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남 마산의 한 중3 여학생이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 나라에 잘 돌아가는 건 선풍기밖에 없다."며 “요즘 공부할 맛이 안 난다.”고 말했다. 다시 1987년 그날이 떠오른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저지른 서울대생 박종철군 물고문 치사 사건과 4.13호헌 조치에 저항해 시작된 수십 만의 6월 시민항쟁은 10일 서울 종로, 을지로, 퇴계로, 서울역 등에서 폭발했다. 그날 군사정권은 학생과 시민의 도심집결을 막기 위해 골목골목을 지켰고, 지하철을 서울역, 시청앞, 종각역 등 무정차 통과시켰다.
거리는 이미 전쟁터가 되었다. 최루탄이 수없이 날아들고 쫓고 쫓기는 상황이 밤새 이어졌다. 무서운 직사포(최루탄)와 사과탄, 지랄탄 사이로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쳤다. 보도블록을 깨서 작은 돌을 만들고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지며 목숨을 건 싸움은 계속 되었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학생들에게 시민들은 ‘박카스’와 ‘크리넥스 티슈’를 건네주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가게 주인은 몸을 숨겨주었고 넥타이 맨 샐러리맨들은 응원군이 되어 합류했다. 노태우의 ‘6.29 선언’ 이 있자 20일 간의 전쟁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선거 직선제’와 ‘헌법재판소’ 설치, 노조설립과 언론민주화 조치를 얻어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 12월 대선에서 야당인 김대중, 김영삼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군사정권의 부역자들이 또다시 정권을 잡는 비극이 연출되었다. 그래도 시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시민의 좌절에서 싹튼 열매가 '한겨레'다.
[관련 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d4HfAiQ7GGM
97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시민을 위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2002년 다음 대통령도 시민의 편에 섰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친일, 자본 권력의 힘, 기득권에 기생하는 부역자들의 힘은 너무나 거대했다. 2008년 다시 시민은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2016년의 시계는 87년도 아니고 79년으로 되돌아갔다. 대통령은 무당에 홀린 듯 물러나라는 시민의 요구에 요지부동이다. 그의 곁에는 같은 편조차 “광신도”라 불리는 부역자들뿐이다. 이런 자들과의 전쟁은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위험천만하다. 시민은 이 전쟁을 어떻게 치러야 할까. “아! 이를 어쩐다.” 아이디어와 전략이 필요하다. 국정농단의 몸통과 부역자 처벌을 넘어 새 세상을 열 그런 전략 말이다.
87년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짱돌과 쇠파이프, 화염병이 2016년 시민의 무기일 수는 없다. 그럴 필요가 없다. 지금 시민에게는 다섯 개의 강력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전 국민이 손에 들고 있는 4000만 대의 첨단전자장비 스마트폰이다. 시민은 데이터베이스와 GPS, 생방송이 가능한 울트라캡숑 첨단무기를 가진 현장기자들이다. 진실을 감추는 건 아예 불가능한 시대다. 한편 고린도후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무기가 아닌 하나님이 만든 무기(성경)로 악마의 요새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교육, 이념, 철학이 중요함을 말한다. 세월호 진실, 역사교과서 왜곡, 사드배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공기업민영화, 권력형 비리 등 한국 현대사의 적폐를 하나하나 SNS에 담아 전국민 역사교육의 장을 펼쳐야 한다. 시민 모두가 바른 역사와 진실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이다. 알면 참여하고 행동한다.
두 번째로 87년 6.10항쟁 실전 경험이다. 6월 항쟁 경험세대는 지금 50~70대다. 당시 대학생이거나 30~40대 직장인이었다. 이들은 87년 민주항쟁에서 이긴 승리의 경험과 온전한 민주시민사회를 만들지 못한 실패의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 당시를 복기하면 이번엔 완전한 승리가 가능하다. 불행인지 행운이지 모르지만 87년에 이어 2016년 시민혁명에서 힘을 쓸 세대는 다시 50~60년대 생이다. 시대가 20년은 젊어졌지 않은가.
세 번째로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뉴스타파>, <국민TV>등 시민 대변 언론이다. '국정농단'의 실체는 지난 9월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최순실 단골 마사지센터장'이라는 <한겨레> 특종을 기폭제로 많은 매체들이 왕성한 취재활동을 하여 새로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JTBC>는 최순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피씨를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소위 보수 종편들까지 나서서 국정농단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언로가 완전히 막혔던 87년 6월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네 번째는 경험이 풍부한 시민사회 연대 기구가 많다는 것이다. 한때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게 지킨 공약이 국민통합을 이룬 것”이란 우스개 소리가 있듯 지금은 시민사회가 하나로 묶이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종로 한복판에는 한겨레 주주들이 주도해 만든 ‘문화공간 온’이라는 시민의 아지트가 열려 긴 싸움에 지친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야권 국회의원 수가 재적인원의 과반수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을 확보해 제1당이 되었고, 야권인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으로 이들 야3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122석을 가진 새누리당보다 45석 많은 167석이다. 박 정권 최후의 선택이 “계엄선포”가 될 수 없도록 조건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보면 2016년 시민은 87년의 그들에 비해 강력하고 스마트한 무기를 가졌다. 문제는 무기가 아니라 무기를 잘 사용할 전략과 전술이다. 서두르지 말자. 우리가 가진 것을 점검하고 견고한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는 완력과 거짓말이라는 재래식 무기밖에 없다. 2016년 시민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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