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문향경북문인 시낭송 올림피아드

가을맞이 詩의 잔치

지난 9월 3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경북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시낭송 잔치가 열렸다. 박찬선 시인의 '깨어있는 집', 서상은 시인의 '호미송 연가', 김종섭 시인의 '부서지는 아름다움', 권숙월 시인의 '글자' 등 "원로 자작 낭송시"를 시작으로 경북 각 지에서 온 30명의 시인들이 무대에 올랐다.

상주 은척 동학교당을 주제로 한 박찬선 시인의 '깨어있는 집'을 싣는다.

깨어 있는 집

살아있는 자들은 집이 있습니다.

죽은 자들도 집이 있습니다.

풀쐐기가 야문 각질의 집을 짓듯이

굳고 단단한 성 같은 집을 짓고 삽니다.

 

방랑자와 방황하는 자는 집이 없습니다.

가는 길이 집이요 머운 하늘이 집입니다.

산에 집을 짓기도 하고

바위 속에 집을 짓기도 합니다.

 

미로의 중심에 지은 정신의 집 네 채

낮이 없던 깊은 밤 잠자지 않고 깨어있는

집안에 집이 있는 음양의 조화

 

집을 두고도 집이 그리워서

사경寫經을 하듯 한울님의 집짓기를 거듭해 온 개벽

서러움이 받치면 집이 됩니다.

눈물이 마르면 집이 됩니다.

 

물결에 바람결에 허물어지는 보루

가라앉은 주춧돌만이라도 지키려는 어기찬 행진

굴욕의 끝에 자리 잡은 교당敎堂

고문 받는 신음소리 사이사이

경 읽는 소리, 주문 외는 소리, 먹 가는 소리

뒷담 위 하늘수박 익는 소리가 들리는

열린 하늘집

 

가난한 자의 집은 대낮같이 밝습니다.

집안에 없는 자의 고독이 켜켜이 쌓여

밤에도 빝나는 구슬처럼

혼이 나르는 반딧불처럼

빛을 나누는 집이 됩니다.   

활자로 된 시는 눈으로 가슴으로 읽는다. 시가 낭송되면 우리는 오감을 다 열어 입체적으로 살아난 시 속에 함몰된다.

▲ 경북문인협회 김주완 회장님의 인삿말

한 편 한 편 생명을 얻어 펄럭이는 시들이 실내를 채우면 누구나 이승의 고난 쯤은 훌훌 털고 어느 먼 별에 머문다.

▲ 박찬선 심사위원장님과 20여 명의 심사위원
▲ 경주중학교 조광식 교감선생님도 마구 망가지며 흥겨운 시낭송

 

 

이렇듯 매력적인 시낭송에서 대상과 금상을 받은 작품 세 편을 싣는다.

{대상}

 

물소리를 그리다 <작품 김주완 / 낭송 김성희>

-기우도강도*

나갔다. 물소리를 만나러 강가에, 날마다 나가 귀 열고 하루 종일 살폈다. 망초꽃 줄기를 차오르는 물소리, 쥐 오줌 번진 고서의 책갈피에서 연기처럼 새어나오던 그렁그렁 중시조의 가쁜 숨소리, 젊은 어머니의 가슴으로 휘돌아 나오는 한굼 소리 보았다. 만나서 보다가 읽으며 들었다. 흐르고 흐르는 소리

그리고 싶었다. 물소리를, 밤마다 그리는 진경산수화, 간절한 물소리의 사경, 온전한 소리가 그려진 화첩을 꿈결에 펼치고 또 펼쳤다.

그렸다. 붓을 들어 강줄기 그득한 물 위에 섶다리를 세웠다. 지게 짐 진 초동 두엇 앞세우고 갓 쓴 노인이 지팡이 짚고 다리를 건넌다. 지나온 한 생의 무게가 강의 서쪽 끝으로 기우는데 산자락 마을의 키 큰 나무 아래 키 낮은 집들 참 가지런하다. 소 등에 올라탄 아이 엎으로 젊은 유생이 소 등에 앉아 나란히 강을 건넌다. 어린 송아지 한 마리 하얗게 물 속을 뒤따른다 세상의 세월이 대대로 흐르는 강물 자락, 그들이 듣고 있을 물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남겼다. 언젠가 눈 밝은 자는 볼 것이라 화폭 여백에 구석구석 물소리를 숨겼다. 차곡차곡 접어서 풀숲에 찔러넣은 물소리, 물소리, 긴 강물 소리.

*기우도강도: 단원 김홍도의 진경산수화. 병진년 화첩 제7폭.

 

 

▲ 대상을 제외한 금은동, 상을 다 거머쥔 경주문인협회 회원들의 의기양양

 

{금상}

나 하나 꽃 피어  <작품: 조동화 / 낭송 정만자>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질까

말하지 말아라

 

너도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나도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금상}

편백나무 숲 2 <작품: 김주완 / 낭송 한다혜>

편백나무 숲으로 가기로 했네, 염주알 같은 마른 열매 주워 목배게 만들자고 했네, 팔월 쓰르라미가 사철 내내 울 것이니

 

거기는 키 큰 자들의 마을, 누가 먼저 갔기에 길은 나 있어, 숱 많은 머리를 맞대고 은근히 내려 볼 것이네, 푸른 물 곱게 든 새벽을 머금고 있을 것이니 아예 우산은 가져가지 말아야 하네, 수런수런 비라도 내리면 사람이 나무가 된다고 하네, 빗줄기 같은 사랑은 거기 어디 걸어두고 와야 하네, 조금씩 녹아 마른 땅 깊이 스며들어, 멀리 흘러가라고

 

따닥따닥 집을 파는 딱따구리 부리가 성할는지, 괘념치 마시게, 세상을 깨우는 소리는 상하지 않느니, 편백나무가 생명을 들이는 거룩한 절차, 교만이 없고, 과시가 없고 허욕이 없는 성사聖事이네, 따닥따닥 경쾌한 절제의 소리

 

그러나 편백나무 숲은 멀고 우리는 끝내 가지 못했네, 길은 있는데 길을 몰랐네, 같이 갈 반려자는 오지 않고 기다림은 기다림으로 끝나는 것이었네, 내 속의 옹이를 숲으로 가꾸는 수 밖에 없는 것이네, 가보지 못해 그리운, 편백나무 숲 


 

 

 

이미진 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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