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마광남 주주통신원

우리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김을 해우라고 불러왔고 한 때는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할 만큼 많은 생산을 했었다. 무더운 여름철에 대나무 발을 치느라 고생도 했고, 무려 40척(약13m)이나 되는 말목을 찌르느라 심하면 부자간에도 입에 담기 거북스러운 말을 해가면서 해우 발을 막았다. 엄동설한 모진 추위에도 우리는 해우를 생산하여 수출을 해서 국민 소득을 높이는데 일조를 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해우가 본래의 이름인 해의(海衣)나 해태(海苔)라고 부르다 김으로 불리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김이 우리 완도를 살찌우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 김의 값은 어떠했을까? 현재 시중에는 품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김 한속의 값은 대략 5~6천원이 간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김이 한속에 3냥6전이였다고 한다. 반면에 햅쌀(新稻米)은 한 되에 6전이었다. 이 계산으로 보면 쌀 6되 값이라야 김을 한 속 살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조선왕조 제23대 순조왕(純祖王) 8년(1808년)의 기록) 그런데 지금은 쌀 한 되에 4천5백을 한다.

예부터 이르기를 김 한속을 팔아서 쌀 한 되만 살 수 있다면 할 만하다고 했던 것으로 본다면 지금의 김 값은 적정하다고 표현 한다면 무리일까?

이러한 김이 조선시대에는 복란(鰒卵), 편란(片卵), 대구어란(大口魚卵), 명란(明卵)과 더불어 삭선(朔膳)이라고 하여 매월 1일에 임금에게 진상하는 물품 중의 하나였으니(增補文獻備考 卷151 田賦考 貢制) 김이 귀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렇듯 김의 옛 명성을 다시 살릴 수는 없는지 2014년 해조류박람회를 계기로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문집총간 목은시고(牧隱詩藁) 제31권 시(詩)편에는 김의 향을 노래하는 시가 있는데 이 시집은 14세기 고려 말의 위대한 문장가로서 당대에 사회, 정치적 비중이 높았던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 의 목은집(牧隱集)에서 발췌한 것으로 시의 제목은 강릉(江陵)의 염사(廉使)가 김을 보내 준 것을 감사하며 쓴 시다.

잘 익힌 밥은 사발에 넘쳐 새하얗고 (軟炊盈椀白)
새로 딴 김은 소반에 가득 푸르도다(新擷滿盤靑)
김에 싸서 밥을 먹는 대낮의 창가(和合午牕下)
치아에 은은히 묻어나는 그 향내여(齒牙微有馨)
라는 시가 있다.

참고로 조선시대의 상평통보 단위를 보면 10푼이 1전, 10전이 1냥, 10냥이 1관이었고, 관이 최고 단위였다. 우스운 말로 동냥하는 사람들이 ‘한 푼 줍쇼.’라는 말을 하는데 이때 한 푼은 지금의 약 200원 정도 된다고 한다.

마광남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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