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차 광화문광장의 이색촛불 참가자들

 

가. 일시 : 2017년 2월25일(토요일) 15:30 ~16:00

나. 장소 :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 광장 일대

다. 대상 : 17차 촛불 집회 현장 치재

 

아차산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을 타면서 나는 가만히 계산을 해본다.

종로3가에서 내려 3호선을 갈아탈 것인가? 아니면 광화문에 내려 해치(세월호)광장을 거쳐 광화문광장으로 나가서 광장을 관통하면서 촬영도 좀 하고 함께 참여하다가 경복궁역에서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는 방법으로 광화문광장에 참여를 할 것인가? 오늘은 마침 일찍 나와 광화문을 지나게 되었으니, 일단 광화문에서 내리기로 하였다.

여러 곳의 출구 중 광장으로 직접 나가는 해치광장을 통하여 나가다 보니 해치광장의 죄측에는 사드반대 현수막을 걸고 시위를 하는 성주군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일단 촬영을 하고 서명을 받는 곳에서는 서명을 해드리기로 하고 광장으로 나왔다.

혹시 한겨레온의 식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동상주변을 살폈으나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아직들 안 나오신 모양이니 포기하고 돌아보기로 하였다.

오늘 보니까 광화문 광장에는 수십 가지의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서명만 하러 다니다가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만 같았다. 하긴 이렇게 함부로 서명을 했다가 [문화예술인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서 블랙리스트피해 문화예술인 집단소송인으로 참가를 해야 하는 고역을 치르기도 하면서도 당연히 오늘 여기 왔으니 보이는 곳에서는 서명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문화예술강사자격박탈 진정], [세월호 사망 강사선생님들의 공무원과 같은 자격인증], [EMO곡물 사용금지 서명], [원전중단, 원전건설반대] 등등의 서명을 해주면서 광장을 돌다가 이색적인 참여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 [룰즈섹]과 [어나니머스]의 분장을 한 친구들의 환영인사국정원의 댓글 사건등을 일깨우기 위한 퍼포먼스

맨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인터넷 해킹의 대명사가 되어 있는 [룰즈섹]과 [어나니머스]의 분장을 한 친구들의 환영인사이었다. 이들은 함께 모여서 광장에 나온 분들에게 기쁨을 주고 곁에서 사진을 찍어 가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아마도 국정원 사이버부대를 풍자하고 그들의 만행을 고발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 순실이 탱탱볼-시원하게 스트레스 풀어볼까

다음은 [순실이 탱탱볼]이란 상품을 파는 분이었다. 작은 탱탱볼에 순실이의 얼굴을 그려 넣어서 바닥에 때리면 한참을 튀어 오르는 장남감으로 순실이를 패대기치는 재미를 느끼게 하여 분풀이를 하는 스트레스 해소용인 모양이다.

▲ 상투를 틀고 나타난 촛불혁명 만세

다음에는 상투를 틀고 어깨에 망토처럼 둘러맨 천에는 [촛불혁명 만세]라고 써서 다니는 분이었다. 이분이 사진을 찍으려는데 벌써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고 만다.

돌아서니 세종대왕상의 바로 앞부분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무언가하고 넘어다보니 ‘아니 이게 누군가?‘ 영락없는 순실씨가 여기 있는 게 아닌가?

▲ 가장 인기 있었던 순실이 분장 시민

몸체도 비슷하고 얼굴도 비슷한 분이 하얀 죄수복에 노란 번호표를 양쪽에 붙이고, 순실포즈로 선그라스를 머리위에 턱 걸치고 뿔테 안경을 나지막하게 걸쳐 쓰고서 안경너머로 레이저 광선이 나오는 눈빛으로 노려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눈동자의 흰부분이 유난히 나타나던 그 포즈까지 취하니 정말 순실씨가 여기 왔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선지 옆에 서서 낄낄 거리며 사진을 찍어 가려는 분들이 줄을 섰다.

▲ 어나니머스의 외침

돌아서서 북쪽 광장으로 가려니까 이번에는 교보쪽의 화단에 높직하게 [어나니머스]가 작은 단도를 두 개씩이나 허리춤에 달고 서서 <박근해 탄핵> 빨간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

▲ 십자가를 끌고 나타난 예수님

뒤이어 나무 십자가를 맨 분이 다가온다. 온 몸에서 흘린 피를 상징하는 붉은 물감으로 적셔지다시피 한 옷을 입고 맨발로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미쳐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따라가면서 간신히 한 두장의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다.

이제 북쪽 광장으로 들어서면서 언제나 이렇게 이른 시각에 왔다가 가다보니 촛불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느끼고 기념으로라도 촛불을 하나 준비해야겠다고 1,000원짜리 디지털 촛불을 하나 샀다.

오늘 현장에서 받은 각종 손팻말과 신문들 그리고 촛불까지 아마도 20여년 후엔 이것도 기념품이 될 것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깃발들이 나부끼는 광장의 모습을 담으면서 북쪽 광장으로 나가다가 세종회관 옆의 계단에서 유난히 신나게 춤을 추는 무리가 있어서 다가가 보았다. 노동청년회와 정의당의 깃발을 든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정말 이런 축제가 어디 있나 싶을 만큼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들을 따라 부른다.

저렇게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 엄중한 시대상황을 이겨내어야 하는 이들 젊은이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노인들이 조심 해주었으면 싶었다.

정말 나라를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오랜 관습이나 왕조시대의 낡은 생각으로 아직도 '대통령=나라=대한민국'이라는 공식에 젖어 있는 분들이 저리 많은 것에 부아가 난다.

그래서 이 광화문 광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외쳤건만 이를 못 알아듣고 왕조시대의 백성이 되어서 <대통령을 나랏님>으로 모시려는 처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슬픈 생각을 하면서 나이든 내가 이 광장에 서 있는 것이 저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태극기 들고 시청 앞에서 시위하다가 오는 길인가?’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만 같아서 저절로 서글퍼졌다.

생각을 하면서 정부서울청사 정문 부근으로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오시는 분이 알 듯 한 분이다.

▲ 광장에 나타나신 노투사 백기완 선생님

“아니 백기완 선생님! 건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를 드리니 반갑게 손을 마주 잡아 주신다.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십시오. 조심하세요.”하고 길을 비켜 드려야 하였다. 곁에서 양쪽에 건장한 분들이 붙잡아 드리고 있는데 오래 이야기를 하거나 길을 붙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렇게 나이 드셨어도 꿋꿋하게 올바른 생각을 가르쳐 주시는 어르신이 있는가하면, 개떡 같은 시절에 권력에 빌붙어서 호의호식하던 거짓뭉치 원로들이 나서서 나라를 걱정한다고 국기를 들고 나섰으니 태극기가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가? 거짓으로 나라를 덮고, 정경유착으로 썩어 들어가는 세력을 옹호하는 것이 애국인가? 썩은 상처를 도려내고 새살이 돋게 하여서 밝고 맑은 사회를 만들어서 자손 대대로 청렴국가를 만드는 것이 진정 애국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경복궁 역으로 발길을 옮기는 내내 정부서울청사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 나라의 장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 이 광장 사람들 외침을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저 태극기 부대들의 호령처럼 [쿠데타를 일으켜서 민주고 지랄이고 정권을 잡아서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을까?

하찮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 별 걱정을 다하는 어리석은 내 모습이 안타깝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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