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2시 경 광화문광장의 세월호천막 앞에 박사모 회원 등이 몰려왔다. 세월호 서명을 받는 부스 바로 앞을 현수막으로 가로막고는 온갖 소란을 피우고 세월호 조형물까지 부쉈다. 그들은 이후 촛불행진에서 ‘탄핵무효’, ‘문재인 간첩’ 구호를 외치며 행렬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탄핵무효’란 구호는 할 수 있다고 쳐도 ‘문재인 간첩’은 좀 심한 구호가 아닌가? 그런데 박사모 유사집단의 입에서 ‘문재인 간첩’이란 말은 거리낌없이 쉽게 내뱉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일, 울 엄마는 전철을 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엄마가 경로석에 앉아 있는데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 옆에 앉았다. 카톡을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휴대폰을 탁 엎더니 “문재인, 박지원 다 빨갱이야”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문재인, 박지원이 왜 빨갱이오?" 라고 물었다.

50대 남자 : 내 생각이 그래요.

엄마 : 증거 있오?

50대 남자 : 그냥 내 생각이 그래요.

엄마 : 그럼, 너도 빨갱이야.

50대 남자 : (펄쩍 뛰며) 왜 내가 빨갱이예요?

엄마 : 내 생각이 그래.

50대 남자 : 아니 증거 있어요?

엄마 : 너가 먼저 문재인이 빨갱이라고 했으니까 먼저 증거를 대봐.

50대 남자 : 참나 이 할머니 보겠나

엄마 : 내가 볼 땐 빨간 옷 입은 놈들(새누리당을 지칭)이 죄다 빨갱이야.

50대 남자 :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고 펄펄 뛰며) 왜 내가 빨갱이예요? 증거를 대봐요.

엄마와 50대 남자는 계속 먼저 증거를 대라고 언성을 높였고 결국 전철 안 모든 사람들의 이목은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런 이목이 부담스러웠는지 50대 남자는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 앞에 가더니 문이 열리니까 “곱게 죽을라면 곱게 늙어야지”하고 내렸다. 엄마는 그 남자를 비겁하고 째째한 놈이라며 "내가 대꾸도 할 수 없게 말하고 싹 내렸다."고 분해하셨다. 나이도 젊은 사람이 '문재인, 박지원이 빨갱이'라고 하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엄마는 한겨레주주이고 한겨레신문 애독자다. 20년 이상 한겨레신문을 보면서 옳고 그름을 똑바로 판단하고 계시기에, 젊은이들도 쉽게 할 수 없는 대응을 용감하게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조리 없는 이에게는 똑같이 조리 없는 방식으로의 세련된 대응' 이랄까? 그런데 좀 걱정도 된다. 그런 싸움을 또 하다가 꼴통 할배에게 한대라도 얻어맞으면 어쩌나.. 하여간 그래도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울 엄마 파이팅이다.

▲ 언니와 엄마. 몇년 전만 해도 이렇게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셨는데.. 고관절을 한번 다치고 나서는 앉거나 걷기 힘들어 촛불집회에 나오고 싶어도 못나오신다. 하지만 늘 마음은 보내주신다

편집: 박효삼 부에디터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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