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로 민심이 들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30일 이원종 비서실장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 함께 사정 권력의 정점에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했다.

▲ 김태규 <한겨레> 기자

신임 민정수석은 대검 수사기획관과 대검 중수부장 등을 지낸 최재경 변호사가 임명됐다. 그의 내정 소식에 김태규 <한겨레> 정치부 기자는 이 날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 신임 민정수석 임명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본인의 허락을 받고 이 글을 주주들에게 소개한다. 

 

 

애초에 ‘우병우 사단’은 형용모순이었다. 잘난 척하고 자존심 센 검사 우병우는 피의자의 자백을 잘 받아냈을지언정 선배들의 인정과 후배들의 존경은 받지 못했다. ‘우병우 사단’이라는 신조어는 그가 누군가(최순실?)에 의해 발탁돼 청와대에 민정비서관으로 들어가 선배를 밀어내고 민정수석 자리까지 꿰찬 그 즈음부터 생긴 말이다. 지금도 검찰 요로에는 ‘우병우 사단’이 포진돼있다.

이와 비교해 ‘최재경 사단’은 역사가 긴 용어다. 최재경은 특수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젊은 시절 비교적 강직한 수사와 밤을 새는 고된 강행군에도 후배들을 향한 인간적 면모를 잃지 않아 내부적으로 신망을 얻었다. 대구고-서울대의 검찰의 대표적 ‘티케이 성골’이었지만 우병우와는 닫른 겸손함까지 겸비해 검찰 선·후배 모두 그를 예비 검찰총장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벼슬이 높아지면서 그는 늘 ‘서초동 정치’의 한가운데 있었다. 대선이 있었던 2007년 특수1부장 시절, 그는 이명박의 도곡동 땅 실소유 의혹을 수사했다. 이명박 쪽은 도곡동 땅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형인 이상은씨 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의 결론은 달랐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맞붙었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직전에 최재경 특수1부장은 “도곡동 땅은 제3자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형님 것이라는 이명박의 주장은 틀렸다는 얘기였다. 훗날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도곡동 땅이 이명박 땅이라는 얘기였다. 비비케이 같이 어려운 것 말고 도곡동 땅처럼 쉬운 걸 가지고 물고늘어지라고 정치권에 말해준 건데 그걸 못 알아먹더라.”

그해 말 이명박과 BBK를 공동창업한 김경준이 미국에서 들어오고 최재경 특수1부장은 이 사건까지 수사하게 됐다. 2007년 12월 대선 직전, BBK는 이명박과 아무런 관련 없는 김경준의 단독 사기로 결론냈다. 또 이명박의 실소유 의혹이 불거졌던 다스라는 기업에 도곡동 땅 매각대금이 흘러들어갔는데도 “다스는 이명박 회사가 아니다”라며 무혐의 처분했다. 이명박의 당선이 확정된 거나 다름없는, 대선을 불과 13일 앞둔 시점이었다.

최재경은 이명박 정권 출범 뒤 대검 수사기획관에 기용됐고 노무현 대통령 형 노건평씨 수사 과정에서 ‘큰 건’을 발견했지만 일단 ‘숨고르기’를 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가 대검을 떠난 뒤 검찰의 불장난은 시작됐고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 그의 후임 수사기획관이 홍만표 변호사이고 당시 중수1과장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다.

이명박 정권 말기 그는 대검 중수부장에 오른다. 저축은행 수사를 통해 대통령 형 이상득을 구속함으로서 여전히 명성을 이어가는 듯 싶었다. 그러나 이명박의 역린이었던 민간인 사찰과 내곡동 사건에서 그는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선다. 이명박이 퇴임 뒤 살 집을 내곡동에 지으면서 해괴한 방식으로 나랏돈 십수억원을 꿀꺽한 파렴치한 범죄를 접하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당연히 기소 의견을 냈다. 그러나 최재경 중수부장은 최 중수부장은 “사저가 들어서면 경호동 부지의 시세가 올라가서 개발이익이 생길 텐데, 이 이익을 국가가 독점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무혐의 주장을 했다. 결국 부실수사에 이은 검찰의 무혐의 결론은 특검까지 가서 뒤집히는 망신을 당한다.

▲ 최재경 신임 민정수석 내정자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국무총리실 윤리지원관실을 움직여 이른바 ‘좌파 색출’에 나선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 최재경 중수부장의 역할은 더욱 극적이었다. 검찰이 재수사 끝에 이영호가 작성한 사찰 보고서가 이명박에게 보고됐다는 ‘일심 충성 문건’을 관련자 USB에서 발견했다. 청와대 비선의 민간인 사찰이 단독범행이 아닌, 이명박까지 알고 있었던 정권 차원의 조직적 범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물증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통해 이 문건을 극적으로 찾았지만, 어느날 대검 중수부장실 수사관이 건너와 이 USB를 가져갔다. 핵심물증이 석연찮은 이유로 수사팀 바깥으로 유출된 것이었고 유출을 실행한 당사자는 최재경 중수부장의 부하였다. 윗선에서 내려오는 온갖 외압과 싸우며 수사를 이어가던 검사들은 결국 폭발했고 USB를 반출한 사람으로 최재경 중수부장을 지목했다. 중수부의 일개 수사관이 서울중앙지검 검사실에 내려와 USB를 가져갔으니 최재경 중수부장을 의심하는 건 당연했다. 결국 검사 한 명은 새벽에 검찰 내부게시판에 사직의 변을 올리고 사표를 제출했다. 일파만파 사건이 커지자 최재경 중수부장은, 검사가 사표를 낸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그 검사 집을 친히 찾아 그의 사직을 말렸다. 요리 보고 저리 봐도 그가 구린 게 있음이 틀림 없었다.

그 사건은 9개월 만인 2013년 1월, 내가 쓴 ‘정치검사의 민낯’이라는 시리즈 기사의 첫 회(“최재경 중수부장, 사찰 핵심물증 틀어쥐고 시간끌었다.)로 알려지게 됐다.

[관련기사 보기] http://goo.gl/i7W9uC

관련자의 증언, 앞뒤 정황을 다 따져보고 90%의 확신을 가지고 쓴 기사였지만 난 언론중재 건으로 시달려야 했다. 기사에서는 “USB를 분석한 자료를 중수부장이 틀어쥐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최재경 중수부장 반론의 주요 내용은 대검 디지털포렌식 자료를 중수부장실에서 인터셉트한다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팩트가 틀렸다는 것이었다. 후에 추가 취재를 해보니 USB 분석 자료가 아닌 USB를 통째로 대검에서 가져간 것이었다. USB를 보관하고 있던 검사는 “최재경 중수부장의 지시”로 이를 내줬다고 했다. 죄질이 더 나빴다. 최재경 중수부장이 수사를 방해했다는 기사의 핵심내용에는 어긋날 게 없는 지엽적인 문제 제기였다. 당시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검사는 최재경 중수부장의 반론을 접하고선 “우리가 내용을 다 아는데 최재경 중수부장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정말 실망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 기사를 쓰고 난 검찰 내 ‘정의감 있는 특수검사’ 여럿에게서 직간접적으로 항의를 많이 받았다. “최재경이라는 사람이 설마 그럴 리가 없다”, “너무 삐딱한 시각으로 기사를 쓴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난 민간인 사찰 수사팀 내부로부터 그런 제보를 받았고 수사팀 안에서도 USB 도난 사건의 주인공으로 최재경 중수부장을 지목했다. 난 상식적인 선에서 기사를 썼는데 ‘최재경 사단’의 불만은 대단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은 “왜 그게 최재경이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엠비 시절 검찰이 폭망하는 과정에 검찰총장, 법무장관, 민정수석 등의 역할이 각각 있을 텐데 ‘왜 최재경만 조준하느냐’는 얘기였다. 이런 반응이 최재경 이름 석 자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됐다는 반증이었다. 강직하고 수사능력도 뛰어나며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 많은 검사들은 거의 반인반신의 경지에 오른 ‘최재경 신화’에 빠져 있었지만 내가 엠비 검찰을 취재하면서 접한 팩트들은 최재경이라는 사람도 어떤 면에서는 그냥 평범한 검사일 뿐이었다. 신화와 성역은 깨지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최재경은 세월호 사건 수사를 통해 재기를 노렸지만 유병언 검거 등 세월호 사건을 제대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검찰을 떠났다. 그리고 그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검찰 내 ‘최재경 사단’은 여전히 존재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재경 민정수석 기용이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위험한 대통령의 모든 정치적 권한을 내려놓게 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시점이라 청와대 참모 인사도 최소한의 업무만 가능한 무색무취한 사람들로 채워질 줄 알았는데.. 최재경은 그러기에는 너무 뛰어난 사람이다. 우병우가 우격다짐으로 검찰을 장악했다면 최재경은 인품으로 검찰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검찰에서 수사 좀 한다는 검사나 수사관이 파견 형태로 나갈 특검도 마찬가지다. 결국 박근혜는 칼날 위에 선 자신을 제대로 보호해줄 수 있는 유능한 변호인을 찾은 셈이다. 그것도 나랏돈으로.

편집: 이동구 에디터

김태규 <한겨레> 정치부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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