥뜨렸고, 일마다 훨씬 더 엄혹하게 시민들과 함께 소매를 걷어붙였다. 도청 앞에다 허름한 책상 한 개 두고 행불자 신고를 받고, 곳곳에 널브러진 시신을 수습•운구하고, 두루두루 수소문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그때마다 터져 나오는 유족들의 눈물을 가슴으로 쓸어내리면서 차마 감지 못한 두 눈을 감기고 수의 대신 태극기로 덮어서 상무관으로 보내니 아이고! 그대 선 자리 눈물 흐르고 그대 앉은 자리 눈물 고이고 그대 누운 자리 눈물이 배어 죽음을 각오하니 계엄군의 최후통첩이 두려우랴? 그대들은 드디어, 항쟁의 마지막 밤 자정이 넘은 시각 무자비한 저들에게 침탈당하고 만다. 그래, 그대는 당신 말마따나 ‘통곡의 땅’에서 흔들리지 않고 광주를 사수했다. 끝까지 ‘사람’을 지켜냈다.

저들은 그대를 505 보안대로 질질 끌고 갔다. 저승사자 같은 저들은 2미터가 넘는 몽둥이로 뭇 타작을 시작한다. 질질 끌려온 그대, 오랏줄로 목이 묶이고 수갑 찬 두 손까지 뒤로 묶였으니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에서 입속으로 주전자 주둥이를 밀어 넣고 시작한 물고문! 아, 들들들 들이붓고 옆에 있던 다른 놈이 발바닥을 사정없이 패대기치는데, 그대 아무리 당차다고 한들 정말 동물적 한계를 넘나들었으리라. 간부라는 이유로 한 달 남짓 이어진 갖은 패악질에도 그대는 굴하지 않았다. 그것은 저들의 눈 속에서 독립군을 내리족치던 일제 순사들의 광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핏빛 서린 오기와 이글거리는 심지로 그대는 4•3의 원혼과 소통하면서 죽음보다 잔인한 고문을 견뎌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광주사람으로 살아남았다!

한겨레 TV, [5·18 그날 그 사람들] ‘두 차례 해직에도 꿋꿋했던 시민군 민원부장 정해직 교사’, 2020. 3. 25.


그대 가는 날
그대가 수습했던 주검들이 되살아나
‘민주의 문’ 앞에 모여 그대를 봉송하고
5•18민중항쟁추모탑 앞에 이르러 영결식을 치르는구나.

우선, 그대 앞에 예로써 묵념을 올리고 몇몇이 이승의 연 밝히면서 그대를 추모하며 조사를 낭독한다. 이에 그대 아들이 머리 숙여 아비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다짐하자, 너나없이 그대를 기리면서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린다. 이때 하이얀 국화 송이보다 순결한 그대 얼굴 되살아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른다. 죽은 자가 추동하니 산 자가 어쩌겠는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일어나 그대를 영원한 안식처로 봉송하는데 아고, 민주묘지 전역에 울려 퍼지는 노래 있어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무등산을 푸르게 물들이고,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광주천을 넘쳐흐르게 한다.

고 정해직 선생의 골호 위로 아들, 정광모 씨가 허토하고 있다. (사진 출처: 광주매일신문, 2025. 10. 12.)
고 정해직 선생의 골호 위로 아들, 정광모 씨가 허토하고 있다. (사진 출처: 광주매일신문, 2025. 10. 12.)

 

그대 앞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그대가 5•18 영웅들을 덮어 주던 태극기! 이제 그 혼령들이 나서서 태극기로 그대를 휘감으니, 나라꽃 무궁화 한 송이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데 눈물로 호소하는 그대의 영현(英顯)까지 나서서 함께 부르는 노래가 온누리에 쟁쟁하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라는 영가(詠歌)가.

‘상주’ 리본을 달고 3줄 완장을 찬 아들이 먼저 흙 한 줌을 세 번에 나누어서 그대 얼굴에 흩뿌린다. 이어서 기다리던 상제들이 차례대로 허토하니, 바람 소리만 ‘쌩’ 한데 갑자기 걸진 소리가 들려오는구나.

“거 참, 독수리가 돼야 갖고 힘차게 좀 날라댕기고 못된 놈들 눈구녕이나 팍 후벼 불더라고…….”

눈물도 말라붙었는가?
울음도 멎고 천막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 여전하다. 그때 또 다른 누군가는 성에 차질 않았는지 합장하더니, 장례지도사가 내미는 삽자루를 밀치는 게 아닌가. 그는 손으로 흙을 집어서 세 번 흩뿌리고 다시 합장한다. 이렇듯 저마다의 방식대로 그대의 명복을 빌고 있다.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출처(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 가운데 일부를 인용함.)

위는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총에 숨진 아버지(조사천)의 영정을 들고 선 조천호(5•18 당시 5세) 군이다. 사진을 찍은 프랑수아 로숑은 “그 어린아이는 어머니도 가족도 없이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혼자 있었어요.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꼭 조각상 같았어요. 무표정했어요.”라고 말했다.(출처: KBS 뉴스라인, ‘5•18 꼬마 상주’ 갈무리 장면, ’2023. 5. 5). 아래는 5•18국립민주묘지 벽화(출처: 광주 ‘회화그린섬미술학원’ 블러그에서 인용)
위는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총에 숨진 아버지(조사천)의 영정을 들고 선 조천호(5•18 당시 5세) 군이다. 사진을 찍은 프랑수아 로숑은 “그 어린아이는 어머니도 가족도 없이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혼자 있었어요.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꼭 조각상 같았어요. 무표정했어요.”라고 말했다.(출처: KBS 뉴스라인, ‘5•18 꼬마 상주’ 갈무리 장면, ’2023. 5. 5). 아래는 5•18국립민주묘지 벽화(출처: 광주 ‘회화그린섬미술학원’ 블러그에서 인용)

 

저 붉은 솔이파리, 그대 숨결로 되살아나리니

광주와 달리 여기 홍천은 하늘도 울고 바람도 스산하다.
거무튀튀한 하늘에서는 온종일 비가 내리고 산천도 곡기를 끊었나 보다. 초목이 온통 주검 나부랭이로 그득하다. 늘푸른 상록의 기상은 간데없고 그대 따라 저리도 선 채로 말라죽어 가고 있다!

좀비 같은 버러지떼, 재선충!

보수논객 조갑제(조갑제닷컴 대표)마저 “한국의 극우는 어둡고 더러운 곳에서만 살 수 있는 역사의 바퀴벌레”라고 마름질하지 않았던가?

그러게 말이다!
태곳적부터 대한 산하 굳건히 지켜온 정목(貞木) 죄다 갉아먹고, 기어이 그대까지 앗아갔구나.

누가 흐르는 물, 말이 없다 하였는가?
새벽부터 일던 물비늘 소리
어느새 가슴앓이 가라앉히고
찰방찰방 흘러간다, 광주로 간다

추석달 바라보며 옷깃 여미고
밤새 기구하던 홍천강 푸른물결
허위허위 흘러간다. 광주로 간다
잔물결도 너울너울 광주로 간다

그대 가도 우리는 남아
그대를 보듬고 추억하나니
그대는 이 땅의 영혼이 되고
우리들의 봄이 되어 되돌아오라, 기필코 되돌아오라

그리하여
바람 따라 그대의 숨결 다시 살아나
하늘 가린 먹장구름 깡그리 다 쓸어버리라
이 땅의 아이들, 들꽃처럼 한껏 피어오르고
선 채로 말라죽은 저 붉은 솔이파리 다시 푸르리니….

팔봉산(강원도 홍천군)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본 홍천강의 아침, 2025. 10. 11. (박춘근)
팔봉산(강원도 홍천군)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본 홍천강의 아침, 2025. 10. 11. (박춘근)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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